📘25#27 이처럼 사소한 것들
2025.09.08~09.11
⏩️작은 선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VS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 해야 하는 일이 있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줄거리
주인공은 아내와 딸 다섯을 둔 가장인데, 석탄을 파는 일을 한다. 그가 아빠 없이 미혼모 엄마와 자랐는데, 엄마가 가정부로 일하던 집의 윌슨 부인의 도움으로 모나지 않게 잘 성장한다. 어느날 빌은 가장 큰 거래처인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갔는데, 한 소녀가 수녀원 내 건물에 감금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녀를 구해준다. 그러나 그녀를 다시 수녀원에 데려다줄 때 자신이 아예 소녀를 책임지지 않는 이상은 학대가 멈추지 않을 것을 깨닫는다. 처음에 그는 그녀를 외면하려 하지만, 결국 며칠 뒤 맨발의 소녀의 손을 잡고 수녀원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 집에 데리고 가는 길 사람들의 달라진 눈길과 행동을 느끼며 자신의 삶이 아주 많이 바뀔 것을 느낀다.
✅느낀점
책의 시작은 빌과 아일린이 자녀들의 크리스마스 선물 준비를 하는 장면이다. 이만하면 아이들을 잘 키웠다는 이야기도 나누며 아이들이 산타에게 쓴 쪽지를 보며 흐뭇해한다. 난 그래서 이 책이 소위 아보하라고 불리는 류의 가족휴먼물인 줄 알았다. 그러나 곧 빌과 아일린의 동상이몽이 날 긴장하게 만들었다. 빌의 마음에 차오르는 외면할 수 없는 동정과 긍휼, 자신도 그렇게 사랑을 받아 걷어졌기에 무시할 수 없는 양심의 소리. 그리고 이미 다섯 명의 딸을 키우며 알뜰살뜰 아등바등 현실을 살며 미래를 걱정하는 아일린의 마음. 책을 읽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아일린의 편을 들고 있었다. '그래도 데려오지는 마', '혼자 결정하지 마'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책의 배경이 되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아일랜드의 가톨릭 교회와 정부에 의해 미혼모나 사회에서 "타락했다"라고 여겨진 여성들이 강제로 수용되어 노동과 학대에 시달렸던 실제 사건이다.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내가 느낀 긴장과 무게감에 더 힘을 실어 주었던 것 같다.
옮긴이는 책을 두 번 이상 읽을 것을 추천했고 그래서 실제로 책 중반까지 한번 더 읽었다. 사실 나는 빌의 행동이 사려깊음인가 오지랖인가 현실적으로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감당하기엔 보통 책임이 아니니 말이다. 현실적으로는 하기 어려운 결정이지만, 그럼에도 빌이 낸 용기가 어두운 현실 속 희망의 한 줄기를 보여준다고 생각해 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모르는 단어들을 찾아보며 그 사소한 배경의 소품도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델프트보울은 단순한 그릇을 너머 집안의 격조와 교양을 보여주는 장식품 역할을 했고, 쉐리 와인은 연말에 손님을 접대할 때 주로 사용되던 것인데 따뜻한 연말 분위기 그리고 중산층 가정의 생활감을 담고 있는 장치가 되었다. 그래서 단정한 델프트보울과 수녀원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비참한 현실이 대비되고, 연말의 축제 분위기와 공동체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쉐리는 겉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사회 이면에 가려진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심지어 석탄의 종류도 초기 석탄인 토탄은 충분히 빛과 열을 발휘하지 못한 수녀원에 갇힌 여성들이나 아이들처럼 미성숙하고 사회적으로 버려진 상태를 상징하고, 분탄은 마을 사람들처럼 진실을 앎에도 양심과 안락함 사이 머뭇거리고 있는 불완전한 도덕성을 상징하며, 무연탄은 빌 펄롱이 내린 양심의 결단, 깨끗한 용기를 상징한다. 즉 석탄을 파는 빌이 양심의 불씨를 전하는 사람으로 확장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작은 장치에도 이토록 함축적인 의미가 있었다니!! 단지 이게 무엇인지 궁금했을 뿐인데 럭키비키!
*야적장: 철근, 모레와 같이 비에 젖어도 상관없는 화물을 임시 또는 장기적으로 쌓아두는 장소
*델프트보울: 네덜란드 델프트 지방에서 제작되는 청화백자. 작은 음식 등을 담아내거나 장식품으로도 사용했다.
*토탄: 석탄의 종류 중 하나. 늪지나 습지에서 식물이 썩어 땅속에 눌리며 만들어진 석탄의 가장 초기 단계. 수분이 많고 연소 시 연기와 냄새가 많이 남. 예전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에서 난방용 연료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원예용으로 흔히 쓰인다.
*분탄: 석탄의 종류 중 하나. 토탄이 오랜 기간 압축되고 변화되며 만들어진 것. 전력 발전소에서 저렴한 연료로 쓰이는데 오염물질 배출이 많다.
*무연탄: 열과 압력을 오래 받은 석탄화 단계 중 가장 마지막 단계. 탄소 함량이 높음. 불이 잘 붙진 않지만 한 번 붙으면 냄새와 연기가 거의 없음. 난방용이나 제철소에서 고급 연료로 사용되었다.
*쉐리: 스페인 남부 지방에서 생산되는 강화 와인. 일반 와인에 브랜디(증류주)를 섞어서 도수를 높인 술.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보통 겨울(특히 크리스마스 시즌)과 손님 접대용으로 많이 쓰였다.
*블랙푸딩: 돼지 피와 곡물을 섞어 만든 소시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영국에서 아침으로 자주 먹음.
*장궤 자세: 장궤가 양 무릎을 꿇는 자세를 뜻함. 미사 중에 성도들이 장궤 자세를 취함.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다산책방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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