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드디어 20권 예약대기 해서 이제 왔어요🥹 넘넘 오래걸려서 진짜 두근두근 거렸는데 진짜 넘넘 재밌🤭 과자가게에 신기한 과자들 , 사탕들도 많아서 진짜 신기했어요🤤 실제로 전천당이 없겠지만 있으면 한번 가보고싶다는 생각두 했어요🥺 넘넘 강추❕️❕️ 꼭 읽어보세요❕️강강강력추천 해요❕️
다만, 불편한 점이 있다면 예약이 늦게 된다는거에뇨😭
신간이다보니 예약이 많아서 최대 1달정도 걸리는 경우가 있어요😅 대신❕️ 이야기 재밌고 넘 흥미로우니까 !! 별점은 5.0 줘야할것 같아요❕️ 다시한번 말하지만 도서관 가면 꼭 읽어보세요❕️❕️
요즘 장염이 유행이라던데 조심하세요🥺
제 친구가 장염 결려서 넘넘 아팠대요😭
#장염#전천당#히로시마레이코#길벗스쿨#추천안뜨면삐짐#관리자님추천뜨게해주세요
독서모임의 네 번째 책으로 선정되어서 읽은 책이다.
요즘 에세이를 출간하는 작가들 중 유머를 바탕으로 일상의 생활 속에서 건져올린 생각의 깊은 틈과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지금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다정함과 오지랖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야기를 나누면서, 4050 세대들의 세상에 대한 시선들을 나누어 보기도 한다.
다정함이라는 키워드로 나누는 편지글들의 내용이 뻥 터지면서 웃고 나서, 그 웃음을 준 상황과 마음이 느껴져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서로 친밀한 사이가 아닌 사이에서 편지를 나누면서 깊어지는 사람에 대한 인연과 마음 씀씀이가 곳곳에서 묻어나는 편지글들이다. 키다리 아저씨 이후로 편지글 형식의 책을 읽었던 적이 있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비록 이메일로 오고 간 편지글이지만 학창 시절 방학 동안 친구들과 오가던 엽서, 편지들에 대한 시절 기억도 소환되었다. 이메일 등장으로 나누었던 이메일 친구도 떠오르기도 하고. 편지글은 일기와 같이 사적 영역이면서도 서로 오고 가고, 대화와 생각들을 나눈 글이라는 점에서 일기와는 또 다른 향과 기대가 있는 글이다.
첫 두 편의 편지글은 서로의 출간된 책들을 바탕으로 서로의 성향과 태도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작가들이 서로에 대한 각자의 느낌과 안부를 주고받으면서 소개되는 작가들의 취미나 생활들이 재미있게 읽혔다. 리코더와 목탁을 연주하는 두 사람의 앙상블을 그려보니 무척이나 새롭고 낯선 모습이지만, 새로운 낯섬이 주는 신선함과 생활 속에서 삶의 재미를 만들어 나가는 두 사람의 편지글이 즐겁게 읽어졌다.
햇살을 간직해의 패러디 달빛을 간직해의 에피소드는 코로나19로 인해 변경된 달전망대가 다시 그 이름에 걸맞은 시간으로 되돌아갔음을 기대한다.
제목이 나오게 된 에피소드가 소개된 글에서는 나보다 한참 오래 산 선배의 조금 늦어도 된다는 덕담으로 느긋함을 얻을 수 있게 된다는 글에서는 덩달아 그 기운을 받아서 조급함이 아닌 느긋함이 주는 삶의, 인생 서사의 큰 울림을 느낀다.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면서 느끼는 지지부진함과 그럼에도 은근과 끈기로 임하는 자세에서는 40대 이상의 세대들에게 각인된 성실함이라는 것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작은 것들을 이루어 가는 성실 성취를 본다. 출세와 성공의 시선이나 의미가 아니라, 취미라는 세계에 들어서서 작지만 은근과 성실로서 성취를 얻어 가지만, 성취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것들 자체를 즐기면서 얻는 기쁨도 보인다.
번아웃으로 생긴 업무에서의 실수에 관한 에피소드는 깔깔거리면서 읽다가, 그 웃음 뒤에 또 올라오는 번아웃에 휩쓸려 가는 지금의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웃음이라는 유머를 던지지만 그 아래에 깔려 있는 본모습은 개그로만 끝나지 않는 응시가 있다.
10.29 이태원 참사 이후에 오간 편지에서는 사회적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정치와 정치인들의 모습, 시스템에 대한 생각을 다시 본다. 당근 마켓의 일화는 평범한 일상이 무너져 참사의 파장이 전혀 무관하리라 생각했던 내 주변의 일상까지 파편화 시켰다. 언제쯤 사회적 참사로 인해서 벌어지는 한국 사회의 우왕좌왕을 보지 않게 될까!
