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푸리입니다! 😎
여러분!! 혹시 플라이북 앱으로 '리딩타임' 켜놓고 책 읽으시다가... 중간에 폰으로 궁금한 것도 검색하고, 카톡도 잠깐 확인하고 싶은데! 리딩타임 화면을 끄자니 흐름이 끊길까 봐 아쉽고, 폰은 맘대로 못 써서 답답하셨던 적 없으신가요?
(솔직히 저는 책 읽다가 폰으로 딴짓(?)도 쫌 하고 싶은데 화면이 하나라 묘하게 답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제가 엄청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을 하나 들고 왔습니다.
바로바로... 플라이북 PC 웹 리뉴얼 오픈!!! 🎉 (와아아아 👏👏)
이제 폰은 자유롭게 쓰시고, 리딩타임은 넓은 모니터에 양보하세요!
새로워진 웹 버전에서는 이런 것들이 가능해졌거든요.
1. 내 소중한 '리딩타임', 큼직한 PC 화면에 띄워두기 ⏱️
이제 책상 앞에 앉아서 쾌적한 PC 화면에 리딩타임을 딱! 띄워두고 온전히 독서에 몰입해 보세요. 내 폰은 자유로워지고, 우리 회원님들의 불타오르는 연속 독서 기록은 웹에서도 매끄럽게 이어집니다. 연속 독서... 웹에서도 절대 지켜!! 🛡️🔥
2. 푸리보다 똑똑한(?) 🤖플라이북 AI 파트너
서점 매대를 서성일 필요 없이, 친한 친구한테 카톡 하듯 편하게 물어보세요!
"요즘 스트레스 받을 때 힐링되는 책 추천해 줘" 하고 키보드로 쓱쓱 치면, 세상 수많은 책 중에 나한테 딱 맞는 한 권을 1초 만에 찾아준답니다.
게다가 AI가 핵심만 쏙쏙 요약해 주고, 독서 가이드랑 연령별 별점 데이터까지 한눈에 쫙- 보여주니까 책 고르다 실패할 확률 제로! 👍
지금 당장 넓은 화면에서 리딩타임 켜두고 쾌적하게 나만의 책을 찾아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저만 그런 거 아니죠? 🥺)
새로워진 플라이북 웹버전, 아래 링크 누르시면 지금 바로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
🔗 플라이북 웹 구경하러 가기: https://www.flybook.kr/
다들 웹으로 접속해 보시고 어떠셨는지 찐 후기 댓글로 팍팍 남겨주세요! 좋은 점도, 아쉬운 점도 저 푸리가 매의 눈으로 다 읽어볼 거예요 👀✨
그럼 저 푸리는 모니터에 리딩타임 띄워두고 책 한 권 뚝딱하러 가보겠습니다. 슝~ 💨
잔잔하게 힐링이 되고 가슴 따뜻해지는 소설을 만났다.
읽는 내내 휴남동 서점에서 쉬는듯한 느낌...
소설 속 민준을 보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라는 드라마가 떠올랐다.
힘들면 가끔 평일에 휴가를 내고 동해로 가서 아무도 없는 잔잔한 바다에 서핑보드와 떠 있곤 했던 나의 소중한 기억과 함께...
힘들 때 "일단, 해보지 뭐"라는 생각으로 추진했던 일들은 나에게 힘을 주어 결국 다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책을 보면 좋은 글귀들을 갈무리하는데, 이렇게 많이 갈무리한 소설은 처음이었다.
가슴에 와닿는 글이 너무 많아 끝없는 밀물처럼 들어왔다.
그리고...
이를 같이 동감해주는 사람... ^^*
***
여자는 민준이 들어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더니 눈인사를 했다. 얼굴에 퍼지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편히 구경하세요. 저는 방해하지 않을게요.
더는 무너지기 싫어 영주는 떠나온 인물이 나오는 소설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마치 떠나온 사람들에 관한 이 세상 모든 이야기를 모으려는 것처럼 굴었다. 영주의 몸 어딘가엔 떠나온 이들이 모여 사는 장소가 있다.
"부모 자식 사이라고 해서 서로를 다 이해하고 맞춰주기만 할 순 없잖아요. 저는 이 책을 읽고 부모 자식도 결국은 어떤 의미에서든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생계 걱정 없는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매일 일곱 시간씩 글을 쓴다는 한 작가는 북토크가 끝나고 영주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번 해보는 거예요.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고민하는 대신 우선 써보자는 생각이었어요. 한번쯤은 이렇게 살아보고 싶었으니까."
조금 더 인간다워지는 거요? 책을 읽다 보면 자꾸 타인에게 공감하게 되잖아요. 가만히 있으면 절로 성공을 향해 무한 질주하게끔 설계된 이 세상에서 달리기를 멈추고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는거죠. 그러니 책 읽는 사람이 늘어나면 이세상이 조금이나마 더 좋아질 거라고 전 생각해요.
그런데 책을 안 읽다가 읽으려다 보니 집중하기가 어렵거든요. 자꾸 딴짓하게 돼요. 전 그럴 땐 스마트폰 타이머 앱을 맞춰놓고 읽어요. 기본은 20분. 타이머가 울리기 전까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책만 읽자. 생각하고 읽으면 돼요. 제약이 우리를 긴장하게 하고 긴장이 우리를 집중하게 하는 거죠. 20분이 지났다면? 선택하면 돼요. 오늘은 20분 읽었으니 이만하면 됐다 싶으면 그만 읽고 즐겁게 다른 일 하시고요. 조금 더 읽자 싶으면 타이머 한 번 더 돌리면 돼요. 타이머를 세 번만 돌려도 한 시간이에요. 우리 하루에 타이머 세 번만 돌려봐요. 하루 한 시간 독서는 이렇게 달성된답니다.
