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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완벽한 농담

이경규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읽었어요
“경규 선배는 좀 차가워요.”
“방송만 끝나면 휙 가버리시더라고요.”
하지만 주방장이 요리를 내기 전에 맛있는 음식을 다 먹어버리면, 손님들은 무슨 맛을 기대할 수 있을까? 방송도 요리와 같다. 주방장이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재료가 신선해야 하고, 특히 첫 맛이 중요하다. 대기실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미리 얘기해버리면, 정작 카메라 앞에서 내어갈 수 있는 건 한 김 식은 반찬들뿐이다.
몇 차례 오해와 해명을 거치고 나니 사람들도 나를 이해해주기 시작했다. 내 침묵은 내가 무례해서도 아니고 다른 출연진을 무시해서도 아니다.
공연 전에 악기를 조율하는 것처럼, 용 그림에 마지막으로 눈을 그려 넣기 전에 잠시 붓을 멈추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지 마라.
윤식과 형빈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70퍼센트만큼만 하고 30퍼센트는 내일을 위해 남겨두라고. 다들 오늘만 사는 것처럼 매순간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지만, 한 번에 아이디어를 100퍼센트 쏟아붓지 말고 30퍼센트는 아껴뒀다가 다름에 써야 한다. 매번 가진 것을 전부 소진해버리면 오래 가기 어렵다. 그래도, 남들에게는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소리를 탱자탱자 게으름뱅이가 되라는 것으로 착각하면 큰일난다.
지금 무언가에 100퍼센트를 쏟고 있는가? 잠시 멈춰보라. 70퍼센트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나머지 3-퍼센트를 비축해둬야 번아웃을 피할 수 있다. 잘 모르는 것은 만약을 위해 아껴두는 것, 그것이 사회인의 지혜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출발하는 선택은 없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마치 공기처럼 보이지 않게 우리를 어떠한 방향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내게는 그것이 극장이었다. 어디를 가든 매일 지나치던 극장들, 영화 속 주인공들,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무한한 세계들.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나를 연극영화과로, 영화로 이끌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극장 삼거리에서 자라났다. 누군가에게는 도서관이, 누군가에게는 바닷가가, 누군가에게는 기차역이 있었을 테다.
어머니가 극장 의자에서 잠든 소년을 찾으러 왔을 때, 그 순간이 내 인생의 예고편이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잠에만 푹 빠져있었다. 여러분의 극장 삼거리는 어디인가? 매일 지나치는 길과 늘 보이는 풍경, 자주 들어 익숙한 소리... 그것들이 당신을 이끄는 곳은 어디인가?

계속되는 낙방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가, 동기들이 옆구리를 찔러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개그맨 콘테스트에 나가봤다. 재미로 경험 삼아 해보자 싶었는데, 1981년 MBC 제1회 라디오 개그 콘테스트에서 MBC 공채 개그맨 1기로 덜컥 합격을 해버렸다. 물이 흐르다 막히면 새로운 길을 뚫듯이, 배우의 꿈이 막힌 자리에서 마법처럼 코미디언의 길이 열렸다. 신기한 일이다. 방법은 언제나 있었다.
처음에는 방송국 구석구석을 누비며 잔심부름을 도맡았다. 담배 심부름부터 커피 타기, 도시락 배달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러다가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 당시 코미디는 세트장에서 짜여진 대본으로 연기하는 콩트 코미디 위주였는데, 나는 실내보다 야외가 더 좋았다. 정해진 대사보다 즉흥적인 실제 상황이 더 재미있었다. 그때의 야외 촬영 경험이 <건강보감>과 <몰래카메라>, <양심냉장고>, <이경규가 간다>를 가능하게 했다. 신인 때부터 길거리에서 시민들과 가깝게 마주하고 부딪쳤기에 야외에서 시작된 버라이어티 실험들을 소화할 수 있었다.
코미디언으로 살아온 45년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RMeo 연극 오디션에 떨어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설령 요행으로 연극 무대에 올랐더라도 코미디언만큼 나의 재능을 남김없이 보여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떤 실패도 영원한 실패는 아니다. 여러 실패의 문을 닫아봐야 내가 기다려온 문을 만났을 때 그 안을 과감하게 발을 내디딜 수 있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즐기는 사람은 그저 즐길 뿐이다. 진짜 강한 사람은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다. 70퍼센트만 보여주면서 오래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다. 100퍼센트로 초반부터 퍼부어서 금방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보다 꾸준히 오래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
전쟁터를 생각해보라. 죽은 자들은 말이 없다. 구십 대의 6.25 참전용사만이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장군이든 병사든 살아남아야 한다.
조용필 선배를 보라. 일흔이 넘어서도 여전히 앨범을 내고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20집이 넘도록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무대를 갖고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술자리도 마찬가지다.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깨어 있는 사람만이 그날 밤의 진실을 기억한다.
진정한 승리는 속도가 아니라 지속하는 힘에서 나온다. 코앞의 이익에 목숨을 걸지 말자. 살아남은 사람, 마지막까지 남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 그가 진정한 승자다. 아직까지 살아남은 내가 하는 말이니 틀림없다.

