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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을 신고 휠체어를 밀다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전하는 어느 모자의 이야기)의 표지 이미지

하이힐을 신고 휠체어를 밀다

하타케야마 오리에 지음
더봄 펴냄

읽었어요
료카를 유모차에 태워 손잡이를 쥐고 나는 걸었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콘크리트 바닥에 울려 퍼지는 하이힐 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다.
평소에 익숙하던 풍경이 새삼스레 빛나 보였다.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가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료카나 나를 보는 사람들이 신기하게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있잖아, 료상. 다들 료상이나 엄마를 보고 있어. 료상이 잘 생겨서인가, 아니면 엄마가 예뻐서인가. 아하! 둘 다인가!”
기분이 좋아 유모차 커버를 걷어 올리면서 료상에게 말을 걸었다.
료상은 ‘무슨 일이야?’라는 얼굴을 하면서도 기분 좋은 엄마를 보고 기뻐하는 것 같았다. (순전히 내 생각인지는 몰라도)
세상의 색깔도, 타인의 시선도, 모두 내 마음에 달려 있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세상의 색깔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내가 조금 전에 쓴 것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던 글자가 갑자기 답답하게 느껴졌다. 뭐가....변호사야.
‘거짓말쟁이’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어. 마음에도 없는 것을 그럴듯하게 적고 발표할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나의 장애희망은 집은 나가는 것. 자유롭게 살아가는 거. 나는 거짓말쟁이인 나를 경멸했다.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사라져버리고 싶어. 그렇지만 사라질 용기도 없어.’
어렸던 나는 스스로를 놓아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정답, 어머니의 정답, 친구의 정답, 선생님의 정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누구에게도 미움 받지 않을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는 것은 결국 자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 나는 이중적이고, 유약하고, 비겁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고, 무슨 일이 생기면 남을 탓하고, 다른 무언가를 탓했다.
물론 그런 나를 누군들 믿을 리가, 좋아할 리가 없었다. 나는 그런 내가 너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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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uayt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 불빛이 켜졌다고 꼭 된다는 건 아니야."
"될거야."
마이클이 말했다.
"둘 다 도와줘서 고마워."
"네가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걸 우리가 알 방법은 없을까?"
"그런 건 없어."
기비 물음에 리지가 말했다.
"모르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지."

오늘이 내일을 데려올 거야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음
책읽는곰 펴냄

읽었어요
4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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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uayt

"실전에선 기세가 팔 할이야. 실령 승부에선 지더라도 기세에서 밀리면 안 돼. 차라리 감춰. 니 생각, 감정, 숨소리까지,,,, 그 어떤 것도 상대에게 드러내지 마."

"모든 것은 체력이다... 불쑥 손이 나가는 경솔함, 대충 타협하려는 안일함, 조급히 승부를 보려는 오만함... 모두 체력이 무너지며 나오는 패배의 수순이다. 실력도 집중력도, 심지어 정신력조차도 종국에 체력에서 나온다. 이기고 싶다면 마지막 한 수까지 버텨낼 체력부터 길러."

"그렇게 견디다가 이기는 거요. 쓰라린 상처에 진물이 나고, 딱지가 내려앉고, 새살이 돋고! 그렇게 참다 보면 한 번쯤은 기회가 오거든.... 조국수. 바둑판 위에선, 한 번 피하기 시작하면 갈 곳이 없습니다."

승부 각본집

윤종빈 외 1명 지음
스튜디오오드리 펴냄

읽었어요
3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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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

@lucyuayt

우리를 계속 살게 도와주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종교가 있으면 자살이 ‘그릇된 짓’이라는 생각이 윤리적 저지책 역할을 한다. 물론 죽음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미칠 영향이나 모방 자살 염려도 자살을 저지한다. 또 앞에서 봤듯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진화적 항상성(내부와 외부의 자극에도 형태와 생리적 특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것 - 옮긴이)이라는 자기 보존 본능도 있다.
인지 붕괴에 빠지면 이런 장벽들이 하나씩 무너진다. 의미 있는 생각을 하는 사고력을 잃고, 구체적인 세부 사항에만 몰두한다. 정상일 때는 고통의 숨은 의미를 찾는 생각이나 영적인 생각을 낳는 추상적인 사고를 한다. 그런데 자살 앞에서는 이런 사고가 놀랍도록 사라진다. 슈나이드먼은 "자살학에서 가장 위험한 어휘는 네 글자로 된 단어(욕설 fuck을 의미 - 옮긴이)뿐이다." 라고 말했다. 달리 말해 자살 의향자는 모아니면 도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에 젖는다. 상황이 흑백이 되었고, 은유적 미묘함 따윈 없이 오직 죽기 아니면 살기밖에 없다.

나는 죽으려고 했던 심리학자입니다

제시 베링 (지은이), 공경희 (옮긴이) 지음
더퀘스트 펴냄

읽었어요
3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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