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님의 프로필 이미지

안나

@anna5nme

+ 팔로우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의 표지 이미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 펴냄

이 책을 읽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기억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나는 학교에서 한 외국어 동아리에 들어갔다. 들어오면 외국어 성적에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는 선배들의 달콤한 꼬드김에 넘어가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교내에서도 악명높은 무서운 동아리였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인사문화는 물론이었고, 짝언니/짝동생 시스템으로 주 3회 손편지와 과자 조공은 물론 별 말도 안 되는 집합문화도 완벽하게 갖춘 최악의 동아리였다. 아마 입학 당시에는 부푼 마음을 가지고 뭐든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으로 들어간 학교였을 텐데, 내 인생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등교 시간이 다른 학교에 비해 늦은 8시 20분이었는데도 선배들과 마주치기가 무서워서 매일 7시에 등교를 했다. (그 습관이 이어져서 지금 회사도 일찍 나오는 건가..) 선배들한테 깨지는 날이면 눈이 부르트도록 울었고, 무슨 구호 외치기 연습하다가 목소리가 완전 상한 날도 있었다. 대선배들 오시는 날이면 몇십 명의 졸업생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시험 기간인데 장기자랑을 준비하고, 와. 왜 그러고 살았지? 이때의 트라우마로 나는 유학가서도 선배들을 너무나도 무서워했고, 서열에 대한 격한 혐오를 느낀다. 아무튼 그러다 아마 선배들한테 왕창 깨지고 동기들과 다함께 집에 갈 준비를 하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 학년에서 가장 최고봉같은 역할을 하던 아이가 한 마디를 했다. "후배 들어오면 다 죽었어." 그 말을 하던 아이의 표정과 말투와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후배가 들어오면 받은 것의 백 배로 갚아줄 거라던 그 아이와 그 말에 격하게 동의하던 다른 아이들. 난 솔직히 착한 사람도 아닌데 내가 동아리에 계속 남아 선배가 된다면 이딴 문화는 다 없애버릴 거라는 생각만 끊임없이 했었다. 그 생각 차이에 너무 충격을 받았더랬다. 분명 이런 '복수'개념이 한국을 망하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길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인생을 살다 보니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기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가장 큰 문제로는 유명한 연쇄살인범들. 불운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한테 온갖 학대를 받은 다음에 여자를 성폭행 후 죽이는 방식으로 자신의 불행함을 폭발시킨다. 최악. 군대를 가보진 못했지만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하는 군대 내 폭행의 대물림. 선임한테 처맞고 후임을 팬다. 대학때나 알바때나 회사에서도 자주 본다. 내가 힘들게 알아낸 것은 절대 쉽게 알려주지 않을거야라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 왜 그러는 걸까? 왜 사회는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걸까?

행복지수 1위인 덴마크를 직접 취재한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는 대표적으로 서로에 대한 믿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서로가 서로를 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베이스로 깔려있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복지, 사내복지, 학교에서 학생들을 다루는 방식부터 모든 것이 한국과 다르다. 이미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다르다. 길고 많은 실타래를 정리한 시작점부터가 다르다. 벌써 꼬일 대로 꼬여버린 실타래를 정갈하게 바꾸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 풀 수 없는 실타래를 아예 자르고 그 부분부터 다시 묶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책에 나오는 내용에 따르면,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첫 단계는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든지 본인의 직업과 삶에 만족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어떻게 직업에 귀천이 없고 만족할 수가 있지? 어떤 직업이든 버는 돈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비슷할 수가 있지? 많이 벌면 그만큼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이다. (여기서 돈이 아닌 적성을 따라 진짜 정치인과 진짜 의사가 탄생하는 이점까지 다다랐다.) 여기가 중요하다. 우리로서는 내가 고생해서 번 만큼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 아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살며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은 만큼 세금을 내는 것이기 때문에 아깝지 않다'고 한다. 결국 사회복지, 학비 지원, 의료복지 등은 다 세금으로 돌고 도는 것인데, 과연 국가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갑자기 '복지를 위해서' 세금을 40~50%를 낼 수 있을까? 아직 30년밖에 살지 않은 나조차도 덜컥 내 월급의 반이 세금으로 날아간다고 생각하면 아까워 눈물이 날 것 같은데. 과연 내 돈 내고 급식을 먹던, 내 돈 내고 대학을 다녔던, 내 돈 내고 병원에 입원했던 사람들이 나의 아랫세대를 위해 세금을 몇 배로 낼 각오가 되어있을까? 평생 복수를 못 해서 이를 갈던 사람들이 복수가 아닌 베푸는 행위를 할 수 있을까.....

"후반전은 전반전처럼 속공 일변도로 달리지 말자. 강공만 하지 말고 연타도 섞어서 유연하게 가자. 지쳤다 싶을 땐 쉬고 더디 가더라도 자신을 보채지 말자. 의무감 때문에 또 눈치 보느라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말자. 무엇보다 나의 성공뿐 아니라 실패도 안아주고 감사하자."
2018년 6월 25일
0

안나님의 다른 게시물

안나님의 프로필 이미지

안나

@anna5nme

최은영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을 읽으면 신비로운 감정에 휘말린다. 어딘가엔 있을 법한, 주변에 있을 법한, 혹은 나일 수도 있을 법한 한 사람의 마음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데비 챙, 숲의 끝, 저녁 산책, 호시절이 특히나 좋았다. 의도치 않은 오해, 사랑과 우정의 그 비슷하고도 애매한 감정, 자연스러움 속 의문을 품게 만드는 불편함 등이 너무 잘 표현되어 있다.

