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동안 터널 속을 함께 걸었다. 이반 일리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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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누구에게나 차갑고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찾아온다. 생명력으로 가득 찬 육체는 죽음과 전혀 상관이 없어보인다. 그러나 끽해야 한 세기도 안되는 시간이 지나면 죽음이 감히 손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생명은 스러진다. 그리고 죽음은 짧은 기다림 끝에 승리를 거머쥔다. 맞서 싸울 수 없고 피해갈 수도 없는 죽음은 삶의 완전한 정복자며 포식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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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03
죽음과 얼굴을 맞대고 있었지만, 그가 죽음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죽음을 바라보며 차갑게 얼어붙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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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라심은 참된 연민을 가진 사람이다. 아니, 연민이라는 표현은 알맞지 않은 것 같다. 이해한다고 해야 할까? 게라심은 이반을 존재 그 자체로 본다. 사람을 향한 사랑을 그대로 표현하는 이 인물은 가면을 쓰고 온갖 위선을 휘감은 다른 인물들과 명백히 대조된다. 책을 읽다보면 절로 이반 일리치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게라심이 등장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존재를 바라보고 영혼을 바라보는 사람이기에..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는 예수님의 황금률을 따르는 (어찌보면) 극중에서 유일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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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터널을 지나 이반 일리치는 하나의 빛을 발견한다. 아들 바샤의 눈물이다. 바샤는 이반 일리치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그 영혼을 위해 진정으로 눈물을 흘린다. 그를 보며 이반 일리치는 마침내 죽음과 고통이 떠밀은 공포에서 벗어난다. 터널 끝에는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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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는 어떻게 찾을 수 있으며 어디에 있는가? 내 옆 사람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그 영혼에 진실만을 담아 손을 건내는 것, 모든 베일을 벗고 참 얼굴로 다가가는 것, 나를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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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멀리하고싶고 입에 올리기를 꺼려하는 죽음, 그러나 마침내는 모두가 만나게 될 죽음. 이 짧은 단편은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마저도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도록 이끈다. 꼭 읽어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