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님의 프로필 이미지

시린

@shirin

+ 팔로우
사서 일기의 표지 이미지

사서 일기

앨리 모건 지음
문학동네 펴냄

_
도서관에서 어떤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고상할 것만 같은 사서의 일이 그 기대와는 달리 얼마나 처절하고 스펙터클한 지 궁금하다면 이 책이 안성맞춤이다.
극심한 트라우마로 정신적인 고통을 겪던 저자가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치유되는 과정도 담겨 있다. 다른 사람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저자의 특성 덕에 주변 인물들에 대한 설명도 생생하다.
지역사회의 가장 취약한 곳을 받치고 있는 도서관에 대한 넘치는 애정과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에 나까지 위로받은 책이다. 번역이 정말 잘되어 있다. 술술 잙 읽히길래 번역가가 누구인지 이름을 확인했을 정도.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사랑하게 된 책은 참 오랜만이다.
_
📖 도서관에는 생애 전환기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익숙함 내지 친근함이 아닐까 싶다. 어딘가의 공공도서관에 생전 처음 가본다 하더라도, 그곳의 기본적인 사항은 익히 다 예상할 수 있으니까. 고정불변이 주는 편안함이 분명 있다, 더군다나 그게 공짜라면.
나는 곧 로스크리 도서관이 주민들에게 주는 위안을 과소평 가하지 않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일하다보면 쉽게 당연한 것으로 간과하게 되지만, 클로이나 제니퍼 같은 이들에겐 진정 삶의 동아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p.172~173)
_
📖 "저기요. 우리 아들이 똥을 쌌는데요."
도서관 일은 지극히 초현실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기존에 알려진 어느 차원에서도 일어난 적 없는 사건들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꿈의 직업이다. 어느 순간에는 자선기금 복권을 판매하고 있는가 하면 다음 순간에는 굶주린 싱글맘을 위로하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당신이 기함할 만한 일을 끊임없이 찾아낸다. (p.340)
_
📖 나는 협소한 직원 탕비실 문을 닫고 주전자를 불에 올렸다. 일단 극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과업이나 방해물에 직면했을 때 이것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나는 차를 끓인다. 한 잔은 나를 위해, 또 한 잔은 과업을 위해. 나는 과업을 초대하여 마주앉는다. 미친 짓거리로 보일 테고 누가 나한테 미친 짓이라고 한다면 나도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그로써 나는 쓸데없는 고심에 빠져들지 않고 좌절과 낙담에 배출구를 제공할 수 있다. 자신 있게 말하건대, 나의 소소한 다례는 백 퍼센트 심리학자가 보증한 행위다. 어쨌든 최소한 나의 담당 임상심리학자는 찬성했다.
난제를 초대한다. 함께 자리에 앉는다. 차를 마신다. 난제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난제에게 내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계획인지 구체적으로 얘기한다. 그런 식으로 어떻게든 계획을 강구해낸다, 아주 막연한 계획이라도. 악에 받쳐 발휘되는 생산성.
나는 맞은편 찻잔에 대고 얘기했다. 진공청소기를 갖고 와서 유리 가루를 치울 거야, 그다음에 책상과 책장 위를 정리한 다음 또 진공청소기를 돌리는 거지. 네가 날 괴롭히게 놔두지 않을 거야. 해야 한다면 그 망할 것들을 맨손으로 집을 수도 있어. 네가 날 괴롭히는 걸 좌시하지 않을 거라고.
머그잔이 조롱하듯 나를 향해 김을 피워올렸다.
"그걸로 되겠어?" 내가 말했다. "그 정도로 날 절망에 빠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난 미친 여자야. 나를 무너뜨리려면 좀더 힘을 내야지. 난 빌어먹을 찻잔한테 말을 거는 여자야.
난 뭐든 할 수 있어!"
나는 차를 다 마시고, 맞은편 잔을 집어들어 싱크대에 차를 부었다. 나만의 정화의식이었다.
(p.351~353)
2024년 10월 5일
0

시린님의 다른 게시물

시린님의 프로필 이미지

시린

@shirin

  • 시린님의 흉가 게시물 이미지
_
간만에 소설을 읽고 싶었고, 마침 전자도서관에서
추천하는 ‘소설 읽는 즐거움‘ 리스트의 첫번째 책이었다.
_
분위기가 꽤나 섬뜩하다.
가끔씩 전개가 허술하지만 호러소설이니까,
모든 스토리나 장치가 합리적일 순 없는 것으로 정리한다.
미쓰다 신조 책은 여기까지(첫 책이었다).

흉가

미쓰다 신조 지음
북로드 펴냄

1주 전
0
시린님의 프로필 이미지

시린

@shirin

  • 시린님의 장미와 나이프 게시물 이미지

장미와 나이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반타 펴냄

읽었어요
3주 전
0
시린님의 프로필 이미지

시린

@shirin

  • 시린님의 산 자들 게시물 이미지

산 자들

장강명 지음
민음사 펴냄

읽었어요
2개월 전
0

시린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