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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

최진영 지음
핀드 펴냄

1.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문장을 세 문장만 꼽자면 다음과 같다.
(참고로 이 책은 작가의 일상을 담은 일기같은 에세이다.)
(1) 자, 이제 진짜로 글을 쓰자
(2) 정말로 이제 장편을 쓰자
(3) 한화는 도약 할 일만 남았다

작가는 매일 글을 쓰자는 다짐을 했던 것 같다. 그 다짐의 한결같음이 대단하면서도, 매일 운동하자! 다짐하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과도 일맥상통하여 일종의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매일 글을 써야지 라는 생각도 한다. 생각이 행동력으로 이어지지 않고 생각에서 그친 다는 것이 문제지만... 작가도 어려운데 일반인 따위인 나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내가 정상이었다. 그리고 모든 작가님들의 부지런함이 다시 한 번 존경스럽다.

2.
나는 지금 3년에 한번씩 온다는 지독한 일태기에 갇혀있다. 일태기보다 침체기의 느낌이 강한데 그 이유로 여러가지 있겠지만 첫째, 보람이 없는 일의 내용. 둘째, 더럽게 안맞는 상사놈(진짜 회사는 사람이 전부라는 것을 이 놈 때문에 다시 한번 배움)때문인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출근 하기 싫다‘ 라는 생각이 가득하다. (나는 원래 무리없이 출근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고..!) 그래서인지 작은 업무 하나 헤쳐나가기가 버겁다는 생각이 들고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시간을 지나고 있었는데, 이 때 읽은 최진영 작가의 일기는 작아져 있던 나에게 조금의 위안이 되었다.

시작했으니 남은 건 끝내는 일뿐이라는 작가의 말이,
그래도 하면 끝나겠지라는 말처럼 들려서.

그렇다면 하자. 언젠가 있을 끝을 향해서

✏️
P.7 💟
매일 글을 쓴다.
앞의 문장은 나의 기도이며 다짐이다. 나의 상태이자 정의이다. 하루가 아무리 엉망이었더라도 글을 썼으면 됐다. 외로우면 외로운, 슬프면 슬픈, 우울하면 우울한, 화가 나면 화를 내는, 평온하면 평온한 글을 쓰고 싶다. 딱 그 정도만 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어렵다.

P.8
언젠가 내가 쓴 글이 나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먼저 손을 내밀지는 않겠지만, 이제 다시 걸어보자고 말을 걸진 않겠지만, 늘 거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일어나도록 만들 것이다.
거듭 넘어질 나를 위해 매일 글을 쓴다.

P.15 💟
제주로 이사 오고 책상 앞에 ’일기를 쓰자, 날씨라도 쓰자‘라는 메모를 붙여두었는는데 며칠 전에 떼어서 버렸다. 지키기 어려운 다짐도 아닌 걸 기어이 지키지 않는 나의 한심함을 매일 글 쓰기 전에, 글을 쓰면서 확인하는 것도 지겨워서.

나는 주로 아주 화날 때 일기를 쓴다. 그래서 지난 일기는 대체로 들춰보지 않지. 최진영 사전에 ‘일기’란 ‘종이에 휘갈겨 써서 버리는 분노와 외로움‘이다. 써서 버렸으니 이제 그 감정은 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괜찮아질 때가 있다.

P.37
작년에 나는 ’프로선수도 10연패를 하는데 나도 10연패 할 수 있지‘라는 마음으로 살았다. 10연패 다음에 1승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좌절도 좌절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나를 리빌딩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P.61
나는 내가 물 같아서 묻으면 털어내고 금세 마르고 흔적도 남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다. 흘러가는 사람이면 좋겠어.
불행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진 말자.
행복을 남발하는 사람이 되진 말자.
너무 많이 말하지 말자. 내가 하는 말 중에 90퍼센트는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다.

P.72
동등한 애정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면
좀더 사랑하는 쪽이 내가 되도록 해야지

P.90 💟
모르는 것에 대해서 겸손하자.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선 더 겸손하자.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에 죄책감을 갖지 말자. 할 수 있다고 말했다면 책임을 지자.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면 미루지 말고 말하자.제발 말을 하자. 자기검열이 없는 것보다는 자기검열이 심한 게 낫겠지.
세상은 나에게 관심 없다. 나의 말과 행동에 관심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 이 순간 내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제발 걱정을 버려라. 하고 싶은 걸 하자. 먹고 싶은 걸 먹자. 글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 글을 완성하지 못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내가 글을 쓰지 못할 뿐이다. 그뿐이다. 글을 쓰지 못하는 나도 나다. 글은 나의 일부다. 글이 나를 잡아먹도록 두지 말자. 글을 괴물로 만들지 말자.