애쓰지 않아도

최은영 (지은이), 김세희 (그림) 지음
마음산책 펴냄

2022년 5월 24일
0
안나님의 프로필 이미지

안나

@anna5nme

  • 안나님의 It Ends with Us 게시물 이미지
표지 속 파란 백합꽃 그림에 이끌렸다. 매일 한 권씩 공개한 시리즈물이라 짧게 짧게 27권까지나 있다고 하니, 가볍게 하루에 한두 권씩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그렇게 네 시간 동안 손에서 놓지 못했고 심지어 우느라 막힌 코훌쩍이는 소리에 아기가 깨진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로맨스인 줄 알았다. 인터넷 로맨스 소설인 줄로만 알았다. 이미 처음부터 상당히 재밌었고, 5권쯤 읽어갈 땐 너무 로맨틱 자극적이라 이 소설에 심취해 읽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읽는 내내 제목이 신경 쓰였다. It Ends With Us의 Us는 화자 릴리와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 아무래도 아틀라스일까? 이 사랑 이야기의 끝은 누구와 함께하는 걸로 끝날까? 그런데 왜 한국어 제목은 ‘우리가 끝이야’일까? 우리가? 우리로? 한 권 한 권 넘어갈 때마다 궁금했는데, 26권 마지막이나 되어서야 알았다. 로맨스의 끝을 뜻하는 게 아니었구나.



가정폭력을 당하고도 상대방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몰랐다. 나도 주인공 릴리처럼, 피해자들이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줄 몰라서 안 떠나는 거라고 생각해왔나보다. 그런데 이 책이 나를 완전히 납득시켰다. 폭력가정에서 자란 릴리가 또 자신의 가정 속에서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도 나는 이 소설이 끝나기 직전까지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27권 중 26권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주인공이 딸에게 하는 말 ‘이 가정폭력의 대물림은 우리에서 끝내는 거야’에서 나온 It Ends With Us라는 걸 알았다.



제법이다. 나도 라일에게 꿈뻑 속아 넘어갔다. 아버지 장례식날 속이 답답해 올라간 고층 건물 옥상이라는 인소에나 나올법한 첫 만남, 갑자기 뚝딱 일을 그만두고 가게를 열었더니 대뜸 성격 좋고 예쁘고 착한 밀리어네어가 심심해서 일하겠다고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남주의 여동생이고, 남주는 큰 병원 의사에, 진지한 만남 싫어파인데 여주를 만나고서 사랑을 알게 되고, 어쩌다 여주에게 해를 가하지만 알고 보니 또 엄청난 일을 겪어서 트라우마로 인해 발현되는 행동이었다니 나 같아도 두 번 세 번 용서하게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무엇도 약자 폭행에 있어 이유가 되어줄 순 없다. 라일이 아무리 화나도 마동석 앞에서 퓨즈가 나가진 않을 것 아닌가? 감히 릴리를 힘으로 밀치고 이마를 꼬매야 할 만큼 세게 박치기를 하다니 빌어먹을 자식.



작가는 본인이 자라온 가정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와서 이야기를 적었다고 한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가정폭력을 당해온 피해자들을 위한 글을 적고 싶었다고. 다른 건 몰라도 피해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확실히 되었다.



찾아보니 올해 곧 아틀라스를 중점으로 한 소설 It Starts With Us도 곧 출간된다고 한다. 이건 확실히 로맨스 소설이겠다고 생각하는 건 또 나의 착각이려나. 아틀라스 너무 완벽한 캐릭터라 세상 제일로 오글거릴 것 같지만 한번 읽어보고 싶다. 이왕이면 원서로.





“이 세상에 나쁜 사람 같은 건 없어요. 우리 모두 가끔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일 뿐이에요.”



“그냥 헤엄치는 거야. 그냥 계속 헤엄쳐, 계속, 계속.”



나는 딸의 이마에 입 맞추고 약속했다. “여기에서 멈춰야 해. 나랑 네가 끝내는 거야. 우리가 끝내야 해.” - <우리가 끝이야> 중에서

It Ends with Us

콜린 후버 (지은이) 지음
Thorndike Press Large Print 펴냄

👍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추천!
2022년 5월 20일
0
안나님의 프로필 이미지

안나

@anna5nme

  • 안나님의 작별인사 게시물 이미지
김영하가 9년만에 내는 장편소설이 풀린다고 하여 며칠 전부터 기대했다. 공개되는 날 바로 읽고 싶어서 읽던 책을 서둘러 후다닥 읽어버렸을 정도. 일부러 책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찾아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첫 장을 읽고나서도 이게 어떤 내용으로 흘러가게 될지 짐작도 못 했다.

얼마전 읽었던 김동식의 ‘아웃팅’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대신 훨씬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이고 잔잔하고 길게 풀어진 느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이 인간을 잡아먹고, 인간이 사라지자 끝내 인공지능도 사라지게 되는 내용이다.

나는 sci-fi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를 떠올렸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영화가 바로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아일랜드’다.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 바깥 세상이 오염되어 환상의 섬으로 가기 전의 격리시설에 발탁되어 온 선택된 사람들이라 믿고 지냈지만 알고보니 복제인간을 보관하는 시설이었다는 것. 이곳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간다는 건, 복제인간의 주인이 장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래서인지 소설 ‘작별인사’ 속 선이가 스칼렛요한슨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평양 스칼렛 요한슨.

스토리 전개보다는 이 책에 몇 번이고 언급되는 오즈의 마법사와 빨간머리 앤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신선하지 않은 내용에 신선한 결말이어서일까, 흥미롭게 읽었다. 신기할 정도로 혼자 잘 놀아준 아기를 앞에 두고 읽어서 더 재밌었을수도.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작별인사

김영하 (지은이) 지음
복복서가 펴냄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2022년 5월 19일
0

안나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