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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학교 (허남훈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밤의 학교

허남훈 지음
북레시피 펴냄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밤 12시가 되면 학교 앞 연못의 동상이 움직인대~"라는 학교 괴담은 어느 학교나 몇 개씩 전해지곤 했다. 요즘 아이들 사이엔 그런 게 없나 했더니 그렇지도 않다. 연못도 없고, 동상도 없지만 지하실 괴담이라거나 시계 괴담 같은 건 아직도 존재하나 보다. 처음 <밤의 학교>라는 제목을 들었을 땐 바로 그 괴담이 생각났다. 한밤 중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니~ 얼마나 흥미진진할까!



지환은 고등학생으로 시를 짓는 걸 좋아하고 친구 기웅이와 실체 엽서 모으는 걸 취미로 삼고 있다. 어느 날 얻게 된 한 실체 엽서에서부터 기묘한 일이 자꾸 생긴다. 일어났으나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보았지만 나만 본 일들이다. 잘못 봤겠지~ 하던 중 친구의 꾐으로 학교에서 자게 된 어느 날, 지환은 학교에서 자신도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그 일에 휘말리게 된 사실을 깨닫는다. 과연, 이 밤의 학교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소설의 초반에는 실체 엽서가 등장하고 갑자기 희곡이 나오고 해서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조금 헷갈렸다. 하지만 조금의 상상력만 있다면 그 희곡이 지환이 쓴 희곡이고 아이들이 공연하게 될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구성이 굉장히 독특하다. 지환이 겪는 여러가지 일들과 희곡이 번갈아가면서 서로를 보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읽는다면 과연 몇이나 이해할까 싶어 조금 아쉽기는 했다)



밤의 학교에서는 권기옥에서부터 시작해 윤동주와 안중근, 김구까지 일제강점기를 거쳐 독립운동에 헌실한 여러 의인들이 동시에 등장한다. 여러 시대를 거쳐 일어난 일들이 마치 한 무대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그 과정을 통해 지환과 친구들은 자신들이 잘 몰랐던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알게 되고 많은 것을 깨닫는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 또한 마찬가지다.



"잊지 마. 학교야말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다 함께 모여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것을."...156p



한국사가 수능 필수 과목이라 하더라도 아이들은 우리 역사를 그저 공부라고만 치부해버린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도 대비할 수 있다는 말 쯤은 아이들에게 그저 말도 안되는 꼰대들의 잔소리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역사를 제대로 모르고서야 어찌 세계에서 큰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바로 우리의 정체성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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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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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작가가 각인된 건, <향수>를 통해서다. 너무나 강렬한 미스터리 소재에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묘사가 무척 마음을 끌었다. 그런데 작가가 더 좋아진 건, <좀머씨 이야기> 덕분이었다. <향수>와는 완전히 다른 소설이고 잔잔한 듯, 묵직한 소설이 왠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이렇게나 다른 작품을 쓰는 작가라니 정말 궁금하다~ 생각했는데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어떤 상을 준다고 해도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신비함을 더해주는 작가.



최근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두 작품을 더 읽었다. 작가의 첫 번째 소설인 <콘트라베이스>와 세 번째 소설인 <비둘기>다. 이렇게 네 작품을 놓고 보니 <향수>만 좀 동떨어진 느낌이다. <향수>는 영화화되었을 만큼 대중적인 소설인 반면, 다른 세 작품은 매니아가 아니라면 읽기가 쉽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비둘기>는 느낌 상 <콘트라베이스>와 <좀머씨 이야기>의 중간 정도로 느껴진다.



<비둘기> 속 조나단 노엘은 오랜 기간 아무 걱정이나 큰 사건 없이 조용히 지내왔다. 유년기와 청년기에 너무나 큰 일을 겪었던 조나단에게 이 시간은 더없이 행복한 하루하루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생활하려던 그때, 자신의 한 칸 방 방문 앞에 비둘기가 가로막고 있는 것을 발견하다. 그는 이 비둘기를 본 후 패닉에 빠진다.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느껴지는 요의와 저 방문 앞 비둘기를 뚫고 과연 무사히 출근을 하고, 다시 이 안전한 방으로 귀가할 수 있을까.



조나단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술은 마치 <콘트라베이스> 속 주인공의 혼잣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조나단의 행동과 그 원인을 파헤쳐보면 마치 <좀머씨 이야기> 속 좀머씨와 비슷하다. 조나단은 유년기에 겪은 2차 세계 대전을 다 극복하지 못하고(누구라도 하루 아침에 부모가 사라지는 일을 겪는다면 그럴 것이다) 짜여진 일상 속 쳇바퀴같은 삶을 지향한다. 그 일상 속 "비둘기"는 그에게 침입자와 같을 것이고 오히려 이 비둘기를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하나의 사건은 또다른 하나를 불러내고 이어 연속되는)로 패닉 상태가 지속되는 듯하지만 책의 처음, 어린 시절 아무 걱정없이 비 오는 날 물장구치며 걸었던 그 순간을 떠올리듯 철벅거리며 거리를 걷는 동안(좀머씨의 방황과 비슷하지 않은가! ) 조금씩 자신을 되찾아간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그 누구라도 그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묘사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이제 <향수>도 한 집합으로 묶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가진 트라우마를 왜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못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읽는 내내 궁금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조나단이라면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 내면 세계를 심도 깊게 묘사한 쥐스킨트의 역작"이라는 설명이 아깝지 않은 소설이다.

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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