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림호 옆 깊은 숲 속에 자리한 오래된 적산가옥.
어린 시절 그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겪었던 규호는, 세월이 흘러 큰아버지에게서 그 집을 유산으로 상속받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교도소 근무 중 징계와 감봉, 그리고 아픈 딸의 치료비로 삶이 기울어가던 규호에게 이 집은 다시 시작할 기회처럼 느껴진다. 그는 아내 수현과 쌍둥이 실비·실리와 함께 그 집으로 이주하며 새로운 삶을 꿈꾼다.
하지만 도착한 지 오래지 않아 집은 이상 징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밤새 들리는 발소리, 벽과 천장을 타고 흐르는 기척, 아이들을 향해 뻗는 보이지 않는 손길, 집안 곳곳에 스며 있는 숨결 같은 체온. 환영인지 실재인지 구분할 수 없는 존재들이 가족을 뒤흔든다.
그 와중에 수현은 집 안의 낡은 책상에서 1945년에 이곳에 살았던 여성 ‘나오’의 실험 기록과 편지들을 발견한다.
식민지 조선 시절 지방 병원으로 부임해 고립된 채 살아가던 의사 나오가 남긴 흔적. 사랑하는 이를 살리기 위해 매달리고, 죽음을 뒤집고, 생명을 다시 잇고자 했던 절박한 시도들.
규호의 가족이 집에서 겪는 기이한 사건들이 계속될수록, 나오의 기록은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깨어나고 있는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집은 단순히 흉가가 아니다. 누군가의 기억을 품고, 기다리고, 선택한다.
그리고 80년 전 억눌렸던 욕망과 슬픔, 집착과 사랑이 2025년의 현실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공포 소설이라 해서 소름 돋는 자극적 장면을 기대했는데, 읽다 보니 더 두렵고 잊히지 않는 것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집’이었다.
집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을 품고 기다리고 선택하는 존재다. 읽는 동안 나는 한 채의 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집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1945년, 1995년, 2025년. 세 사람의 시점으로 번갈아 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서로 다른 시공간이 한 지점에서 연결될 때마다 공포가 차곡차곡 쌓여 올라간다.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는 속도보다, 누군가의 절박함과 상처가 기어 나오듯 드러나는 속도가 더 빠르다.
집이 사람을 붙잡는 이유.
누군가가 그 집을 떠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이유.
그리고 떠돌아다니는 환영들의 정체.
공포의 실체가 드러날수록 오히려 더 서늘하고 더 안타깝다.
특히 인물들 살아 있는 사람, 이미 떠난 사람,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걸친 존재들
모두가 무섭고 불길한 동시에 이해되고 짠했다.
되돌리고 싶은 마음, 잃은 것을 다시 붙잡고 싶은 마음은 너무 인간적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그 마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 끝에서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는지 바라보는 과정이 이 책의 진짜 공포다.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욕망과 상처, 기억과 죄를 품고 이어가는 생명체다.
그 생명은 길고, 끈질기고, 집요하게 이어진다.
공포 장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당연히 추천하고,
공포를 즐기지 않는 분들도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서늘한데 따뜻하고, 무서운데 슬프고, 잔혹한데 아름답다.
이런 소설은 흔하지 않다.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힘든 이야기 정말 그 말 그대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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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평범한 풍경에서 시작한다. 한 동네에 사는 두 부부와 주변 사람들, 그리고 집 앞에 늘 서 있는 하얀 꽃의 닥나무. 하지만 남편 겅산우가 비에 젖어 바닥에 떨어진 꽃을 무심히 짓밟고, 그 장면을 이웃 여자 쉬루화가 창가에서 바라보는 순간부터 서사는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한 울림을 품기 시작한다. 일상은 그대로인데, 어느새 세계가 뒤틀리고 있다는 기척이 스며든다.
작품 속 인물들은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지만, 그것은 관심이나 애정이 아니다. 전부 감시와 경계의 시선이다. 누군가 내 집을 노리는 건 아닐까, 나를 해칠 준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끊임없는 불안 속에서 사람들은 문에 쇠꼬챙이를 박아 방어벽을 만들고, 나무에 거울을 걸어 이웃집을 감시한다.
