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스칼은 근대 시기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팡세>를 읽어보면 그는 철학자임에 틀림없지만, 어릴 적부터 수학 신동이라 불릴 만큼 이과 분야에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다.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속한 각 분야의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나는 그가 생전에 완성하지 못했던 <팡세>가 그가 다방면에서 공부했던 것의 총 결산이라 생각된다. 그가 저술한 <팡세>는 사후에 출판된 책이며, 기독교를 옹호하기 위해 구상한 책이라고 한다. 그는 이 책으로 무신론자들을 설득하려고 했으며,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며 신앙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피력하려고 했던 것 같다. 책 제목 팡세란 프랑스어로 ‘생각들’이라는 뜻이다.
그가 남긴 유명한 문장이 있다.
p143
인간은 자연 속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다.
그를 쓰러뜨리는 데 온 우주의 무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증기 한 줄기, 물방울 하나면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인간을 짓누른다 해도, 인간은 여전히 우주보다 고귀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의 죽음을 알고, 우주가 자기보다 강하다는 것도 인식하지만, 우주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존엄은 바로 ‘사유’에 있다. 우리는 이 사유를 통해 자신을 높여야 한다. 공간이나 시간처럼 우리가 결코 채울 수 없는 것들이 아니라, 바로 ‘생각하는 능력’ 안에서 말이다. 그러니 제대로 생각하자. 그것이 바로 도덕의 출발점이다.
갈대는 인간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갈대는 바람에 쉽게 흔들린다. 인간을 갈대라고 비유한 것은 갈대처럼 유한하고 쉽게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한다는 측면에서 위대하다. 인간은 사유를 통해 자신의 유한성을 깨닫기도 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사유하는 능력은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인간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갈대라는 의미는 인간의 나약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표현한 문장이며, 인간의 모순된 이중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p158
인간의 위대함과 비열함을 충분히 인식한 뒤, 이제 자신을 평가해 보라. 자신을 사랑하되,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있는 본성을 지닌 존재다. 그러나 그 안에 숨어 있는 비열함까지 함께 사랑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경멸하라. 인간은 공허한 능력을 자주 착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유로, 인간에게 본래 주어진 능력 자체까지 폄하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사랑하되, 동시에 경멸하라.
인간은 감정을 가지고 있기에 비참함을 느낄 수 있다. 사후가 부질없다는 것은 감각을 통한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인간만이 자신을 비참하게 여길 수 있다. 비열하다는 것은 자신의 이기심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오만한 인간은 자신의 비열함을 알지 못한다. 또한 오만함은 자신의 비참함을 느끼거나 스스로를 경멸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의 내면을 해부학적으로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그래서 책을 통해 인간의 특성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파스칼은 자신의 단상을 통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지 여실히 드러낸다.
p195
진실은 저 너머에 있지만 인간은 보이는 것만 믿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선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본 것이 틀렸다고는 절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인간이 본래 모든 것을 볼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 존재이면서도, 감각이 포착한 정보는 늘 옳다고 믿는 특유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이 직접 대면한 현실 앞에서는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인간에게 깊이 자리 잡고 있다.
파스칼은 인간이 신앙에 도달함에 있어 이성의 역할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성이 신앙으로 가는 길은 열어 줄 수 있으나 신을 만나는 것은 감정(믿음, 직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이성의 한계를 인식하고 감정(믿음, 직관)과 내면적 경험을 통해 완성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이성 중심의 근대 철학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p100
도박, 오락과 같은 유흥은 우리를 속인다.
인생은 늘 어떤 장애물과 씨름하며 안식을 좇는 과정이다. 하지만 정작 그 장애물을 극복하면, 안식은 금세 ‘지루함’이라는 새로운 고통이 되어 돌아온다. 그래서 인간은 또다시 소란을 갈구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의 비참함이나, 곧 닥쳐올 비참함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현대인들은 혼자 있는 공허함을 싫어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와 함께 한다.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없으면 넷플릭스, 스마트폰, 게임 등 유흥거리를 찾게 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과 디지털 기기와 연결되길 원하기에 자신을 성찰하고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사라지고 만다. 파스칼이 주장하는 인간의 유한성과 비참함, 비열함은 홀로 있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진리이므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홀로 있길 주장한다.
문득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마들렌과 홍차를 맛보다가 과거의 기억이 모두 되살아 나는 장면이다. 이성적 노력이 아니라 우연한 감각적 자극에 의해 드러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이성보다는 직관이나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이다. 이 부분은 파스칼처럼 이성보다는 직관, 무의식을 중요시하는 철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이 책은 쉽게 읽힌다는 큰 장점이 있다. 읽히는 <팡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보인다. 비참하고도 위대한 인간을 위한, 기념비적인 파스칼의 탐구에 푹 빠져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당신은 왜 사는가?’에 대한 물음에 파스칼의 위대한 통찰력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원한다.
