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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장 폴 사르트르 (지은이), 임호경 (옮긴이)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

구토의 주인공은 싯다르타의 전반부와 굉장히 유사하다.
삶의 진정한 의미, 본질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그것을 망각하며 산다.
따라서 그들은 속세를 거부한다.
본질을 망각한 채 반복되는 일상에 마취되는 삶을 혐오한다.
그런데 이러한 본질을 향한 깊은 자기침전은 교묘하게 자신을 타인보다 '우월한 존재'로 만들진 않는가?
하지만 정작 행동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우리의 일상을 작동시키는 자들은 누구인가?
로캉텡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동시에 그 일상의 덕택을 보고 있진 않는가?
무엇보다, 구토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우리 모두가 삶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때때로 허무에 잠식되기도 한다.
그것은 특별한 것도, 우월한 것도 아닌 그저 생리현상이다.

또한 우리는 이유 없이 존재한다고, 말그대로 죽지 못해 살 뿐이라고 냉소하지만 그는 끝내 삶의 이유를 만들어내며 불멸의 존재로 재탄생하길 꿈꾼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선 동의가 어렵다.
나는 누군가의 제자이며 친구고, 아들이며 행인이기도 하다.
그 무엇도 내가 아니며 동시에 모든 것이 '나'이다.
이 집대성이야말로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엔 결코 닿을 수 없고 그 구성 요소에만 충실할 수 있을 뿐이다.
시종 구토감만 느끼다 시공간을 초월하길 꿈꾸는 주인공은 내 생각엔 그저 미성숙하다.

카뮈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가 시지프 신화에서 제시했던 부조리의 극복.
그것은 본질을 알 수 없음에도 돌을 굴리고 허무함을 삼키며 언덕을 오르는 저항정신 그 자체였다.

실존에 집착하며 자신을 우상화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와 때때로 그것을 망각하더라도 결국은 순간의 충실함으로 변화무쌍한 실존을 창조해내며 부조리를 극복해낸 자.

나는 후자의 삶을 선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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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블루

@cosmoboy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내가 죽은 곳에서 살고 싶어.
나를 전부 토해내고 싶어.
그저 투명하게 있고 싶어.
어떠한 질서도, 규칙도, 말도, 행동도, 시선도 그저 나를 관통할 수 있게.
그러니 나를 꿰뚫어주세요.
나를 짓밟아주세요.
나를 삼키고 다시 토해내주세요.
나를 산산조각내주세요.
한바탕 구역질이 끝나고 난 뒤, 바닥에 흩뿌려진 위스키 병의 유리조각들처럼 내가 투명해질 수 있게.'

지독한 존재론적 거식증이 남긴 것은 투명하디 투명한 유리조각.
자칫 아름다워 보일 수 있지만 착각해선 안된다.
그 유리조각들이 집요하게 동맥으로 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일 테니까.
실존의 자가면역질환은 결국 내 위장에 꽉 들어찬 오물을 소화함으로써 치유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살기 위해서, 우리는 점점 불투명해져야 한다.
그렇지만 불투명해질수록 아무것도 반사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투영하지 못해.
다시 내 안의 것들을 게워내고 싶은 욕망이 치민다.
사르트르가 말한 구토감이란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반복되는 존재의 되새김질 속에서, 우리의 반사율은 끊임없이 변해간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삶의 아름다움 아닐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 지음
이상북스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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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블루

@cosmoboy

컴퓨터 앞에 놓인 작은 액자.
그 속에 태권도복을 입은 소년의 사진을 본다.
해맑게 웃으며 고사리 같은 손을 꽉 쥐어보는, 한때 나였던 그 소년이 낯설다.
나는 이제 저렇게 맑게 웃을 수 없다.
그 사이에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많은 행복을 누렸으며 많은 후회를 했고 많은 사랑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그 소년을 모르지만 그것이 딱히 슬프진 않다.
내 안에는 그저 지금의 나만이 존재한다.

지금 혹은 과거의 행동이, 사회 현상이, 욕망이, 슬픔이, 사랑이 내 미래를 지배한다고 생각하면 난 그 압박감에 짓눌려 죽을 것만 같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만 존재한다.
10년 뒤엔 내가 모르는 왠 아저씨가 여기 있겠지.
그 아저씨도 후회하지 않기를.
세월이 앗아간 수많은 소년들을 떠올리며 옅은 웃음 지을 수 있기를.

세월

아니 에르노 지음
1984Books 펴냄

3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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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블루

@cosmoboy

삶이란 어째서 이다지도 고통스러운지.
그러니깐 살고 싶걸랑 낚싯대든 미끼든 자존심이든 뭐든 간에 내던지고 뭍으로 되돌아오면 된다.
허나 그것은 불가하다.
우리를 어부로써 존재하게 해주는 것을 버리는 행위, 자의식의 자살, 그것은 생물학적 죽음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죽기 위해 사는 사람들, 살기 위해 죽는 사람들.
그 누가 이 모순에 대해 손가락질하고 비웃을 수 있으랴.

나는 오늘도 망망대해로 나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본다.
모두 같은 바다를 향하지만 우린 결코 만날 수 없다.
그것이 때때로 나를 너무 슬프게 한다.
노와 낚싯대 따위 집어던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상처와 고통을 삼키며 미끼를 던지는 이유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일까, 비대해진 자의식 때문일까.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손을 놓으면 나는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리곤 뭍으로 돌아와 가족들, 친구들과 서로가 경험한 바다에 대해 도란도란 수다를 나눈다.
지금은 그저 그게 내가 바다로 향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말하고나니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민음사 펴냄

3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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