P.104
슬픔은 혼자 오지 않는다. 슬픔은 언제나 다른 감정의 손을 잡고 온다. 분노. 의심. 부정. 원망. 죄책감. 분노 다시 분노.

P.107 💟
마감을 끝냈지만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렇다면 하자.

P.162 💟
어쨌든 시작했으니 이제 남은 건 끝내는 일뿐이다. 우리의 길은 오직 도약뿐이다.

P.213
요즘은 주문처럼 ’한 번 사는 인생‘이라는 혼잣말을 자주 한다. 나에게 뭔가 당부하고 싶은 것 같다. 한 번 사는 인생,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지금 하고 싶은 걸 하자. 지금 먹고 싶은 걸 먹자. 지금 쓰고 싶은 걸 쓰자. 하지만 말은 아끼자. 세 번 삼키고 말 하자. 실없는 말은 하고 중요한 말이라면 넣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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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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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혀누님의 자몽살구클럽 게시물 이미지
귀여운 표지에 그렇지 못한 소설의 주제<힝ㅜㅜ>
한로로는 노래도 잘하는데 글까지 잘써버린다.
(작가가 굉장히 상황 묘사를 잘 해서 글을 쓰시는 듯. 눈에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달까!)

중학생 소녀들 이야기라 가볍게 청소년 문학인가? 시작했다가 책장을 덮을 때는 굉장히 무거운 마음으로 끝이 났다.
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나는 자살을 생각만 해도 무서워서 절대 시도조차 하지 못할 것 같은데, 15살 아이들은 도대체 왜 자살하려고 할까. 다 어른의 잘못이다.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어른들이 잘해야 하고, 어른들이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어 줘야 한다.

세상의 많은 어린 태수들을 지켜주고 싶다.

살구싶다!
살구싶다!
살구싶다!

✏️
P.16
나는 무엇 때문에 죽고 싶어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 가고 있는가.

P.98
나는 무엇을 버려야 할까?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걸까?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앞으로의 내가 있을까?

P.182
사람은 참 간사하다. 죽고 싶을 때는 당장 눈 뒤집고 혀 깨물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밤 호수처럼 잔잔해질 때가 있다. 나에게는 지금이 그 순간이다. 아무렇지 않게 편의점에서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순간. 언제 또 버튼 눌려 ‘쉽게 죽는 법’을 검색하게 될지 모르는 순간. 주변 사람들도 같이 살얼음판 위를 지나는 듯한 지금 이 순간.

자몽살구클럽

한로로 (HANRORO) 지음
어센틱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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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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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혀누님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게시물 이미지
독서모임 덕에 좀 그럴싸한 책을 읽었다. 고전이 진입장벽이 있다고 한다면, 이 책은 그나마 아주 짧은 분량으로 그 벽을 좀 낮춰준다.(다만, 인물들 이름이 어려워 적어가며 읽긴 했음…)
그리고 고전이라기엔 소름끼치게 지금과 다를바가 없다는 것이 놀랍다. 결혼생활을 묘사한 부분은 심지어 굉장히 웃김. 시대는 바뀌어도 아내 잔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나보다.

그럼 이제 책의 주제인 ‘죽음’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인간은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사람은 마치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면 온통 머릿속에 코끼리생각으로 가득 차는 것처럼, 죽음을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나는 아직도 죽음이 나와 무관한 이야기같다. 그럼에도 내가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면, 아마 피하지 못한채 죽음만 똑바로 응시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죽음이 주는 겪어야만 하는 고통이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난 내가 원하는 죽음의 모습을 세가지로 정리했다. 하나, 역시 건강하게 살다 죽는 것이다. 제발 아프지 않게 죽고싶다. 아프더라도 짧게 아프고 죽는것이 내가 생각한 더 바랄 것 없는 이상적인 형태의 죽음이다. 둘, 나의 죽음을 남들이 기회라고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잘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셋, 죽음을 앞두고 삶을 후회하고 싶지 않다. 죽음을 앞두고 삶을 돌아봤을때 후회만 남는다는게 얼마나 고통스러운것인지 이반 일리치를 보며 느꼈다. 육체적 고통에 정신적인 고통까지 주고싶지는 않다. 현생을 잘 살고싶다.

당신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죽음이 어떤것인지 단정짓기는 어렵겠지만 한번쯤은 죽음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일독을 권한다.

✏️
P.8
집무실에 모인 이 신사들이 이반 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모두 제일 먼저 떠올린 생각은 이 죽음이 판사들 당사자나 지인들의 인사이동이나 승진에 어떤 의미를 지닐까였다.

P.9
가까운 지인의 죽음 자체는 늘 그렇듯 부고를 접한 모두에게 내가 아니라 그가 죽었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의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P.17
‘꼬박 사흘에 걸친 끔찍한 고통과 죽음. 그건 지금, 어느 순간이든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생각에 그는 일순간 섬뜩해졌다.