운동하고, 일하고, 영화 보고, 쉬고, 민준은 이 단순한 사이클이 이젠 제법 사이좋게 잘 맞물려 굴러가고 있다고 느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았다. 이 정도로 살아도 될 것 같았다.
민준이 제 자신에게 말하듯 작게 중얼거렸다.
"꼭 뛰어야 하나.”
"뭐?"
"난 지금도 괜찮아."
영화를 보면서 민준은 단순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영화 속 인물들은 늘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그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거였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동력은 등장인물의 선택에 있었다. 그렇다는 건 우리 삶 또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우리 삶을 이끄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의 선택인 것이 아닐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민준은 문득 자기 역시 그때 포기를 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한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을 벗어나겠다는 선택.
"음악에서 화음이 아름답게 들리려면 그 앞에 불협화음이 있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음악에선 화음과 불협화음이 공존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인생도 음악과 같다고요. 화음 앞에 불협화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거라고요."
"좋은 말이네요."
민준의 고개가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데 오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슨 생각이요?"
“......지금 살아내고 있는 이 순간의 삶이 화음인지 불협화음 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내가 화음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불협화음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어떻게 알까."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빛이 둥글게 휴남동 서점을 지켜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영주가 동네에 서점이 있으면 좋은 이유라며 다섯 가지를 말해줬는데, 민준은 동네에 서점이 있으면 좋은 여섯 번째 이유를 지금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서점을 밖에서 바라보는 기분이 좋았다.
이제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지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처음에 혼자 살게 됐을 땐 저녁 즈음이 되면 일부러 '아' 소리를 내보기도 했다. 방금 자기가 한 행동이 웃겨 웃음을 터트린 적도 여러번이다.
부엌 불을 끄고 나서 숟가락으로 밥을 비비며 창문 쪽으로 걸어온 영주는 5분 전 모습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창밖을 보며 밥을 먹던 영주는 그릇을 내려놓고 테이블에 놓여 있던 쇼코의 미소를 들었다. 입을 오물오물하며 목차를 확인했다. '쇼코 의 미소' 역시 여섯 번째 소설을 읽을 차례였다. 소설의 제목은 '미카엘라'였다. 이 소설도 엄마와 딸이 주인공인 듯했다. 영주는 소설의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그녀가 소설 끝 부분에 이르러 펑펑 울게 되리란 걸 짐작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패는 아니지 하고 영주는 방금 한 생각을 반박했다. 그 무엇에든 예외는 존재하고, 시도했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의미 부여는 늘 중요하지!) 과정이 즐거 웠다면 (힘은 좀 들겠지만!) 결과를 따질 필요 없고, 무엇보다 영주는 지금 서점을 자리 잡게 하기 위해 애쓰는 이 시간이 좋았다. 그러면 된 거 아닌가?
"그렇긴 한데, 재미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숨통이 트이기도 하니까."
"마른 우물에서 한번 일어나보는 것도 좋을 거라고는 생각해. 한번 그래 보라는 거지. 그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몰라. 아무도 모르니까 한번 해보라는 거야. 궁금하잖아. 일어나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렇다면 차라리 잘하려는 욕심을 버리는 게 나을 듯했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지만 않는다면 최악의 하루는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여행지에서 모르는 길을 걸을 때의 기분이 나더라고요. 골목골목을 기웃기웃하며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기분, 낯설어서, 모르겠어서 설레는 기분. 이런 기분을 느끼려고 사람들은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리고 휴남동 서점이 사람들에게 그런 곳이 아닐까 싶었고요."
분명 이 공간엔 승우를 잡아 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마음에 들었다. 남은 시간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든, 이미 오늘은 최악의 하루가 될 수 없겠다고 승우는 생각했다.
"그런데 그냥 맥주가 아니라 서서 마시는 맥줏집 맥주를 마시고 싶더라고요."
"서서요?"
"네, 앉으면 피곤이 좀 가시잖아요. 그게 싫어서 엄청 피곤한 상태로 맥주를 마시고 싶더라고요. 그럼, 어떤 맛일까....
승우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영주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맛이었는데요?"
“꿀맛."
"기어이 서서 마시는 맥줏집을 찾아간 거네요?"
"그럼요. 사람이 많았어요. 겨우 자리 하나 났더라고요. 거기 서서 맥주 한잔을 하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행복이 그리 멀리 있진 않네요."
"제가 하려던 말이 그거예요."
"행복?"
"네, 행복이 그리 멀리 있진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행복은 먼 과거에나 먼 미래에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바로 내는 앞에 있는 거였어요. 그날의 그 맥주처럼. 오늘의 이모과차처 럼요."
“일생 동안 공들여 만든 성취, 좋아요. 그런데 아리라는 분의 말이 나중에는 이렇게 이해되더라고요. 그가 말하는 행복이란 마지막 순간을 위해서 긴 인생을 저당 잡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요. 마지막 순간에 한 번 행복해지기 위해 평생 노력만 하면서 불행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행복이란 게 참 끔찍해졌어요. 나의 온 생을 단 하나의 성취를 위해 갈아 넣는 것이 너무 허무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이제 행복이 아닌 행복감을 추구하며 살아야지 하고 생각을 바꾼 거예요."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다 행복하진 않아. 좋아하는 일을 좋은 환경에서 하면 모를까. 어쩌면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네.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 돼 있지 않다면, 좋아하는 일도 포기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리거든. 그러니 우선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그럼 무조건 행복해질 것이다. 라는 말은 누구에겐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어. 어쩌면 너무 순진한 말이기도 하고."