<2022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오랫동안 지켜본 바로는, 대부분의 선배님들이 이 상을 받고 방송계를 떠났다. 그러니까 이건 ‘이제 떠나라’는 메시지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 물러날 내가 아니다.
“많은 분들이 이야기합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 박수 칠 때 왜 떠납니까? 한 사람이라도 박수를 안 칠 때까지, 그때까지 활동하겠습니다.”
회사에는 ‘명예퇴직’이 있다. 하지만 퇴직에 무슨 명예가 있나? 그냥 ‘퇴직’일 뿐이다. ‘명예’라는 말을 붙여서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려는 건가?
프로그램 마지막 회를 녹화할 때면 PD나 작가들이 ‘유종의 미를 거두자’고 한다. 그때마다 나는 말한다. “유종의 미가 어디 있어? 그냥 유종이지. 끝나는데 뭐가 아름다워? 이미 끝난 건데, 쫓겨나는 건데, 미는 없어.”
왜 끝을 아름답게 포장하려고 할까? 해피엔딩, 명예퇴직, 유종의 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수식어들.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면 끝이 오기 전에 끝이라서가 아닌, 진짜 아름다움을 만들어보자.
당신도 나도 언젠가는 끝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를 굳이 아름답게 포장할 필요는 없다. 끝나면 그저 끝인 것. 그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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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라는 것에서 100퍼센트 멀어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나 역시 비교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금이나마 건강하게 비교하기 위한 나만의 기준 같은 것을 마련해보게 되었다. 나와 어떤 ‘사람’을 두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상황만을 대치시켜보는 거다. 내가 나의 어떤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쉬울 때가 있었으면, 같은 상황일 때 현명하게 겪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대처하는 방법이 나와 어떻게 달랐는지를 비교해보는 식으로 말이다.
예를 들어 내가 욱했는데,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는 욱하지 않고 유하게 잘 넘어갔다면 그런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마음 상태가 어때 보이는지, 어떤 말로 대처하는지를 지켜보는 거다. 상황이라는 기준을 정하고 대처하는 태도만을 비교하니 상대방에게서 배울 점을 찾을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나를 잘 지켜가며 살리라 마음먹어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 타인으로부터 남과 비교당하면 언제 또 속절없이 흔들릴지 모른다. 남과 비교당하면 언제 또 속절없이 흔들릴지 모른다. 적어도 그때는 타인이 기준 없이 가둬놓은 비교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나를 균형 있게 바라보고 싶다.

가끔은 일이 잘 안 풀릴 때도 있다. 남 탓하는 걸 유독 경계하는 편이라 그럴 때면 나에게서 아쉬운 점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왜인지 거듭해서 일이 안 풀리면 환경이든 상황이든 다른 것을 탓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 게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들은 것 같다. 내가 무언가 부족해서 잘 안 된 거라 생각하면 버거우니까 다른 요인을 찾아보고 바깥을 탓하는 거다.
반대로 문제가 뭔지를 내 안에서만 찾으려 하다가 자책이 심해져 기울어버리는 것도 위험하다. 타인, 회사, 환경 등을 내가 바꿀 수 없으니 스스로 나아질 점을 찾으려던 게 어느 순간엔 질책처럼 변질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내가 건강하게 ‘내 탓’을 하고 있는지를 돌봐줘야 하는 것 같다. 나도 머리로는 이처럼 균형 있는 ‘내 탓’을 추구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조금이라도 남의 핑계를 덜 대고, 상황 탓을 덜 해보고자 애쓸 수 있었던 데는 연습생 때 춤을 레슨해주셨던 한 선생님의 말씀이 큰 영향을 끼쳤다.
“네가 뭘 바라기 전에 그 사람이 해주고 싶어질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져 있어야 해. 뭘 탓하기만 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너에게 뭔가 해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도록 노력해봐.”

적당한 사람

이창섭(BTOB)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읽었어요
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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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어진 입을 얼른 닫았다. 고등학교 때 봉사 점수를 채우러 미혼모 쉼머에 간 적이 있었다. 삼촌의 트럭에서 내린 나는 미혼모 쉼터 마당에 둘러앉아 종이접기를 하는 임산부들을 보고 지금처럼 입을 떡 벌렸다. 다섯 명의 임산부 중 한 명이 내 중학교 동창인 탓이었다. 그때 삼촌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무 놀란 티 내지 마. 네 반응 때문에 저 친구가 자신의 불행을 깨달을 수도 있거든. 나는 민혜에게 불행의 트리거가 되고 싶지 않았다.

