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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차 없었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이 땅의 여성들에겐 이름이 없었다. 대갓집 마나님은 누구누구 부인이라고, 여염집 아낙은 어디어디 댁이라고들 불렸다. 죽어서도 마찬가지. 비석이며 기록에도 오로지 성씨만이 남기 일쑤였다. 5만 원 권 속 신사임당조차 사임당이란 호가 문집에 남아 알려진 것일 뿐. 이름은 완전히 소실돼 찾아볼 길 없다.
황정은의 소설은 가족의 연대기를, 특히 보이지 않는 짐을 잔뜩 업고 사는 옛 여성의 이야기를 개별적으로 짚어낸다. 당연하지 않은 짐을 당연하게 져왔던 그네들의 사정이 삶 가운데 비슷한 감정을 겪었을 이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 자극이 위로며 응원을 의도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못된 남성과 피해자 여성의 구도가 지겨운 건 사실이다. 올해만도 다섯편, 그렇고 그런 이야기의 반복이 아닌가. 그럼에도 누구에겐 의미가 있겠거니. 입을 다물고서 의미나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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