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2017-3월의 책
시집이라 쉽게 읽혔고, 직업적 고뇌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다.
가치를 쫓으며 이상에 맞게 살고 싶지만 괴리되는 현실 속에서 작가가 느끼는 괴로움이 어떤 느낌인지 너무 알 것 같아서, 나와 동류인 사람들이 짊어진 감수성의 무게가 느껴졌다. 부패한 시대를 탓하며 느끼는 괴로움은 어쩌면 시대와 상관없이 가지는 개인적 특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시대나 환경 탓을 할 필요가 없다. 내 감수성이, 내 도덕성이 민감한 것일 뿐, 세상은 언제나 늘 그래왔으니까. 완벽하지 않은 세상,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대로 굴러가지 않는 세상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을 쫓아 괴로워하며 사회를 바로잡고자 노력한 사람들이 있어왔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조금씩이라도 이상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겠지. 이상주의자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태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숙명이라 생각하고 세상에 대한 고민과 관심을 이어나가야겠다. 흠.. 이렇게 쓸 정도로 난 이상주의자는 아니지만 ㅋ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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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는 59세다.]로 시작하는 이야기.
원칙주의자인 오베의 아내(소냐)가 몇 개월전 죽었고, 어제 (월요일)는 회사에서 잘려버렸다. 깔끔하게 죽기로 결심한 오베는 준비를 하지만, 옆집에 이사 온 이란 여자(파르바네)와 멀대(패트릭)로 쉽지가 않다.
p.69 사람들은 오베가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다.
p.114 아내는 종종 "모든 길은 원래 당신이 하기로 예정된 일로 통하게 돼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그 ' 원래 당신이 하기로 예정된 것' 은 아마도 '무엇'이었으리라.
하지만 오베에게 그건 ' 누군가' 였다.
p.118 "BMW 따위를 사는 인간하고 도대체 어떻게 합리적인 대화를 할 생각이 들겠냐고."
p.118 그느 모든 것이 교환 가능한 것인 양, 마치 헌신이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인 양 인생을 살아가소는 안 된다고 느꼈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물건을 너무 자주 바꾸는 나머지 물건이 오랫동안 유지되도록 하는 전문 기술이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됐다. 누구도 품질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았다. 루네도, 다른 이웃도, 오베가 일했던 직장의 관리자들도. 이제는 모든 것이 전산화되어야 했다. ...이 세상은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구식이 되어버리는 곳이었다.
p. 206 처음 몇 년 동안, 그녀의 여자 친구들은 그녀가 한 선택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소냐는 무척 아름다웠다. 더군다나 그녀는 웃기 좋아했고,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간에 그에 대해 긍정적인 관점을 갖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베는, 음, 오베는 오베였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오베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심술 궂은 영감이었다. 그녀는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소냐에게 오베는 결코 뚱하지도 거북하지도 까칠하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그는 첫 저녁 식사 테이블에 올라 있던 살짝 부스스한 분홍색 꽃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입던 갈색 정장이 살짝 꽉 끼는 널찍하고 슬픈 어깨였다. 그는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였다. 훈장이나 칭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래야 마땅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종류의 남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소냐는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 남자를 꼭 잡았다.
p.353 그게 오베가 무엇보다 그리워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늘 같은 것.
오베는 사람들은 제 역할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는 언제나 제 역할을 했고, 누구도 그에게서 그걸 빼앗아갈 수 없다.
p.354 "하지만 모든 것에는 때가 있기 마련이예요. " 그녀는 또한 그렇게 말했다. 자주. 예를 들면 의사가 4년 전 그녀에게 진단 결과를 알려주었을 때. 그녀는 자기가 오베보다 더 쉽게 신과 우주와 만물을 용서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베가 대신 화를 냈다. 어쩌면 그는 사악한 만물이 자기가 만났던 단 한 사람, 그에게는 과분했던 그 사람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 누군가 그녀 편에서 화를 내야 한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세상 전체와 싸웠다. 그는 병원 직원돠 싸웠고, 전문의와 싸웠고, 외과 과장과 싸웠다. 그는 하얀 셔츠의 사내들과 싸웠고, 점점 더 수가 늘어나는 통에 나중에는 이름만 간신히 기억할 수 있었던 시의회 의원들과 싸웠다.
p.410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특히 무척 오랫동안 틀린 채로 살아왔을 때는.
p.410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겁자기 문을 열소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이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
p.436 죽음이란 이상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양 인생을 살아가지만, 죽음은 종종 삶을 유지하는 가장 커다란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때로 죽음을 무척이나 의식함으로써 더 열심히, 더 완고하게, 더 분노하며 상다. 심지어 어떤 이둘은 죽음의 반대 항을 의식하기 위해서라도 죽음의 존재를 끊임없이 필요로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죽음에 너무나 사로잡힌 나머지 죽음이 자기의 도착을 알리기 휠씬 전부터 대기실로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이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놓으리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늘 오베가 '까칠하다' 고 했다. 하지만 그는 빌어먹을 까칠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내내 웃으며 돌아다니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게 누군가가 거친 사람으로 취급당해 싸다는 얘긴가? 오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더. 한 남자를 이래했던 유일한 사람을 땅에 묻어야 할 때, 그의 내면에 있던 무언가는 산산조각이 난다. 그런 부상은 치료할 수 없었다.
시간은 묘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바로 눈앞에 닥친 시간을 살아갈 뿐이다. 며칠, 몇 주 몇 년.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는, 아마도 바라볼 시간보단 돌아볼 시간이 더 많다는 나이에 도달했다는 깨달음과 함께 찾아올 것이다. 더 이상 앞에 남아있는 시간이 없을 때는 다른 것을 위해 살게 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그건 추억일 것이다. 누군가의 손을 꼭 쥐고 있던 화창한 오후. 이제 꽃들이 만개한 정원의 향기. 카페에서 보내는 일요일. 어쩌면 손자들. 사람은 다른 이의 미래를 위해 사는 법을 잘견하게 된다. 그건 소냐가 곁을 떠났을 때 오베 또한 죽은 것과 다른없었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그는 그저 살아가는 것을 멈췄을 뿐이었다.
슬픔이란 이상한 것이다.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다산책방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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