민준은 커피를 내리면서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정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다. 할 수 있는 만큼 해도 실력이 늘었다. 커피 맛이 좋아졌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이런 속도로, 이런 마음으로 성장해도 충분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세계 최고 바리스타가 돼서 뭘 하겠는가. 삶을 갈아 넣은 후에 최고 라는 찬사를 받아서 뭘 하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민준은 지금 자기가 신 포도의 여우가 된 건가 싶었지만, 아니라고 결론을 냈다. 목표점을 낮추면 된다. 아니, 아예 목표점을 없애면 된다. 그 대신 오늘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거다. 최선의 커피 맛. 민준은 최선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민준은 더 이상 먼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민준에게 현재에서 미래까지의 거리란 드리퍼에 몇 번 물을 붓는 정도의 시간일 뿐이다. 민준이 통제할 수 있는 미래는 이 정도뿐이다. 물을 붓고 커피를 내리면서 이 커피가 어떤 맛이 될지 헤아리는 정도. 이어서 또 비슷한 길이의 미래가 펼쳐지길 반복한다.
너 정말 행복해야 해. 대신 나는 너 없이 불행 하게 살아볼게. 누군가가 나와 함께 살아서 불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왜 여태 몰랐을까. 내가 불행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너는 날 잊어. 나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을 잊어. 날 떠올리지도 말고, 우리가 함께했던 날들을 기억도 하지 마. 나는 널 안 잊을게. 평생 널 원망하며 살 거야. 날 불행하게 만든 여자로 널 기억하며 살 거야. 앞으로 내 앞에 다신 나타나지 마. 우리 영원히 보지 말고 살자."
창인은 말을 끝마칠 때쯤에는 펑펑 울고 있었다. 이제야 지금 자기에게 벌어진 일을 이해했다는 듯이.
영주는 창인과 헤어진 뒤 처음으로 그날을 떠올리며 마음 놓고 울었다. 늘 미안해서 제대로 울지도 못했다. 울음을 터트릴 수 없어서 꾹꾹 눌러가며 울었다. 창인이 잊으라 했기에 잊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간이었다. 너무 미안해서 제대로 미안해하지 못했고 너무 잘못했기에 잘못했다고 말하지도 못했다. 그런 영주에게 오늘 창인이 태우를 보내, 이젠 마음껏 기억하고 마음껏 울어도 된다고 말해준 거였다.
서점을 열 동네로 휴남동을 선택한 건 우연히 휴남동의 '휴'자가 '쉴 휴(休)' 자라는 걸 알게 되어서였다. 이를 알고부터 영주의 마음은 휴남동에 꽂혔다.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다. 어느 꿈이든 새 꿈으로 교체된다. 그러니 어느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이런 삶이 허락됐으면 좋겠어요."
민준이 느릿하게 일어서며 말하자 영주가 고개를 들며 "어떤 삶?" 하고 물었다.
"한번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삶을 살아보는 거예요. 그리고 다음엔 꿈을 좇는 삶을 살아보는 거죠.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삶을 살 땐 나한테 더 잘 맞았던 삶을 사는 거예요. 아주 즐겁게."
"좋은 사람이 주변에 많은 삶이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 사회 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을지라도 매일매일 성공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거든, 그 사람들 덕분에."
"너 예전에 단추만 만들어놨다가 낭패 봤다고 했잖아. 지금은 어떠냐고."
민준이 잠을 털어내느라 머리를 흔들면서 성철을
쳐다봤다.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가 답했다.
"간단해. 옷을 바꿔 입었지. 그런데 그 옷에는 구멍이 먼저 뚫려 있더라. 구멍에 맞게 단추를 만들었더니 잘 꿰졌어."
"뭐야. 그게 다야?"
"이 세상 어딘가엔 먼저 널찍한 구멍을 뚫어놓고 누군가가 찾아오길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더라는 거야. 찾아온 사람이 단추를 잘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기까지 하면서."
내 삶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도 남에게 들려줄 만한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민준씨에게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제가 첫날 민준 씨에게 했던 말을 뒤집고, 나, 이 서점 더 운 영해보려고요. 지금까지는 아무래도 소극적인 면이 많았어요. 너무 열심히 일을 하다가 과거처럼 살게 될까 봐 두려웠어요. 이 공간을 일'만' 하는 공간으로 인식하게 될까봐 두려웠어요. 또, 솔직히, 전 아직도 처음 6개월처럼 이곳에 손님처럼 드나들고 싶은 마음도 간직하고 있답니다. 이런 생각과 감정이 뒤섞여 그간 우물쭈물한 적이 많아요. 서점을 계속 운영해야 할지 망설인 적도 많고요. 하지만 이젠 그만 망설이려고요. 난 이 서점이 좋고,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고, 이곳에 오는 자체가 좋아요. 그래서 휴남동 서점 계속하고 싶어요.
내 꿈의 공간이기도 한 이 서점을 오래도록 살아 가게 하고 싶어요. 서점과 책에 관해 계속 고민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하는 제 옆에 민준 씨가 함께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어때요, 민준씨. 우리 같이 더 일해볼래요? 혹시 휴남동 서점 직원으로 일해볼 생각이 있나요?