관계는 신뢰가 아니라 공포 위에 세워진 구조물로 보인다. 그 불안이 너무 집요하게 반복되어,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인물들의 호흡에 맞춰 숨이 조여 오는 기분을 느꼈다.
불쾌함, 혼란, 긴장감이 쉼 없이 뒤섞여 밀려온다. 인간의 가장 어두운 내면과 마주했을 때 찾아오는 침묵과 깊은 여운에 더 가깝다. 악몽처럼 뒤틀린 세계를 통해, 불신과 고립이 지배하는 인간의 심리를 가장 솔직하고 가차 없이 드러낸다. 읽을수록 무너지는 세계가 아니라, 무너지는 인간을 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불쾌함’이 아니라 그 불쾌함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인물들을 비판하는 자리에서 안전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만들어낸 공기 속으로 끌려 들어가 함께 호흡해야 했다. “이건 저 사람들의 문제야”라고 선을 긋고 거리를 두는 것이 불가능했고, 어느 순간부터 작품 속 감시와 불안의 시선이 내 안에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단절, 불신, 피로, 타인에 대한 과도한 경계 이 감정들은 현대 사회에서도 너무 쉽게 발견된다. 그래서 작품이 보여주는 공포는 비현실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극단까지 밀려났을 때의 풍경처럼 보였다. 불안이 인간을 어떻게 변형시키는가에 관한 잔혹하고 투명한 기록이었다. 거북함과 어둠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 감정이 완전히 ‘타인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편안한 독서를 원한다면 추천하기 어렵지만,
감정의 바깥이 아니라 가장 깊은 어둠을 끝까지 응시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반드시 만나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 짧은 리뷰
평범한 일상 속에서 악몽처럼 뒤틀린 세계로 빠져든다. 인물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경계하며, 관계는 신뢰가 아닌 공포 위에 있다. 논리와 현실감이 무너진 서사 속에서 불편함과 불안이 쌓이며 인간 내면의 어둠과 고립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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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끝이 아닌 또 다른 단계로 바라보며, 삶과 존재의 의미를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휴먼 판타지다.
열아홉 살 서은은 가난, 가족의 죽음, 학교 폭력, 빚 속에서 삶을 지속할 이유를 잃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그러나 반복되는 시도 속에서도 죽을 수 없다는 초현실적 조건에 묶이며, 그녀는 ‘왜 살아야 하는지’가 아니라 ‘살아보고 싶은 이유’를 다시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죽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경숙의 카페는 판타지적 공간이지만, 커피 향과 대화가 스며 있는 일상의 장소로 그려지며 현실적인 치유를 만들어낸다. 서은의 변화는 극적이지 않고 서툴고 더디지만, 그 느린 과정을 통해 삶을 다시 배우는 서사의 진정성이 깊게 전해진다. 죽음을 미화하지 않고, 삶을 억지로 찬양하지 않는다. 비극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의 회복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담담하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잔잔하지만 오래 남는다.
읽는 동안 가장 마음에 남았던 건, 삶을 “버티는 것”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서은이 다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얻게 되는 이유는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타인과의 작은 온기 속에서 스스로 발견해 가는 것이었다. 많은 힐링물이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외치는 반면, 이 책은 그런 말조차 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곁에 서서 천천히 다시 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느낌이었다.
특히 서은의 변화가 빠르지 않다는 점이 오히려 더 위로가 됐다. 삶은 결국 그렇게 느리게,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떠올리게 해준다.
무엇보다 희망은 기적이 아니라 아주 작은 온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 믿게 해 준 책이었다.
그리고… 로맨스 판타지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로맨스 비중, 실종 사건은 무엇입니까? 😂 로맨스를 찾아보려는 마음은 있었지만, 결국 내가 찾은 건 인간의 회복이었고, 그게 또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 함정.
✔️ 짧은 리뷰
죽음을 택했던 소녀가 다시 살아보고 싶은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려낸 작품. 기적을 내세우지 않고, 타인의 온기 속에서 천천히 되살아나는 마음을 담아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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