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문님의 프로필 이미지

이서문

@yiseomoon

+ 팔로우
걸의 표지 이미지

오쿠다 히데오 지음
북스토리 펴냄

"여자랑 일하기 싫으면 스모협회나 가서 일자리를 알아보지 그래. 안 그러면 어디를 가나 여자들이 있을 테니까. 보호받아야 하는 가냘픈 여자애가 아니라 당당하게 자기 몫을 하는 여성들 말이야."

"나, 스물여덟 땐가 런던 지점에 2년 동안 파견 나가겠냐는 이야기가 있었던 거 생각 나?"
메구미가 빵을 뜯으며 불쑥 물었다.
"응. 기억하지."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어. 그때 갈걸 하고 말이야. 그때는 결혼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여서 2년씩이나 이곳을 떠나 있을 용기가 없어 포기한 거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스물여덟이면 아직도 한참 여유가 있을 때잖아. 그런데 그때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지...."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길이었다.
"결국 자기 혼자서 나이에 얽매여 이미 늦었다는 둥, 좀 더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둥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그게 제일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해."
"맞아. 나도 동감이야."
"지금은 '벌써 서른넷'이지만 5년이 지나면 '그때는 아직 서른넷이었지'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0

이서문님의 다른 게시물

이서문님의 프로필 이미지

이서문

@yiseomoon

어째서 육아는 더럽게 고생스럽고 피눈물 나게 힘든 일이라고 말해주는 이가 여태 없었을까. 분명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한 모종의 엠바고 같은 거겠지. 아니면 육아에 뒤따르는 희생을 모성과 부성으로 승화시키려 하는 사회 분위기상 갖은 고생담은 경험자들끼리만 쉬쉬하며 나누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증거로 내가 출산하자 주위의 육아 선배들이 아련한 눈빛으로 "많이...힘들지?" 하며 지옥 구경이라도 하고 온 듯한 경험담을 들려줬으니까. 그들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마지막에는 꼭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시간은 가더라." 아이의 미소를 보면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진다는 거짓말은 누가 먼저 퍼트렸던가. 내 경험상 미소가 사랑스러운 것과 피로는 별개다. 꽃향기가 아무리 좋아도 그걸 맡았다고 결린 어깨가 풀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물여섯의 나는 자아를 업무용과 개인용으로 분리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내가 속한 팀에서는 선배가 후배에게 당연하다는 듯 반말을 했고 그 앞뒤로 종종 "야 이 씨..."가 따라붙었다('발'이 마저 붙지 않았던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심지어 팀장은 자신보다 직급은 낮지만 나이는 많았던 차장을 "야! 김XX!"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도 화를 참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서열이 상대보다 위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사고가 터지면 자기보다 직급 낮고 힘 약한 사람의 잘못으로 돌렸다. 인간에 대한 환멸이라는 것을 철저히 맛보던 나날이었다. 더 심각한 점은 그 안에 있다 보니 나도 여지없이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팬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의 노벨상 수상 여부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늘 몹시 아름다웠던 그의 수상 연설문을 못 보는 것 정도일까. 실은 내 청춘의 한 조각(?)이 그런 영예로운 자리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보는 건 괜스레 멋쩍을 듯도 하다(라기에는 이미 다른 문학상을 너무 많이 받았지만!). 하루키는 나에게 작가가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근사한 경험을 안겨줬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그 작가의 저작과 함께 보내게 해준 것. 그리하여 나의 내면과 삶이 실제로 어떤 변화를 일으킨 것. 그것만으로도 노벨문학상을 받든 말든 하루키는 나에게 언제까지나 가장 특별한 작가일 터다.

아무튼, 하루키

이지수 지음
제철소 펴냄

1주 전
0
이서문님의 프로필 이미지

이서문

@yiseomoon

그럼, 이제 확신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당연하게도 아니다. 다만 애써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 선택의 믃은 더 이상 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대신 '평행 우주, 다중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상상해 본다. 여러 이야기로 접한 얕디 얕은 과학적 상식을 동원해 보면서 말이다. 만약 다른 우주, 다른 시간 속에 또 다른 '상현'이 있다면, 그리고 그 친구가 내가 가지 못한 선택을 하고, 그 길을 걷고 있다면 어떨까.

...중략...

다만 그 '상현'도 매 순간 번민하고, 아쉬워하며, 문득문득 가 보지 못한 길에 대해 후회도 하겠지. 이제 그 후회를 덜어 주는 것은 나의 몫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선택의 결과는 이 우주의 나만 볼 수 있고, 나만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나머지 선택의 결과들은 수많은 우주의 다른 '상현'들이 확인해 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괜스레 안심된다.
이처럼 거대한 우주들의 움직임을 상상하다 보면, 실은 어떤 선택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우주의 내가, 나의 대부분을 닮아 있다면, 설령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길을 걷고 있든 간에, 지금의 나와 모두 같은 마음으로 걷고 있지 않을까.
'이 우주의 나처럼, 또 다른 나를 상상하며, 서로를 동경하고 애틋해할 거야. 모든 순간의 모든 나, 그리고 모든 이의 선택을 응원하며.'

작은 스케치북

상현 지음
고래인 펴냄

1주 전
0
이서문님의 프로필 이미지

이서문

@yiseomoon

미래의 일은 모르고 있는 것이 정상이다. 닥치면 극복해나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부굴의 눈>이라는 유능한 수단이 생기고 나서부터 사람들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사는 벅찬 삶을 택했다. 모두가 선택하기에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해른은 그 선택을 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를 보는 순간 그 미래가 결정된다. 미래를 모르는 것이 답답하다고 임의로 선택해버리는 것은 다른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여전히 부굴과 같은 인공지능에게 자신의 문제를 상담하고 미래를 봐달라고 한다. 그들에게 위로를 구하고 충고를 듣는다. 누군가 한 소리 하려 하면 당신은 말한다.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내 인생이야. 당신의 인생은 과연 당신의 의지만으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부굴의 눈

조선희 지음
네오픽션 펴냄

2주 전
0

이서문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