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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지음
현대지성 펴냄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한때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하며 일본 문화에 푹 빠져있던 때가 있다. 그 공부는 어느덧 번역으로 이어지게 됐고 그러다 보니 일본과 일본인을 이해하는 것이 무척 중요해졌다. 단순히 애니메이션을 보고, 영화를,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더 깊은 문화를 알아보겠다고 구매했던 책이 <국화와 칼>이다. 그때 당시에도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객관적으로 가장 잘 기술한 책!이라고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세월이 흘렀고 이번에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새로운 <국화와 칼> 책이 출판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들여다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번 <국화와 칼>은 단순히 글에 그치지 않고 여러 자료들이 군데군데 함께 하고 있어서 기뻤다. 무엇보다 훨씬 가독성이 좋은 번역도 좋았다.



그럼에도 한 권을 읽는 데 2주 내내 걸렸다. 한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에 다른 저명한 이가 이미 내놓았다고 해도 그것을 내것으로 소화시키는 데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 또한 그러했으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책은 전쟁 중의 일본인들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가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런 행동을 보이게 된 이유를 역사적 사건에서부터 풀이한다. 그 역사가 고대부터일 필요는 없다. 대신 일본에 있어 가장 중요한 "위계질서"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막부 시대와 계층에 따른 위계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메이지 유신은 새로운 시대를 맞아 일본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변화해가는지를 설명한다.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국사를 공부하며 등장하는 메이지 유신은 그저 '다함께 힘을 합쳐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정도로 이해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위에서부터 이루어진 혁명이라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어느 나라든 그렇게 작정하고 위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어 이루어진 혁명은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것이 이들을 잘 설명해 주는 것일 테다. 이후로는 일본인의 정신 세계를 설명하며 무엇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지를 알려준다. 온이니, 기무니, 기리니 하지, 하는 것들을 읽어나가며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이 있지만 너무나 다른 국민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국화와 칼>은 놀랍게도 1944년 미국 국무부의 의뢰를 받아 쓴 정책 보고서를 바탕으로 다시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 보고서를 정책으로 맥아더 사령부가 적극 받아들여 일본 점령 정책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은 "국화를 사랑하고 예술가를 존경하는 심미적 성향과 칼을 숭배하고 사무라이에게 명예를 돌리는 폭력적 성향이 공존하는 문화"(...396P)라는 뜻으로 설명되지만 저자는 마지막 서술을 통해 철사와 틀, 가지치기가 없어도 아름다울 수 있는 국화와, 자기 자신을 단련하는 칼로 설명하며 이 시대에 맞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이 훌륭한 점은 자기중심적인 해석이 아닌, 문화상대주의로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가 선의와 준중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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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작가가 각인된 건, <향수>를 통해서다. 너무나 강렬한 미스터리 소재에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묘사가 무척 마음을 끌었다. 그런데 작가가 더 좋아진 건, <좀머씨 이야기> 덕분이었다. <향수>와는 완전히 다른 소설이고 잔잔한 듯, 묵직한 소설이 왠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이렇게나 다른 작품을 쓰는 작가라니 정말 궁금하다~ 생각했는데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어떤 상을 준다고 해도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신비함을 더해주는 작가.



최근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두 작품을 더 읽었다. 작가의 첫 번째 소설인 <콘트라베이스>와 세 번째 소설인 <비둘기>다. 이렇게 네 작품을 놓고 보니 <향수>만 좀 동떨어진 느낌이다. <향수>는 영화화되었을 만큼 대중적인 소설인 반면, 다른 세 작품은 매니아가 아니라면 읽기가 쉽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비둘기>는 느낌 상 <콘트라베이스>와 <좀머씨 이야기>의 중간 정도로 느껴진다.



<비둘기> 속 조나단 노엘은 오랜 기간 아무 걱정이나 큰 사건 없이 조용히 지내왔다. 유년기와 청년기에 너무나 큰 일을 겪었던 조나단에게 이 시간은 더없이 행복한 하루하루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생활하려던 그때, 자신의 한 칸 방 방문 앞에 비둘기가 가로막고 있는 것을 발견하다. 그는 이 비둘기를 본 후 패닉에 빠진다.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느껴지는 요의와 저 방문 앞 비둘기를 뚫고 과연 무사히 출근을 하고, 다시 이 안전한 방으로 귀가할 수 있을까.



조나단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술은 마치 <콘트라베이스> 속 주인공의 혼잣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조나단의 행동과 그 원인을 파헤쳐보면 마치 <좀머씨 이야기> 속 좀머씨와 비슷하다. 조나단은 유년기에 겪은 2차 세계 대전을 다 극복하지 못하고(누구라도 하루 아침에 부모가 사라지는 일을 겪는다면 그럴 것이다) 짜여진 일상 속 쳇바퀴같은 삶을 지향한다. 그 일상 속 "비둘기"는 그에게 침입자와 같을 것이고 오히려 이 비둘기를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하나의 사건은 또다른 하나를 불러내고 이어 연속되는)로 패닉 상태가 지속되는 듯하지만 책의 처음, 어린 시절 아무 걱정없이 비 오는 날 물장구치며 걸었던 그 순간을 떠올리듯 철벅거리며 거리를 걷는 동안(좀머씨의 방황과 비슷하지 않은가! ) 조금씩 자신을 되찾아간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그 누구라도 그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묘사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이제 <향수>도 한 집합으로 묶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가진 트라우마를 왜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못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읽는 내내 궁금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조나단이라면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 내면 세계를 심도 깊게 묘사한 쥐스킨트의 역작"이라는 설명이 아깝지 않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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