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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어요
먼저 평점 매기고 시작할게요,
제 점수는요? ★★★★★
몰입도도 최고고, 재미도 보장! 그리고 감동......(이라기 보단) 뭉클함
다 갖춘 영양만점 소설이다.
오랜만에 서평 걱정 없이 정말 재미나게 읽은 소설이다.
바로 전에 읽었던 <최후의 만찬>은 좀 더 묵직한 맛이 있었는데,
이번 소설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도 좋을 책이다.
가볍긴 한데, 그 속에 마음 아픈 요소도 있으니, 일석이조?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소설 내용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일제 시대에 일본 헌병과 바람나서 조국을 버린 할머니가 67년만에 나타난 이야기다.
그것도 60억이란 거금을 들고!
60억, 어떤 분에겐 엄청난, 어떤 분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런 금액일 순 있지만,
우리나라 중산층들을 충분히 흔들고도 남은 금액.
나라를 팔아먹었다던, 광복 후 염병으로 죽었다던 할머니가 돌아와서
대뜸 한다는 말이, "나 돌아왔다, 60억이 있다, 가족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그렇게 최씨 집안은 유산 상속을 위해 할머니의 마음을 얻으려고 별의 별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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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이들은 술값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술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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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최씨 집안의 장남 동석의 목소리로 흘러간다.
동석은 오랫동안 만났던 여자를 절친에게 빼앗기고,
10년 째 무직의 상태로, 피시방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가족들에게는 무존재한 존재고, 알게 모르게 구박도 많이 당한다.
이와 다르게 동석의 동생 동주는 아주 멋진 녀성,,,
대학 교수고 전남편에게서 위자료로 낡은 건물을 하나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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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진 상황 파악을 못 한 것이다.
이미 대세는 여인 천하라는 걸." (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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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집안의 경제적 원동력들은
여성들로부터 나온다.
할머니, 어머니, 고모, 그리고 딸 동주.
이 집 남성들은 체면만 차릴 줄 알지, 가정 생계는 뒷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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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내리자 서울의 대지는
낮에 품어 두었던 열기를 뱉어냈다.
열대야였다." (1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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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들 앞에 67년 전에 사라진 할머니가 나타났다.
배신 당했던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거품 물고
아버지와 어머니, 고모, 동주까지 할머니를 향해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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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아비와 어미가 최씨들에게 굽실대는 걸 보면서 자랐지만
그걸 속상해하거나 화를 내거나 한 적은 없다.
왜냐하면 태어날 때부터 상황은 그랬으니까.
그냥 당연하게 최씨 가문은 하늘이고 우리 같은 것들은 땅이라고 믿고 살았지.
우리만 그런 게 아니고 마을 사람 모두 다 그랬어.
아들을 못 낳았다고 아비가 어미와 우리 딸 셋을 구박했지만,
그것도 그냥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게 죄인 줄 알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2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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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인 정끝순 여사는 할아버지 최종태의 시중 노릇을 하는 집안의 딸이었다.
도련님인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반하고,
그렇게 결혼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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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짝불이라는 최씨 가문 장손보다도 경성의 휘중당,
그 빨간 벽돌과 담쟁이덩굴,
그리고 빛나던 교복과 결혼한 것이고
혼인 한번 하려고 지독하게 맞다가 죽을 뻔했고
그 넓은 강경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난 기적 같은 혼인을 했고
혼인 후에는 참 눈물 쏙 빼는 시집살이를 했다.
그게 전부야.
하지만 혹시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래도 난 짝불이를 선택할 거야.
그게 그렇더구나.
사람이 아무리 머리로 산다고 해도 한번 가슴이 동하면 머리 같은 건 정말 쌀 한 톨보다도 못한 게 되더라고.
나중에 후회를 해도,
다시 그 순간이 돌아오면 어쩔 수 없이 또 가야 하는 길.
이제 죽을 때가 돼가니 비로소 알 수 있단다.
그게 사람 사는 길이야.
뜬구름 같은 거 말이야." (2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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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운명으로 생각했었다.
잠시 동안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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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게 이상할 땐,
돈부터 생각하면 이해 안 가는 게 별로 없어." (2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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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자신을 연모하던 소꿉친구 때문에 누명을 쓰고
고향에서 쫓겨나듯이 도망쳤다.
그리고 고생을 하고 가족들 곁으로 돌아왔는데,
알게 모르게 동석과 통하는 구석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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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무리 싫은 일이라도 오래되면 이상한 꿈 같은 게 생기는 거야.
네 할아비도, 네 어미도 달수에게 전염된 거지.
둘 다 속는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렇게 한 거야." (251p)
"왜? 도대체 왜?
