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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민음사 펴냄

읽었어요
나는 나 자신이 정상적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머리를 다쳐 기억도 애매하고, 가정도 복잡하고, 여러 가지로, 늘 그 점이 불안 했다.
그래서 나는 살아가는 의미 같은 것만 내내 생각하고 있고, 더욱이 그 일만큼은 타인과 함께 나누고 싶지 않다. 그런 것은 잠자코 있어도 알게 모르게 서로 나누게 되는 것이다. 서로 얘기를 나누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짓을 하면 오히려 관계가 나빠지고 만다. 처음 얘기를 꺼낸 순간부터 소중한 것들이 하나둘 사라져간다. 없어지고 만다. 그리하여 윤곽밖에 남아 있지 않은 데 안심한다. 그런 기분이 든다.

옛날, 친구 집에서 냉장고를 열었는데, 빨갛고 둥글고 커다란 것이 들어 있었어. 잘 알고 있는 것인데도 순간 무엇인지 생각이 안 나더군. 그것은 수박이었지. 프루트 펀치를 만드려고 껍질을 벗겨두었다는 거야. 꽤 애를 먹었을 텐데 왠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그게 수박인 줄 금방 알지 못했다는 점이 우스웠어. 그때 느낌하고 비슷해. 그렇게 변했어.

사람이, 어떤 사람이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기준은 무엇일까.

인간은 괴롭다. 불완전한 한 사람이 불완전한 한 사람을 생각하며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려 괴로워하는 모양은, 어째서인가 각각의 가슴속에 담긴 태풍과는 다른 곳에서, 때로 유난히도 생생한 어떤 상을 맺는다.
인간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이유와도 같은 것.

알고 있다. 한 번 밖에 없고, 순간에 끝난다. 하지만 내가 그 일부에 영원히 녹아 들어가 있다. 원더풀, 브라보! 사람은 괴로우면서도 그런 순간을 추구한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실망시키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는.
그래도, 더 많은 무언가를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여동생을 잃었다. 눈앞에서 점차 죽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누군가가 죽는다, 고 정해지면 그것을 막고픈 마음과 똑같은 크기로 이미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렇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몸부림을 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운명적인 사랑은 아니지만,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인 건지도 모르지'

지금 여기에 잠들어 있는 모두가 환상이고, 정신을 차리면 전부 사라지고 없을 것 같은. 그리하여 나만 남게 될 것 같은 기분이 점점 커지지. 살아간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이 무서워져.

'하지만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여기서 애써 쌓아올린 행복이 무너진다면 나 역시 불행해질지도 모르죠. 잃어버릴게 생겨야 비로소 진정한 두려움도 생겨날 테니까. 그렇지만 그게 바로 행복이에요. 자기가 갖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아는 것. 안 그래요? 나는 그이처럼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어졌을 때의 슬픔이라든가 절망 가은 걸 몰라요. 애당초 아무것도 없는 곳에 있었으니까. 고통의 크기로 하자면, 어쩌면 그이 쪽이 월등할 거예요. 만약 그이가 없어지면, 난 못 견딜 거예요. 그런 슬픔은 잘 모르니까. 느껴본 적 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런가, 이별이란 이렇게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것인가, 하고 울적해졌다.

'타인이니까, 공항에서 헤어지면 그것으로 영영 안녕일지도 모르잖아' 라고 말했을 때, 사랑을 하고 있는 남자의 불안이겠지, 하는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유난히 진지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알았다. 이 갑작스러움, 이 멍한 상실감, 이런 일은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든 언제든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이해하는 사람> 이 있는 그 하늘. 해질녘의 빛나는 바다.
누군가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그것이 허락되고 있음을.

인간이란 참 바보스럽지, 살아간다는 것과 그리운 사람과 장소가 늘어난다는 것은 이토록 괴로운 일인데, 애달프고 살을 에는 반복을 계속하는 것일까. 도대체 뭐란 말인가.
꿈의 여운에 쫓기듯,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되어보면 잘 알 수 있다. 단순히 비할 데 없이 행복할 따름인 것이다. 노이로제나 슬픔에 잠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그런 상태일 뿐.

