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에서 유명 강사 한 분이 직원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다.
솔직히 난 회사 교육에 흥미를 못 느껴 대충 흘려듣는 편인데, 당시의 강의는 달랐다.
이 책을 소개한 강사님은 책에 나온 7개의 설득 원칙을 하나 하나 설명하며 동료들과 실습을 시켰는데, 모두가 매우 체계적으로 잘 정립되어 있어, 나 또한 설득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강의가 끝날 무렵 이 원칙들을 잘 활용하면 실전에서 분명 통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 이 책을 구매했다.
두꺼운 편이지만, 어렵지 않아 술술 잘 넘어간다.
책에서 강조하는 설득의 원칙은 아래와 같다.
1. 상호성의 원칙
가는 것이 있어야 오는 것이 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요약하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먼저 건넨 후 용건을 말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설득 확률이 큰 폭으로 상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회사들이 고객들에게 판촉물을 배포하고, 교회나 신규 오픈한 병원, 분양업체 등이 길거리에서 물티슈나 행주 등을 나눠주며 홍보하나 보다.
정말 중요한 부탁을 할 경우엔 캔커피라도 하나 들고 가야겠다.
그러나 받는 사람 입장은 다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문구를 꼭 기억하고, 누군가 건네는 공짜 선물에 대해서는 의심부터 하자.
2. 호감의 원칙.
누구나 호감가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긴 힘들다.
손쉽게 호감을 끌어내는 것은 외모와 차림새 정도인데, 외모는 고칠 수가 없다.
그래서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솔직히 경쟁력이 있긴 하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상대방의 호감을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익숙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다.
일례로 “넌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니?” 라고 물을 경우 “나랑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이라는 답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호감의 원칙에 내제된 유사성의 원칙이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 후 설득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 보다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한다.
누군가를 설득해야한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 먼저 파악한 후 공감대를 형성해보자.
3. 사회적 증거의 원칙
대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걸 무작정 따라하는 편이다.
O X 게임을 할 때만 보더라도 그렇다.
대부분이 소신을 갖고 찍기 보단 눈치를 보며 다수가 이동한 곳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진화론적으로 자기 혼자만의 생각보다 집단 지성을 믿는 편이 생존에 유리하거나, 혹은 소수에 섰다가 틀리는 것이 더욱 부끄럽게 느껴져 그럴 수도 있다.
이렇듯 우린 대다수의 의견에 동조하는 편이다.
누군가를 설득 할 땐 그 사람의 주변 사람들이나 그가 속한 커뮤니티의 상황을 공유함으로써 설득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옆집 순이 엄마, 호순이 엄마도 전부 이걸 쓰더라니까요…”
이런 식으로…
4. 권위의 원칙
전문가의 말을 무작정 믿는 사람들의 성향을 고려한 원칙이다.
학생이 옳은 말을 하고 교수가 틀린 말을 하더라도, 전문적인 내용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교수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설득의 힘은 말이 아니라 교수라는 직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값비싼 양복 카라에 달린 반짝반짝 빛나는 배지, 명함에 무수히 박혀 있는 직책에 현혹되지 말자.
사기꾼일수록 권위있는 복장과 휘황찬란한 직책을 내세워 상대박을 설득하려 하기 때문이다.
5. 희소성의 원칙
매진 임박!
점포정리로 인해 ㅇㅇ일까지만 팝니다!
내년부터 단종될 예정입니다.
다 팔리고 하나 남았어요.
나는 얼마전 아웃렛에 갔다가 꼭 이와 같은 경험을 했다.
마음에 드는 패딩을 살펴보며 고민 하고 있는데, 점원이 다가와 마지막 제품이라며 은근히 나의 소비욕을 자극했다.
고민하던 나는 점원에게 혹시 전시되어 있는 것 말고 새 옷은 없느냐고 물었다.
점원은 잠시 확인해 보겠다며 말한 뒤 스마트 패드를 만지작거렸다.
“고객님 이 제품은 우리나라에 딱 3개만 들어온 제품인데, 다른 매장에 딱 하나 남았네요. 그걸로 하시면 나중에 택배로 받으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낚였다.
결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말했다.
“저거 분명 전시하던 그 패딩을 먼지만 털어 포장한 다음에 보내 줄걸?”
“에이 설마…”
날씨가 추워져 잘 입고 있지만, 솔직히 찝찝한 느낌도 없지 않다.
더군다나 희소성의 원칙을 읽고 보니 약간 후회스러운 생각도 든다.
‘그냥 새제품으로 살 걸…’
6. 일관성의 원칙
허황된 약속을 어기거나, 말 도 안 되는 내기에서 질 영 마뜩잖은 기분이 든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일관성의 원칙에 지배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누구나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말은 지키려고 애쓰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일관성의 원칙을 잘 활용한다면 설득의 확률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예컨데, 부모님께 용돈을 더 받고 싶은 경우, 직접 용돈을 올려달라고 때를 쓰는 것 보다 부모님의 입에서 “용돈 올려줘야겠네…?” 라는 말이 나오면 설득에 성공한 것이다.
7. 연대감의 원칙
학연, 지연, 종교, 정치성향 등을 이용하는 이 원칙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사용되어 왔다.
사실 나도 가끔 특정 고객에 맞게 정치성향을 요리조리 바꾸는 편인데, 마음이 그닥 편치만은 않다.
솔직히 말해 연대감의 원칙은 되도록이면 사용하고 싶지 않다.
때론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겠지만, 요즘 같은 시대엔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다.
연대감 보다는 실력으로!
설득의 심리학 1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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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 집 풍경,
함께 살던 고모들의 얼굴,
고등학생 시절 선생님께 호되게 맞았던 기억,
대학교 때 처음 얻었던 자취방,
입대 전 둑방길에 서서 바라보던 강물.
이러한 기억들 중에서 가장 특별한 건 나의 최초 기억이다.
한여름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밭에서 일을 하기 전에 둥글고 기다란 고무 통 속에 나를 내려놓는 장면인데, 눈을 말똥말똥 뜬 나는 중력을 느끼며 아래로 내려가는 동안 좁다란 하늘과 나를 내려놓는 팔을 보고 있다.
그런데 그 팔이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게 나의 최초 기억으로 아마 두 세살 때가 아닐까 한다.
책에선 최초의 기억이 자아의 탄생과 일치하는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왜냐하면 내가 고무통으로 들어간 다는 것을 알려면 ‘나’라는 경험의 주체가, 그 상황이 싫고 두렵다는 것들 느끼기 위해서라면 감정의 주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억은 나를 만들어 내는 필수 요소이다.
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다.
기억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이어주고, 또 미래에 대한 나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준다.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손상되면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도 잃는 다고 한다.
그러니까 과거든 미래든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활동인 기억과 상상은 뿌리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기억의 실체를 아직까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 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기억과 나 사이의 관계를 아주 멋지게 표현해주었다.
과거의 나는 과거의 기억에 메달려있고, 현재의 나는 현재의 기억에 메달려 있다.
기억은 각각의 다른 나를 연결시켜 나에게 정체성이라는 태양을 선물한다.
나는 경험을 다시 체험한다기보다는 경험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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