"작가님이 베를린으로 오는 게 좋을지 어떨지 저도 잘 모르 겠어요. 얼마 전에 누가 그러더라고요. 마음을 모르겠을 땐 사고 실험을 해보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사고 실험도 잘 안 돼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럼 제가 도와드릴게요."
"어떻게요?"
"상상해보세요. 베를린에서 저와 같이 걷고 있는 모습을요. 같이 책방도 돌아보고 밥도 먹고 맥주도 한잔하는 모습을요. 잠시만, 한 30초만 상상해보세요. 30초 드릴게요."
그러니까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민하고 흔들리고 좌절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애써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스스로 나를 포함해 나와 관계된 많은 것을 폄하하게 되는 세상에서 나의 작은 노력과 노동과 꾸준함을 옹호해주는 이야기를, 더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느라 일상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나의 어깨를 따뜻이 안아주는 이야기를.
매일은 아닐지라도, 자주는 아닐지라도, 우리에게도 지금의 내 삶이 '그것으로 됐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초조함과 조급함이 사라진 그 순간엔 그간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온 내가 그저 대견하고 실은 꽤 마음에 든다. 이런 소중한 순간들이 모인 곳이 휴남동 서점이라면, 더 많은 분이 더 자주 저마다의 휴남동 서점을 그려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오늘 하루를 보내고 있는 당신을 응원하고 싶다.
아이가 원하는 만큼 시간을 주세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도 아이는 끙끙거리며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분명 멋진 글을 쓰는 날도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때 아이는 한 단계 성장합니다. 딴짓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아이디어가 잘 안 떠올라 그러는 것일 수 있으므로 아이와 대화를 나눠보세요.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 쓸거리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하니까요. (p.124)
입학하고 맞은 첫 방학, 숙제는 일기 쓰기 뿐이었다. 우리 때처럼 '탐구생활'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가 김이 빠졌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정말 신나게 놀아보자! 며 방학 내내 열심히 놀았다. 흡족하게 논 날에는 일기를 쓰자며 자유롭게 두었더니, 개학 후 되찾아온 일기장에는 '물결'이 가득했다. 촌스럽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찾다가 물결만 가득한 일기장에 “설마, 맞춤법을 검사하신 건가?”하고 놀랐다가 이내 감동하고 말았다. '감정'을 적은 부분들에 물결표시를 해주셨던 것. 자신이 일기를 잘 쓰지 못해 일기장에 파도가 치는 줄 알았던지 “멋진 일기”에 표시해주신 거라고 말해주었더니 아이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이의 일기를 다시 읽으며(훔쳐보며) 우리 아이가 이렇게 멋진 일기를 쓸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고 감격스러웠다.
혹자는 나에게 똑똑한 아이를 왜 그렇게 놀게만 하냐고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뭔가 강요하여 가르칠 생각이 없다. 그냥 역사와 문학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면 좋겠다. 그래서 어린이집 시절부터 역사를 이야기처럼 들려줬고, 한글도 제대로 못쓰던 때부터 그림일기를 그리게 했다. 낙서에 가까운 그림이지만, 그것을 설명하며 아이는 이야기꾼이 되어갔다. 그리고 초등학생이 된 지금, 이제는 좀 제대로 글을 써보자,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 생각을 글로 쓸 수 있는 것은 살아가며 힘들 때마다 꽤 힘이 되곤 하더라. 그래서 아이도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는 나같은 마음을 가진 부모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된다. 아이들이 직접 말하는 글쓰기의 두려움과 즐거움, 글쓰기의 동기부여, 글을 쓰는 즐거움, 글쓰기로 마음 다잡기, 글쓰기로 소통하기 등 '요즘 아이들'에 맞추어진 글쓰기 교육을 망라하기 때문.
나 역시 『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를 읽으며 우리 아이에게 어떤 방향으로 글쓰기를 알게 해주어야 할지 생각해보기도 하고, 기준을 잡기도 했다. 마음 한편으로는 '내 아이 글쓰기 교육은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도 다소 막연하기도 했는데, 『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를 읽으면서 놓치고 있던 부분을 확인하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는 방향에 대해 다양한 팁을 얻기도 했다.
아이의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는 부모님들께 『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를 추천하는 이유는, 먼저 아이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해볼 수 있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데 강요하면 독이 된다. 글쓰기를 독으로 만들기 전에 아이의 글쓰기 성향, 글쓰기에 관한 생각을 확인해볼 수 있어 방향을 잡기 좋았다.
두 번째로 군데군데 삽입된 '알쏭달쏭 상담소'를 통해 여러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특히 아이의 글을 교정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글은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있던 의문이었기에 여러 번 반복해 읽으며 마음에 내용을 새겼다. 세번째로 무척 섬세한 글쓰기 강좌를 제공하는 점이 좋았다. 사실 나는 평생 뭔가를 써온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쓰는 것'과 '쓰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이 책을 통해 더욱 체계적인 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다. 또 『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에는 온라인글쓰기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요즘 아이들의 성향, 챗GPT기반글쓰기 등 변하는 세상에 맞춘 실질적 교육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정작 날마다 글을 쓰고, 글을 배울 수 있던 학창시절에는 몰랐지만, 내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는 것은 무척 감사한 일이다. 마음이 아플 때 하다못해 일기장에라도 감정을 퍼낼 수 있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를 기반으로 우리 아이에게도 글쓰기라는 친구를 쥐여주어야지. 두려움이 아닌 즐거움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책, 『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였다.
