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y님의 프로필 이미지

Lucy

@lucyuayt

+ 팔로우
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 (찬란한 생의 끝에 만난 마지막 문장들)의 표지 이미지

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

한스 할터 지음
포레스트북스 펴냄

읽었어요
어느 날 마르크스는 따뜻한 햇살이 넘치는 북아프리카에서 곁에 있는 엥겔스(그보다 12년 정도 더 살았다)에게 그리스 철학가 에피쿠로스의 말을 인용해 삶의 마지막 문장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이에게 죽음이란 불행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남은 이에 대한 불행일 것이다.”
그 당시에는 유명인의 말을 인용하여 유언을 남기는 것이 유행이었다. 마르크스는 피곤한 듯 등받이 의자에 몸을 깊이 기댔고 신뢰하는 친구 엥겔스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19세기와 20세기를 뒤흔든 사상가의 마지막 문장치고는 다소 무심하고 단순한 유언이었다.
“유언이란 살아서 할 말이 별로 없었던, 좀 바보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 같네.”
0

Lucy님의 다른 게시물

Lucy님의 프로필 이미지

Lucy

@lucyuayt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저승사자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온다고 한다
그리워하던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리워하던 목소리로 이름을 부른다고.
꽃 몽우리가 막 돋아나기 시작한, 그런 계절의 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 길게 드리운 벚나무 가지 아래.
그곳에 네가 있었다.
“….김나무…..?”
“너, 여전히 발음이 엉망이네. 내 이름 그거 아니라고 했잖아.”
그러면서 웃는데, 그 모양이 거짓말처럼 뚜렷해서 손을 뻗으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눈을 뜬 채로 꿈을 꾸는 걸까 생각했다. 네가 내 앞에 있을 리가 없다. 이다지도 생생히, 질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선명히 내 눈앞에 있을 리 없다.
왜냐면 너는, 너는 이미 오래전에…..
“두 번이야.”
“뭐……?”
“앞으로 두 전. 두 번만 더 불러. 그럼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을 수 있어.”
나로 인해 죽었으니까.
“불러. 내 이름.”
내가 죽기 일주일 전, 네가 내게 돌아왔다.

내가 죽기 일주일 전

서은채 지음
황금가지 펴냄

읽었어요
4분 전
0
Lucy님의 프로필 이미지

Lucy

@lucyuayt

  • Lucy님의 내가 죽기 일주일 전 게시물 이미지

내가 죽기 일주일 전

서은채 지음
황금가지 펴냄

읽었어요
9분 전
0
Lucy님의 프로필 이미지

Lucy

@lucyuayt

“경규 선배는 좀 차가워요.”
“방송만 끝나면 휙 가버리시더라고요.”
하지만 주방장이 요리를 내기 전에 맛있는 음식을 다 먹어버리면, 손님들은 무슨 맛을 기대할 수 있을까? 방송도 요리와 같다. 주방장이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재료가 신선해야 하고, 특히 첫 맛이 중요하다. 대기실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미리 얘기해버리면, 정작 카메라 앞에서 내어갈 수 있는 건 한 김 식은 반찬들뿐이다.
몇 차례 오해와 해명을 거치고 나니 사람들도 나를 이해해주기 시작했다. 내 침묵은 내가 무례해서도 아니고 다른 출연진을 무시해서도 아니다.
공연 전에 악기를 조율하는 것처럼, 용 그림에 마지막으로 눈을 그려 넣기 전에 잠시 붓을 멈추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지 마라.
윤식과 형빈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70퍼센트만큼만 하고 30퍼센트는 내일을 위해 남겨두라고. 다들 오늘만 사는 것처럼 매순간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지만, 한 번에 아이디어를 100퍼센트 쏟아붓지 말고 30퍼센트는 아껴뒀다가 다름에 써야 한다. 매번 가진 것을 전부 소진해버리면 오래 가기 어렵다. 그래도, 남들에게는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소리를 탱자탱자 게으름뱅이가 되라는 것으로 착각하면 큰일난다.
지금 무언가에 100퍼센트를 쏟고 있는가? 잠시 멈춰보라. 70퍼센트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나머지 3-퍼센트를 비축해둬야 번아웃을 피할 수 있다. 잘 모르는 것은 만약을 위해 아껴두는 것, 그것이 사회인의 지혜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출발하는 선택은 없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마치 공기처럼 보이지 않게 우리를 어떠한 방향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내게는 그것이 극장이었다. 어디를 가든 매일 지나치던 극장들, 영화 속 주인공들,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무한한 세계들.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나를 연극영화과로, 영화로 이끌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극장 삼거리에서 자라났다. 누군가에게는 도서관이, 누군가에게는 바닷가가, 누군가에게는 기차역이 있었을 테다.
어머니가 극장 의자에서 잠든 소년을 찾으러 왔을 때, 그 순간이 내 인생의 예고편이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잠에만 푹 빠져있었다. 여러분의 극장 삼거리는 어디인가? 매일 지나치는 길과 늘 보이는 풍경, 자주 들어 익숙한 소리... 그것들이 당신을 이끄는 곳은 어디인가?

