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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의 사전 (기획자가 평생 품어야 할 스물아홉 가지 단어)의 표지 이미지

기획자의 사전

정은우 지음
수오서재 펴냄

이런 종이 하나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는 깨달음에 어떤 삶의 태도마저 배우게 된다..
좋은 필기구나 지류는 지금의 인정을 받기까지 견뎌온 지난했던 시간과 스마트폰 시대에 살아남으려는 분투가 있다.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하는 곳에서도 몇십 년간 꾸준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만든 제품. 기획자는 그들의 작업을 신뢰하고 응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이 보여준 삶의 태도가 내게도 깃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p.119)


학창시절의 내가 옛날이야기만큼 눈을 반짝였던 것들은, '00 브랜드의 탄생 비화', '00 노래의 가사가 나온 배경' 등 어떠한 것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였다. 잘은 모르지만, “무엇인가”가 되기까지의 노력이 결괏값보다 멋지단 것을 어렴풋이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지난주 만났던 책, 『기획자의 사전』을 읽으며 진짜 좋은 기획자란, 그 “무엇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찾아내 “순간”에 담아내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또 그 순간으로, 타인에게서 '무엇인가'를 끌어내는 사람들. (그것이 결심이든 소비이든 간에)
정리해보자면 과거에서부터 미래에까지 이어지는 “동사”를 “명사”로 연결해내는 사람이랄까.

정은우 마케팅전문가의 책, 『기획자의 사전』은 기획자나 마케터 등이 업무를 하며 마주하게 될 고민을 풀어낸 책이다. 비록 나는 기획자는 아니지만, 내 생각들을 보다 매력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읽어보게 되었다. 『기획자의 사전』에서는 스물아홉 개의 단어들로 여러 고민과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각각의 의도와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기획자의 사전』을 읽는 내내, 이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분초 단위로 바뀌는 현대사회에서 누군가의 걸음을, 시선을 멈춰 세우게 만들 수 있겠구나 싶어지더라.

『기획자의 사전』은 실무 사전, 도구 사전, 태도 사전 등으로 나뉘어 기획자들이 더 감각적으로 대상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스킬을 담고 있다. 트렌드, 직관, 인사이트 등의 단어를 풀어내는데, 신기하게도 꽤 딱딱할 수 있는 단어들을 무척 섬세하고 쉽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획자의 사전』을 통해 기획의 기본, 기획자의 마음가짐,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시선 등에 대해 읽으며 나도 간과해왔던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많은 것을 담고, 기억하는 사함으로 살아왔지만 『기획자의 사전』을 읽으며, 내가 대상을 바라보는 눈에 따라 내 생각의 깊이도 큰 차이를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실무, 도구, 태도 등의 주제로 풀어내는 단어 스물아홉 가지 모두 인상 깊었지만, 특히 마음에 길게 남은 것은 태도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 중, '등속'에 담긴 말이 무척이나 마음에 닿았다. “아무렴, 최선을 다했는지 아닌지는 다름 아닌 내가 안다. 이만하면 후회가 없는지, 더 애쓰지 않아도 되는지는 내가 안다. (p.186)”을 읽으며 나 스스로 후회하지 않는 시간들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자는 마음을 다졌다. 또 기획자에게 필요한 태도로 “지루함에 굴하지 않고 지속할 동기를 스스로 찾는 행위(p.187)”를 꼽았는데, “꾸준함”의 힘을 명확히 아는 “그 무엇이 되어가는 과정”을 아는 사람이구나 싶어져, 그의 “결과”값이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기획자의 사전』을 다 읽은 후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고자 애쓰는 모든 창작자에게”라는 문장을 읽는데, 괜히 마음이 뭉클했다. 그래, 어쩌면 우리도 '기획자'다. 그 대상이 다를 뿐 우리는 모두 생각을, 언어를, 음식을 기획하고 나누며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우리의 '등속'을 잃지 말고, '공감'과 '호기심' 가득한 따뜻하고도 반짝이는 순간들을 기획하며 살아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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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은 부부가 헤어진 것이지, 부모가 헤어진 게 아니다. 자식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게 부모라면 남남이 된 부부라도 그 진심에는 변함이 없다. 자식을 위해 쇼인도 부부를 못 할까, 재혼이 두려울까. 자식이 아프지 않을 수만 있다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게 부모이고,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P.153)

