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p. "안다는 게 대체 뭔지, 알고 싶다는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해. 자네도 알아야만 하는 저주에 걸린 거야. 인간을 본떴으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버진이 잠시 이마를 짚으며 숨을 느리게 내뱉는다. 어지럽거나 속이 메 스꺼운 것이다. 열사병의 흔한 증상이다.
“들어가서 쉬어야 한다."
"계속 쉬라고 하니까 어째 더 고집부리고 싶은 걸"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나는 일부러 극단적인 상황을 예측해 말한다.
고집 부리는 인간의 마음을 바꾸는 방법은 두 가지다. ✔️꺾을 수 있을 만큼 날카롭고 단단한 말을 꺼내거나 완전히 녹아내리도록 여리고 따뜻한 말을 꺼내거나. 여러모로 내게는 전자가 쉽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안에 갈매기 한 마리를 갖고 있어. 쉽고 편하게 살려는 성향 말이야. 자기 안의 그런 유혹과 늘 맞서 싸워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 사람들은 대부분 군집을 이루어 살려고 하지만 자네는 달라야 해. (p.388)
자네도 이제 해답 없는 질문으로 힘들어하지 말고 해리를 놓아줘. 삶의 한 페이지를 넘겨야 할 때야. (p.58)
요즘은 웬만한 뉴스가 소설보다 '거짓말 같은' 세상이라 조금 덜 읽기는 하지만, 나는 원래 범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마니아다. 살기가 바빠지며(!) 자연스럽게 소설 읽는 양을 줄이기는 했지만, 뼈대 굵은 범죄소설은 거의 다 읽는 편. 범죄기반의 소설에는 단순히 추리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 본능, 그럼에도 '인간애' 등을 모두 만나볼 수 있어 좋아하는 것이기에 '조엘 디케르'의 소설은 그야말로 취향 저격.
만약 조엘 디케르의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을 읽은 사람이라면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은 필독하셔라! 한층 깊어지고, 한층 치밀해진 그의 소설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될 테니. 아! 혹시나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을 포함하여 그의 소설을 하나도 읽지 않았더라도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은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니 걱정 말고 일단 책을 펼치시길 추천해 드린다. 두 권으로 나누어진 장편소설이지만, 거짓말처럼 술술 읽히는 가독성 좋은 소설이니 말이다.
아! 미리 처음부터 2권까지 대기시켜놓고 1권을 읽길. 어차피 모든 독자는 두 권을 연결해 읽어야만 할 것이다. 책을 펼칠 때는 자유의지로 펼칠 수 있지만, 흡입력이 너무 강해 덮는 것은 더는 남은 페이지가 없어야 가능할 테니 말이다.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을 읽는 재미 포인트를 짚어보자. 먼저 치밀한 탐문 수사와 날카로운 추리를 바탕으로 직접 마커스나 페리가 되어 사건에 풍덩 빠져보는 것. 범죄소설은 역시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맛! 물론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의 실마리는 쉽게 찾기 어렵겠지만, 어려운 만큼 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각각의 인물의 심리를 쫓아보는 것. 개인적으로 범죄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점이 인물의 심리를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인데,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역시 각각의 인물이 나타내는 심리변화, 심리를 드러내는 행동 등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이 두 가지 매력만으로도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지만,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의 가장 큰 매력은 긴박한 속도 조절에 있다고 본다. 현재와 10년 전 오가며 사건을 풀어가는데 심리적인 부분은 느리게, 사건은 빠르게 조절해가는 이야기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긴장감을 강화한다. 원래 롤러코스터도 빠르게 뚝 떨어질 때보다 서서히 올라갈 때 더 무섭지 않나. 소설에서 그런 긴박함과 화끈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었다.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의 마지막에서야 만나게 되는 진실은 정말이지 놀랍고, 예상 밖이며, 슬프고 처절하다. 작가는 책의 마지막까지 나를 저 위로 끌어올렸다가 뚝 떨어뜨리고, 다시 끌어올리기를 반복하며 스토리에 풍덩 빠지게 했다. 작가가 쓴 책을 몇 권 읽었지만, 감히 말하자면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은 조엘 디케르를 '더' 유명하게 만들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이 너무 재미있었기에 벌써 조엘 디케르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작가님, 빨리 집 사서 글을 써요! (아, 집을 사야 하는 작가는 마커스인가! 깔깔)
우리는 누구나 자기 안에 갈매기 한 마리를 갖고 있어. 쉽고 편하게 살려는 성향 말이야. 자기 안의 그런 유혹과 늘 맞서 싸워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 사람들은 대부분 군집을 이루어 살려고 하지만 자네는 달라야 해. (p.388)
자네도 이제 해답 없는 질문으로 힘들어하지 말고 해리를 놓아줘. 삶의 한 페이지를 넘겨야 할 때야. (p.58)
요즘은 웬만한 뉴스가 소설보다 '거짓말 같은' 세상이라 조금 덜 읽기는 하지만, 나는 원래 범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마니아다. 살기가 바빠지며(!) 자연스럽게 소설 읽는 양을 줄이기는 했지만, 뼈대 굵은 범죄소설은 거의 다 읽는 편. 범죄기반의 소설에는 단순히 추리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 본능, 그럼에도 '인간애' 등을 모두 만나볼 수 있어 좋아하는 것이기에 '조엘 디케르'의 소설은 그야말로 취향 저격.