중년 이후로 지인과 친인척, 부모님의 장례와 조문을 통해서 생의 마지막과 관련된 삶의 부분들을 만나게 된다. 가족의 죽음이 연말이어서 연말이 더 힘들다는 글도, 업무로 만났던 이의 부모님 장례식장에서의 화환 일화도 웃프지만 또 누구나 겪는 삶의 상실과 애도의 과정들을 함께 이야기 나누는 작가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역시 다정한 마음으로 다다른다.
슬램덩크와 논어의 군자비추편 글도 노안이 와서 논어쓰기의 불편함과, 꿋꿋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함께 엮어지면서 두 가지의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 편의 글로 엮어 내는 퀼트 뜨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웅변학원에서 임산부의 일화로 끝나는 글에서는 출산을 했던 여자라면 한 번쯤 겪었을 심적, 실제적 일화가 생생하게 전해오면서, 군자비추 공자에게 임신강추의 마지막 문구가 들어온다. 겪어보지 않았거나, 겪어보았다고 '-한 나'무한변주의 사람들의 행태는 슬픔과 화과 동시에 올라온다. 용기에 관한 이 글은 지혜와 어진보다 용기에 더 초점을 맞춘 일화들은 맞춤양복 같은 글이다.
화정역과 할미꽃편 글은 다정함의 끝판왕과 잉여의 일에 대한 의미를 좀 더 깊게 보게 한다.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인 화정역과, 산소의 할미꽃의 잉여의 마음과 일에 대한 고마움과 사려 깊음이 밀려든다.
마지막 글 여름이야, 나가서 놀자 편에서는 24절기를 일상으로 가져와서 좀 더 삶을 윤택하고 반질반질하게 닦아가면서 직조해 가는 삶의 결이 전해져서 일상에 너무 건조하게 무덤덤하게 지내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작가들만큼의 텐션은 아니지만, 일상에 매몰되어 가는 듯할 때 꺼내 읽으면서 웃음과 함께 다시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일상의 힘을 북돋는 책으로 저장해 두어야겠다.
유머를 바탕으로 다정함이 가득한 두 작가의 텐센업 편지글 책이다!
<책속의 문장>
"누군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나무들까지도 알고 있네" 103쪽
프로이트가 그랬죠. 정상적인 애도란 상실에 대상을 잊고 그 대상에 투사한 리비도를 거두어들여 다른 대상에 전이함으로써 애도를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일정시간이 지나도 소멸되지 않고 감정적 애착이 단절되지 않는 애도는 실패한 애도(우울증)라고요. 하지만 제게는 이런 프로이트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이 언제나 더 와닿습니다. 애도에 완성이나 종결은 없고 그것은 평생 지속되는 것이며, 애도는 실패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라는, 애도는 실패해야(그것도 잘 실패해야) 성공하는 것이라고 한 말을요. 프로이트의 애도가 고인의 타자성을 지워버리는 '망각의 애도'라면, 데리다의 애도는 고인의 타자성을 내 안에 기억하는 보존하는 '기억의 애도'일 텐데요. 몇 번의 죽음들을 겪으면서, 저는 데리다의 저 말은 '이해한다'의 영역이 아니라 '(모르고 싶어도) 알아진다'의 영역에 들어가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슬픔은, 그리고 기억은, 아무리 없애고 싶어도 박혀 있는 것이니까요, 가시처럼.
"재랑 놀지 마라"의 "재"를 맡고 있습니다. 124-125쪽
그리고 상가를 나설 때마다 늘 마주하게 되는 진실도 마음에 다시 새겨봅니다. 나도, 내 주변 사람들도, 죽음을 품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 것. 가슴 한켠에 저마다 깊은 슬픔을 묻고 사는 존재라는 것도. 저의 연말은 생전 처음 뵙는 친구 어머님을 걱정시키고 포교 잘할 인상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사실 이거 굉장한 칭찬 아닌가요!)과 함께 우당탕탕 끝났지만, 내년에는 저 진실을 꼭 붙들고 타인과 제 자신에게 좀더 다정하고 유연한 한 해를 보내고 싶습니다.
