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 팔로우
우리는 사랑일까의 표지 이미지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지음
은행나무 펴냄

여느 사랑이 그렇듯, 구구절절 풀어놓자면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20대 중반의 커리어우먼 앨리스, 그녀가 파티에서 멋진 남자를 만나 연애를 시작한다. 상대는 투자금융업계에서 잘 나가는 30대 초반의 직장인 에릭이다. 제법 잘 생긴 외양에다 이미 일에 있어 성공을 거뒀다고 해도 좋을 만한 에릭의 자신감이 앨리스에겐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관계는 그렇게 수월하게 이뤄진다.

그러나 소설이 주목하는 건 그들의 낭만적 연애가 아니다. 에릭이 지닌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앨리스의 모습, 그들이 빚어내는 크고 작은 갈등과 위기를 알기 쉽게 분석하고 진단해낸다. 박식한 작가답게 기후와 건축, 쇼핑과 종교 등 다양한 소재를 등장시켜 빗대며 연인관계를 인문학적으로 분석해내는 솜씨가 상당하다. 사랑에 대한 거의 맹목적이라 해도 좋을 찬동을 과감히 거부하고 그 보잘 것 없는 실체를 드러내는 모습이 부분적으로는 신랄하다 해도 좋을 정도다.

알랭 드 보통을 뛰어난 소설가로 바라보기엔 여러모로 무리가 따를 수는 있겠다. 묘사와 서사에서 서투름이 많고 단조로운 전개가 주는 극적재미의 부족도 아쉬움을 남기는 탓이다. 그러나 3부작 뒤에도 에세이와 인문도서에서 성취를 거둔 인문학적 역량이 소설 가운데서도 여실히 발휘된다. 문학 안에 녹아든 지식과 재치가 그를 이 시대 스탕달로 불리게 할 만큼 매력을 발한다.
0

김성호님의 다른 게시물

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한국 진보정치는 폭망했다. 한때 비례대표 투표율 10%를 넘나든 진보정당, 또 교섭단체까지 바라봤던 정의당의 오늘은 국회의원 0명, 대선 득표율 0%대다. 노동, 생태, 복지, 소수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존재감을 상실하고 페미니즘 의제만 붙들고 있단 시각도 팽배하다.

저자는 비례위성정당 난립, 재정적 파탄, 청년여성의원에 쏟아진 비난, 코로나19로 조직이 멈춘 영향, 당대표의 성추행, 물질적 기반 해체로 인한 악순환 등을 하나씩 풀어간다. 이어 진보정당이 영향력을 키우기 어려운 한국의 구조적 문제를 짚는다.

실망이다. 무엇보다 정의당의 잘못을 지적하는 대목이 얼마 없단 게 그렇다. 페미니즘이 다른 의제를 압도한 사실에 대해서도 문제 없단 입장을 견지한다.

납득할 수 없다. 세상이 정의당을 망치기 전에, 그 스스로 망쳤다고 여겨서다. 반성과 분석을 원했으나 변명과 항변 뿐. 정의당, 또 그 지지자와 먼 거리만을 확인한다.

조현익의 액션

조현익 지음
편않 펴냄

4주 전
0
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조숙은 불행한 아이의 방어기제다. 두터운 외피를 갑주처럼 두르는 일이다. 판단할 수 없는 걸 판단하고 감내할 수 없는 걸 감내하려 힘을 다해 쌓은 벽이다. 오늘의 생존과 내일의 생장을 바꾸는 것이다. 성벽 바깥, 찬란한 미래를.

<새의 선물>은 성장담이 아니다. 차라리 그 반대다. 생엔 의미가 있고 사랑은 아름답다 말하는 이와 소설 속 진희는 대척점에 있다. 기대하지 않음으로 실망하지도 않는 것이 열둘, 또 서른여덟 진희의 생존법이다. 열둘 진희가 외가를 제 집으로 여길 때쯤 아버지는 찾아온다. 서른 여덟 진희는 여전히 사랑을 믿지 않는다. 구태여 처음과 끝에 불유쾌한 연애를 둔 것도 마찬가지. 성벽 바깥, 그러니까 생이란 늘 악의적이니.

나는 반대한다. 기대 않고 실망도 않기보다 기대하고 실망하는 편이 낫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말로 그러한가. 그 또한 확신할 수 없는 건 나 역시 생에는 이면이 있다고 믿고 있는 탓이다. 진희처럼.

새의 선물

은희경 지음
문학동네 펴냄

1개월 전
0
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다큐멘터리 감독 이은혜와 마주 앉은 일이 있다. 그는 영화제가 끝나면 곧 출국할 예정이라 했는데, 한국에선 결혼을 할 수가 없는 때문이라 했다. 동성 간 결혼을 한국은 막고, 미국은 허용한단 이야기. 그러고보면 몇년 전 그런 뉴스를 접한 것도 같았다.

2015년 미국 연방 대법원 결정으로 50개 주 모두에서 합법화된 동성결혼 이야기를 나는 저기 케냐 북부 자연보호구역에서 기린 개체수가 급감한다는 사실처럼 여겼다. 그건 내 문제가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테니까. 그러나 가까운 이들마저, 존중하고 존경하는 이들까지도 동성애에 혐오를 감추지 않으니 나는 이것이 더는 내 문제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혐오가 인간을 잠식하는 비결이 무지와 무관심, 쫄보근성에 있단 걸 알기에 나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레즈비언도 산부인과도 관심 없는 내게 이 또한 사람과 병원의 이야기란 걸 알게 해줬다. 여기까지.

레즈비언의 산부인과

이은해 지음
이프북스 펴냄

1개월 전
0

김성호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