만약 조엘 디케르의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을 읽은 사람이라면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은 필독하셔라! 한층 깊어지고, 한층 치밀해진 그의 소설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될 테니. 아! 혹시나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을 포함하여 그의 소설을 하나도 읽지 않았더라도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은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니 걱정 말고 일단 책을 펼치시길 추천해 드린다. 두 권으로 나누어진 장편소설이지만, 거짓말처럼 술술 읽히는 가독성 좋은 소설이니 말이다.
아! 미리 처음부터 2권까지 대기시켜놓고 1권을 읽길. 어차피 모든 독자는 두 권을 연결해 읽어야만 할 것이다. 책을 펼칠 때는 자유의지로 펼칠 수 있지만, 흡입력이 너무 강해 덮는 것은 더는 남은 페이지가 없어야 가능할 테니 말이다.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을 읽는 재미 포인트를 짚어보자. 먼저 치밀한 탐문 수사와 날카로운 추리를 바탕으로 직접 마커스나 페리가 되어 사건에 풍덩 빠져보는 것. 범죄소설은 역시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맛! 물론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의 실마리는 쉽게 찾기 어렵겠지만, 어려운 만큼 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각각의 인물의 심리를 쫓아보는 것. 개인적으로 범죄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점이 인물의 심리를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인데,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역시 각각의 인물이 나타내는 심리변화, 심리를 드러내는 행동 등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이 두 가지 매력만으로도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지만,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의 가장 큰 매력은 긴박한 속도 조절에 있다고 본다. 현재와 10년 전 오가며 사건을 풀어가는데 심리적인 부분은 느리게, 사건은 빠르게 조절해가는 이야기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긴장감을 강화한다. 원래 롤러코스터도 빠르게 뚝 떨어질 때보다 서서히 올라갈 때 더 무섭지 않나. 소설에서 그런 긴박함과 화끈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었다.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의 마지막에서야 만나게 되는 진실은 정말이지 놀랍고, 예상 밖이며, 슬프고 처절하다. 작가는 책의 마지막까지 나를 저 위로 끌어올렸다가 뚝 떨어뜨리고, 다시 끌어올리기를 반복하며 스토리에 풍덩 빠지게 했다. 작가가 쓴 책을 몇 권 읽었지만, 감히 말하자면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은 조엘 디케르를 '더' 유명하게 만들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이 너무 재미있었기에 벌써 조엘 디케르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작가님, 빨리 집 사서 글을 써요! (아, 집을 사야 하는 작가는 마커스인가! 깔깔)
어디까지가 실제고, 픽션인지 구분가지 않는다. 그만큼 내 나라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게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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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8-9.(바이스로이->정의림) “나는 원래 비교역사학의 전문가 아닌가. 처음 내가 이 신비한 민족과 맞닥뜨린 것은 고인돌을 통해서였어. 세계 고인돌의 반 이상이 한국에 있더군. 이상하지 않나? 이 넓은 지구상에서 그 좁은 한반도라는 지역에 세계 고인돌의 60퍼센트가 있다는 사실 말이야. 고인돌에 미쳐 있던 나는 한국어를 아주 열심히 공부했어. 그리고는 무작정 한국에 갔지. 뭐라도 얻어보려고 말이야.”
...
“흐흐. 세계 고인돌의 반 이상이 자기 나라에 있으면 그 역사란 건 무서울 정도로 오래됐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런데 이 사람들은 자기네 역사를 줄이지 못해 안달이더군. 고인돌이 강력한 부족국가의 상징이란 건 자네도 잘 알텐지? 그런데 이 사람들은 중국에서 누군가 내려오기 전의 한반도란 그저 미개인들이 흩어져 살았던 곳으로만 생각하더군. 모든 역사책도 그렇게 만들고. 그러면 그 많은 고인돌들은 나중에 세계 각지에서 수입해 갖다 두었단 말인가> 이렇게 온 나라 전체가 잘못된 역사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나라는 처음이었어.”
p.231-2. “우선 360을 둘로 나누는 법에 대해 설명하겠소. 360은 216과 144로 나누어지오. 이것은 수메르인들이 나눈 방법인데 그 대로 ‘성서’에 녹아 들어가 있소. ‘성서’에서는 216을 악마의 수로 기술하고 있고, 144를 구원의 수로 규정하고 있소.”
“네에? 저도 여러 번 ‘성서’를 읽어봤지만 216이라는 수는 본 적이 없는데”
“그렇다면 악마의 수라고 기술한 것을 보았소?”
“네. 666은 악마의 수이니...”
“그렇소. 바로 그 666이 216이요.”
“어째서 그렇지요?”
“666을 곱해 보시오.”
“음, 216이군요.”
“360에서 216을 빼보시오.”
“144.”
“그렇소. ‘성서’의 요한계시록에서 144가 구원의 숫자로 나와 있소. 최후의 심판때 구원을 받는 사람의 수는 항상 144, 혹은 그 10배수로 나타나는거요.”
...
“‘격암유록’에도 똑같은 말이 똑같은 문장 구조로 기술되어 있소.”
“어떤 문장이죠?”
“12명의 신인이 각각 1만2천 명을 거느리고 나와 그 수는 모두 14만4천명이라는 문장이오.”(사족: 격암유록은 16세기 인물 남사고의 이름을 빙자해서 1977년에 발표된 위서인 점을 감안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