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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 펴냄
이 책을 읽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기억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나는 학교에서 한 외국어 동아리에 들어갔다. 들어오면 외국어 성적에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는 선배들의 달콤한 꼬드김에 넘어가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교내에서도 악명높은 무서운 동아리였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인사문화는 물론이었고, 짝언니/짝동생 시스템으로 주 3회 손편지와 과자 조공은 물론 별 말도 안 되는 집합문화도 완벽하게 갖춘 최악의 동아리였다. 아마 입학 당시에는 부푼 마음을 가지고 뭐든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으로 들어간 학교였을 텐데, 내 인생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등교 시간이 다른 학교에 비해 늦은 8시 20분이었는데도 선배들과 마주치기가 무서워서 매일 7시에 등교를 했다. (그 습관이 이어져서 지금 회사도 일찍 나오는 건가..) 선배들한테 깨지는 날이면 눈이 부르트도록 울었고, 무슨 구호 외치기 연습하다가 목소리가 완전 상한 날도 있었다. 대선배들 오시는 날이면 몇십 명의 졸업생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시험 기간인데 장기자랑을 준비하고, 와. 왜 그러고 살았지? 이때의 트라우마로 나는 유학가서도 선배들을 너무나도 무서워했고, 서열에 대한 격한 혐오를 느낀다. 아무튼 그러다 아마 선배들한테 왕창 깨지고 동기들과 다함께 집에 갈 준비를 하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 학년에서 가장 최고봉같은 역할을 하던 아이가 한 마디를 했다. "후배 들어오면 다 죽었어." 그 말을 하던 아이의 표정과 말투와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후배가 들어오면 받은 것의 백 배로 갚아줄 거라던 그 아이와 그 말에 격하게 동의하던 다른 아이들. 난 솔직히 착한 사람도 아닌데 내가 동아리에 계속 남아 선배가 된다면 이딴 문화는 다 없애버릴 거라는 생각만 끊임없이 했었다. 그 생각 차이에 너무 충격을 받았더랬다. 분명 이런 '복수'개념이 한국을 망하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길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인생을 살다 보니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기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가장 큰 문제로는 유명한 연쇄살인범들. 불운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한테 온갖 학대를 받은 다음에 여자를 성폭행 후 죽이는 방식으로 자신의 불행함을 폭발시킨다. 최악. 군대를 가보진 못했지만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하는 군대 내 폭행의 대물림. 선임한테 처맞고 후임을 팬다. 대학때나 알바때나 회사에서도 자주 본다. 내가 힘들게 알아낸 것은 절대 쉽게 알려주지 않을거야라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 왜 그러는 걸까? 왜 사회는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걸까?
행복지수 1위인 덴마크를 직접 취재한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는 대표적으로 서로에 대한 믿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서로가 서로를 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베이스로 깔려있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복지, 사내복지, 학교에서 학생들을 다루는 방식부터 모든 것이 한국과 다르다. 이미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다르다. 길고 많은 실타래를 정리한 시작점부터가 다르다. 벌써 꼬일 대로 꼬여버린 실타래를 정갈하게 바꾸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 풀 수 없는 실타래를 아예 자르고 그 부분부터 다시 묶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책에 나오는 내용에 따르면,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첫 단계는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든지 본인의 직업과 삶에 만족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어떻게 직업에 귀천이 없고 만족할 수가 있지? 어떤 직업이든 버는 돈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비슷할 수가 있지? 많이 벌면 그만큼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이다. (여기서 돈이 아닌 적성을 따라 진짜 정치인과 진짜 의사가 탄생하는 이점까지 다다랐다.) 여기가 중요하다. 우리로서는 내가 고생해서 번 만큼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 아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살며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은 만큼 세금을 내는 것이기 때문에 아깝지 않다'고 한다. 결국 사회복지, 학비 지원, 의료복지 등은 다 세금으로 돌고 도는 것인데, 과연 국가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갑자기 '복지를 위해서' 세금을 40~50%를 낼 수 있을까? 아직 30년밖에 살지 않은 나조차도 덜컥 내 월급의 반이 세금으로 날아간다고 생각하면 아까워 눈물이 날 것 같은데. 과연 내 돈 내고 급식을 먹던, 내 돈 내고 대학을 다녔던, 내 돈 내고 병원에 입원했던 사람들이 나의 아랫세대를 위해 세금을 몇 배로 낼 각오가 되어있을까? 평생 복수를 못 해서 이를 갈던 사람들이 복수가 아닌 베푸는 행위를 할 수 있을까.....
"후반전은 전반전처럼 속공 일변도로 달리지 말자. 강공만 하지 말고 연타도 섞어서 유연하게 가자. 지쳤다 싶을 땐 쉬고 더디 가더라도 자신을 보채지 말자. 의무감 때문에 또 눈치 보느라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말자. 무엇보다 나의 성공뿐 아니라 실패도 안아주고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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