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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 별/황석영
황석영 작가의 개밥바라기 별은 사춘기 때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 작가와 작가 친구분들에 관한 우정과 길고 긴 방황의 세월에 대해서 서술한 자서전 적 성장소설입니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의 베트남 파견 결정으로 휴가차집에 들러 다락방 벽에 꼬불꼬불 거리며 새겨진 세 개의 낙서를 회상하면서 시작합니다.
첫 번째 낙서
'미친 새는 밤새껏 울부짖는다'
주인공이 독극물을 먹고 자살을 하려고 할 때 공중변소에 갔다가 미친 여자가 배고프다고 하면서 겨울 추위 속에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던 소리를 기억해 낸 것이었고,
두 번째 낙서 '
나는 가우데아무스 이기투르에 맞추어 젊음을 제 지내고 있네'
젊거나 나이 먹거나 세월은 똑같이 소중한 것이라고 하면서 젊은 날 잘 보내라고 친구의 어머니가 했던 말이었으며,
세 번째 낙서
'바다, 그리고 마그네슘'
주인공과 퇴학을 맞았던 인호의 엉터리 시의 한 구절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왜 이런 걸 적어두고 다시 낙서와도 같은 말들을 곱씹으며 회상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리고는 음독자살 기도로 닷새 만에 깨어나게 됩니다.
그런 후 이 책은 과거 고교시절로 돌아가 이야기는 준이를 시작으로 인호, 상진, 정수, 선이, 미아가 각자 1인칭 시점 주인공이 되어 번갈아 가면서 주인공 역을 맡아갑니다.
준이와 선이의 첫사랑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선이가 화실에서 준이에게 '꼭 권투선수 같은데 책은 더러 읽으세요'하면서 비아냥거리자 준이가 선이에게 멋진 말을 한방 날리죠.
'사각 링에 딱 갇히면 각자 무지하게 외로울 거야.
온 세상은 바로 코앞의 적뿐이니까.
이 얼마나 멋지고 남자다운 멘트입니까. 이러니 선이는 그 말 한마디에 뿅 가버렸지요. 그러나 결국 선이의 남자는 정수가 차지해버렸습니다.
선이의 아버지가 선이를 만나러 왔다가 정수를 보고 뺨 몇 때를 때리고 몇 날 몇 밤을 보낸 정수에게 자기 딸 책임을 지라고 하면서 말이죠. 선이 아버지의 일방적인 결정에 그만 데릴사위가 되어버린 거였습니다.
그럼 선이의 첫사랑 준이는 어떻게 된 거죠. 준이는 선이 대신 미아와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둘은 섬에 갇혀 며칠을 같이 먹고 자면서 사랑을 싹 틔워 나갑니다.
그녀는 나를 차가운 벽에 밀어붙이면서 입술을 댔다. 첫 키스를 했는데 나는 처음에는 얼떨결의 일이라 두 팔을 낙지처럼 늘어뜨리고 섰다가, 나도 모르게 한 팔은 그녀의 등을 감고 다른 한 손으로 가슴을 더듬었다. 그러자 선이가 그냥 내버려 둔 채로 입술을 떼고는 내 눈을 들여다보며 종알거렸다.
작지?
저는 이 대목에서 헛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이 책 전체를 통틀어 제일 멋진 멘트가 아니었나 합니다. 완전 반전이죠.
개밥바라기 별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금성이 새벽에 동쪽에 나타날 적에는 '샛별'이라고 부르지만 저녁에 나타날 때에는 '개밥바라기'라 부른다고 합니다.
즉, 식구들이 저녁밥을 다 먹고 개가 밥을 줬으면 하고 바랄 즈음에 서쪽 하늘에 나타난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이라고...
나는 개밥바라기 별의 이미지를 그려보며 작가의 방황과 삶에 대한 고뇌, 그리고 인생의 자유가 듬뿍 묻어나는 여정이 부럽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청춘도 한때 작가의 준이처럼 방황과 고독의 젊은 날이 있었습니다. 미래의 길에 대한 고민과 성숙의 과정을 찾아 암담한 현실을 비관하며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었지요.
그러한 보잘것없었던 세월이 30년이 지난 지금 내 삶에 있어서 가장 값진 추억과 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이었다는 걸 지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젊은 날에 대한 추억이 하나 정도 있을 것입니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별'을 통해 나는 지난 세월 잊어버리고 살았던 그때 우정을 함께 나누었던 친구들을 소환해 봅니다.
준이에게 인호, 정수,영 길, 상진, 선이, 미아가 있었다면 나도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옛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봅니다.
함께 광안리 바닷가에 드러누워 별을 보고 살을 에는 겨울 추위 속에 공사판 막노동을 뛰고, 바다 한가운데 양식장에서 두 달간 갇히기도 하고 전국을 여행하며 젊음을 불태웠던 친구들이 그립습니다.
‘사람은 씨팔, 누구나 오늘을 사는 거야’라는 대목에서 젊음의 열정을 느껴봅니다. 지금은 오늘 하루하루를 근심 걱정으로 버텨내고 있지만 언젠가 나 혼자만의 자유를 위해 인생의 궤도를 잠시 벗어나 보렵니다.
잘하면 서쪽하늘에 개밥바라기 별이 떠 있을지도 모르죠.
따뜻한 남쪽나라 통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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