인생 첫 장염 투병기 176-177쪽
몇 주가 지났고, 저는 이제 많이 좋아졌어요. 배탈은 완전히 다 나아 평소 먹는 식사량으로 돌아왔고, 체력도 서서히 회복되는 중입니다. 하지만 아픈 뒤로 뭔가가 달라진 것 가아요. 한의사 선생님의 말대로라면 몸에 생긴 '꺽임'이 매사에 어떤 과속방지턱 같은 걸 만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일할 때 속도가 잘 나지 않고, 집안일을 조금 하고 나면 금세 눕고 싶고, 운동할 때 일정 심박수 이상으로는 격렬해지지 않아요.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하기도 합니다. 좀처럼 아프지 않으면서 타인에게도 굳세기만 할 것을 요구하는 강인함과는 다르게, 이런 꺽임을 여러 번 반복해본 사람이 갖게 되는 내면의 단단함도 있지 않을까요? 내가 아프지 않을 때도 언제든 아플 수 있음을 알고, 어딘가 아픈 사람이 존재함을 알면 좋겠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잘 알아채고 도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같이 위와 장이 튼튼한 사람에게는 꽤나 어려운 일이지만 포기하면 안 될것 같아요. 임신을 해보지 않아도 임신이 힘든 일이라는 걸 아는 것이, 사람다움일 테니까요.
알프스의 할미꽃 두 뿌리 196-197쪽
마대에 든 잔대를 다 꺼내서 덮었을 때,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작은 흙더미가 옆에 남아 있는 걸 발견했어요. 고모부가 아빠 무덤가에 심겠다고 할미꽃 두 뿌리를 파서 가져오신 거였습니다.
"요즘은 할미꽃이 귀해졌는데, 꽃을 피우면 참 예쁘거든."
이날 새벽부터 돼지고기를 삶고 술과 과일을 챙겨온 엄마가 말했어요.
"느그 고모부는 참 다정하다."
잔디와 제사가 해야 할 일, 의무의 영역이라면 꽃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 잉여의 영역입니다. 다정함이란 어쩌면 사람에게 필요한 이상의 마음을 쓰는 일이겠지요. 혼비씨가 지하철 앞에 선 사람의 안색을 살피고, 그분이 소리쳐 혼비씨를 깨워주는 풍경처럼 말이죠. 이런 종류의 다정함이 하루에 하나씩 곁에 쌓인다면 저는 천국이나 알프스, 아이비리그를 그리며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서로 편지를 보내지 않는 기간에도 분명 혼비씨는 그런 장소에서 지내고 있을 거란 믿음이 들어요.
여벌의 시간에 자리잡은 할미꽃이 뿌리를 잘 내렸는지 조만간 보러 가야겠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만 (여름에 특히) 자제하는 이유는 나의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장"때문이다. 나름 건강식으로 샐러드 위주로 먹은 날에도 툭하면 장염에 시달리는데 찬 음식은 오죽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스크림의 시원함과 달콤함 앞에선 매번 '그까이 꺼~배 좀 아프고 만다!' 호기롭게 냉동실 문을 열고 마는 것처럼 이 책의 매력에도 지고 말았다.
첫 번째 아이스크림 <체리쥬빌레>편을 읽자마자 이책은 이번 여름 동안 아껴서 읽어야 할 휴식 같은 책이란 걸 강하게 느꼈다. 어쩌면 같은 이유로 속도 조절에 실패했겠지만...
지난밤 <투게더>뚜껑을 열 때도 나는 절대 혼자 한 통을 다 먹을 생각은 없었다.
"혀끝에 닿는 스테인리스 숟가락의 차가운 감촉과 천사의 귓속말처럼 달콤하고 보드라운 바닐라 아이스크림(84쪽)"의 위력은 얕봐서라기보단 나의 절제력을 과대평가 한 탓이리라...
인정하자.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진짜로 아껴먹을 생각이면 처음부터 그릇에 덜어 먹지, 아빠 숟가락으로 힘주어 퍼먹진 않았을 테니까.🤣🤣🤣
냉동실에 얼려두고 아이스크림처럼 한편씩 꺼내 읽고 싶은(그렇지만 한번 뚜껑을 열면 바닥이 다 드러날 때까지 닫기 힘든 아이스크림 같은 )에세이.