계속되는 낙방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가, 동기들이 옆구리를 찔러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개그맨 콘테스트에 나가봤다. 재미로 경험 삼아 해보자 싶었는데, 1981년 MBC 제1회 라디오 개그 콘테스트에서 MBC 공채 개그맨 1기로 덜컥 합격을 해버렸다. 물이 흐르다 막히면 새로운 길을 뚫듯이, 배우의 꿈이 막힌 자리에서 마법처럼 코미디언의 길이 열렸다. 신기한 일이다. 방법은 언제나 있었다.
처음에는 방송국 구석구석을 누비며 잔심부름을 도맡았다. 담배 심부름부터 커피 타기, 도시락 배달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러다가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 당시 코미디는 세트장에서 짜여진 대본으로 연기하는 콩트 코미디 위주였는데, 나는 실내보다 야외가 더 좋았다. 정해진 대사보다 즉흥적인 실제 상황이 더 재미있었다. 그때의 야외 촬영 경험이 <건강보감>과 <몰래카메라>, <양심냉장고>, <이경규가 간다>를 가능하게 했다. 신인 때부터 길거리에서 시민들과 가깝게 마주하고 부딪쳤기에 야외에서 시작된 버라이어티 실험들을 소화할 수 있었다.
코미디언으로 살아온 45년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RMeo 연극 오디션에 떨어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설령 요행으로 연극 무대에 올랐더라도 코미디언만큼 나의 재능을 남김없이 보여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떤 실패도 영원한 실패는 아니다. 여러 실패의 문을 닫아봐야 내가 기다려온 문을 만났을 때 그 안을 과감하게 발을 내디딜 수 있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즐기는 사람은 그저 즐길 뿐이다. 진짜 강한 사람은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다. 70퍼센트만 보여주면서 오래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다. 100퍼센트로 초반부터 퍼부어서 금방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보다 꾸준히 오래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
전쟁터를 생각해보라. 죽은 자들은 말이 없다. 구십 대의 6.25 참전용사만이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장군이든 병사든 살아남아야 한다.
조용필 선배를 보라. 일흔이 넘어서도 여전히 앨범을 내고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20집이 넘도록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무대를 갖고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술자리도 마찬가지다.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깨어 있는 사람만이 그날 밤의 진실을 기억한다.
진정한 승리는 속도가 아니라 지속하는 힘에서 나온다. 코앞의 이익에 목숨을 걸지 말자. 살아남은 사람, 마지막까지 남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 그가 진정한 승자다. 아직까지 살아남은 내가 하는 말이니 틀림없다.

<2022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오랫동안 지켜본 바로는, 대부분의 선배님들이 이 상을 받고 방송계를 떠났다. 그러니까 이건 ‘이제 떠나라’는 메시지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 물러날 내가 아니다.
“많은 분들이 이야기합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 박수 칠 때 왜 떠납니까? 한 사람이라도 박수를 안 칠 때까지, 그때까지 활동하겠습니다.”
회사에는 ‘명예퇴직’이 있다. 하지만 퇴직에 무슨 명예가 있나? 그냥 ‘퇴직’일 뿐이다. ‘명예’라는 말을 붙여서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려는 건가?
프로그램 마지막 회를 녹화할 때면 PD나 작가들이 ‘유종의 미를 거두자’고 한다. 그때마다 나는 말한다. “유종의 미가 어디 있어? 그냥 유종이지. 끝나는데 뭐가 아름다워? 이미 끝난 건데, 쫓겨나는 건데, 미는 없어.”
왜 끝을 아름답게 포장하려고 할까? 해피엔딩, 명예퇴직, 유종의 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수식어들.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면 끝이 오기 전에 끝이라서가 아닌, 진짜 아름다움을 만들어보자.
당신도 나도 언젠가는 끝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를 굳이 아름답게 포장할 필요는 없다. 끝나면 그저 끝인 것. 그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이경규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읽었어요
4시간 전
0

Lucy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