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삶의 기록이다. 격(格)을 잃었다는 뜻의 실격, 인간의 격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요조는 그를 잃고 실패했을까를 거듭 되짚게 된다. 소설 가운데 인간이 끝끝내 지켜야 할 격이 무엇인지, 작가 다자이 오사무와 주인공 오오바 요조가 생각하는 격이 무언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독자는 저마다의 판단으로 그 격과 인간을 실격하게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얻는다. 이야말로 아마도 <인간 실격>이 가진, '얇다'는 것 외에 몇 안 되는 미덕일 테다.
요조는 주변의 기대를 외면하고 도피한다. 저를 받아주는 사람이 생기면 그 곁에 바짝 붙어있다가도, 그가 제게 어떠한 책임감을 요구하면 여지없이 도망치길 반복한다. 중요한 건 그가 부끄러워한다는 점이 아니라 어떤 책임도 거부한다는 데 있다. 무엇이 요조를 실격하도록 했는가. 그건 책임을 다하지 않는 선택, 고통을 피하기만 하는 삶이 아닌가.
0
수용소는 가혹하기 그지없다. 종전 직전 몇 개월을 제외하곤 건설노동에 투입됐던 저자다. 겨우 콩 몇 알을 넣고 끓인 스프와 약간의 빵만으로 연명하면서 연일 고된 육체노동을 해야 했다. 수많은 수감자들이 영양실조로, 질병으로, 사고로, 이따금은 처형돼 죽었다.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산다. 더 건강한 이가 죽기도 하고, 훨씬 병약한 이가 살기도 한다. 더 배운 이가 악해지기도 하고, 더 못배운 이가 선을 행하기도 한다. 무엇도 풍족하지 않은 수용소에선 그와 같은 구분이 더욱 선명하다. 프랭클은 제 경험으로부터 이유를 길어낸다. 죽고 사는, 선하고 악한 차이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의미다.
모든 인간이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니지만, 의미를 찾는 인간이 더 강해진다는 게 이 책의 중심이다. 죽음이란 지뢰가 자갈처럼 널려 있는 수용소에서 의미만이 인간을 강하게 한다는 걸 몸소 깨우친 저자다. 그래서 책은 설득력이 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지은이), 이시형 (옮긴이) 지음
청아출판사 펴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