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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고양이 (닿을 듯 말 듯 무심한 듯 다정한 너에게)의 표지 이미지

아무래도, 고양이

백수진 지음
북라이프 펴냄

나무를 처음 만났던 순간에 대해 읽을 때 나무가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의 관심을 반기지 않는 듯, 거부하지 않는 냥이라니.

사람을 반기는 나무를 보고 '사람들에게 이토록 예쁨을 받으니 굶어 죽지는 않겠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작가님은 이내 그 생각이 바뀌신 듯하다. 고양이는 야생동물이기에 사람을 너무 따르는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들에게 배척받으니까. 그렇다고 사람들은? 캣맘처럼 고양이를 챙기는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고양이를 데려가셨으니 이 책이 나왔겠지만, 작가님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서 대체 어떻게 집으로 데리고 가신 건지 궁금해져서 쭉쭉 읽었다.

작가님은 나무를 데려가 줄 수 없냐는 캣맘에게 선뜻 "네"라고 하지 못하셨다. 나라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을 것 같다. 하루 이틀 돌봐주는 것도 아니고 함께 사는 건데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고양이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보다 4배 더 빠르게 흐른다고 한다. 나무의 시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날은 도움이 필요한 어린아이였고, 또 어떤 날은 장난기 많은 초딩이었다. 나무는 점점 커가고 언젠가는 마지막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상상도 되지 않는 그날에 괜히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무가 나무 누나와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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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여름의 끝자락이었고, 나무가 태어난 지 7개월쯤으로 추정되던 때다. 나무는 소문대로 살가웠다. 첫 만남부터 내 종아리에 몸을 비비며 주위를 맴돌았고, 보드라운 꼬리가 찰싹찰싹 내 다리를 때리는 느낌이 경쾌했다.(p. 16)

그런데도 왜 나는 나무를 당장 데려오지 못했나. 가장 큰 이유는 '집사 자격'을 검증받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사의 주머니 사정은 기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 신중하게 따져본다고 해도 판단은 내가 아는 범위에서만 내릴 수 있다. 그래서 '냥줍심사평가원'이라도 있었으면 했다. ... 하지만 현실적인 조건 외에도 계속 마음 쓰이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나무의 빈자리에 대한 걱정이었다. 공원을 드나드는 많은 사람 중, 이 정도로 나무를 아끼는 이가 나뿐이란 법은 없었다.(p. 31-32)

마이너스와 마이너스를 곱하면 플러스니까, 서로 잃는 게 있어도 함께하면 무언가 새롭게 채워지겠지. 처음 누워본 내 침대에서 천연덕스럽게 기지개를 켜는 나무를 보고 있으니, 아무것도 겁나지 않았다.(p. 39)

누군가의 똥오줌을 치워준다는 건 그만큼 꽤 상징적인 일로, 그 대상을 완전하게 책임지고 챙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귀여워하고 놀아주는 일을 넘어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일까지 감수한다는 뜻이다. 남의 배설물을 매우 치우면서 상태가 어떤지 유심히 살펴보기까지 하는 일을 사랑 없이 하기가 어디 쉬운가.(p. 70)

적극적인 애정 표현보다 걱정하는 마음에서 사랑을 느낄 때가 있다. 욕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나무를 볼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다.(p. 85)

그렇게 끝없이 방해 공작을 펼칠 때마다 그만 좀 하라며 노려보는 나를 향한 나무만의 표정이 있다. 결국은 다 집사의 관심을 얻으려는 행동이면서, 별다른 의도는 없는 척 멀뚱멀뚱. 뭘 잘못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듯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귀여운데 좀 귀찮게 하면 어때?'하는 듯도 한 그 표정. 그 표정에 오늘도 나는 져준다. 세상에 이토록 달콤한 방해도 있구나 하면서.(p. 106)

그 지루한 계절을 버티면, 나무가 좋아하는 털 러그가 깔리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온다. 같은 듯 조금씩 다르게 돌고 도는 계절을 우리는 몇 번이고 같이 맞이한다. 이불 밖은 위험한 겨울을 밀어내고 찾아오는 이번 봄도. 그리고 그다음 계절도, 그다다다음 계절도.(p. 179)

나보다 4배 더 빠르게 흐르는 나무의 시간에 4배의 행복만을 꾹꾹 달아줄 수 있도록.(p. 184)


-북라이프 <아무래도, 고양이> 서평 이벤트에 참여하여 도서를 지원받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2020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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