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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7.24 12:26
시작과 끝이 참 따뜻한 책이다. 하지만 시작에서 끝으로 흘러가는 그 과정은 알듯 말듯, 알쏭달쏭했던, 그런 책이었다. 한창 공감하며 읽다가도, '하지만 그도 결국 '판사'라는 대한민국 속 보이지 않는 계급 최상위에 속하는 걸' 하는 한계에 부딪혔고, 또 정말 흥미롭게 읽다가도, 그래서 이게 개인주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 사실 미국 방문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미국의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서글서글 웃지 않더라, 잘못된 것이 있어서 말했더니 줄을 다시 서라고 말해서 불만이었다'라는 뉘앙스가 보였을 땐...흠 이게 개인주의? 공감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유석 작가의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사회 많은 부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에 대해 나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었기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과잠(대학교 학과 야구 점퍼), 문화도 정밀해진 대학별 과별 서열의 수직선 내에 자신이 어디쯤 위치에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풍조다. 어릴 때부터 입시경쟁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있어 자신의 전리품을 과시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인 것이다.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큰 의미 없는 인연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해 한 학번이라도 위라는 이유로 후배들에게 극존칭과 예우를 요구하며 군기를 잡는 시대착오적인 군대 문화가 대학사회에 만연하는 이유도 기성사회의 집단주의 문화를 흉내내고 서열
주의를 내면화한 행태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이 아니라 소속 학교, 학과, 학번 등의 집단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따른 위계질서에 개인이 복종할 것을 강요하는 문화가 젊은 세대에서까지 재생산되고 있다는 건 절망적인 일이다.
- 물론 노력은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맹목적인 노력만이 가치의 척도는 아니다.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성찰이 먼저 필요하고,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에 대한 분노도 필요하다.
- '성공한 이들은 다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는 착각에 빠진 대중은 벌거벗은 임금님 앞에 무릎을 꿇고 모욕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 가성비 좋은 행복 전략이라는 관점으로 생각하면 직업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집착할 필요도 없다. 우선 자기 힘으로 생존하는 것이 생명체의 기본 사명이므로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자기가 선택가능한 직업 중 최선을 선택하여 생계를 유지하되, 직업은 직업일 뿐 자신의 전부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 므로 취미 활동, 봉사, 사회 참여 등 다양한 행복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것이다.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고 반드시 백댄서가 되어 평생 춤만 춰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일하면서 동호회 활동으로 주말에 홍대 앞에 나가 춤을 춰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재능과 열망의 크기에 따라 합리적으로 선택하면 그뿐이다. 이런 식으로 위험을 분산하면 행복할 기회가 늘어나고 소소한 행복의 플랜B, 플랜C를 계속 만들어갈 수 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과학에 따라.
- 야심도 없고 남들에게 별 관심이 없고, 주변에서 큰 기대를 받는 건 부담스럽고, 싫은 일은 하고 싶지 않고 호감 가지 않는 사람들과 엮이고 싶지 않다. 내일을 간섭 없이 내 방식으로 창의적으로 해내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내가 매력을 느끼는 소수의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걸 좋아하고, 심지어 가끔은 가족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나만의 시간을 갖길 원한다. 정말이지 공부라도 잘했으니 망
정이지 한국사회에서 먹고살기 힘들 뻔했다. 문화예술을 좋아하는 지인들과의 소모임, 젊은 판사들과의 독서 모임, 수준은 극히 낮지만 연습하는 과정이 즐거운 법원 합창단 등의 소소한 모임이 즐겁다.
- 이미 우리 사회의 교육격차는 형식적인 기회 균등만으로 해소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른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그 격차를 받아들여야 할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지고 빈곤이 대물림되는 사회는 역사가 증명하듯 근본적 기반이 흔들린다. 모든 곳에 희망이 있어야 사회가 유지된다. 이를 위해서는 형식적 평등을 넘어 실질적 평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 부족한 글을 쓴 나 개인적으로는 부끄럽고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 글에 대한 많은 분들의 반응에서는 큰 희망의 불씨를 볼 수 있었다. 거의 모든 분이 기본적인 문제의식 자체에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코끼리를 먼저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과 맞서 싸우기보다 슬쩍 디른 길러 유도하는 방법을 택했다. 거창하고 근본적인 해결책만 고집하지 않고 당장 개선가능한 작은 방법들을 바로 적용했고, 작지만 끊임없이 균열을 일으켰다. 영웅은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 우리 사회는 사실은 제대로 된 이념이 부재한 곳인데도 이념 코스프레중인 상황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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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 비슷하게 잀으셨네여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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