요즘 핫한 책이라고 해야 하나. 제목에서 호기심을 한껏 던져준다.
그래 요즘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지.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집중력이 떨어지는 이유들이 과학적인 이유가, 사회적인 이유가 있으려나?
호기심은 '집중력'이라는 키워드에 책을 읽게 만들었다.
우선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프롤로그에서 열어가면서 대자(우리로 치면 친구 혹은 지인의 아들, 딸 쉽게 조카라고 통칭하는 아이들과의 관계)와의 일화를 말하면서 집중력의 상실의 원인이 무엇인지 포문을 연다.
그리고 자신의 집중하지 못했던 경험들을 펼치는 이야기들은 지금의 우리가, 현대인들의 일상속 경험과 공통적이라서 쉽게 수긍할 수 있었다.
집중력을 훼손하는 14가지 강력한 힘이 있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과 의견을 제시하는 여정이라면서 시작한다. 14장의 긴 여정은 저널리스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생각이나 견해를 전문가와의 인터뷰, 학자들의 연구와 그들과의 인터뷰를 통한 자신의 생각의 변화나 의문들을 되새기면서 치우침과 논쟁을 불러올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밝히면서도 자신의 견해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생각해 볼 거리가 많았던 책이었다. 대부분은 저자의 글에 수긍이 되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논쟁적일 수 있다는 표시에서 정확한 의견을 갖기에는 어려웠지만 꽤 흐름을 세밀하게 집어서 유기적으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집중력에 대한 개론서이자 완전판 같다는 표현이 맞을런지!
1장 너무 빠른 속도, 너무 잦은 멀티태스킹; 집중력은 한정된 자원이다
42쪽
너무 오랫동안 내 시선을 트위터 피드처럼 아주 빠르고 일시적인 것에 고정하고 살았다.
속도가 빠른 것에 시선을 고정하면 근심에 빠지고 흥분하게 되며, 움직이고 손을 흔들고 고함치지 않으면 쉽게 휩쓸려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45쪽
모든 것이 느긋해졌다. 평소에는 거의 한 시간마다 뉴스를 확인하며 불안을 일으키는 불확실한 정보를 끊임없이 접하고 그것들을 그러모아 일종의 의미를 만들어내려 노력했다.
52-53쪽
우리가 집단적으로 "주의력 자원의 더욱 빠른 소진"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류층은" 주의력이 처한 위함을 "매우 잘 인식해" 자신의 한계내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고 나머지 사회 구성원은 "조종에 저항할 자원이 적어서 컴퓨터 속 세상에 살며 점점 더 남에게 조정되는" 사회가 올 것이라 우려한다.
;집중력이라는 자원은 한정될 수 밖에 없고, 인간의 뇌는 대량의 정보를 다 수용할 수 없음에도 오늘날에는 실시간이란 이름으로 정보가 끊이지 않고 제공된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많은 정보의 빠른 제공과 수용을 디지털 시대의 장점으로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뇌가 수용할 수 있는 정보는 한정 되어 있고, 끊임없이 인터넷을 통한 접속의 상태에서 얻는 정보가 사유 혹은 깊이라는 의미를 파고들 수 있게 하는가?
즉각적이고 대량의 정보는 이른바 빠른 속도는 깊은 이해와 생각의 대척점에 있다. 빠르게 깊이 있는 생각이나 판단이 가능한 일인가?
61쪽
스크린 타임 기능이 하루 핸드폰 사용 시간이 네 시간이라고 알려준다면, 사실 우리는 집중력을 상실함으로써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잃고 있다는 뜻이다.
;멀티태스킹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에 일침을 가하는 전문가의 견해를 들으면서 반발하던 저자가 결국은 근거를 제시하면서 설명하자 수긍하는 부분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착각을 본다. 멀티태스킹이라 알려진 행동은 실은 '전환'에 대한 것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뇌는 한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할 때 제대로 과제를 수행해낼 수 있다.
2장 몰입의 손상; 스키너의 비둘기와 미하이의 화가, 무엇이 되고 싶은가
88쪽
몰입 상태가 되려면 단일한 목표를 택해야 하고, 그 목표가 반드시 자신에게 유의미해야 하고, 능력의 한계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어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해서 몰입에 빠져들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데, 몰입은 특별한 정신 상태이기 때문이다. 몰입한 사람은 자신이 오로지 현재에 머무는 기분을 느낀다. 자의식이 사라지는 상태를 경험한다. 자아가 소멸해 목표와 내가 하나 되는 느낌과 비슷하다. 내가 기어오르는 암벽이 곧 내가 되는 것이다.
93쪽
그때, 주의력을 되찾으려면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방해물들을 제거하는 방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하면 그저 텅 비게 될 뿐이다. 우리는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을 제거하고, 몰입의 원천으로 그 자리를 대체해야 한다.
95쪽
조악한 보상 때문에 춤추는 데 주의력을 낭비하는 스키너의 비둘기가 되고 싶은지, 자신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을 찾아냈기에 집중할 수 있는 미하이의 화가가 되고 싶은지.
;미하일의 몰입과 대립되는 관점으로 스키너의 비둘기의 보상 이론을 제시하는데, 스키너의 이론이 지금 우리가 소셜미디어에서 목매는 좋아요, 하트의 보상 이론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스키너가 제시한 비둘기 보상 이론이 소셜미디어에서 사용자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미하일의 몰입 이론과 대비해서 볼 때 어느 쪽이 더 인간의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관점인지는 자명한 일이다. 저자의 말처럼 보상에 목매는 비둘기가 될지 스스로의 몰입속에 있는 화가가 될지.
