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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로 수프만 생각했다
요시다 아쓰히로 지음
블루엘리펀트 펴냄
읽었어요
예전의 시간은 지금보다 느긋하고 두터웠다. 그것을 '시간의 절약'이라는 미명 아래 아주 잘게 조각 내버린 것이 오늘날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명의 다양한 이 기가 문자 그대로 시간을 잘라내 일단 무언가를 단축하긴 했지만, 다시금 생각해 보면 잘라낸 것은 '느긋했던 시간' 그 자체임이 분명하다. p.41
... 하지만 세상에는 시대에 뒤처진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나는 그런 사람을 존경하기 때문에 누나가 말하는 '세상'이 어찌 되었든, 그런 사람을 따르고 싶다는 생각이 어딘가에 존재했다.
'그런 사람'이란, 샌드위치 가게의 안도 씨지만. p.41-42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버리지." p.47
... 일하기 시작하고 손님과 직접 얼굴을 마주하면서, 일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 '누군가'를 가능한 한 웃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일의 정체가 아닐까. 어떤 직종이든 그것이 일이라고 불리면, 그것은 언제나 사람의 미소를 목표로 한다. p.112-113
"이상한 거 하나 물어봐도 돼요?"
늘 그가 하는 대사다.
"저기, 몰척이라는 거 있잖아요?"
"몰 척?"
"그, 사실은 알면서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
"아아, 모르는 척."
"그 모르는 척은 거짓말이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의표를 찔려 바로 대답할 수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 그게, 그러네. ...... 마찬가지라? 아니, 잠깐만...... 다르지...... 않을까?"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지기만 했다.
"어째서 그런 말을?"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답지 않게 뒤끝이 개운하지 않았다.
결국 그 이야기는 흐지부지되었는데 '모르는 척'이라는 단어가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그것이 어느새, 누나의 '먼 길로 돌아오기'와 연결된 것이다. p.126
어서 옵쇼!는 정확히 말하면 어서 오십시오, 일 텐데. 여기서도 다 큰 어른이 예의를 내팽개치고 어린애처럼 어서 옵쇼, 감솨함다 같은 소리를 지르고 있다. 감솨함다는 감사합니다이다.
그런 소리들이 오가는 가게 안에 그날의 내 '놀람'이 있었다. p.146-147
"맛있는 걸 만드는 사람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지. 다들 열심히 만들었을 테지만 열심히만으로는 부족한 게 있지."
"그런가요?"
"그래.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을 위해 열심이지만 그게 아니라 연인을 위해 만들려고 해야 해. 나는 그랬어. 그러면 열심히 말고도 또 하나의 소중한 게 더해지지." p.161
... 가게에서 손님을 봐도 혹은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을 봐도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다. 어렸을 때는 어른들의 나이가 더 분명히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타인은커녕 내 나이조차도 곧바로 나오지 않는다. 누가 내게 나이를 물어보면 자신 있게 작년 나이를 알려준다.
모르는 사이에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는 느낌이다.
이따금 내가 올바른 시간의 흐름에서 비껴난 것-같은 느낌도 든다.
일테면 뭔가에 몰두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면 한밤중이 되어 있다. 이런, ... p.200-201
"시계는 결국 보고 마는 시간이 있어서."
그것은 예측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늘 3시 45분이야."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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