나와 동갑, 그녀의 첫 번째 책이 출간될 즈음 연을 맺은 뒤 이미 몇 년째 서로의 SNS로 소통하는 작가님이었고, 나 역시 기다리던 그녀의 다음 책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육아가 끝나면 각자의 집으로 간다.』를 읽는 나의 속도는 꽤 더뎠다. 솔직히 말하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 혼사가 두려웠냐고? 아니다. 그녀의 글에서 발견하게 될 내 모습이 두려웠다. 『우리는 육아가 끝나면 각자의 집으로 간다.』의 첫 장에서부터 우리 집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미칠 것 같은 속을 다독이며 아이를 위해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서운함은 무거운 돌덩이가 되었고, 이후 사소한 일이 생길 때마다 작은 돌덩이가 차곡차곡 쌓였다. (P.57)”, “혼자가 아님에도 혼자일 때보다 더 아프고 버거운데, 정말 별일이 아닐까. 누구는 이런 살에 지쳐서 죽기도 한다는데 이건 죽고 사는 문제에 속하지 않는 걸까(P.58)”

나도 모르게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때의 그녀에게 “이혼은 그냥, 더는 사랑하지 않게 된 사람들이 하는 거야. 특별한 누가 아니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말은 그때의 나에게도 해주고 싶었다. 불행을 피한 것인지 행복을 내쫓은 것인지 답답하다는 그녀의 마음이, 그때의 나 같아서 자꾸 훌쩍거려졌다. 이 훌쩍임의 소리가 변한 건 몇 장 채 넘기지도 않아서였다. 내가 이혼을 결심하지 못했던 이유가 고스란히 담긴 그녀의 문장들 앞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울어버렸다. 그녀가 오래도록 속앓이한 끝에 얻어낸 결론, “부모의 이혼에 남겨진 책임은 부재한 부모의 자리를 그리움으로 두지 않는 것이다. 이혼과 상관없이 부모 그대로 아이 곁에 있는 것이다. (P.122)”는 말에 마음에 파도가 일었다. 나에겐 이혼사유가 부족했던 것인지 용기가 부족했던 것인지 모르지만, 부모의 자리를 그리움으로 두지 않을 자신이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육아가 끝나면 각자의 집으로 간다.』를 읽으며 초반에는 “내가 이혼하지 못한 이유”를 찾았고, 중반에 다다랐을 때는 마치 그것이 엄청난 모험이라도 되는 것처럼 용기가 '부족'한 나를 탓하려 했다. 그러나 “대지가 비옥하지 않은 엄마는 '너희도 참아'라며 무책임한 악다구니로 아이들을 아프게 한다(P.178)는 문장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를 위해 미워하기를 멈추기로 해놓고, 어느새 야금야금 서로를 향한 미움을 꺼내고 있었다. 미움을 멈추기로 했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 내 결심에 책임지는 어른스러움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녀의 문장 위에 내 마음을 얹어보고서야 그걸 깨닫는 부족한 사람이다. 그녀가 애써 얻은 깨달음을, 슬쩍 얻어가는 염치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 경험이 누군가에게 약이 된다면 얼마든지” 하며 자신이 지나온 시간들을 바싹 말려, 달콤쌉쌀해진 경험으로 나누어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이미 스스로를 다독이는 힘을 얻었으니, 누군가를 안아줄 여유도 생겼으리라. 나도 어느새 아팠던 시간을 딛고, 이혼하고 싶다고 우는 후배의 등을 도닥이는 사람이 되어 있다.

『우리는 육아가 끝나면 각자의 집으로 간다.』를 다 읽고 난 지금- 진짜 용기는 이혼이나 인내, 그 무엇도 아닌 스스로 선택한 것에 책임지는 것에 무게를 두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디라 했던가. 그 무거운 시간을 견뎌낸 그녀에게 이제 행복과 빛으로 가득한 왕관만이 가득하기를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해본다.

우리는 육아가 끝나면 각자 집으로 간다

글짱 지음
담다 펴냄

8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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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순 작가의 신간, 『바람골을 찾아서』는 사실 아이보다 내가 읽고싶은 마음이 커서 만낙 되었다. 어린이들을 위한 판타지 동화이기도 하지만, 전쟁 피해자의 상흔과 전쟁이 남기는 것들에 대해 잘 조명하고 있고, 회복 방향성을 고민하기 때문에 전쟁을 직접 겪은 우리나라에는 꼭 필요한 동화라고 생각했기 때문.

