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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미래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의 표지 이미지

공간의 미래

유현준 (지은이)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읽었어요
재택근무를 할 때 꽤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화상회의를 해본 적이 있다. 노트북에 달린 카메라로 화면을 송출하고 줄 이어폰을 꽂았는데 아불싸. 화면이 너무 어둡다. 불을 켜도 어둡길래 최대한 창가 가까이 다가갔다.

이번에는 뒷배경이 신경쓰였다. 최대한 밝게 보이고 싶었으나 실패했고, 각도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찍혀 상당히 거만해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속속 등장해서 유심히 들여다보니 빼곡히 책이 꽂힌 서재를 배경으로 앉아있는 이가 눈에 띄었다. 물론 전체적인 화면색도 밝았다. 떠올려보면 부잣집은 밝고 층고가 높으며 탁 트였다.

반대로 가난한 집은 어두침침하고 천장이 낮으며 비좁다. 난 가난한 이가 되었다. 약간 창피했지만 어두워서 잘 안보이니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을 바꿨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경 설정 기능이 생겼다. 아마도 나처럼 내 집의 배경이 부끄러운 사람들이 꽤나 있었던 모양이다. 공간은 시각적으로, 실제적으로 쉽게 비교된다. 부의 양극화는 곧 공간의 양극화로 재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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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인간이 살면서 가장 괴로운 일 중 하나가 바로 인간관계가 아닌가 싶다. 동물들 사이에서는 힘센 녀석이 약한 녀석을 죽이거나 흠씬 두들겨패면 그만이지만 인간은 고차원을 지향하고 있어 다른 인간을 죽이거나 때릴 수 없기 때문에 괴로운 건 아닐까. 나는 너보다 나은 존재라고 여기는 데서 기인하는 오만함.

뭐 그러나저러나 인간관계의 클래식이라 할만한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었다. 몇 해전 읽은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와도 일맥상통한다.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어서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때때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 분통이 터질 때가 있나.
저 무능한 상사를 접대하느라 고생이다 싶은 때가 있나.
사람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고전의 공통적 한계가 그렇다시피 약간의 시대착오적인 성역할 구분은 알아서 걸러 읽으면 그만이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지음
더클래식 펴냄

읽었어요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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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할까. 이해할 수 없다.’
‘저리 말을 하다니 참 답답한 노릇이군.’

한 달에 몇 번쯤 이런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누군가의 말에 기분이 상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말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말은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소리인 탓이다.

여전히 “말”이 화두다. 인간이 말을 하고 사는 동안에 이 테마는 죽을 때까지 함께할 것이다. 늘 이런 고민에 휩싸일테고- 대체로 감동을 주는 말보다 비난, 시기, 짜증의 말이 더 뇌리에 오래 남는다- 왜 저러는 건지 의문이 남는다.

말의 본질을 심리학 이론으로 풀어주는 책이다. 책을 읽으며 때때로 사람의 말의 기저에 어떤 심리가 깔려있는지 바로바로 해석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들었다. 그러면 사람이 대한 이해의 폭이 지금보다는 넓어지지 않을까.

말의 진심

최정우 지음
밀리언서재 펴냄

읽었어요
4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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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ulsori

숫자로 보여주는 것만큼 편리하고 직관적인 잣대가 없다. 아파트 평수, 자가 여부, 연봉, 자가용 등. 보이는 것에만 치중한 나머지 다른 것은 살펴볼 생각이 없다.

별의별 계급도가 유행하던 적이 있다. 사는 동네, 아파트 브랜드, 자가용, 명품백, 시계까지 피라미드로 그려진다. 이 계급도의 최상위를 추구하며 아등바등한다. 나 또한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중간만 가라, 너무 튀지도 뒤쳐지지도 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다. 대체로 그러했지만 반골기질 탓이었는지 속한 조직에서 꼭 한번씩 튀는 언행이나 패션으로 주목받곤 했다.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그게 나를 규정하는 하나의 틀거리가 되곤 했다. 대체로 무난하기보다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자 했다. 그래서 여전히 수도권에 자가 한 채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게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물론 이미 나와 남편의 부모가 평균의 삶을 살아서인지도 모른다.

중산층 평균의 삶을 지향하지 않는 건 그리 사는 건 삶이 그다지 즐겁고 기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지도 못한다. 한국에 사는 이상 거기서 자유롭다는 건 “난 너희와 달라”와 같은 말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는 내내 딜레마다. 이를 지양하지만 지향하기도 싫은. 늘 그렇게 흔들리듯 흔들리지 않는 삶은 매순간 참으로 괴롭다.

숫자 사회

임의진 지음
웨일북 펴냄

읽었어요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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