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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낙천적인 아이

원소윤 지음
민음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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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억 번째 여름

청예 지음
창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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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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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박 하나로 온 우주를 다 가진 것만 같던 그때의 우리는 이제 내가 먹을 수박쯤은 직접 손질하는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고마운 사람에게, 기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쁜 날을 맞은 사람에게, 과일을 선물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어째서일까. 매일 아침 사과를 깍둑깍둑 썰어 먹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집에 과일이 두 종류 이상 있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게 된 것은.



🏡 그런데 여름이면 달랐다. 나는 몇 개라도 홀케이크를 가졌다. 그건 아주 둥근 기쁨. 스케치북 한 면을 전부 채우는 충만한 동그라미. 한 계절 내내 이어지는 축복이었다.

언젠가 이사를 한 집 사진을 꼼꼼히 보던 친구가, 틀린 그림을 찾아낸 듯 말했다.

혼자 사는 사람치고 냉장고가 크다. 별로 안 커. 수박 두 통이 들어가는 정도야. 그러자 친구가 왁 웃었다. 수박이 기준이야? 응. 수박이 기준이야. 내 냉장고는.



🍉 그런데 나는 큰 수박이 먹고 싶었다. 껴안으면 팔이 쑥 밑으로 꺼지는 커다랗고 무거운 수박. 수박을 엮어 묶은 끈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꿔 쥐면서 걷고 싶었다. 잘 자란 송아지를 데리고 느리게 언덕을 넘듯이, 그런 마음으로 수박을 데리고 집에 가고 싶었다.



🌞 어두컴컴한 아스팔트. 낮의 뜨거움이 끈질긴 권유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수박이 맛있어진다. 이것은 둥근 여름의 홀케이크 이야기이다. 나는 그래. 때로 나 자신을 위해 한 통의 수박을 산다. 이 홀케이크의 여름은 여러 번 갱신된다.



🍇 뭐 해?
포도 먹고 있어.

대체로 나는 무엇을 해도 과일을 옆에 두고 먹고 있다. 그러자 친구는 자기 집에도 처치 곤란한 포도가 있다고 했다. 처치 곤란한 포도? 그런 성립이 불가능한 단어를 나열해도 합법인가? 친구는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포도 농사를 짓고 있고, 그래서 철마다 포도가 늘 대량으로 집에 도착하며, 이번 포도는 샤인머스캣이라는 것이다.

카르텔이다. 왔다, 카르텔.

친구는 내가 카르텔로의 추악한 접근을 시도하기도 전에 포도를 보내주마 했다. 어차피 남는 포도라는 것이다. 어차피 남는 포도? 또 그런 불법 단어를… 생각했지만 나는 얌전히 감사 인사를 전했다.



🤝 깎아낸 사과의 껍질이 종잇장처럼 얇아 어느 때는 뒤가 비쳐 보이기도 했다. 엄마의 과일은 얇은 여름옷을 입은 것 같아. 물론 내 과일은 둔한 패딩이었다. 숙련된 기술이 주는 안정은 놀라워서, 엄마의 과일 깎기를 멍하니 보고 있곤 했다. 엄마의 과일은 어디를 가도 누구에게 보여도 합격이었다.



🥹 세상에 ‘첫’이 많아. 정말 수많은 ‘첫’이 있다. 첫사랑 첫눈 첫마디 첫걸음 첫인상 첫 마음 첫차 첫 키스 또 첫… 너에게 처음을 줄게. 그런 약속을 한다. 사람들은. 그것이 사랑의 증명이라고. 나는 그런 것에 별로 감동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우리가 같은 것을 가지고, 그것이 둘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면 좋다. 해의 첫 과일. 네 인생의 첫 과일.

해의 첫 과일. 그것을 매해 너와 나의 인사로 할게. 네 인생의 첫 과일. 그것을 내가 주는 것으로 할게. 처음을 나눌게.

올해 첫 수박 먹었니? 첫 딸기는? 올해의 겨울 복숭아는?

과일

쩡찌 지음
세미콜론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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쩡찌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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