『바람골을 찾아서』에서 현준이는 할아버지의 보물을 찾아 바람골로 향한다. 그저 할아버지의 보물을 찾기만 하면 할아버지가 더 이상 아프지 않으리라는 기대로 시작한 모험이었으나 우연히 현준은 과거를 경험하게 된다. 어딘가 낯익은 새 형과 자꾸만 싸우게 되는 더벅머리 아이를 비롯한 이상한 사람들이 가득하고 총성이 오가는 바람골. 설상가상으로 졸지에 함께 도망자가 된 현준은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전쟁의 슬픔과 할아버지의 아픔을 이해하게 된다. 물론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저 상상 속의 일이고, 우리 세대에게도 ‘과거’로만 느껴지는 오랜 일이지만, 『바람골을 찾아서』을 통해서 만나는 전쟁의 상흔은 전쟁이 남기는 아픔과 현실적인 해결방안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사실 아이는 『바람골을 찾아서』를 읽기 전까지, 전쟁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지는 못했던 것 같긴 하다. 하긴 아이가 만나는 전쟁은 독립기념관, 호국기념관 등에서 만날 뿐이니 특정 감정을 느끼기는 어려웠을 듯. 그러나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 오래도록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모습 등에서 전쟁이 우리에게 남기는 상흔이 얼마나 큰지를 느끼고 많이 슬퍼했다. “누구에게” 좋은 거라서 전쟁을 한 건지 묻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내 마음도 복잡해졌고.

『바람골을 찾아서』는 어쩌면 우리의 그 모든 땅 이야기고, 그 시절을 겪은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바로 “오늘”의 이야기다. 그래서 『바람골을 찾아서』는 모두에게 읽혀졌으면 좋겠다. 전쟁이 남기는 것들에 대해 적어도 우리는 기억하고, 해결할 마음을 먹어야하니까.

멀게만 느껴지던 전쟁은 『바람골을 찾아서』 덕분에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깨달았다.

바람골을 찾아서

김송순 지음
샘터사 펴냄

9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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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나에게 대체 에너지가 어디서 나서, 그렇게 매일 책을 읽고 운동을 할 수 있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것들을 하기 위해 다른 에너지를 덜 쓴다. 내가 정한 루틴들을 지키기위해, 하지않아도 될 감정소모나 에너지소모를 피하는 편이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나를 돌보며 살아야하니까 나의 루틴을 성실하게 지키는 것이다.

직장인으로, 엄마로, 딸로- 내가 해야할 것들은 꽤 많지만 내가 나를 위해 꼭 지키는 것은 세가지 정도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잠시라도 했다는 위안을 주는 매일 책읽기,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없애주는 운동, 잠들기 전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필사. 사실 이런 것을 빼먹어도 큰일 나지는 않지만 잠자리에 들었을 때 내 자신은 안다. “아, 내가 오늘 나를 위해 살지 못했구나.”하고.

조금 더 젊었던 시절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했다는 위안을 주는 독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은 탓인지, 하루를 잘 닫는 것이 더 큰 위안이 될 수 있음을 배워간다. 그래서 온 가족이 잠들고 혼자 앉은 식탁, 한글자 한글자 필사를 하며 “오늘도 잘 보냈다”라는 마음을 꼭 담아본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시간에 가장 적합한 필사책은 마음시선의 것들이다. 최근에는 『고전명문장 필사100』을 쓰고 있는데, 분량도 적당하고 주제도 명확해서 하루를 정리하기에 참 좋다. 너무 많은 분량은 하루의 마무리에 피곤함을 더해주고 생각할 시간이 부족하게 되는데, 마음시선의 『고전명문장 필사100』은 집중해서 몇 분 쓰고, 또 생각할거리를 주는 문장들이 모여있어서 필사자체에도 큰 의미를 준다. 마음시선에서 출간되는 여러 필사책들은 주제가 꽤나 명확하기 때문에, 내가 집중하고 싶은 것이나 바라는 것 등에 따라 골라 쓸 수 있어 좋다. 또 책 자체가 실제본이라 쫙 펼쳐지기 때문에 글씨를 잘 못쓰는 사람도, 오랫동안 손글씨를 쓰지 않은 사람도 정갈하게 필사할 수 있음도 큰 장점.

학창시절에는 왜 선생님들이 빡빡이를 시키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보니, 손으로 무엇인가를 쓴다는 것은 손으로 한번, 눈으로 한번 읽고 쓰는 것이엇으며, 마음에도 꾹꾹 눌러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그렇게 집중하는 시간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며, 다른 상념들로부터 벗어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더라. 그래서 나는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스스로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 남에게만 좋은 사람이라서 스스로를 다독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꼭 필사를 하시면 좋겠다. 하루 5분에서 10분이라도 스스로를 돌볼 수 있길 바라며 말이다.

오늘, 『고전명문장 필사100』를 통해 데미안을 썼다. 나의 존재에 대해 한참 고민하던 즈음, 문득 데미안이 나에게 깨달음을 주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속삭여준다.

고전 명문장 필사 100

김지수 지음
마음시선 펴냄

10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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