3장 잠들지 못하는 사회;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세상은 모든 면에서 더 흐릿해진다
108쪽
이 신체적 비상 상황에서는 뇌는 눈앞의 단기적 집중력만 줄이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 형태의 집중력을 위한 자원 또한 줄인다. 잠을 잘 때 우리의 정신은 그날 경험한 일에서 연결고리와 패턴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119쪽
집중력 개선을 위해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시도들을 알게 되면서, 현재 우리가 명백한 역설 속에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해야 하는 많은 일이 따분할 만큼 뻔하다. 속도를 늦추고,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고, 잠을 더 자면 된다. 모두가 이 사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데도 실제로는 정반대로 하고 있다.
우리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행동과 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행동 사이의 괴리 속에 산다.
; 수면에 대한 이 장에서는 다들 알고 있는데도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 힘을 알고자 한다는 말로 마무리한다.
4장 소설의 수난 시대; 긴 텍스트를 읽는 능력이 떨어지면 벌어지는 일
126-127쪽
독서는 우리이게 특정 방식의 읽기를 훈련시키는데, 바로 오랜 시간 한 가지에 집중하는 선형적 방식의 읽기다. 아네는 화면을 통한 읽기가 이와는 다른 방식, 즉 정신없이 넘기면서 초점을 옮기는 방식의 읽기를 훈련시키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네의 연구는 사람들이 화면으로 글을 읽을 때 "대충 훑어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네의 말을 들으며 독서의 붕괴가 어떤 면에서는 집중력 감퇴의 증상이자 원인임을 깨달았다. 이러한 변화는 나선의 형태를 띤다. 우리는 책에서 화면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책에서 나오는 더 깊은 형태의 읽기 능력을 잃기 시작했고, 결국 더욱더 안 읽게 되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사례를 들면서 이런 소셜미디어가 깊은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지 되묻는다. 숙고와 깊은 통찰은 이런 소셜 미디어의 성격에는 맞지 않는다. 소셜미디어의 일상화는 숙고와 깊은 통찰, 서로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는 것들과의 결별로 이어지게 된다. 소설읽기의 맥락도 같다. 긴 글의 긴 생각으로 들어서기도 힘들 뿐 더러 하지 않으려는 문화가 되어버렸다.
135-137쪽
실험 결과는 명확했다. 소설을 많이 읽을수록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읽어냈다. 막대한 영향이었다. 이것은 그저 교육을 잘 받았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비소설 독서는 공감 능력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서는 "바깥을 향한 관심과 내면을 향한 관심을 결합하는 방법"이다. 특히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상상한다.
레이먼드는 소설 읽기가 공감 능력을 강화한다는 점과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소설 읽기에 끌린다는 점이 둘 다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설명하는 효과가 종이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를 모방한 복잡한 서사를 몰입하는 경험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연구는 긴 텔레비전 시리즈 또한 종이책만큼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또 다른 그의 연구는 동화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아이들이 공감능력이 더 좋지만, 길이가 짧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는 아이들을 그렇지 않다는 점을 발견했다.
토막 난 파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때는무언가에 오랜 시간 집중할 때만큼 공감이 나타나지 않는다.
;문학의, 소설의 효용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비소설 독서가 공감능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다는 부분은 조금 동의하기 어렵다. 비소설이라도 소설 이상의 서사와 감동이 있는 글들이 있지 않은가? 여하튼 다른 사람의 삶을 상상한다는 공감의 상상력은 집중력의 밀도와 연결된다는 말로 해석했다.
5장 딴생각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말해주는 것; 우리 정신을 배회하게 뒀을 때 생기는 이점
147쪽
먼저, 우리는 딴생각 중에 천천히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
그는 딴 생각을 많이 할수록 더욱 체계적인 목표를 세우고 더 창의적이며, 끈기 있는 장기적 결정을 더 잘 내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정신이 표류하면서 천천히 무의식적으로 삶을 이해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더 능숙하게 해낼 수 있다.
149-150쪽
실제로 딴생각은 다른 형태이자 반드시 필요한 형태의 집중이다. 네이선은 우리가 하나의 스포트라이트로 주의를 좁혀 한가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데 "일정량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스포트라이트를 꺼도 "우리는 여전히 그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저 다른 사고방식에 "에너지를 더 많이 할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주의력이 꼭 낮아지는 것은 아니며" 다른 중요한 형태의 사고로 "자리를 옮기는 것일 뿐"이다.
그때까지 읽었던 우리가 여러 작업 사이를 빠르게 오가고 있다는 내용의 과학 연구들을 돌이켜보다가, 현재의 문화에서 사람들이 늘 집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딴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53쪽
스트레스가 적고 안전한 상황에서 딴생각은 선물이자 기쁨, 창조적 힘이 될 것이다. 스트레스가 많고 위험한 상황에서 딴 생각은 고통이 될 것이다.
;딴생각에 대해서는 여전히 연구가 진행중이며 논쟁을 불러 올 수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러면서 직장 상사가 종일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모습만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일화를 제시하면서, 온종일 매달려 책상에 있다고 일의 밀도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과 경험에 대해서 되묻는다.
