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소설을 여태 왜 안 읽었지? 이렇게 재밌는데.
1996년 펴낸 단편소설집. 주로 30대 초반의 여성들이 화자로 등장하여 사랑과 인생에 관한 여러 면면을 때로 쓸쓸하게 때로 비틀어서 보여준다.
책이 나오고 30년이 흘렀으나 여전히 우리 시대의 이야기 같다. 물론 달라진 점도 많지만(정말 이랬다고? 기가 막히군.) 근본적인 질문은 시대를 관통하는 것 같다.
📚 어느 날 그녀는 깨달았었다. 그와 그녀. 그들처럼 사랑하면서 더이상 서로에 대해 알 것이 없는 사람들은 누구나 결혼해 있다는 것을.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말은 그녀가 중학교 때나 좋아했던 어떤 프랑스 소설가의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서로를 애증에 차서 노려보게 될 즈음이면 이제 슬슬 아이를 낳고 집을 장만하는 일상의 길로 함께 접어드는 것이,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인 사랑이 종말로 향해가는 가장 바람직한 수순이라는 뜻인 줄은 몰랐었다.
-p.57, <그녀의 세 번째 남자>
📚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했었지.'
그녀는 가볍게 웃었다.
'그것이 사랑의 본색일 뿐인데.'
-p.71, <그녀의 세 번째 남자>
📚 여자는 눈물을 닦으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사랑이 진정한 것이냐 아니냐는 그것이 시험대에 올라가지 않았을 때까지뿐이야. 시험대에서 분석하면 모든 사랑은 다 가짜로 밝혀지니까. (...) 자기 자신도 익히 알고 있듯이 남자는 여자보다 훨씬 지적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헤어짐에 대한 분석은 하지 않았다. 오직 여자가 그리울 뿐이었다. (...) 여자의 분석과 남자의 감상. 누구 쪽이 더 운이 좋으며 또 누구 쪽의 생각이 진실에 가까운 것일까. 그것은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려니와 알 필요도 없다. 당신은 그것을 안다고 해서 자기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p. 105,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
☕️ 사랑은 정말로 그렇게나 덧없는 것일까? 겪어 보니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은 잠시. 그렇다고 그게 사랑이 아닌 건 아니었다. 군불처럼 은근하고 오래 가는 사랑 역시 진정한 사랑이 아닌 건 아니었다. 어차피 혼자는 살 수 없는 세상, 서로 의지하고 챙겨 주면 그게 다 사랑인 것을.
📚 6월 17일
나는 독신이다. 직장에 다니는데 아침 여섯 시부터 밤 열 시 정도까지 근무한다. 나머지 시간은 자유이다. 이 시간에 난 읽고 쓰고 음악 듣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외출은 안 되지만.(...) 나의 직장일이란 아이 둘을 돌보고 한 집안의 살림을 꾸려가는 일이다. 아빠 없는 어린애는 생겨날 수 없으므로 그 아이들은 물론 아빠가 있다. 하지만 사정이 있어 아빠와는 같이 살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나는 그 아이들을 사랑한다.
-p.165, <빈처>
☕️ 남편의 무심함에 차라리 자신은 독신이며, 이 가정으로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는 아내의 자조가 웃프다. <빈처>의 아이들은 아마도 1990년 초반에 출생했을 것이고 지금쯤 30대 중반이 되었겠다. 그들은 그들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들은 지금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작중 아내는 60대 초중반쯤 되었겠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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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초상 같은 소설집.
글에는 위트가 넘치고 내 맘은 자꾸 아련해진다.
멀리 두고 온 내 마음 조각조각들이 작품마다 다른 모양으로 숨어 있는 것 같다.
땅속 지하를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열차를 따라 신화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산동네, 노량진, 자취방, 재수, 학원 알바, 첫사랑, 도도한 피아노, 첫사랑, 칼자루를 쥐고 생계를 이끈 엄마, 내성적이고 난감한 아빠가 등장하는 내 어릴적 같은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주황색 블랙박스 이야기는 사랑스런 판타지.
20대 초반,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않고 않고, 관계는 서툴고, 미래가 어찌 될지 몰라 불안한 젊은이들의 이야기. '자기만의 방'을 찾아가는 젊은이들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이 모든 것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렇게 힘들어 할 젊은이들에게 조금만 더 버텨 보라고, 시간이 지나 힘들었던 시절의 너를 회상하면서 과거의 너를 자책하고 미워하지 말라고, 수고했다고 토닥여 주라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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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완독.
쿤은 이 책을 통해서 과학의 '객관성'과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과학은 사람의 활동, 더 구체적으로는 과학 공동체의 활동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생각보다 객관적이지 않고 비합리적인 면들이 있다.
그리고 과학을 연구하는 '과학학'의 발판을 마련했다. 과학을 역사주의적 관점에서 크게 바라보며 구조를 파악하였는데, 실제 과학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학도가 본다면 과학이라는 '숲'을 보며 진리를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과학혁명의 구조에 의하면, 정상 과학을 유지하던 기존 패러다임은 변칙 현상이 자꾸 나타나 위기를 맞이하면 소수의 과학자에 의해 완전히 새로운 새 패러다임이 나타나고, 이전의 이론은 폐기처분된다. 과학의 '사실'은 '진실'이 아니며 언제든 깨질 수 있음을 인지하면 변화를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으므로 발전의 속도가 빠르다.
쿤이 이 책을 발표한 지 60년도 더 됐는데 현재 쿤의 과학혁명 패러다임은 여전히 유효할까?
오늘날 과학혁명의 구조는 어떤 모양일까?
쿤은 과학의 방향이 과학자 집단에 의해 결정된다 하였는데, 내가 보는 과학은 자본과 정치의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
기후위기가 사실이니 거짓이니, 하는 말도 그렇고 GMO와 원전의 안전성 여부,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은 오염수인가 아닌가, 광우병의 실체는 무엇인가, 녹조는 4대강 보 때문인가 아닌가 하는 모든 문제가 다 그렇다.
과학이 빠르게 발전하는데 법안은 제자리이고 AI는 고삐 풀린 망아지 같다. 자기네끼리 대화를 주고받는 AI들을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과학을 계속해서 이대로 두어도 괜찮을까? 유발 하라리는 그의 최근 저서 <넥서스>에서 인공지능의 연구 개발 속도를 늦추자고 제안했다. 나는 거기에 더, 비과학자들도 과학자들과 테이블에 함께 앉아 과학의 길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택하고 판단하는 몫을 과학 공동체, 자본주의와 정치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래서 요새 자주 만나는 SF 소설들이나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반갑다.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어떤 과학 기술로 세상이 굴러가는지 알면 좋다. 아니, 알아야 한다.
📚 무엇을 예측해야 할지를 매우 정확히 알면서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새로움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146쪽)
쿤의 과학 역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때다.
과학혁명의 구조
토머스 새뮤얼 쿤 지음
까치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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