[일종의 “귀신론”에 대한 강의이다. “사단, 귀신 및 귀신들림”에 관해 현장에서 자주 목격하고 대하는 실제적인 사역과 삶 속에서의 예들을 바탕으로 성경적, 신학적, 사역적으로 잘 정리한 책으로, 목회 현장에서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유용할 것이다]라고 인터넷 서점에서는 책 소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내용의 교훈을 주는 것 같으면서도,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에는 비성경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부분이 많으며,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책을 읽을수록 비판적이고 거부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케네스 해긴에 대해 검색을 해보면 잘못된 가르침 vs 위대한 사역자라는 의견이 대립한다. 약 70여 권을 저술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의 진위 여부를 밝히려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더욱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로 신앙 상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라하" 요한1서 2:27. 아래 책 요약 중간중간에 나의 의견을 기록했다. 이 책은 믿음을 견고히 하기보다 혼란을 가중시키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별점: ★☆☆☆☆
1/ 귀신의 기원과 활동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함이라" 에베소서 6:1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린도후서 12:2
성경에는 세 개의 하늘이 언급되어 있다. 세 하늘들 가운데 첫째는, 바로 우리 머리 위의 대기권 하늘이다. 그 위, 즉 우주의 밖에 별들이 있다. 그리고 그 너머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셋째 하늘(하늘들의 하늘)이 있다. 우리 위의 대기권 하늘에(하늘들에) 악한 영들이 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이사야 14:13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북극에는 그들이 탐사할 수 없는 텅 빈 장소가 있다고 한다. 거기가 바로 하나님 보좌가 있는 "북극"인 것이다. *추정에 의존한 의견을 사실처럼 주장하고 있다.* 분명히 루시퍼에겐 어떤 종류의 보좌가 있었다. "내가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라고 그가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분명히 구름 아래에 있었다. "내가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리라"라고 그가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단에겐 땅 위에 어떤 종류의 왕국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우리는 "아담 이전의" 창조를 믿을 수 있다.
창세기 1:1과 창세기 1:2 사이에 수백만 년이 지났을지 모른다고 믿는 성경학자들이 많다. 고고학적인 발견에 의하면, 공룡과 다른 유형의 동물들이 존재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들은 어디서 온 것인가? 그들은 우리의 시스템에서 온 게 아니었다. 그러므로 아담 이전에 종류가 다른 피조물들이 틀림없이 이 땅에 있었던 것 같다. 악한 영들은 여기 땅 위에 존재하고 있다. 그들이 어디서 왔는가? 나에게 논리적인 설명을 하라고 한다면, 그들은 아담 이전에 창조된 영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교리적으로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이것을 교리로 삼을만한 견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에스겔 28:13
분명히 루시퍼는 음악과 관련이 있다. 다윗이 수금을 타자 사울에게 있는 악한 영이 잠잠해졌다. 올바른 악은 당신이 하나님의 성령께 굴복하도록 준비시키지만, 잘못된 음악은 마귀의 영에게 굴복하도록 준비시킨다.
때로는 분명히 우리가 무거운 짐에 눌려 있기도 한다. 이따금 울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그러나 그건 잘못이다. 그런 것을 통해 우리는 문을 열어 놓고 잘못된 영이 우리를 장악하게 하는 것이다. 그건 우리가 구원받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잘못된 영에 우리가 굴복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의 세계는 물질세계와 마찬가지로, 사실적이다. 실은, 더 사실적이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물질적인 것들을 창조하셨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에베소서 6:12
귀신들, 곧 악한 영들에게는 네 개의 계급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에베소서의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것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바울이 기록했다.* 1) 통치자들, 2) 권세들, 3)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4)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이 어둠의 주관자들"은 다른 영들을 지배하고 그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한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지배하려는 것 외에, 그들은 어둠 가운데 행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을 지배한다.
하나님 자신은 인간의 영에 대해 권세를 행사하지 않으신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주장인가?!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함께 하시고, 기름부으신 그를 통해 역사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권세가 따르는 일이 아닌가.* 예수님께서 악한 영들과 귀신에 대한 권세를 행하사셨는데, 교회의 신자는 어느 누구든지 그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인간의 영이 그 상태 그대로 있기를 원하면, 다른 신자가 그것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자 그 음성이 이렇게 말했다. "너는 요한일서 5:16을 읽어본 적이 있느냐?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를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만일 그녀가 마귀의 시험을 받고 졌었다면 그녀를 용서하셨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함께 도망을 쳤다고 해서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것은 아니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그녀가 남자 100명과 놀아났어도 주님께로 돌아왔다면 그녀를 용서하셨을 것이라고 주님은 설명하셨다. 그런데 그녀는 더 이상 주님을 필요치 않다고 고의적으로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시험을 당하거나, 진 것이 아니라)고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이 죄는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0장이 그것을 더 설명해 준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히브리서 10:26-29
자기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내게로 많이 왔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께 등을 돌린 적이 없다면, 이 죄를 지은 게 아니라고 나는 그들에게 말해준다. 그들이 어떤 행동을 했든, 그들이 아무리 멀리 떠나갔든(심지어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예수님께 욕을 했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후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마귀를 처리하기 위해 영분별의 은사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당신이 그것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꼭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은사를 받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영분별의 은사를 갖거나 마귀에게 권세를 행사할 사역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믿는 자는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권세가 있다. 교회 안이나 밖의 사람이 교회의 사역을 위협하거나, 방해하거나, 훼방하거나, 저지하기 위해 행동할 때마다 그것은 악한 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영은 우리가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우리가 사람을 처리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우리가 곤경에 빠질 수 있다. 그걸 어떻게 하느냐고 내가 예수님께 물었다. 너의 기도 골방 은밀한 곳에서 이렇게 말하라고 말씀하셨다. "아무개의 삶에서 역사하고, 이 교회를 방해하고 훼방하는 너 더러운 영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너의 술책을 중지할지어다."