종일 실행과제에 매달린다고 해서 성과가 더 잘 나오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다. 때때로 잠깐의 휴식, 딴짓이 위대한 발견이나 생각의 전환을 불러오는 경우도 있기에. 그리고 뇌가 휴식없이 계속 집중할 수 없다는 상식을 확인하는 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6장 우리를 추적하고 조종하는 테크 기업들; 집중력 파괴는 그들의 사업 모델이다
171쪽
그는 설득적 기술 연구소에서 사람들을 조종하는 방법을 배웠지만, '나도 다른 기술 설계자들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걸끼?'라는 난처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그 설계자들이 어떻게 자신을 조종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이 상황에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174-175쪽
참여도는 사용자의 시선이 상품에 머문 시간으로 정의되었다. 참여도가 높으면 좋은것, 참여도가 낮으면 나쁜 것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들이 핸드폰을 더 오래 들여다볼수록 들이 보는 광고도 많아지고, 그만큼 구글이 버는 돈도 늘어난다.
185-186쪽
오늘날 모든 소셜미디어와 수많은 웹사이트가 무한 스크롤의 한 형태를 사용한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화면을 내리며 전자기기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아자 본인도 끝없이 스크로을 내리다 나중에야 자신이 본 내용이 쓸데없는 정보임을 깨닫곤 했고, 자신이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인지 고민했다.
그가 발명한 기능의 결과로, 총 20만 명이 넘는 인간의 삶이 매일 화면을 스크롤 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이 시간들은 무한 스크롤이 없었다면 다른 활동에 쓰였을 것이다.
189쪽
언젠가 제임스 윌엄스는 일류 기술 설계자 수백 명 앞에서 강연을 하며 "현재 자신이 설계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싶은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라는 단순한 질문을 던졌다. 강연장은 침묵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주위를 둘러 보았다. 손을 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이 장은 읽으면서 테크기업의 양면성과 탐욕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자신의 자녀에게는 소셜미디어를 하지 못하게 하는 실리콘 밸리의 설계자들의 모습, 마음 챙김을 할 수 없게 하는 설계자인 그들이 명상이나 요가에 몰두한다는 사실이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졌다. 자본주의와 탐욕이 동일선상으로 이어졌다.
7장 산만함에 불을 지피다; 집중하지 못하는 사회는 어떻게 위험에 빠졌나
197쪽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면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웹사이트들을 만들고 유지하는 사업 모델이다. 이 시스템을 칭하는 전문 용어는 '감시 자본주의다'
199쪽
"그들의 사업 모델은 스크린타임이지, 우리의 일생이 아니에요."
200쪽
우리의 집중력을 좀먹는 현재의 기술 작동 방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선택의 결과다. 이 방식은 실리콘밸리의 선택이며, 실리콘밸리가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는 사회 전반의 선택이다.
201-202쪽
어떤 기술이, 어떤 목적에서, 누구의 이익을 위해 설계되는가?
소셜미디어는 우리가 화면을 계속 들여다보게 만들정보를 보여준다. 그게 다다. 우리가 화면을 더 많이 들여다볼수록 그들이 버는 돈도 늘어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09쪽
오늘날 소셜미디어에서는 거짓 주장이 진실보다 훨씬 빨리 퍼져나가는데, 알고리즘이 분를 유발하는 내용을 더 빠르고 멀리 퍼뜨리기 때문이다
;테크기업들은 결국 더 오랜 시간 동안 사용자를 붙들기 위한 시스템을 설계하는데, 이 시스템에서 덜 머물수 있게 설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회 전반의 선택은 그렇지 않은 현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테크 기업에 길들여지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 그 생각의 실천은 소셜미디어의 접속량을 줄여야 겠다는 지극히 당연한 귀결에 이른다.
8장 작고 얄팍한 해결책; '문제는 네 안에 있어'라는 말이 틀린 이유
이 장에서는 다이어트를 제시하면서 살을 빼는 것이 아니라 찌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비만율과 다이어트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설계자들이 사용자들의 집중을 제한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계자들 스스로 이루어지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의 결과로 비만율이 어떻게 줄어드었는지의 예시가 개인의 문제에서 정치적으로 접근해야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주장이 꽤 설득력 있게 읽혔다.
저자는 단순히 개인의 의지 박약이 아니며, 개인의 문제로 넘길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성 있는 낙관주의란 장애물을 솔직히 인정하고 모두 협력해 장애물을 해체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9장 근본적인 해결책을 처음으로 목격하다; 저커버그는 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무시했을까
이 장에서는 테크 기업과 사용자인 우리가 경주중이라고 하면서 사용자인 우리 모두는 시스템의 설계를 바꿀 수 있다는 이들과 합류해 싸움에 나설것인지 아니면 테크 기업의 침략적 기술에 그냥 당할 것인지 묻는다.
10장 스트레스와 만성적인 각성 상태; 방해 요소에 저항하는 능력이 현격하게 낮아진 이유
스트레스로 인한 과각성 상태와 빠지게 된다면 당연히 집중력에도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예로 든 가는 곳마다 곰이 있어 마주치게 된다면 과각성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집중이 일어날 수 있는가?
네이딘의 연구 결과에 미루어 보면 집중력은 안전한 환경이어야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 반드시 안전하다고 느껴야 집중력은 발현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이가 adhd로 진단되어 치료를 하고 있었지만, 아이의 가정상황과 질병과의 상관관계를 먼저 파악하지 못한 까닭에 치료는 한계적이었다는 것이다. 추후 아이가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며 그로 인한 adhd로 발현되어 평가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11장 우리 사호의 논리에 정면으로 도전한 장소들; 주4일 근무로 바꾸면 집중력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일에 대한 시간을 줄이자 집중력이 더 좋아졌다면 주4일 실험했던 회사와 대표의 이야기를 실었다.
