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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물병자리 펴냄
오래전 읽었던 스콧니어링의 자서전과 그의 아내 헬렌니어링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꺼냈다.
헬렌니어링을 통해 알게된 크리슈나무르티는 한 때 그녀의 애인이었는데 어린나이임에도 세계의 스승으로 추앙받은 사람이라는 것. 그의 명상 방식. 헬렌에게 보낸 편지글 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좋아하게 된 스콧니어링은 그의 책 서문에
“시골생활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 접하면서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한다는 것이다. 생계를 위한 노동 네시간, 지적활동 네시간, 좋은 사람들과 친교하며 보내는 네 시간이면 완벽한 하루가 된다. 생계를 위한 노동은 신분상 깨끗한 손과 말끔한 옷, 현실세계에 대한 상아탑적 무관심에 젖어 있는 교사에게서 기생생활의 때를 벗겨준다.” 라고 하였다.
그 뒤로 나의 완벽한 하루는 그렇게 사는 것이 되었다.
이 책은 열여섯개의 소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번째 우리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가 좋았다.
장자나 불교, 기독교에서 하는 말이 모두 비슷하게 들리는데, 내 가치관 때문인지 실제 연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중 지두의 글이 요즘 장자와 함께 내마음에 와 닿는다.
26 “나는 변하기를 바란다. 방법을 가르쳐 달라” 고 말하는 사람은 일견 매우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그는 자신 안에 질서를 가져다 줄 권위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권위가 내적 질서를 가져가줄 수 있을까? 밖에서 부과된 질서는 언제나 무질서를 낳는다. 당신은 이러한 진실을 머릿속으로는 알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을 실제로 적용해서 당신의 마음에 더 이상 어떤 권위도 세우지 않을 수 있는가? 말하자면 책의 권위, 아내나 남편, 부모, 친구 또는 사회 등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판에 박은 듯한 틀 안에 있었기 때문인데, 그 방식은 늘 이데올로기나 권위가 된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변화할 수 있나? “라는 질문이 새로운 권위를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당신은 권위와 영원히 결별하게 된다. ... 변화하기 위해 누구에게도 그리고 무엇에게도 도움을 바랄 수 없다. 가령 선생, 신, 신념, 체계, 외적 압력이나 영향으로부터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무엇보다 먼저, 당신은 모든 권위를 거부할 수 있는가?
만일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당신이 오랫동안 지녀오던 그릇된 것을 거부할 때, 그리고 모든 짐을 벗어던질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당신은 더 많은 힘을 갖게 된다. 더 많은 능력, 더 많은 추진력, 더 큰 강도와 생명력을 갖는다. 만일 이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직 그 짐을 벗어던지지 않은 것이며, 생명력 없는 권위라는 무게를 벗어던지자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던졌고 그 속에 전혀 두려움-실수에 대한 두려움, 옳은 일 또는 나쁜일을 하는데 대한 두려움-이 없는 그런 에너지를 갖게 되었다면, 그 에너지 자체가 변화 아니겠는가? 우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면서도 공포 때문에 그것을 분산시켜 버린다. 그러나 모든 공포를 던져버림으로써 그런 에너지가 생기면, 그 에너지 자체가 근본적인 내적 혁명을 낳는다. 그래서 내적 혁명을 위해 더이상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 당신은 혼자 남게 되며, 모든 것에 대해 진지해진다.
그리고 더이상 누구한테도 또는 어떤 것에게도 도움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이미 무언가를 발견해야 한다는 사실로 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자유가 있으면 애너지가 있다. 그리고 자유가 있으면, 그것은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는다. 자유는 저항과는 완전히 다르다. 당신은 자유로우며 그것을 중심으로 행동한다. ...
자신의 것이든 다른 사람의 것이든 모든 권위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어제의 모든 것이 죽는 다는 뜻이며, 그 때 당신의 마음은 항상 신선하고 젊고 천진하고 활력과 정렬이 넘치게 된다. 우리가 배우고 관찰하는 것은 오직 그런 상태에서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앎이 필요한데, 즉 그것은 당신 안에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
이제 자신에 관해 아는 것을 모두 잊으라. ...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출발하려고 한다. ...
그리고 처음으로 우리 자신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자.
57 당신이 어떤 것에 대해서 전적으로, 온 마음을 다해 반응할 때, 거기엔 기억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눈여겨 본 적이 있는가? ...
생각은 결코 새롭지 않다. 왜냐하면 생각은 기억, 체험, 지식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 당신은 낡은 것에서 쾌락을 끌어내지, 결코 새로운 것에서 끌어내지 않는다. 새로운 것 속에는 시간이란 없다.
88 실재라는 것을 이해하려면 당신은 그것에 대해 당신의 모든 주의력과 모든 에너지를 다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주의력과 에너지는 당신이 어떤 허구적•관념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면 이내 흐트러진다. ... 무엇이 진리고 무엇이 사랑인지를 알고자 하는 강한 충동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런 개념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오직 현재 있는 것 속에서 살 따름이다.
110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했던 말들과 우리의 모든 불행한 기억들을 짊어지고 살고 있다. 그 모든 것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고독이며, 고독한 마음은 순진할 뿐 만 아니라 젊으며- 나이나 시간에 관계없이 어떤 나이에서든 젊고 천진하다- 또 그런 마음만이 진실한 것을 알며 말로 측량할 수 없는 것을 안다.
이러한 고독 속에서 당신은, 당신이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나 이러저러했던 바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가. 아무 떨림없이, 아무 그릇된 겸손 공포 합리화나 비난 없이 자신을 볼 수 있는지 보라. 오직 있는 그대로의 당신 자신과 더불어 살라.
112 “나는 자유롭다”라고 말하면 당신은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는 행복하다” 라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이미 지나간 어떤 것의 기억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자유는 원망, 소원, 갈망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연스럽게 올뿐이다. 당신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통해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를 만나려면 마음은 삶을 바라보는 법을 알아야 하며, 이것은 시간의 속박없이, 의식의 영역 너머에 있는 자유를 행한 거대한 몸짓인 것이다.
130 사랑한다는 것, 당신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자 모르는가? 사랑이 있는 곳에 비교가 있는가? 당신이 어떤 사람을 온 마음을 다해, 온 삼장을 다해, 온몸을 다해, 당신의 전 존재를 다해 사랑할 때, 거기에 비교가 있는가?...
사랑은 책임이나 의무를 갖고 있는가?....
의무속에는 사랑이 없다. ... 어떤 일을 의무이기 깨문에 강제로 하는 한, 당신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이 있을 때, 거기엔 의무도 책임도 없다.
150 결국 모든 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지도자도 없고 선생도 없으며 당신에게 해야 할 일을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은 이 광적으로 잔인한 새계에 홀로 서 있다.
191 그대로의 자신을 알때, 당신은 인간의 노력, 기만 , 위선, 탐색에 대한 모든 구조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려면 당신은 스스로에 대해 엄청나게 정직해야 한다. ...
더 이상 애쓸 수 없는 그런 마음의 상태가 종교적인 마음이며, 그런 상태 속에서 당신은 진리, 은총, 신, 아름다움 그리고 사랑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194 가장 높은 형태의 정열인 완전한 부정을 통해서만 그것, 즉 사랑은 존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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