우리가 여태까지 사용했던 것보다 더 많은 권세가 우리에게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런데 일어나서 우리에게 주신 예수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지 않고, "언젠가는 일이 잘 풀리겠지!"라고 바라면서 이리저리 헤매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영원토록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게 하시고, 어둠의 권세들을 이기신 승리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2/ 귀신과 귀신을 다루는 방법
왜 악한 영들이 사람 속에 들어가기를 원하는지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 물리적 세계에서 그들을 최대한도로 충분히 나타내기 위해서는 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몸이 있으면 이 영역에서 그들을 나타낼 수 있는 자유가 더 많아진다. 귀신이 사람의 몸속에 들어갈 곳을 찾게 되면, 그 사람 속에 들어간다.
사람이 귀신에게 완전히 사로잡히게 되면, 그는 영과 혼과 몸이 다 사로잡힌 것이다. 몸은 단지 눌릴 수 있을 뿐이고, 악한 영들이 당신이 사는 집(당신의 몸)에 있을 수 있지, 실제로(최대한의 의미에서) 당신 안에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실제로는 영이다. 인간은 혼을 가지고 있고, 몸 안에 산다. 인간은 신체적으로 죽을 때, 그는 여전히 살아 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인간은 물질인 육체와 비물질인 영혼으로 구성된 피조물이다.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육체는 선하게 창조되었으므로 신체에는 본질적인 악이 없다. 다만 육체도 영혼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타락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인간의 죄악됨이 육체와 영혼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는 '육체로부터의' 구원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육체의' 구원을 가르친다. 정통 신학은 인간을 육체와 영과 혼, 이 세 가지로 구분하는 삼분설을 거부한다. 영혼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본질적으로 영원하지 않다. 영혼은 물질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물리적인 힘으로 파괴될 수 없지만 하나님에 의해서는 파괴될 수 있다. 즉 영혼은 하나님이 유지하시는 능력 없이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행 17:28). 우리는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신자와 불신자 모두 계속 산다. 다만 신자는 그들의 육체의 부활과 영화가 이루어질 구원의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반면,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기다린다. 인간은 전체적으로 타락했으므로 영혼, 육체 모두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은혜의 대상이다. 기독교의 핵심 진리 102가지(R. C. 스프로울) 중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고린도후서 5:6-8
내가 몸을 떠날 때, 나는 주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 " 빌립보서 1:21-23
속사람이 진짜 사람이다. 당신은 영의 존재이다. 당신은 지적인 특성과 감정적인 특성으로 구성된 혼을 가지고 있지만, 몸 안에 살고 있다. 우리의 영은 우리가 거듭날 때 다시 태어난다. 베드로전사 3:4는 말한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
당신의 마음(heart)은 당신의 영이다. 고린도후서 5:17은 말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은 몸일 수가 없다. 당신이 거듭날 때 새로운 몸을 갖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감사하게도, 우리는 훗날 새로운 몸을 갖게 될 것이다). '새로운 사람'이란 '속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은 더 이상 그 안에 마귀의 본성이 없다. 그가 다루어야 할 본성은 바로 육신의 본성이다. 아직 속량되지 아니한 것은 그의 몸이다. 만일 당신의 영 안에 마귀나 귀신이 있었다면, 그들은 없어졌다. 영적 사망의 옛 본성은 지나갔다.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당신의 몸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1-2
다시 태어나는 것은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체험이 아니다. 성령 충만은 신체적인 것도 정신적인 것도 아니다. 그 둘은 다 결국엔 신체적인 것과 정신적이 것에 영향을 미치는 영적인 체험이다. 우리가 거듭나고 성령으로 충만해진 다음에는,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우리에게 달려 있다. 만일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다면, 그리고 속사람이 지배하지 않는다면, 악한 영들이 출입할 것이다. 그들은 육신을 통해서 우리를 지배할 수 있다.
거듭나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이 그의 영에 귀신이 든다는 것을 나는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내게 확신시킬 수 있는 성경 구절은 어디에서도 찾지 못할 것이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때때로 신체적 질병의 경우, 몸에서 처리해야 할 귀신이 있기는 하다.
