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관점이 아닌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으로 탐구한 책. 행복은 삶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자연은 기막힌 설계를 했다. 인간은 행복감(쾌감)을 얻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인간이 음식을 먹을 때, 데이트를 할 때, 얼어붙은 손을 녹일 때 ‘아 좋아, 행복해‘라는 느낌을 경험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또다시 사냥을 나가고, 이성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그리고 번식도 하겠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확보해야 했던 또 한 가지 자원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사람’이다. 먹는 쾌감을 느껴야 음식을 찾듯 사람이하는 절대적 생존 필수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을 아주 좋아해야 한다. 타인을 소 닭 보듯 바라보는 사람에게 친구나 연인이 생길 리 없다.
행복한 사람들은 시시한 즐거움을 여러 모양으로 자주 느끼는 사람들이다.
내가 다른 사람 눈에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느냐는 자신이 느끼는 행복관과 관련이 없었다. 단,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정도는 행복과 관련이 있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좋은 대학 간판, 대기업 명함, 높은 연봉. 이런 조건들을 갖추지 못한 인생은 왠지 ‘행복 시험‘에서 낙제한 것 같은, 그래서 불행한 삶이라는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각자 인생의 갑이 되어 살자.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에 더 가치를 두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가치있는 삶=행복한 삶‘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가치있는 삶이 곧 행복한 삶이라 믿으며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으며 괴로워하고 우울증에 빠졌던 것 같다. 우리는 이런 생각에 빠진 나머지 행복의 쾌락적인 측면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의외로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요소는 단순하다. 음식과 사람. 특히 이성과의 관계, 섹스. 쾌락을 추구하면 우리의 삶이 불안정해질 거라 생각하지만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일상에서 즐거움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나 개인 성취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개인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생활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 자주 경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나와 모두를 위해 건강한 길이 될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에 이 책은 '협력생존' 이론으로 반박한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저자는 인간, 개, 보노보 등 사회성이 강한 종일수록 번성해 왔고, 인간이 성공한 이유 또한 공격성이 아니라 협력과 신뢰였다고 말한다. 가축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성인 '자가가축화'가 인간에게도 일어나며 공격성이 감소하면서 뇌 구조와 호르몬이 변화해 친화적 행동이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우리가 미래 사회에 필요한 것은 경쟁이나 공격이 아니라 연대와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따뜻하고 희망찬 이야기이다. 미래사회의 인간은 현재보다 더 다정한 종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