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몽의 처절한 사랑이 마침내 폴의 응답을 받았을 때, 마치 나의 짝사랑이 이루어진 듯 기뻤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유죄다.”
비록 한 방향일지라도,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은 어쩌면 영원히 자라지 못한 채 남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사랑을 이렇게 신박하게, 동시에 고전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니. 아름다운 문장들과 단어의 미학에 빠진 나는, 일종의 ‘행복한 광기’ 상태였다.
서른아홉. 폴과 절묘하게 같은 나이.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처음엔 남녀가 뒤바뀐 듯한 이름에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적응했다. 작가의 의도였을까? 아니면 내 선입견과의 싸움이었을까.
폴과 로제는 서로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함께 있다고 해서, 온전히 함께 있는 것은 아니다.”
젊은 시몽은 사랑하고, 직진하고, 부서지고, 이별조차 조용히 받아들인다. 그의 열정과 솔직함이 부러웠다.
델리스파이스의 노래 〈고백〉 가사 중 일부가 떠올랐다.
하지만 미안해, 네 넓은 가슴에 묻혀
다른 누구를 생각했었어
미안해, 너의 손을 잡고 걸을 때에도
떠올랐었어, 그 사람이
이 문장은 언제나 마음을 후벼 판다.
그 누구 하나 행복하지 못한, 잘못된 사랑의 작대기.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일은 어쩌면 기적이다.
사랑은 여전히 복잡하고, 어쩔 수 없으며, 삶을 뜨겁게 흔드는 감정이다.
누군가가 없어서 불행하다면, 그 사람이 곁에 있어도 온전히 행복할 수 있을까?
로제는 ‘남자’라는 속성의 축약판처럼 보이고, 시몽은 풋사랑에 서툰 감정의 상징이다.
그리고 폴, 그는 어쩌지 못하는 감정 속에 머무는, 중년에서 노년까지 이어지는 사랑의 얼굴을 보여준다.
출판사마다 번역 스타일이 달라 책을 바꿔 읽으며 몰입에 다소 방해는 있었지만, 감정의 깊은 흐름을 헤치는 일은 없었다.
사랑 앞에선 누구나 서툴다. 좌충우돌하고, 외롭고, 그립고, 때로는 고통스럽고, 또 어떤 순간엔 환희에 벅차오른다. 그 복잡한 감정들이 삶을 더욱 입체적이고 깊게 만든다.
시몽은 실연의 아픔을 준 폴을 원망하게 될까?
아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그녀에게, 언젠가는 고마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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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민음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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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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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따뜻한 선의를 결코 배은하지 않은 한 평범한 40대 남성의 이야기.
크리스마스의 나날은 그렇게 소소하고 조용하게 시작되지만, 그 안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선택과 삶의 태도가 녹아 있다.
사소하다고 느끼는 감정 하나, 지나가는 눈빛 하나가 어떤 날은 목구멍이 콱 막히게 만들고, 또 어떤 날은 발걸음을 한없이 가볍게 하기도 한다.
펄롱에게 석탄을 뒤집어쓰고 나타난, 발톱이 긴 여자아이는 결코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한 번쯤 눈 감고 넘어갔을 일이다. 노동과 가족의 일상 속에서 잊히고 말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펄롱은 다르다.
그는 받은 은혜를 ‘당연하다’ 여기지 않는다.
어린 시절, 미스즈 윌슨의 따뜻한 선의가 없었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 모른다는 걸 아는 사람. 그래서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눈 감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선택은 쉽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질 수 있고, 수녀원 관계자들과의 충돌로 삶이 흔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를 살아도 떳떳하게,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그를 움직였다.
작품 속 인물들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수녀원장은 차갑도록 침착하다. 스스로도 여성이면서 대를 잇지 못한다는 태생적 성별에 대한 색안경,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불편한 감정, 그리고 자기 행위에 대한 죄책감 없는 침착함까지.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인물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여자들은, 때로는 시퍼런 직감만큼이나 더 무섭게 독해질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미스즈 윌슨이다.
사소한 머리 쓰다듬기, 자고 먹는 것에 대한 걱정 없이 자라게 해준 마음. 어머니처럼 넓고 따뜻한 마음이다.
여자라는 존재는 때로 어머니처럼 따뜻해지고, 때로는 자기혐오로, 무서울 만큼 차가워진다.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나에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만 있을 뿐이다.
아일린에게 크리스마스에 잊지 않고 50파운드 봉투를 쥐여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펄롱에게 그 50파운드는 그저 돈이 아니다.
그 돈을 받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 스스로를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다른 사람에게도 진심으로 친절해질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도, 킬리언 머피의 얼굴과 겨울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섬세하고, 따뜻한 이야기였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다산책방 펴냄
👍
힐링이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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