그의 아내가 말하기를, 내가 설교한 것을 들은 후에 자기가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알았다고 했다. 남편의 뇌에는 뇌세포들이 고갈되었기에 그의 팔 하나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그의 몸을 두루 살필 수 없었다. 그래서 마귀가 그의 몸을 통해(그의 영이 아니라) 역사하면서 그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기가 그곳에 서서 마귀에게 하나님의 소유에서 손을 떼라고 명했어야 했다고 깨달았다. 나는 마귀가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그녀에게 확실히 말해주었다.
우리는 때로 마치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는 세상으로 나가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도움을 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도움은 하나님 안에 있다.
영의 세계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며, 그 세계는 이 물리적 세계보다 훨씬 더 실제적이다. 에베소서 6:12에서 바울이 말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악한 영들은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려고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질병과 아픔으로 사람들을 괴롭히려고 한다. 사도행전 10:38에서 베드로는 질병과 아픔을 마귀에게 눌린 것으로 말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사도행전 10:38.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마태복음 4:24,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마가복음 1:32 이 말씀들을 비교해본다면 사도행전 10:38 말씀이 해긴의 주장처럼 '질병과 아픔 = 마귀에게 눌린 것'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생각된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따로 분리해서 나열했기 때문이다.*
마귀는 아프게 하거나 파괴하는 모든 것의 배후에 존재한다. 인간은 실험을 통해 어떤 것들은 다른 것들에 권세를 행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페니실린은 어던 병균들에 권세를 행사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은 모든 것에 다스리는 권세를 행사한다!
어떤 순복음 목사가 한 번은 내게 말하기를 만일 귀신이 질병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사람에게서 귀신을 잘라낼 수 있느냐고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맹장염에 걸리면 수술을 받고 그 뒤에 좋아지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사람에게 귀신을 잘라낼 수 없기 때문에 그건 귀신일 리 없다고 말했다.
사람에게서 귀신을 잘라내는 것 역시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몸의 어떤 부분이 귀신의 영향을 받는다면, 그때는 당연히 그 부분이 잘려나갈 때 귀신이 영향을 미칠 부분은 하나도 없게 될 것이다. 명백해져야 할 것은 귀신을 잘라내는 문제가 아니다. *뒤에도 나오지만 해긴은 모든 병은 귀신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한다. 나는 이 부분에 동의할 수 없다.*
이들 귀신들은 어떤 종류의 귀신이든지 사람들을 억압하는데, 귀신 억압(oppression)에는 여러 정도가 있다. 때로는 다른 때에 보다 더 많이 억압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 또한 사로잡힘(possession)에도 여러 정도가 있다. 더 많이 잡히기도 하고, 덜 잡히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속한 것을 십분 이용해서 성령의 지배를 받아 이기는 자가 되기로 결심해야 한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신약에는 교회나 믿는 신자가 마귀를 내쫓아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말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마귀를 내쫓아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신약은 믿는 자들 자신이 직접 마귀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하라고 말한다. 만일 그들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마귀에 대해서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은 이미 모두 했단다."
*예수님을 믿는 내가 누구이고 귀신이 누구인지 그 실체를 분명히 안다면 '하나님 귀신을 쫓아내주세요'라고 기도하기도 전에 내가 바로 꺼지라고 명령할 것 같기는 하다. 예를 들어 개가 시끄럽게 짖는다고 해서 눈을 감고 '주님, 개가 조용히 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기 전에 그냥 내가 먼저 개에게 '조용히 해!'라고 명하지 않겠는가?
한편,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한복음 14:13-14 말씀처럼, 주님은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행하신다고 했다. '단, 마귀 쫓는 것만 빼고'라고 하지 않으시고.
또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9:26-29, 이 말씀에서는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16:15-18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야고보서 4:7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 당신에게 마귀에 대한 권세가 없다면 그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야고보는 믿는 자들에게 쓰고 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에베소서 4:27,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말씀의 뜻은 간단하다. '마귀가 당신 안에 어떤 자리도 차지하게 하지 말라.'" "그 말은 네가 그에게 허락하지 않으면 마귀는 네 안에 어떤 자리도 차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인간의 영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권세가 없지만,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그러한 괴롭힘의 배후에 있는 악한 영들을 다스릴 권세를 가지고 있다. 아무도 없는 당신의 집에서 "아무개(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를 통해서 이 교회의 사역을 방해하고, 위협하며, 해치고, 훼방하는 일을 하는 너 더러운 귀신아,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훼방을 중지하라!" 이렇게 선포함으로 그 상황을 처리할 수 있다.
우리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은 매일의 싸움에서(직장에서, 가정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는 이들 귀신들과 맞서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 우리는 마귀를 도망가게 할 수 있다!