P.39
항상 그렇듯이 아무리 살기 좋은 집이어도 딱 방 한 칸이 부족하기 마련이고, 또 수입이 늘어나도 딱 얼마가, 그러니까 500루블 정도가 부족하긴 했지만 그래도 참 좋았다.

P.42
업무상의 기쁨은 자존심의 기쁨이었고, 사회생활의 기쁨은 허영심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의 진정한 기쁨은 빈트 놀이의 기쁨이었다.

P.51
입속에서는 점점 이상한 맛이 느껴졌고, 뭔가 역겨운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아서 식욕이 떨어졌으며 기력도 몹시 쇠약해졌다. 자신도 자신을 속일 수조차 없었다. 뭔가 끔찍하고 낯선 것, 이반 일리치의 인생에서 지금껏 겪은 적 없는, 너무나 의미심장한 뭔가가 그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오직 자신만이 이 사실을 알 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할 의지도 없이 세상의 모든 것이 이전처럼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반 일리치는 그 점이 제일 괴로웠다.

P.54
이반 일리치는 자기 탓에 분위기가 이렇게 가라앉았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들은 저녁을 먹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이반 일리치는 자기 삶에 독이 스며들었고, 그것이 남들의 삶으로까지 퍼지고 있음을, 이 독이 약해지기는커녕 점점 그의 존재 전체로 침투하고 있음을 의식했다.

P.69
한번은 용변기에서 일어난 뒤 바지를 추켜올리다가 그만 기운이 빠져서 푹신한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벌거벗은 채 핏줄만 툭툭 불거진 힘없는 넓적다리를 바라보며 공포를 느꼈다.

P.73
“우리는 모두 죽게 될 텐데요, 수고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름 아니라 그의 말에는 죽어 가는 사람을 위한 일이니 별로 수고롭거나 버겁지 않고, 또 자신이 이런 처지일 때 누군가가 같은 수고를 베풀어 주길 바란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이러한 거짓 말고도, 혹은 그 때문에 더더욱 이반 일리치를 괴롭힌 것은 아무도 그가 바라는 만큼 그를 불쌍히 여겨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기나긴 고통을 맛본 뒤에 이반 일리치는 때때로 이렇게 고백하기가 창피스럽지만, 누구든 자기를 아픈 아이처럼 그저 불쌍히 여겨 주길 무엇보다 바랐다.

P.75
아침인지 저녁인지, 금요일인지, 일요일인지 아무 상관 없었다, 전부 그대로이니까. 단 한 순간도 잠잠해지지 않는 찌르는 듯 괴로운 통증 역시 그대로였다.

P.89
결혼이란…… 그토록 무심코 한 결혼은 환멸과 아내의 입냄새, 관능과 가식뿐이었다!

P.97
자기가 삶을 잘못 살아왔다는, 예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그런 가정이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민음사 펴냄

2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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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따뜻한 사람은 아니다. 작가의 말처럼 다감하나, 다정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좋은 책을 가까이하면 보드라운 말씨를 한 내가 된다’는 작가의 말처럼 조금 더 따뜻하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책을 읽는다. 타고 나지 않았기에 학습이라도 해서 더 나은 내가 되고싶은, 나의 작은 열망이다.

나는 이처럼 타고난 내 모습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여러 방면에서 이상적인 모습의 나로 바꾸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나를 있는 나 자체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완벽주의 성향의 타고난 기질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완벽주의라고 하기엔 사실 완벽하지 않다.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 나를 더 움츠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갖지 못한 걸 가지고 싶어할 때, 사람은 찌질하고 초라해진다. 그런 찌질이는 나만 알던 나의 모습이었는데...

작가가 나를 사찰했다!! 정말 내가 한 생각인데, 어쩜 이렇게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작가의 글을 읽으며 아, 모두가 똑같나보구나. 모두가 다 이렇게 불안하구나. 불안하지만 그냥 버텨내는 인생이구나 싶었다. 안도감이 들고 그 자체로 위안이 됐다. 나와 같은 불안한 인생을 사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
P.26 # 안락과 불쾌
속수무책으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안락하고 불쾌하다. 쉬어도 된다는 자아와 무책임하게 누워만 있으면 안된다는 자아가 답도 없이 싸운다. 산책이라도 나가자는 생각을 두어 시간 한다. 의미 없는 영상들이 지겨워지고 나서야 겨우 몸을 일으킨다. 오래된 동네를 걷는다. 상쾌하고 불안하다.

