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허자은 교수의 부고장. “가족장이라 조문을 사양한다”는 문구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책은 세 사람의 시선을 따라간다. 허자은 교수, 그의 조교 이종수, 그리고 제자 정하늬.
허자은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 화장실에서 변기에 머리를 박은 채 숨진 채 발견된다.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지방대학의 교수의 죽음은 곧 가십거리로 소비되고 만다.
과묵하고 책에 몰두하며, 육중한 체격과 초라한 외모 탓에 주목받지 못했던 허자은. 그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제자의 손에 들어온 그의 노트북 속 ‘내 죽음의 한 연구’라는 문서가 모든 것을 바꾼다. 그 안에는 허자은이 걸어온 삶, 끝내 벗어나지 못한 고독,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내면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한 사람의 고독이 이렇게까지 외면당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죽음 뒤에 남은 기록이야말로 진짜 목소리였다는 점이 오래 남는다. 쉽게 소비되는 죽음 뒤에 놓인 삶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