3/ 눌린 자들에 대한 사역
단지 성령 충만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마귀에게 굴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마귀에게 굴복하여 당신이 원할 때마다 마귀가 당신을 지배하게 할 수 있다. 당신은 육신에 굴복하여 육신이 당신을 지배하게 할 수 있다. 당신은 세상에 굴복하여 세상이 당신을 지배하게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 그 가다라인이 귀신에 점유되었는데 군대 귀신이 들렸다고 성경이 말하는 것을 주목하라... 그들 중 하나만이 그를 점유한 것인데, 항상 이러는 것이다" "점유하는 귀신이 다른 귀신들을 불러들이는 법이다. 그러나 사람을 점유하는 귀신은 단 한 명에 불과하다. 점유를 하고, 그다음에 다른 귀신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항상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중 하나란다." *한 번에 한 명인지 여럿인지가 중요한 논쟁거리인지는 모르겠으나,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누가복음 8:33, 누가복음에 귀신들(demons, NIV)이 그 사람에게서 나왔다고 했다.*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누구나 다소간에 귀신과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다스림을 받는다…. 구원받는 사람들조차도 이런 영들에 굴복하여 그 지배를 받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일 네가 그들을 허용하면, 그들이 지배할 것이다. 그들은 실재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 관해 내게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마귀가 믿는 자들의 영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그의 생각(mind)이다."
당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아무 데나 원하는 곳으로 빗나가게 하고 평안을 기대할 수는 없다. 사단과 그의 제안에는 당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닫아놓아야 한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당신의 생각을 집중하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완전히 귀신에게 사로잡히게 되면 그 귀신이 그의 음성을 사용하여 당신이 누구인지를 안다고 할 수 있다 하셨다. 내적인 계시인 영분별을 통하여 어떤 종류의 귀신이 그 사람을 점유하고 있는지 내가 알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그 귀신이 나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나가지 않는다면, 그의 이름이 무엇이며, 몇 명이나 안에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위에서는 그들 중 하나만 점유한다고 한 주장과 상반된다* 당신이 이렇게 하기 전까지는 나가지 않으려는 귀신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악한 귀신들이 쫓겨날 때 어디로 가느냐고 예수님께 물었다. 이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 그 이상의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지(내가 그들을 지옥으로 내쫓았어야 했는지)를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더 낮은 계급의 귀신들에게는 네가 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대단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들 귀신들은 마른 곳을 돌아다니며 쉬기를 구한다고 하셨다(마 12:43). 만 그 사람이 받아준다면, 그들은 그들이 나온 곳으로 다시 들어가려 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귀신 문제를 다룰 때는 시간을 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 속에 심어주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마귀에게서 해방 받는 그 해방에서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다. 그 후에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귀신들이 나간 후에 당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우리는 이 분야 전체를 다루는 게 필요하지, 귀신을 쫓아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사실 그를 부당하게 대우한 것일 수 있다. 그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이기보다는 더 해를 끼칠 수도 있다. 만일 그가 후에 바른 일을 하지 아니하면, 그 한 귀신이 나가서 일곱 귀신을 더 데리고 와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악화될 것이다.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성경을 읽고, 교회에 나가며,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중요한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결국 타락하고 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 후에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마귀는 직간접적으로 모든 질병과 아픔의 배후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 말이 항상 문자 그대로 거기에 귀신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은 병자를 치유하는 것과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구별 짓는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 사도행전 10:38, 여기서 베드로는 질병을 사단의 눌림이라고 우리에게 말해준다.
수많은 가지가지의 질병들이 오직 귀신을 다룸으로써만 치유될 수 있다고 나는 완전히 확신한다. 그 귀신을 다루지 아니하면, 모든 머리가 다 닳아빠질 때까지 사람들에게 기름을 바르고 머리에 안수를 해도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왜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한 페이지 안에서 주장하는 걸까? 병자 치료와 귀신 쫓는 것을 구별한다고 했다가,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고치신 것을 질병을 치료한 것이라고 했다가, 귀신을 다뤄야만 질병이 치료된다고 했다가….*
(악한 귀신에 눌린 사람을 안수하여 해방시킨 후 위궤양이 사라진 경험에서) ... 나는 모든 궤양 환자가 그런식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수많은 가지가지의 질병들이 오직 귀신을 다룸으로써만 치료될 수 있다고 나는 완전히 확신한다는 방금 전의 말과는 또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영분별로 알려진 은사는 내가 성령 안에 있을 때 내 삶에서 기능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 말은 내가 버튼을 눌러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 세 번째 주간 화요일 밤에 이 여자를 다시 집회에 데려왔다. 내가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에 안수했을 때 나는 성령 안에 있었다. 하얀 구름이 내 머리 위로 내려와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과 회중석이 사라졌다. 강단이 사라지고 마치 그 젊은 여자와 내가 그 하얀 구름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본 것을 아무도 볼 수 없었고 내가 들은 것을 아무도 듣지 못했을 것이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그들이 들었다.