“잘 생각해 봐, 정지안. 너 좀비 알지? 살아 움직이는 시체들 말이야. 세상에서 그게 제일 무섭다며? 사실 나도 그렇거든. 만약에 우리 마을에 좀비가 나타나면 누가 가장 오래 살아 남을까?”
삼촌은 스며들 듯 내 침대에 누워 돌아누운 내 머리 밑으로 팔을 밀어 넣었다.
“우린 발전기도 있고 식량도 충분해. 창고 안엔 엄청난 무기가 가득하지. 시골구석에 사람이 살 거라는 생각도 못 할 테지만, 약삭빠른 좀비가 들이닥쳐도 걱정 없어. 고무 호스로 후려패고, 손도끼로 내려치고, 트럭으로 도망치면 안전하잖아.”
“재미없어.”
그땐 정말 우리 집 창고 안에 엄청난 무기가 가득한 줄 몰랐고, 삼촌이 살인귀들의 수장일 줄도 몰랐지만, 매번 그의 이상한 수작은 내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재밌으라고 하는 얘기 아냐. 언제든 자기가 선 위치를 무기로 써야 해. 물에 빠지면 물귀신처럼 상대를 물로 잡아당기고, 벼랑 끝에 서면 달려들게 도발하고 옆으로 빠지는 거지. 잊지 마. 위치를 이용해야 한다는 걸.”

살인자의 쇼핑몰 2

강지영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읽었어요
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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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uayt

“쓰지 씨에게 나는 최선을 다한 걸까? 나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해.”
데쓰로가 계속 말했다.
“잘한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해 주고 싶지만, 그만큼 의료란 건 쉽지 않고 내 마음도 강하지 않아. 그러니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언제나 한 가지뿐이야.”
데쓰로는 높고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짧은 말이 하늘로 올라갔다.
데쓰로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움직이지 않았다. 여름과 가을이 녹아 하나로 섞인 계절의 틈새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친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자전거 벨소리가 울렸다가 멀어져 갔다.
“나는 말이야, 미나미 선생.”
데쓰로가 고개를 바로 세우며 입을 열었다.
“의료라는 것에 큰 기대도 희망도 갖고 있지 않아.”
미나미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의사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의료의 힘이란 정말 미미한 것이라고 생각해. 인간은 덧없는 생물이고 세상을 끝까지 무자비하고 냉혹해. 나는 그 사실을 여동생의 임종을 지켰을 때 정말 뼈저리게 느꼈어.”
잠시 입을 다문 데쓰로는 깊은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무력감에 사로잡혀서도 안 돼. 그걸 가르쳐 준 것도 여동생이지. 세상엔ㄴ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산처럼 넘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은 있다고 말이야.”
데쓰로의 담담한 목소리가 조금씩 힘을 더해간다.
“사람은 무력한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 손을 잡지 않으면 금세 무자비한 세계에 잡아먹혀 버리지. 손을 맞잡아도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풍경은 바꿀 수 있어. 캄캄한 어둠에 갇힌 누군가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지. 그렇게 만들어진 작은 용기와 안심을 사람들은 ‘행복’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네 의지의 힘으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면 어떨 것 같아?”
“실망스럽죠. 저 같은 중학생도 의지가 있고 스스로 결정할 일이 많은 걸요.”
“맞는 말이야.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다지라든가, 의지가 약한 인간은 주의에 휘둘리고 만다든가 하는 말들을 들으며 자랐으니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도 많아. 예를 들어....”
데쓰로가 검지를 이마에 갖다 댔다.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도 기하학 평면상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을 3200도로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엉뚱한 이야기에 류노스케의 눈이 동그래졌다.
데쓰로는 웃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의지의 힘으로 뭔가를 바꾼다면 그런 것까지 생각해야 해. 확고한 의지의 힘이 있어도 쓰나미나 지진을 없앨 수 없고, 환자의 몸 속에 생긴 췌장암을 없애는 것도 불가능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쓰나미에서 도망치거나,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는 항암제를 주사하는 것이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지. 그런 일들을 자주 보면 인간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 그러니까 인간은 세계라는 정해진 틀 안에서 그저 유목민처럼 떠도는 무력한 존재인 셈이야.”
“아직 저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네요.”
“그렇지. 나도 완전히 다 이해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것을 깊이 생각한 사상가가 있었어.”
류노스케가 문득 깨달은 듯 물었다.
“그게 스피노자예요?”
데쓰로는 미소를 띤 채 하얀 모래를 밟았다.
“맞아. 그는 희망 없는 숙명론 같은 것을 제시하면서도 인간의 노력을 긍정했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면 노력하는 의미가 없을 텐데, 그는 이렇게 말했거든. ‘그렇기에’ 노력이 필요하다고.”
“어려워요.”
“어렵지. 하지만 나는 그가 의외로 중요한 말을 한 거 같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도 노력하라고 말이야.”
류노스케가 얼굴을 찌푸리며 데쓰로를 바라본다.
“그건 너무 가혹한 얘기잖아요.”
“그런가? 그래도 난 희망이 넘치는 논리 전개 같아서 그 말을 좋아해. 뭐든지 할 수 있어 전능하다는 생각으로 끝없이 달리게 하는 게 훨씬 더 가혹하지.”

스피노자의 진찰실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알토북스 펴냄

읽었어요
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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