P.32 # 평양냉면과 속단
나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 사람에는 나도 포함된다. 나도 나를 모른다. 불면을 고백한 날, 숙면을 했고 흰색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날, 어울리는 흰옷을 찾아버렸다. 그럴때마다 다짐한다. 속단하지 말자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말자고. 세상도, 나 자신도. 인간은 평생 낙인을 찍으며 사는 존재다. 단편적인 모습 몇 개로 압축하는 존재. 그러나 무언가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짧게 듣고, 좁게 본다. 지레짐작하지 말자. 신중하지 않은 결론은 세계를 너무 좁게 만든다. 확장하는 나로 살고 싶다. 성급하지 않은 나, 속단하지 않는 나로.

P.43 #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더 두려운 거야
좋아하는 일을 마주하면 두려운 마음이 비집고 올라올 때가 있다. 잘하고 싶으니까. 좋아하는 걸 못 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서. 그걸 좋아하는 만큼 두려움도 큰 거야.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더 두려운 거라는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순간 도망치지 않기를 바라서.

P.94 # 강인한 마음
강인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 늘 흔들린다. 우리는 무대 위에서 산다. 늘 직간접적으로 평가 당한다. 칭찬받고 싶지만 매번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다. 괜찮다고 그런 평가도 있을 수 있는 거라고 자신을 다독여 봐도 잊히지 않는 뾰족함이 있지. 참을 수 없는 나의 부족함. 부족함을 활자로 보고 느끼고 마음이 떨려서 다 포기하고 싶고. 노력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부족함을 인정하기가 어려운 순간들. 이 부족함을 평생 채워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함이 왈칵 밀려드는 순간들도. 내가 늘고 있는 건 실제 실력보다도 늦게 우는 법과 부족함을 드러내지 않는 법인 것 같다. 잘하는 걸 더 잘해 보이도록 행동하는 법고 부족함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법. 다 잘하고 싶지만 견딜 수 없이 부족한 것들이 넘쳐나지. 그런데도 그만둘 수는 없잖아. 그래서 그냥 떨리는 마음을 끌어안아. 강인하지 않아도 버티는 힘을 기르고 있다.

P.104
어른의 속성은 무엇일까. 아이의 마음은 또 무엇이고. 자라나는 마음과 성숙한 마음, 시드는 마음은 어느 경계선에 있을까. 하나의 경계선은 책임감이겠지. 책임감을 깨닫지 못한 마음, 책임지는 마음, 책임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 자라나는 마음은 몹시 짧았다. 시드는 마음은 너무 이르게 찾아왔고.

P.122
아무것도 아닌 것에 무너진 날에는 아무것도 나를 일으킬 수 없다. 나를 쓰러트린 대상에 형태가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P.137
사랑하는 것들은 상처를 준다. 이게 참 잔인하게 들릴수는 있지. 그렇지마는 약간의 상처조차도 주고받지 않은 사이는 결코 깊은 사이가 될 수 없다. 잔인한 진실이다.

P.143
슬픔을 와락 느끼는 순간과 그것을 쓰는 순간과 읽히는 순간은 모두 다른데, 도저히 언제 괜찮고 언제 괜찮지 않은지 무 자르듯 할 수 없었다.

P.168 # 인생의 단맛
고생 끝에 맛보는 단맛이 더 달긴 해. 솔직히 운동하고 먹는 음식이 더 맛있고 일하고 먹는 술이 더 시원하고 시험 끝나고 노는 날이 더 즐겁다. 견뎌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많다. 인생에서는. 그런 쓴맛들이 아예 없었으면 하다가도, 그러다가도 그런 게 없으면 어떻게 인생인가 싶기도 하고. 그런게 없으면 단맛이 달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기도 해. 그러니까 견뎌내고 한번 가보자고.

P.223 # 오히려 좋아 💕
오히려 좋아. 유행처럼 번진 이 말이 무척이나 좋다. 비 와? 오히려 좋아. 시원하고 좋지, 뭐. 비행기 결항? 오히려 좋아. 호캉스, 진행시켜! 오히려 좋은 점을 찾다 보면 정말로 좋아지는 것 같다. 불행은 없었던 일이 되고 행복만 가득하게 된다. 그런 친구가 있다. 내내 오히려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친구. 옆에 잇다 보면 말이 옮는다. 예측 불가했던 사건이 튀어나오면 그는 외친다. 야, 오히려 좋아. 나도 말한다, 그래 오히려 좋지. 말은 옮는다. 좋은 사람, 좋은 책을 가까이하면 보드라운 말씨를 한 내가 된다. 좋은 것을 가까이에 두고 싶다. 나는 잘 흡수하는 사람인 걸 알기에. 환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환한 사람을 가까이에 두면 된다.

무명의 감정들

쑥 지음
딥앤와이드(Deep&WIde) 펴냄

2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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