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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욘 포세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인상은 있되 의도는 알 수 없는, 무엇을 안다고 해도 그 가치를 따져볼 수 없는 모호한 결말 뒤로 포세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문이 따라붙는다. 나는 앞에 실린 작품 <샤이닝>보다도 뒤에 굳이 연설문을 붙인 문학동네의 감각에 감탄한다.

연설문 가운데 각별히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그건 그가 저의 첫 작품, 참담하게 실패한 데다 혹평까지 받은 <레드, 블랙>을 언급할 때다. 비평가들의 비난에도 포세는 멈추지 않았다. 그저 멈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비평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오직 나 자신만을 믿고 나만의 것을 고수하리라 결심'했다고 전한다.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작품은 평단에 의해 발굴되고 주목받는다. 이때도 그는 생각한다. '내 작품을 향한 혹평에 귀를 기울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순풍에도 몸을 맡기지 않고 오직 나만의 글을 쓰는 데 전념해야 한다는 초기의 결심을 고수'해야겠다고.

그는 노벨상 수상 뒤에도 이 결심을 변치 않고 지켜나가겠다고 선언한다. 나는 이와 같은 태도가 포세의 오늘을 만들었다 믿는다. 이 결심이 아니었다면 그는 훨씬 흥미진진한 소설을 쓰는 평범한 작가가 되었거나, 아예 글을 쓰지 않는 이가 되지 않았을까.

스스로에 충실한 작가, 세상의 판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이. 그런 태도가 누구와도 다른 저만의 작품을 쓰도록 한다. 욘 포세의 소설에 대한 호오판단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른 누구와도 다른 작품을 써나가는 이라는 데 의견을 달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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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가 오로지 소비에서 끝나지 않는단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더 많은 소비를 위하여 우리는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 더 많은 생산에서 끝나지 않고 더 많이 폐기해야 한다. 그리하여 합리적 소비를 막기 위한 온갖 술수가 동원된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 경제규모의 확장이 인류를 구원하리란 믿음이 곳곳에서 깨져나간다. 자본주의의 실패 또한 수습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에너지 수급과 쓰레기 처리, 생산부터 폐기에 이르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문제를 인류는 감당치 못하고 있다. 문학이 자리를 틀고 앉아 매일 하던 이야기만 반복한대서야 세상과 유리된 오락과 구분할 수 없는 일이다. 문학이 인간의 사상과 예술, 지성의 정수로써 작가와 독자를 잇는 창이라면, 이런 작품이야말로 기꺼이 제 역할을 모색하는 책이라 할 것이다.

실린 작품의 착상이며 구성, 완성도에 일부 아쉬움이 있지만, 적어도 근래 한국 문학 가운데 흔치 않은 시도란 건 분명하다.

최소한의 나

이준희 외 6명 지음
득수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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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아끼는 이들이 파리를 가면 반드시 찾는 곳이 있다. 바로 카페. 레 뒤 마고, 카페 드 플로르, 르 프로코프, 르 돔, 본 프랑케트, 르 타부 같은 곳들. 그저 카페인 것 만이 아니다. 가게마다 유명한 작가들, 이를테면 샤르트르와 보부아르, 카뮈, 콕토, 랭보, 헤밍웨이, 카파와 브레송,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같은 이들과 얽힌 사연이 한가득이다. 이곳을 찾는 건 예술과 역사, 낭만과 아름다움을 만나는 일이다.

책은 한반도, 특히 모던 열풍이 일던 1920년대 이후 십수년 간 이 땅에서도 명사들이 카페를 찾아 교유하고 작품을 빚던 시기가 있었단 걸 알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굴곡진 역사는 저기 파리처럼 우리의 공간을 지켜내지 못했고, 그나마 남은 건물들마저 지켜내지 못했음을 일깨운다. 그마저도 이를 기억하는 이가 없다. 이 얼마나 빡치고 쪽팔린 일인가 말이다.

개화기 한국 커피역사 이야기

김시현, 윤여태 (지은이) 지음
피아리스 펴냄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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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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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주제를 다룬 24편의 글이 그가 발표한 소설과 시, 극본에 깔린 저자의 인간관이며 세계관을 알기 쉽게 드러낸다.

온갖 압제와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 육체와 정신의 진정한 자유를 실현해야 한다는 일관된 주장이 비교적 깔끔한 구성 아래 들어찬 게 특징적이다. 날카로운 시각과 흥미로운 사유 사이로, 마광수의 저술에 기대하게 되는 것, 즉 과격하여 무리하게 느껴지는 논리 전개를 마주하는 재미 또한 상당하다.

물론 공감하는 대목보단 반박하고 싶어지는 부분이 훨씬 많은 책이다. 그것이 그대로 마광수를 읽는 즐거움이란 걸 그의 애독자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남이 듣기 좋은 글만 쓰는 것이 미덕이고 더 나은 작가인양 추켜세워지는 세태 가운데서, 웬만한 비판쯤엔 즐기듯 부딪치는 그의 글이 매력을 뿜어낸다.

책 가운데 여러 면모를 가만히 들여다보자니 조금의 불편에도 한없이 민감한 오늘의 독자에게 이곳이 어떻고 저곳이 저렇다며 뜯기고 씹힐 구석이 수두룩한 걸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오늘의 작가는 더 자극적이고 파격적이며 거침없는 생각을 활자로 적지 못하게 된 건 아닌가, 그런 생각에 이르고 만다. 그렇다면 그건 과연 발전이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인류는 진보하지 않는다는 마광수의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인간론

마광수 (지은이) 지음
책마루 펴냄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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