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보게 된 계기는 막내 때문이다.
말을 알아듣는 것 같으면서도 본인이 하려는 걸 못하게 하거나 입기 싫은 옷을 입게 한다거나 하기 싫은게 권하거나 하면 엎어져서 울고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 그친 것 같다가도 누군가(어린이집 선생님)를 만나면 서러움이 북받치는지 얼굴 보자마자 세상 이렇게 서러운 사람이 없는 것처럼 운다. 선생님은 당황스럽고 나도 당황스럽고. 마음을 알아주고 매만져줘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무시해도 그치지 않는 무시무시한 베이비, 조근조근 설명만으로 납득하는 첫째와는 정말 너무도 다른 별종 중에 별종이다.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하는 방법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말로 표현하는 아이니 울음을 좀 조절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지만... 기대와는 좀 많이 다른 내용의 책이었다.
처음엔 제목에 있는 5.3.3의 기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 궁금했다. 5는 5분 동안 1대 1로 특별하게 놀이하기. 3은 하나, 둘, 셋 세기. 마지막 3은 3분 동안 타임아웃 갖기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처음 5를 제외하곤 나머지 두 개의 3은 내가 정말 싫어하고 쓰기 싫어하는 방법이다. 어릴 때 엄마가 뭔가를 지시하고 숫자 세면서 내가 지시한 걸 하나 안하나 보고 있던 상황이 참 싫었던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얀 벽을 보고 있는 타임아웃 방법 자체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언어폭력이나 물리적 폭력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어른의 생각이다. 3분 동안 하얀 벽보며 반성하고 생각하라는 것은 다른 의미로 정서적 폭력에 해당한다고도 생각한다. “부모가 명령한 것을 3까지 세고도 듣지 않았을 때 타임아웃 하는 자리로 옮겨진다.” 과연 이런저런 부적절한 상황에 놓였을 때 부모의 말을 왜 따라야 하는 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저 셋 이후에는 하얀 벽을 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 부모의 말을 따르는 건 아이에겐 강제고 얌전한 협박에 짓눌리는 것이고 그저 생각없이 순순히 따르기만 하라고 어른의 입맛대로 만들겠다는 의도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해하고 깨달아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여러 번 반복해서 수정해주는 방법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난 저자의 생각을 2/3 정도는 동의하지 않는 엄마이다.
특히 “명령을 잘 내리면 순종도 쉬워진다”라는 소타이틀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부모자식간의 관계가 이런 상하관계 권위적인 명령과 순종이 존재하는 관계였던가 의문을 갖게 한다. 이건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취향에 맞지 않는 표현에 대한 거부감일 뿐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다.
그럼에도 5분 동안 1대 1로 특별한 놀이시간을 갖는 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특별”이 정말 특별한 것이 아니다. 자세한 것은 책 내용을 읽어보는 것이 좋겠지만 어렵지 않다. 부모의 참견 본능을 빼기만 한다면,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하루 5분 온전히 한 아이만을 위해 놀이에 몰두하는 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5분이지만 나는 4년 전 언어치료 선생님에게서 하루에 최소 30분 동안 아이만을 위해 집중해서 놀아주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 시간 동안은 엄마가 딴 짓을 해서도 안 되고, 전화를 받아도 안 되고, 집안일을 해서도 안 된다. 엄마들에게 할 일이 많은 걸 알고 있다. 특히 집안에 있으면 신경 쓰이는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눈에 보이고 아이와 놀다보면 어질러지는 것도 보인다. 하지만 아이와 온전히 놀아주는 시간에 집안일 따위는 뒤로 미뤄놓는 게 좋다. 그런 조언을 들었을 때 나는 참 많이 놀랐었다. 하루에 고작 30분을 온전히 한 아이에게 쓰지 못하는 육아를 해왔었구나 하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챙기는 것만도 버거운 육아여서 육아란 것이 그게 다인 줄 알았던 초보엄마였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책에선 딱 5분을 이야기한다. 하루에 5분 정도도 아이와 놀아주지 못하는 엄마가 있을까? 매일 야근하고 아이가 잠든 후에나 들어오는 워킹맘이 아니고서야 누구나 충분히 가능한 시간이다.
이 책에서 정말 유용한 것은 아이와 놀면서 아이의 감정을 공감해줄 때 엄마가 하는 말들이 상황마다 좋은 예와 나쁜 예로 적혀있어서 참고하기가 좋다. 그랬구나~ 라고 공감해주라는 육아조언이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그 취지는 좋았으나 그랬구나.. 그 다음은?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는 엄마들이 대다수였고 그 중에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하는 능력이 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도 그걸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었는데, 지인이 부모교육을 가서 공감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그랬구나를 남발한 결과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이 된 딸이 대들더란다. “엄마는 ‘그랬구나.’ 라고 밖에 못하냐고.” 욱함을 누르고 애쓴 엄마의 노력이 영혼없는 공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우리 아이 나쁜 버릇 고치기 5.3.3.의 기적
장성욱 지음
행복에너지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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