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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지음
은행나무 펴냄

여느 사랑이 그렇듯, 구구절절 풀어놓자면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20대 중반의 커리어우먼 앨리스, 그녀가 파티에서 멋진 남자를 만나 연애를 시작한다. 상대는 투자금융업계에서 잘 나가는 30대 초반의 직장인 에릭이다. 제법 잘 생긴 외양에다 이미 일에 있어 성공을 거뒀다고 해도 좋을 만한 에릭의 자신감이 앨리스에겐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관계는 그렇게 수월하게 이뤄진다.

그러나 소설이 주목하는 건 그들의 낭만적 연애가 아니다. 에릭이 지닌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앨리스의 모습, 그들이 빚어내는 크고 작은 갈등과 위기를 알기 쉽게 분석하고 진단해낸다. 박식한 작가답게 기후와 건축, 쇼핑과 종교 등 다양한 소재를 등장시켜 빗대며 연인관계를 인문학적으로 분석해내는 솜씨가 상당하다. 사랑에 대한 거의 맹목적이라 해도 좋을 찬동을 과감히 거부하고 그 보잘 것 없는 실체를 드러내는 모습이 부분적으로는 신랄하다 해도 좋을 정도다.

알랭 드 보통을 뛰어난 소설가로 바라보기엔 여러모로 무리가 따를 수는 있겠다. 묘사와 서사에서 서투름이 많고 단조로운 전개가 주는 극적재미의 부족도 아쉬움을 남기는 탓이다. 그러나 3부작 뒤에도 에세이와 인문도서에서 성취를 거둔 인문학적 역량이 소설 가운데서도 여실히 발휘된다. 문학 안에 녹아든 지식과 재치가 그를 이 시대 스탕달로 불리게 할 만큼 매력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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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다는 건 /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의 유명한 시구를 나는 특별히 다음과 같은 순간에 떠올린다. 캄보디아에서 온 31살 여성 누온 속행이 비닐하우스에서 얼어죽었을 때, 대구 이슬람사원 건축현장에 돼지머리가 놓였을 때, 고양시 저유소 화재사건 때 풍등을 날린 스리랑카 노동자가 긴급체포돼 123회나 “거짓말하지 말라”고 다그침을 당했을 때, 올해 1분기에만 20명 가까운 외국인 노동자가 숨졌단 통계를 찾아냈을 때. 나는 나와, 내 이웃과, 내 나라가 다른 누구의 일생을 존중하며 맞이하고 있는가를 의심한다.

소설은 반세기 전 독일의 한국 노동자들과 오늘 한국의 이주노동자를 같은 시선에서 바라보도록 이끈다. 그 시절 한국 노동자에게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처럼, 오늘 한국땅의 이주노동자에게도 귀한 마음들이 깃들어 있음을 알도록 한다.

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문학동네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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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마저도 자유로울 수 없는 지난 체제의 부조리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봉건사회의 완성형은, 소수의 사디스트와 다수의 마조히스트로 구성된 것'이라는 통찰은 이를 냉철히 되짚어 반성한 적 없는 모든 사회에서 폭력과 존엄의 훼손이란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를 알도록 한다.

잔혹하고 처절한 묘사로 악명 높은 작품이다. 잔혹을 수단 삼아 인간의 극한에 다가선다. 잔혹함을, 또 폭력을 그대로 그를 비판하기 위한 창작의 장치로 활용하는 선택이 천재적이다. 폭력이 짙어질수록 폭력에 대한 비판 또한 강렬해지는 이 영리한 설정은 그를 부담스럽게 여겨온 이마저 일거에 감탄케 한다.

이로부터 일본에도 제 역사를 처절하게 반성하는 작가가 있었단 걸 알았다. 이로부터 봉건질서를 지나온 우리 또한 자유롭지 못한 잘못이 있다는 걸 깨우쳤다. 봉건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압제는 마땅히 그를 지나온 모두로부터 통렬히 비판되고 반성돼야 하는 것이다.

시구루이 1

야마구치 타카유키 외 1명 지음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펴냄

3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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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미영 작가의 데뷔작으로 원나라 침입에 맞선 고려의 무장이 실은 현재로부터의 시간여행을 한 고등학생이라는 상상으로부터 흥미롭게 빚어낸 작품이다. 요즘 또 유행하는 전형적 회귀물이지만 당대에선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원나라 침입 시기를 다뤄 눈길을 끈다.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을 적극 버무린 픽션의 결합. 그 결과물이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우는 판타지적 사극으로 귀결됐다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고려의 박서 장군이 살리타가 이끌던 원나라 군대를 귀주에서 격파하고, 재차 처들어온 살리타를 승장 김윤후가 처인성에서 사살한 건 의미 있는 전공임에도 널리 알려지진 못한 사실이었다. 노미영 작가는 역사책 한 귀퉁이에 찌그러져 있던 사건으로부터 매력적인 드라마를 뽑아냈고 이것으로 이 만화가 생명력을 얻었다.

매력적이고 아기자기한 이야기와 흥미로운 구성, 자기색깔이 분명한 필치까지 압도적이진 않지만 모든 면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좋았다.

살례탑 1

노미영 지음
대원씨아이(만화) 펴냄

3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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