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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민음사 펴냄

한 권의 책을 읽고 짤막한 리뷰를 남기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가끔 “내가 왜 사나”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하나가 ‘도무지 책을 못 읽었을 때’다.

이런 이유, 저런 핑계, 그런 사정.
참 많고 많은 사연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러하다는 거다.

읽고 싶은 책들과는 멀어지고 본의 아닌 책을 계속 들여다봐야 하는 일상이 기어코 부작용을 낳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 책 얘기는 않고 딴 소리만 하고 있었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1899년 생인 헤밍웨이가 1926년에 출간한 첫 장편소설이다.

혈기방장한 젊음의 감각, 주체할 수 없는 열망이 낳은 거대한 열패감이 욕구불만처럼 녹아 있었다.
후기 작품인 <노인과 바다>와는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만년의 헤밍웨이가 평생 익힌 인내와 절제의 정수가 <노인과 바다>에 담겼던 게 아닐지.

젊고 아는 것 많은 이들이 종종 그렇듯 젊은 헤밍웨이도 그 시대를 보며 할 말이 참 많았던 모양이다. 시대뿐 아니라 풍경이며 사람들의 행동과 사건들을 묘사하기도 즐겼던 모양이고.

총 3부로 이루어진 소설은 1부는 파리에서의 제이크의 일상을, 2부는 브렛이라는 영국 여성(제이크가 사랑하고 제이크를 사랑하는) 이야기와 페인 투우 축제 장면을 주로 담았으며, 3부는 축제가 끝난 후 한 젊은 투우사와 사랑의 도피를 떠났던 브렛이 돌아오는 내용이다.

한 가지 중요한 걸 잊었는데, 제이크는 제 1차 대전에 참전했던 미국인으로 전장에서 상처를 입는데 하필이면 재수 없게도 성기를 다쳐 고자가 된 남자다.

이 회복 불가능한 상처는 사랑을 완성할 수 없게 만드는 결정적인 흠으로 작용해 결국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 보내기를 반복하게 되는 결과를 부른다.

제이크와 브렛이 사랑하냐 아니냐는 당사자들이나 아는 문제이기에 논하지 말기로 하자.
성관계가 불가능하다고 사랑할 수 없다거나, 그걸 이유로 헤어진다면 사랑이 아니라고도 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허무주의 뉘앙스를 풍기는데, 마치 1차 대전이 기존의 세계를 끝장내버린 것처럼, 과거의 전통과 가치를 모두 잃어버리게 된 계기처럼 보이게 한다.

파리는 돈이면 제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도시, 애매모호한 관계로 고통 받지 않을 수 있는 가벼운 공간이 되고 전통있는 스페인의 투우 축제도 이제는 가벼운 재미, 단순한 오락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어버린 지금인 거다.

제이크는 이토록 절망적이고 막막한 시대를 좌절할 수밖에 없는 몸으로 살아내는 중이다.

안타깝게 느껴지는 건 태양이 다시 떠오른다고 해도,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고 해도, 염원하는 희망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극히 희박한 현실이다.

제이크 반스도, 브렛도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기에, 그들은 조금 더 상황에 끌려갈테고, 여전히 술에 취해 현실을 잊고, 여행을 떠나거나 가벼운 친목 관계를 지속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 것만 같다는 거다.

동명의 영화도 있다고 하는데 여 주인공 브렛이 그렇게 미인이라고.
헤밍웨이 작품 변천을 들여다보는 것도 은근 재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23초 정도 해본다.
👍 인생이 재미 없을 때 추천!
2017년 1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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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인물이 된 것처럼 읽는 내내 지루하면서 시간 감각을 희미하데 하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인물도 사건도 배경과 메시지까지 또렷해지는 책
- 고도를 기다리며를 재밌게 읽었다면 추천

타타르인의 사막

디노 부차티 (지은이), 한리나 (옮긴이)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읽고있어요
👍 인생이 재미 없을 때 추천!
2023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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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이주 소설 <도읍지의 표정> 읽기를 마쳤다. 게으른 독서가로 변모한 후로는 한 달에 두 권을 읽기도 어려워졌는데, 그런 현재 속도에 어울리는 늦은 완독이다.

2. 사실 읽기는 금방이었다. 낯익은 풍경을 일별하듯 지나다 문득문득 낯설기도 하고 재밌기도 한 특별한 장면과 마주하는 기분이었달까.

3. 그래서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재밌다’고 생각했던 건. 그러다 문득 이것은 재미인가?하는 의문을 느꼈다. 그래서 바꾸려고 했다.
“이야기가 있다.”로.

4. 하지만, 그러고 나서 생각을 그만두려고 했더니 ‘사람이 있던 게 아닌가?’하는 질문에 꼬리를 잡혔다.

5. 제목인 ‘도읍지’는 지금 내가 사는 공주를 의미하고 그 표정이란 게 어쩌면 나 역시 한 번은 보았을 풍경이나 만났던 사람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보니 이 소설 속 이야기와 인물들이 다 아는 사람만 같았기 때문이다.

6. 실제로 늘 택배를 가져다주는 사장님 이름이 눈에 익었고 그려놓은 배경과 등장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귀에 익어 더욱 잘 아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좋았다.

7. 그러나 역시 소설은 소설이다. 아는 사람 같은 그 인물은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닐거고 익숙한 그 이름도 내가 만나는 그 사람은 아닐 거다.

8. 그럼에도 어쩐지 살가웠다. 만나면 오래 사귄 사람들처럼 친근하게 느낄 수 있을 거라 믿을만큼.

9. 별로 꾸미지 않은, 어쩌면 날 것에 가까울 이야기와 정체모를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어쩐지 친근한 여럿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서 특히 좋았다.

10. 아마 이 도읍에 사는 사람이라면 다들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다. 언제든, 조금 더 수월히, 마음 놓고 숨쉴 수 있는 날에 서로가 마주했던 낯설고도 익숙한 도읍지의 표정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

도읍지의 표정

윤이주 (지은이) 지음
무늬 펴냄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2021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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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씹을 수록 재미가 나는 영화같은 소설

레이디 L

로맹 가리 지음
마음산책 펴냄

2020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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