'당신이 점점 변화해 가는 걸 보고 있으면, 인간이란 정말 그릇이다 싶은 생각이 들어. 그릇일 뿐 그 내용물은 어떤 식으로든 변할 수 있다고. 전혀 다른 인간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늘이 파란 것도, 손가락이 다섯개라는 것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그건 맛있는 물을 꿀꺽꿀꺽 마시는 것하고 똑같은 일이야. 매일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잖아. 모든게 그래. 마시지 않으면, 바로 거기에 있는데 마시지 않다니, 목이 말라서 끝내는 죽는 것과 마찬가지야.

변해 간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그저 형태를 바꾸어 계속된다. 흘러간다.

이제는 만날 없고, 이 집에서 함께 생활할 수도 없다. 아까부터 말로는 알고 있었는데, 왜 그토록 간단한 일을 실감할 수 없었을까, 하고 자문해 봤더니. 혼자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
지금 처음으로 이 깊은 밤에, 혼자가 되고서야 이 집의 분위기가 싹 바뀌어 있음을 알았다.
황량하고 서늘한 느낌.
부재의, 어디 마음 붙일 곳 없는 느낌.
헤어짐의 절대적인 고독.

맥이 풀리고, 이 공간의 부자연스런 침묵의 의미를 깨닫는다. 공기가 이별을 들이마시고 조용히 고여 있다. 어제까지 이 시간이면 같은 지붕 아래에서 잠잤던 사람이, 아마도 영원히 그 생활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언어로 표현하려 해도, 압도적으로 밀려오는 외로움은 감당하기 벅찼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순간에, 그래도 뭔가가 계속하여 흐르고 있다는 것, 사무치도록 안다는 것.

이런 모든 것으로부터 둘만이 분리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만다. 혼과 혼만으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영원히 서로에게 기대어 있을 것 같은 기분. 어딘가 멀리, 너무도 멀어서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람이 없어 바다와 산 같은 것 들만 얘기를 걸어오는 그런 곳, 인간이란 사실이 지워 질 듯한 지점.

그런 기분은 처음.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고마워.
이렇게 신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폴싹 고꾸라져 죽어버린다.
그런 것…. 이렇게 쓰고 보면 아무 멋도 없지만, 그런 것.
하지만 상관없지 뭐, 하고 생각했다.
그날.
난생처음으로.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신이 마시는 물이란 뜻. 흔히 감로수라고 하잖아. 바로 그거. 살아간다는 것은 물을 꿀꺽꿀꺽 마시는 것 같은 거라고, 그런 생각을 했어.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러다 생각해 냈어. 좋은 제목이지.

인생을 사는 순간의 은총, 광휘로 가득한 자비의 여우비.
그것은 기억이거나 미래가 아니고, 유전자가 보는 먼 꿈과 같은 것.

그렇게, 무슨 일이 생기든, 나의 생활은 변함없이, 쉼 없이 흘러 갈 뿐이다.

인간은, 마음속에서 떨고 있는 조그맣고 연약한 무언가를 갖고 있어서, 가끔은 눈물로 보살펴주는 것이 좋으리라.
2018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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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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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젊었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나와 동갑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나보다 늙어버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서른,
기쁘게 한껏 부풀어 오르고 보니
곁에선 부모가 바싹 쪼그라든 채 따라 웃고 있다.

그러니 만일 제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린 제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네가 있는 공간을, 그리고 네 앞에 있는 사람을 잘 봐두라고, 조금 더 오래보고, 조금 더 자세히 봐두라고. 그 풍경은 앞으로 다시 못 볼 풍경이고, 곧 사라질 모습이니 눈과 마음에 잘 담아두라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반드시 두 번 만나는데, 한 번은 서로 같은 나이였을 때, 다른 한 번은 나중에 상대의 나이가 됐을때 만나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살다 보면 가끔 두 번째 만남이 훨씬 좋기도 하다는 것도 그 ‘좋음’은 슬픔을 동반한 좋음인 경우가 많지만.

달 아래서 홀로 볕을 쬐면서 나는 생각한다. 미성년과 성년, 노인과 아이가 말을 섞는 담벼락 아래 짧은 우정. 그런 것이 정말 가능하다면, 모두가 벗이 될 수 있다면, 둘 중 더 큰 사람은, 더 넓은 사람은 사실 어른인 쪽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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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작가 특유의 문체가 좋아서 늘 기대하고 읽는데 뭔가 아쉬운 책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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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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