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북 앱으로 보기
+ 팔로우
과거로 돌아가는 역
시미즈 하루키 지음
빈페이지 펴냄
읽었어요
“하지만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좋은 결과가 생길지 나쁜 결과가 생길지 알 수도 없는데 뭘 어쩌겠어요? 병원에 가든 안 가든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일이었고, 여행을 가든 안 가든 다 괜찮다는 거잖아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인간사 새옹지마니까. 이제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겨도 신경 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라는 뜻인가요?”
“아니, 그건 아니야.”
“네?”
뜻밖의 대답이 돌아오자 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역무원은 또렷한 어조로 대답했다.
“어떤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말 덕분에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사를 신경쓰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는, 그런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는 아니지. 왜냐하면 우린 평범한 사람이잖아. 그러니 매일 눈앞에 벌어지는 일에 풀도 죽고 끙끙 고민하기도 하지. 하지만 난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해. 그저 우리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 자리에서 일희일비하면서 일상을 보내기만 하면 돼.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삶의 한 방식 아닐까?”
“그 자리에서 일희일비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린은 그 말을 반추하며 곱씹어봤다.
정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며 모든 일을 그냥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인간이기에 자꾸만 일희일비하게 된다.
그러니 언제까지나 후회를 품고 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현실 세계에서 과거를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마호로시역에서 과거로 돌아가 본들 무엇 하나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앞을 보며 조금씩 나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아무리 애를 써도 앞을 보는 게 괴로울 때도 있겠지만...
“그럼 앞을 보는 게 힘들 때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린은 마음속에 솟아난 물음을 또르르 흘리듯 던졌다.
그러자 역무원은 머뭇거리는 기색 없이 이렇게 말했다.
“그럴 때는 뒤로 돌면 되지.”
“네?”
그 대답은 린에게 너무나도 의외였다.
하지만 그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뒤로 몸을 돌린 채 걸어가면 돼.”
그 말을 들어도 뜻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험 삼아 뒤를 돈 다음에 뒤로 걸어가본 린은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앞으로 가고 있네?”
정말 그랬다.
뒤를 돈 상태로 뒤쪽을 향해 나아가니 앞을 향해 전진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마치 마이너스를 뺄셈식에 넣을 때 플러스가 되는 것처럼.
“그렇지? 다 그런 거야. 그것도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이지.”
“어떤 선택지의 인생을 걷든 후회가 남을 수밖에는 없을 거예요. 꿈을 좇지 않으면 안정된 생활 속에서 왜 내가 꿈을 좇지 않았는지 후회하고.... 꿈을 좇으면 눈앞에 있을지도 모를 행복한 생활을 붙잡지 못해 후회하겠죠.”
그리고 역무원은 마야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사람은 인생의 분기점에 섰을 때마다 가능한 후회가 적은 선택지를 고를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분명 나중에 가서는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 와중에도 기쁨이 큰 쪽을 고르면 더 좋고요.”
마야마는 역무원의 말을 들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
솔직히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간에 후회할 건 확실하다.
“더는 손에 넣을 수 없는 과거의 것을 세는 것보다 지금 눈앞에 소중한 것의 수를 세어보는 게 어떠세요?”
“눈앞에 있는 소중한 것의 수....”
제멋대로 저 멀리만 바라봤다.
보이지도 않는 걸 찾아다녔다.
닿지도 않는 데로 손을 뻗어댔다.
소중한 건 이렇게나 가까운 곳에 있는데....
그리고 역무원은 마지막으로 다나카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
0
Lucy님의 인생책은?
더 보기
Lucy님의 다른 게시물
"실전에선 기세가 팔 할이야. 실령 승부에선 지더라도 기세에서 밀리면 안 돼. 차라리 감춰. 니 생가, 감정, 숨소리까지,,,, 그 어떤 것도 상대에게 드러내지 마."
"모든 것은 체력이다... 불쑥 손이 나가는 경솔함, 대충 타협하려는 안일함, 조급히 승부를 보려는 오만함... 모두 체력이 무너지며 나오는 패배의 수순이다. 실력도 집중력도, 심지어 정신력조차도 종국에 체력에서 나온다. 이기고 싶다면 마지막 한 수까지 버텨낼 체력부터 길러."
"그렇게 견디다가 이기는 거요. 쓰라린 상처에 진물이 나고, 딱지가 내려앉고, 새살이 돋고! 그렇게 참다 보면 한 번쯤은 기회가 오거든.... 조국수. 바둑판 위에선, 한 번 피하기 시작하면 갈 곳이 없습니다."
승부 각본집
윤종빈 외 1명 지음
스튜디오오드리 펴냄
읽었어요
1
우리를 계속 살게 도와주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종교가 있으면 자살이 ‘그릇된 짓’이라는 생각이 윤리적 저지책 역할을 한다. 물론 죽음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미칠 영향이나 모방 자살 염려도 자살을 저지한다. 또 앞에서 봤듯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진화적 항상성(내부와 외부의 자극에도 형태와 생리적 특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것 - 옮긴이)이라는 자기 보존 본능도 있다.
인지 붕괴에 빠지면 이런 장벽들이 하나씩 무너진다. 의미 있는 생각을 하는 사고력을 잃고, 구체적인 세부 사항에만 몰두한다. 정상일 때는 고통의 숨은 의미를 찾는 생각이나 영적인 생각을 낳는 추상적인 사고를 한다. 그런데 자살 앞에서는 이런 사고가 놀랍도록 사라진다. 슈나이드먼은 "자살학에서 가장 위험한 어휘는 네 글자로 된 단어(욕설 fuck을 의미 - 옮긴이)뿐이다." 라고 말했다. 달리 말해 자살 의향자는 모아니면 도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에 젖는다. 상황이 흑백이 되었고, 은유적 미묘함 따윈 없이 오직 죽기 아니면 살기밖에 없다.
나는 죽으려고 했던 심리학자입니다
제시 베링 (지은이), 공경희 (옮긴이) 지음
더퀘스트 펴냄
읽었어요
1
"'인생은 게임'이라니,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인간은 믿으면 안 돼."
신발장에서 로퍼를 꺼내는 마토는 웬일로 저기압이었다. 5교시 수학 시간에 하시모토 선생님이 잡담을 하다 꺼낸 한마디가 아무래도 마음에 안 든 모양이다.
- 대학 입시에 취업 준비에 육아. 앞으로 많은 시험대가 너희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뭐든지 즐기지 않으면 손해야. 인생은 게임 같은 법이니까.
"마토는 그런 사고방식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어? 내가? 에이, 무슨 소리야, 고다. 오히려 그런 사고방식은 싫어하는 편이랄까."
"왜?"
"인생은 무를 수 없잖아."
읽었어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