파스칼의 팡세
블레즈 파스칼 지음
메이트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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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의 반대말은 긍정이 아닌 인정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인정은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지인이 떠올랐다.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정도로 자녀를 위해 노력하면서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졌다. 아이는 잘 크고 있고, 학업도 또래에 비해 월등한 친구인데 아이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불안감이 아이에게 전가될까봐 불안해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육아서가 아이에 대한 내용을 쓰지만 이 책은 부모의 심리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되어 있다. 특히 불안을 가진 부모라면 그것을 먼저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라고 한다.
p7
아이의 감정이 불안정하고 변덕으로 가득할 수 있다는 인정.
아이가 스스로 이겨낼 힘이 있다는 인정.
아이와 나의 잘못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인정.
나도 실수할 수 있는 부모라는 인정.
인정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방관적 태도를 취해라는 뜻일까? 책에서는 기다림이라고 표현하는데 기다림은 아이의 연령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p46
무조건적 기다림(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영, 유아기)이 있고, 허용 가능한 선에 한정된 기다림(아동기)도 있습니다. 조력자로 아이의 많은 영역에 함께하되, 필요한 순간에만 발휘되는 기다림(청소년기)도 있고요. 있는 듯 없는 듯 투명 인간처럼 가만히 때를 기다리는 기다림(사춘기)도 있습니다.
유아기 때는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하는 때이다. 그리고 부모의 개입은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서서히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 육아서에서는 어릴 때는 되도록 허용해 주라고 해서 시종일관 허용적 태도를 보이는 부모들이 많다. 그래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자기 조절력이 떨어져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도 성장하는 것처럼, 부모의 육아도 성장해야 된다. 제한선을 정해서 아이의 자기 조절력을 기르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6~7세가 되면 무조건적 허용을 허락하면 안 된다. 충동을 조절할 수 있도록 제한선을 두고 연습해야 한다. 예로 <아이심리백과>의 저자 심의진 교수님도 두 자녀를 키울 때, 차 이동 중에는 ‘말 안 하고 10초 참기’ 게임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아이들에게 제한을 두고 참는 연습을 통해 자기 조절력을 키워줘야 한다. 왜냐하면 허용선을 알려주지 않고 풀어주게 되면, 한계치에 도달한 부모가 화를 내게 마련이다. 그러면 아이는 규칙을 살피지 않고, 부모의 눈치를 살피기 때문이다.
p96
이렇게 실행하고 경험하는 것이 자기 조절력을 완성하는 과정입니다.
p235
“어린이는 자기 스스로 자유로이 선택한 일에 집중하고 그 일을 몇 번이나 반복하여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낀 후 일을 끝낸다. 그리고 정상화에 이른다.”
아이 그대로를 인정해야 아이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육아의 최종 목표는 아이를 건강하고 독립적인 성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실패가 필요하다. 많은 실패를 위해서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부모가 있는 그대로 자녀를 인정하고,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부모의 성향으로 돌아가보면, 완벽주의 성향은 어릴 적 부모님께 조건적 인정을 받았거나, 불안정한 환경에서 불안을 다루는 방어기제가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가치 있는 존재라 여기지 않고, 완벽해야 인정받는다는 잘못된 신념을 통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육아를 통해 자기 스스로를 치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저자의 경험담이 더 추가되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렇다면 읽으면서 훨씬 더 공감되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 맨 뒷부분에는 부모를 위한 단단한 말 필사 노트가 있으니 좋은 명언을 되새기며 단단한 내면을 가지기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후회와 불안뿐인 감정에서 벗어나 다정하고 단단한 내면을 만들고자 하는 부모님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인정 육아
이현정 지음
동양북스(동양문고)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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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존재다. 때로는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질서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저자는 인간의 행동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문 이론을 가져와 보기로 마음먹으신 듯하다. 이 책은 인간의 행동을 다각적으로 살펴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자신만의 가면을 쓰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사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인간의 선택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상당히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읽었던 <오뒷세이아>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시칠리아 섬 근처에 사는 세이렌은 사람의 얼굴과 새의 몸을 가진 바다의 요정이다. 그녀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 매혹시키고, 그 소리에 홀린 뱃사람들의 배를 난파시킨다. 오뒷세우스는 호기심이 강하다. 그래서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어 한다. 오뒷세우스는 한 가지 방법을 강구하는데, 부하들의 귀를 모두 밀랍으로 막게 하고 자신은 돛대에 꽁꽁 묶게 한다. 그리고 선원들에게 자신이 아무리 발악해도 절대 풀어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오뒷세우스는 돛대에 묶여 있지만 선원들에게 자신을 풀어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선원들은 그를 끝내 풀어주지 않았다. 오뒷세우스 일행은 무사히 시칠리아 섬을 벗어날 수 있었다. 심리학에서는 이 일화를 두고 ‘율리시스의 계약’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자신을 구속하기 위해 계약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오뒷세우스는 왜 돛대에 자신을 묶어달라고 했을까? 자신이 인간으로서 요정의 유혹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매번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어떤 목표를 다짐하지만 작심 3일이 되는 이유가 그러하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새벽 기상을 이어오다가 리더로서 활동을 멈추고 자발적으로 기상하게 되면 반드시 실패한다. 습관으로 장착되지 않은 이상, 강제성 없이 지속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은 어떨까?