남자 새끼들은 힘들어지면, 무서우면, 불안하면 밖에서 찍소리도 못 하다가
집에 와서, 아무도 안 보는 데서 자기 여자를 때리고 모욕하고 괴롭히는 것이냐?
왜? 도대체 왜?
세상엔 그렇게 못나고 비겁한 새끼들만 바글대는 것이냐?" (254p)
"조선 남자들은 참 이상해.
왜 겁이 나거나 불안해지면 자기 여자를, 아무 힘도 없는 여자를 두들겨 팰까?
조선 남자들은 다 비겁하고 못난 놈들이다.
그래서 지금도 난 짝불이가 싫다." (2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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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을 쓴 억울한 할머니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데,
긴박한 요소가 하나 더 추가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가정에서 폭력의 피해자들이다.
강해보였던 할머니마저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힘들어질때면 폭력의 탈을 써 덤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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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란? 모호하게 결정을 미루고 상대를 공격하는 것." (2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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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작품 속에서 영웅이 돌아오는 서사는 많이 등장한다.
많은 작품들을 접하진 않았지만,
책에 수록된 작품 해석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은,
떠난 후 제자리로 돌아오는 여성들을 향해 '변절자 프레임'을 씌운다는 것.
단적인 예로 병자호란 때 '화냥년'이라고 불리운 여성 볼모들,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국성노예로 끌려가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들.
그들을 향해 우리가 던진 시선들.
그 날카로운 시선 때문에 돌아오지도 못한 사람들이 많고,
돌아왔어도 고개를 숙인 채 지낸 사람들이 많다.
정끝순 여사가 내민 '60억'이란 무기는
고개를 당당히 들 수 있는 자신감 같은 거였다고 생각한다.
67년만에 돌아온, 가족을 버렸던 할머니가, 어머니가, 아내가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구실.
그 길이 험난했지만, 돌아왔다, 할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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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니." (273p)
"조선 놈이나 일본 놈이나 아무튼 자기 여자 때리는 데는 선수니까." (2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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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행해지는 가정폭력은 이 시대, 아니 옛 시대부터 가해진 어두운 역사들이다.
그리고 현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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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의 긴 시간,
모진 세월 억울한 인생이 동영상이 되어 떠오를지도 몰랐다.
얼마나 억울할까? 얼마나 기막힐까? 나는 그냥 그랬다." (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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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 사람만 억울하다.
피붙이도 한 치 물러서 지켜보고 느낄 뿐.
겪는 사람만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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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왜 할머니를 믿지 못했을까?
질투가 이성을 마비시켰겠지.
그저 일본 헌병과 할머니가 사랑을 나누는 상상으로 머리가 가득 차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겠지.
그 질투로, 그 흥분으로 사랑하는 정인과 무려 67년을 떨어져 지냈고,
그 67년 동안 내내 고통 속에 있었고,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 흥분으로 인해 할아버지 인생이 망가졌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3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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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순간이 어긋나면 남은 것들도 다 어그러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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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려울 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 말이다.
사람들에겐 그런 순간이 찾아온단다.
그때 사람들은 무서워서 진실보다는 거짓을 찾게 되지.
내가 그랬어.
정말 맷돌로 갈아버리더라도, 끓는 물에 삶아 버리더라도 네 할아비를 기다리고 진실을 얘기해야 했어.
그런데 난 도망쳤지.
그게 그땐 최선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최악이었어.
피할 수 없는 길을 피하면 그 대가를 아주 오래도록 치러야 한다.
내게 그건 자식들이었다.
내 자식들, 바로 네 아비와 고모를 난 67년 동안 볼 수 없었다.
볼 수 없다는 고통은 그래도 괜찮았다.
내 자식들이, 어미 없는 자식으로 자라면서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난 정말 숨을 쉴 때마다 아팠단다.
너도 참 어렵게 사는 것 같은데
결정적인 순간엔 늘 정직해야 한단다.
피하면 길은 더 없단다." (3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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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하고 싶은 말이 이 구절에 다 담겨져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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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가족이 아닌 연인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321p)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병자호란 때도 억지로 끌려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부녀자들을
'환향녀'라ㅕ 받아주지 않았다더니.
그때와 똑같은 옹졸하고 비열한 처사가 아닌가." (3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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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의 시신을 싣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에게 할머니는 여전히 나라를 팔아먹은 년이었고,
막아선 그들 때문에 할머니는 고향 가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간다.
현실의 장벽인 것 같다.
근데 너무한다.
아무리 그 순간을 피하고 도망쳤어도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크지 않나요?
오랜만에 재밌게 읽은 책이었다.
생각도 좀 많이 해봤고, 안타까워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
요즘 뭘 보면서 그렇게 눈물을 많이 흘린다. (새삼..)
내 눈.. 너무 혹사당하고 있다.
당분간 해피한 것 좀 접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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