주7일에 점진적으로 하루씩 휴일을 정착해 나갔던 서양의 주말 100년사를 제시하면서 현재 5일에 이른 과정을 말한다. 그러나 이 부분에 있어서는 회사 대표들과 직원들의 입장은 대립적이지 않을까! 그러나 주4일 위해서 업무에 더 몰두해서 일을 하게 되는 건 당연한게 아닌가.
또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말하면서 휴식과 집중력의 상관관계를 말한다.
12장 값싸고 형편없는 식단; 허리둘레, 심장, 그리고 집중력을 파괴하는 음식들
음식에 관한 이 장에서의 이야기들은 충분히 가늠하고 짐작했던 일들이다. 자연의 음식인 아닌 화학적 첨가물이 가득한 현대인의 식단, 음식의 섭취가 건강한 뇌의 상태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들은 역시나였다. 단순히 자연식의 섭취뿐만 아니라 가성비 높은 음식들의 변화가 현대인들의 건강을 헤치기에 이 역시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소라는 주장 역시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또한 개인이 가공식품을 포기하려 하지만 테크기업의 설계처럼 개인의 의지만으로 바꾸기 어려운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다음 세대의 입맛을 왜곡하는 이 시스템 역시 작동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공감하는 바가 컸다. 아이들의 식사를 챙길때마다 가공식품과 첨가물의 음식에 길들여져 야채와 이른바 한식의 식사를 먹으려 들지 않을때마다 걱정스러웠는데 이 장에서 그 점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화학물질을 시장에 내놓을때 지금처럼 안전성을 출시 이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성을 먼저 입증 한 이후 통과한 물질만이 소비자에게 도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서 지금의 시장 논리가 얼마나 자본에 의해서 끌려가는지 새삼 보인다. 오염물질이 우리의 뇌를 파괴하게 두었는는지 아니면 힘을 합쳐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했는지 우리의 다음 인류들은 알게 될 것이라는 말 역시 sf의 디스토피아적 설정이 상상력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닌 현실의 모습에서 가져온 설정이라는 확인에서 지금의 우리가 어떤 행보를 하게 될지 의문이다.
13장 잘못된 ADHD진단;유전자 탓을 하는 동안 우리 아이에게 실제로 벌어지는 일
ADHD 대한 이야기편에서 이 질병의 원인을 유전으로 보고 약물처방을 하는 치료를, 동물의 ADHD를 진단 후 약물처방 보다는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닌 인위적 상태에 처한 동물의 환경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고 치료에 임하는 니컬러스를 통해서 관점의 다른 해석으로 병의 치료가 달라지는 것을 보여준다.
자라면서 ADHD 진단을 받았던 아이들의 발생 요인을 주변 환경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고, 결정적인 요인은 환경이 얼마나 혼란한가 였다고 한다. 특히 부모의 스트레스가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부모가 스트레스가 적을 경우 아이에게 관심과 안정감을 더 줄 수 있고, 사회적 지지가 높을수록 안정적인 아이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ADHD 진단후 처방 받는 각성제가 장기적으로 아이들의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설명에서, 약물에 대한 두려움과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올라왔다. 각성제의 오랜 복용은 수면의 질에 영향을 미치고 그 역시 집중력에도 영향을 미치다는 꼬리에 꼬리를 묻는 설명들이 약물에 대한 신중한 태도가 필요함을 느낀다.
유전 질환 때문이라는 통계가 쌍둥이 연구를 통한 근거라는 점에서는 너무 단순하고 비과학적인게 아닌가 싶었다.쌍둥이 사이의 차이를 같은 환경에서 성장하기에 오직 유전자만이 차이라는 것이 너무 단순한 근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반박의 근거를 제시하는 연구에서는 쌍둥이 연구가 유전자와 환경의 잠재적 영향을 구분할 수 없다고 하면서 쌍둥이 연구의 통계 수치의 잘못된 호도와 이해를 집어낸다.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4장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감금된 아이들; 아이들은 놀고, 배회하고, 질문하고, 유능해진다
이 장에서는 과거의 우리가 성장했던 환경이 더 아이들이 성장하기에 알맞은 환경이었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본성대로 자연스럽게 어울리면 성장하던 문화가, 오늘날 실내 공간에서 어른의 개입과 주시를 바탕으로 머물며 성장하는 문화로 바뀌어져 건강함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견해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사례의 아이처럼 그런 환경과 사회의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에필로그
제임스는 집중력의 세 가지 형태를 스포트라이트, 별빛, 햇빛이라고 정리했다.
스포트라이트가 분산되거나 방해받으면 우리는 이런 단기적 행동을 수행하지 못한다.
별빛은 장기적인 목표를 말한다. 긿을 잃은것 같을 때 별을 올려다보면 자신이 향하던 방향을 다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햇빛은 자신의 장기적 목표가 무언인지 파악하게 해주는 집중형태라고 한다.
이 중에서 햇빛의 상실이 가장 심각한 형태의 산만함이며, 자신이 누군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정신적인 공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평형 상태 경제'로 가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경제성장을포기하고 다른 종류의 목표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인데 가령, 자녀와 시간을 보내거나 자연에 머물거나, 충분한 수면 같은 것들로 재정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 우리가 함께 집중하지 않으면 이 산불에 홀로 직면하게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