p66
의식은 현재의 상태를 나타내주는 계기판 같은 것으로 의식 자체만으로 사람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여기에 반하는 무의식은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다.
p67
우리의 의식은 이유를 갖다 붙이는 탁월한 소설가며 위대한 거짓말쟁이다. 자신의 행동을 무의식의 명령인 줄 미처 알지 못한다. 그러고는 늘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합리화한다. 무의식은 명령하고 의식은 합리화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이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억을 왜곡한다. 인간이라면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기에, 욕망과 감정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욕망과 감정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할까? (격한) 운동, 명상, 금식으로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억을 기록이 아닌 해석한다고 보는 현상에 대해서는 현재 마음 상태가 평안하거나 긍정적이어야 해석도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유명한 사람들이 감사일기를 쓰는 이유는 감정은 불완전하기에 감사가 감정을 긍정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간 이해를 돕기 위한 각종 용어를 알기 쉽게 풀어놓았다. 맨 뒷장에 보면 ‘찾아보기’란이 있는데, 각종 용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용어가 나온 배경도 간단하게 설명해 놓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도 쉽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 정치, 철학, 심리학, 사회학, 문학 등 다방면을 섭렵하신 듯하다. 책의 두께는 두꺼운 편은 아니나 각 용어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들을 끌어와 설명해 놓았기에 속이 알찬 책이라 생각된다. 아쉬운 점은 용어에 대한 저자의 견해도 더 많이 읽고 싶었으나 간단하게 적혀 있어서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용어인데, 많이 공감이 가서 발췌해 본다.
p299
‘고슴도치 딜레마’는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제안한 개념이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얼어붙은 땅에 버려진 고슴도치에 비유하고 있다. 고슴도치들은 온기를 찾아 서로를 가까이하려고 해보지만, 너무 가까이하게 되면 상대의 가시에 찔리게 되고 너무 멀리하면 온기가 그리운 것이다.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다가 찾아낸 방법이 가시가 없는 머리를 맞대고 어우러진다.
이처럼 인간의 독립성과 타인과의 관계 사이를 설명하기 위해 내놓은 개념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정답이다.
이 고슴도치 딜레마를 설명하기 위해서 ‘예’를 발명했다는 주장도 인상적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예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를 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외로움 때문에 누군가를 곁에 두려고 하려는 습성이 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 엄마들을 종종 만나는데, 외로움 때문에 친하게 지내자며 가까운 거리를 원하는 엄마들을 꽤 많이 만나게 된다. 아이에게 집중하기도 모자란 시간이기에 나는 가까운 관계는 원치 않는다고 미리 양해를 구하기도 한다. 책에서는 심리학자 프로이트를 빌려 ‘부부, 가족, 친척, 친구 등 모든 인간관계에는 가시, 즉 혐오와 질투와 적대감이 동시에 숨어 있다’라고 말한다. 이런 적대감이 없는 사이는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뿐이라는 것이다. 중국 고사에도 ‘불가근불가원’이라는 고사가 있다. 인간관계는 마치 뜨거운 난로와 같다는 것이다. 너무 가까이 가면 뜨거워서 죽고, 너무 멀면 얼어 죽는다.
참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인 것 같다. 하지만 이 구절을 읽으며 다시 한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예를 지키며, 존중하며,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실력을 키우고자 다짐해 본다.
‘말하는 걸 믿지 말고 행동하는 걸 믿어라!’
인간 행동 뒤에 숨겨진 진짜 비밀이 궁금하신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람 읽기 시크릿, 인간심리 36
이영직 지음
스마트비즈니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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