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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라이프 1

한야 야나기하라 지음
시공사 펴냄

1. 보이지 않는 흉터

"주드, 너 자살하려 했던 거야?"라거나 "주드, 무슨 일인지 나한테 이야기해줘."라거나 "주드,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같은 문장들을. 그중 어떤 말이라도 괜찮았을 것이다.

— 《리스페너드 스트리트》, 115p

누군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자해를 하면, 남겨진 사람들에게 가장 무겁게 남는 것은 죄책감이다.

'그때 내가 더 잘해줬더라면, 그 순간 말을 걸었더라면…' 이 후회는 평생을 따라다닌다.

주드는 유능한 변호사다. 남들이 보기엔 성공한 커리어, 단정한 외모, 부족함 없는 삶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그 겉모습 아래에는 오래전부터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상처와 트라우마가 숨어 있다. 그는 삶의 절반 이상을 그 고통 속에서 버텨왔고, 세상과는 나눌 수 없는 아픔을 홀로 견뎌왔다.

화려한 경력과 단정한 태도는, 어쩌면 그 상처를 감추기 위해 쌓아 올린 완벽한 가면이었을지 모른다.

다행히 그의 자살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살아 있다는 사실이,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덜 가볍게 하지는 못했다.

'그날 내가 조금만 더 다가갔다면, 무심코 지나치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지 못한 말과 행동은 평생의 짐으로 남았다.

2. 아이를 갖지 않는 자유, 부모가 되는 또 다른 자유

사실 난 정말로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어. 아이를 가진다는 걸 상상해본 적도 없었고, 어떤 식으로는 마음에 둬본 적도 없었지. 그게 안 가질 이유로는 충분해 보였어. 난 아이를 가진다는 건 적극적으로 원해야, 아니 심지어 미치게 열망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열정도 없고 태도도 애매모호한 사람들이 감행할 일이 아니었지.

— 《포스트맨》, 240p

이상하게도 이번 2부에서는 주인공 주드가 아닌, 그의 양아버지 해럴드의 이야기에 꽂혔다.

나 역시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결혼 7년차 이지만 여전히 아이가 없다. 신혼 초반에는 '왜 아이를 안 갖느냐?'라는 질문부터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면 결혼은 왜 했냐?'라는 말까지 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결국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나의 몫이다. 왜 제3자가 왈가왈부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도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도 없고, 후회도 역시 없다. 물론 남편의 속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아쉬움 속에서도 내 뜻을 존중해주고 있다.

가끔 ‘내 아이는 어떨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이 들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생각이 흔들린 적이 없다. 오히려 책임감도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더 무책임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해럴드의 고백이 내 마음과 겹쳐지며 묘하게 위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갖지 않는 선택 역시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의 한 방식임을, 이 대목에서 다시 확인시켜준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해럴드는 다 큰 주드를 양아들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보통은 어린아이를 입양한다. 이미 상처로 가득한 성인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주드는 해럴드 덕분에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다.

부모가 된다는 건 단순히 생물학적 관계를 뜻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책임지고 곁에 있어주겠다는 결심, 그 마음이 부모의 본질일 것이다. 해럴드는 주드를 통해 그것을 보여주었고, 나는 나의 방식으로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하고 있다.

3. 돈이 가려주는 것들

잭슨은 부자였다. 너무 부자여서 평생 하루도 일해본 적이 없었다. 너무 부자여서 그의 전시회들이 매진된 건, 소문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가 작품을 몽땅 사서 경매에 내놓아 가격을 올린 다음 다시 되사서 잭슨의 판매 기록을 부풀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 《허영》, 396p

잭슨은 좋은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의 성공은 어머니가 만들어준 가짜였고,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해로운 영향만 끼치는 존재였다. 그는 스스로만 망가진 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람들까지 타락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가 위험한 인물임을 알면서도, 그의 화려함과 돈에 기대어 허영심을 채우려 했다. 그래서 잭슨은 단순한 한 개인의 타락이 아니라, 타락을 전염시키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잭슨의 삶은 돈이 모든 걸 가려주는 듯한 모습,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삶들이 그가 나쁜 인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 또한 한 번쯤은 돈 걱정 없이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을 지울 수 없었다. 아마도 그것이 인간의 솔직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실제로 돈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봐버린 사람이다. 아버지는 40대 이후로 단 한 번도 돈을 벌지 않았고, 어머니는 가정을 지킨다는 핑계로 많은 대출을 받으셨다. 그러나 그 빚 때문에 오히려 아버지에게 원망을 듣고, 심지어 칼부림을 막아야 하는 순간까지 겪어야 했다. 내 결혼식 때조차 아버지는 돈 한 푼 없는 통장을 내밀며 준비하라고 했고, 결국 내 돈으로 혼수를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지금 남편과 서로 돈을 벌며 나름 여유롭게 살고 있는 지금조차도, 마음 한편에는 돈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남아 있다. 여전히 돈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아니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잭슨의 허영이 내게 단순한 욕망 그 이상으로 다가왔나 보다.

4. 버려질 수 있다는 공포 앞에서

"입양을 취소하고 싶으시면 이해할게요."

난 너무 기함해서 화가 났어. 그런 건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거든. 뭐라고 소리 지르려다가 쳐다봤더니, 그가 얼마나 용기를 쥐어짜고 있는지, 얼마나 겁에 질려 있는지가 보였어. 정말로 내가 그런 걸 원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그런 것 예상하고 있었던 거야. 입양 직후 몇 년 동안 주드는 늘 이게 얼마나 갈까, 결국 어떤 짓을 해서 내가 파양을 하게 될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지.

— 《등식의 공리》, 528p

왜 주드가 양아버지에게도 완전히 마음을 열지 못했는지, 왜 끊임없이 자해를 반복했는지,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공포와 불신이 뿌리내리고 있었는지. 1권을 완독하는 순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리틀 라이프》 1권의 마지막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주드의 어린 시절에 학대가 있었을 거라는 짐작은 했지만, 그것이 아동 성매매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 상대가 다름 아닌 주드가 의지했던 루크 수사였다는 이야기는 차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성직자의 탈을 쓴 괴물이 주드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했다는 사실은, 독자로서 받아들이기조차 힘들었다.

주드는 고아였다. 그러니 어린 마음에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루크 수사는 그 마음을 교묘히 이용했다. 주드가 순수하게 기댄 마음을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배신한 것이다.

책장을 덮고 나니, 슬픔과 분노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 폭력의 실체가, 너무도 선명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2권에서 주드가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하기보다, 차라리 더는 읽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크게 자리 잡았다. 따라가기 벅찰 만큼, 너무 힘든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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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7p, 거울 앞에 설 때만 자신의 머리가 하얗게 센 것을 한탄하는 이는 행복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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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51p, 깨어 있다고 하기게는 너무나 몽롱하고 잠들어 있다고 하기에는 생기가 약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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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여자라뇨,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 말 하나로 멀쩡한 사람들을 이상하게 만드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 사람들은 나와 조금 다르다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부풀려 소문을 내는 걸까? 뭐 나라고 다르진 않겠지만 말이다.

6. 92p, 그 순간 음악이라는 두 글자가 번쩍 눈에 비쳤다. 역시 음악은 이런 때 이런 필요에 쫓겨 생겨난 자연의 소리일 것이다. 음악은 들어야 하는 것, 익혀야 하는 것이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지만, 불행히도 음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이 없이는 자유롭게 상상도, 사색도, 스트레스도 못 풀 것이다. 내 삶에서 음악은 빼놓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악기를 잘 다룬다던가, 절대음감은 절대 아니다. 그러면 어때? 리스너로 살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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