내가 보니 귀신 하나가 그녀의 몸 밖에 매달려 있었다. 마치 작은 원숭이가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그림에서 본 작은 꼬마 요정 같았다. 그것이 그녀의 몸을 꽉 누르고 있었고, 그녀의 영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에게 명하자, 그는 느슨해지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거기에 누워서 흐느꼈다. 그는 회초리로 맞은 작은 강아지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흐느껴 울면서 자기는 떠나고 싶지 않다고 계속 말했다. *설령 이러한 체험이 사실일지라도 거부감뿐, 읽는 이로 신앙을 견고하게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집회에서 안수를 하지 않았지만, 설교를 듣고 암이 치료된 경험에서) ... 여기에는 영분별이라는 게 없었다. 그녀는 기도를 받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신의 믿음을 통해서 치유를 받았던 것이다. *이 말은 모든 질병이 귀신과 관계가 있다는 주장과 일치하여 단지 안수가 아닌 믿는 자의 믿음으로 귀신을 쫓아내 치료받았다는 것인지, 귀신과는 관련이 없이 믿음으로 질병을 고침 받았다는 주장인지 불분명하다.*
(집회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던 사람을) ... 내가 그를 위해 기도를 해주고 나자 그는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몇 사람 더 기도를 해주고는 우연히 그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렇게 할 때, 나는 성령 안에 있었는데, 악한 귀신이 그의 오른쪽 어깨 위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 악한 귀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라!"라고 명령했다. 내가 그 말을 하자, 그 귀신이 팔을 풀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만일 그것이 나에게 달려 있었다면, 내가 처음 그에게 안수를 했던 바로 그때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나타남이 있지 아니하면, 이런 식으로 사역할 수가 없다.
은사의 나타남은 성령께서 원하실 때 각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지, 사람의 뜻대로 주시는 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지만, 이것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을 세워주기 때문이다.
4/ 귀신들에 관한 질문과 성경의 대답
Q. 그리스도인이 귀신들릴 수 있는가?
A. 귀신 들린다는 것은 마귀에게 영과 혼과 몸이 완전히 점령 당한다는 것을 뜻한다. *위에서 한 번 언급한 바와 같이 정통 신학은 삼분설을 부인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은 마귀에게 점령될 수가 없다. 사실, 마귀는 신자의 허락이 없이는 그 사람에게서 어던 일도 할 수 없다. 성경은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라고 말한다(에베소서 4:27).
당신은 성령께 절반 정도 굴복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굴복할 수 있다. 귀신의 눌림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마귀에게 절반 정도 굴복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굴복할 수 있는 것이다.
Q. 질병과 아픔이 있다는 것은 항상 귀신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징후인가?
A. 모든 질병과 아픔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다. 그러나 그 말이 문자 그대로 사람 안에 악한 영(귀신)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은 모든 질병이 원수의 눌림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어디에?* 어떤 질병을 가져다준 귀신이 몸에 머물러 있어서 질병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 귀신이 다루어져야 한다.
Q. 귀신들을 불러낼 때 그들과 말을 해야 하나?
A. 예수님께서 그 환상에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귀신들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때로는(항상 그러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어떤 종류인지 알아야 한다. 첫째, 귀신에게 명하여 나오라고 해라. 만일 그가 나오지 아니하면, 몇 명이 있느냐고 물어라." *계속 반복되는데, 점유하는 귀신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주장했다가, 몇 명이냐고 물으라고 했다가 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 마태복음 12:45*
Q. 마귀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볼 수가 있는가?
A. 그 사람 안에 있는 마귀가 내가 도시로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았던 것이다. *실로 마귀가 우리를 지켜보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심을 기억해야 하겠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귀신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
Q. 귀신을 다룰 때 일단 그 사람이 행방을 받았으면, 그다음 번 단계는 무엇인가?
A. 사람이 죄에서, 질병에서, 마귀로부터, 혹은 그 무엇으로부터 해방을 받았을 때, 그를 즉시 고백과 간증 및 예배의 훈련 가운데 밀어 넣어야 한다.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마가복음 5:19
Q. 정신 이상자인 사람에게 어떻게 사역하는가?
A. 정신 이상 환자를 다룸에 있어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당신이 따를 수 있는 일정한 패턴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모든 해방(죄로부터, 질병으로부터, 귀신으로부터, 혹은 어떤 악으로부터든)의 참된 치료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바울은 로마서 1:16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 스코필드 성경에는 이 구절에 대한 각주에 "구원"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와 헬라어 단어가 "해방"과 "치유"를 의미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해방시키는 능력이 있다.
나는 내가 안수기도를 해준 기도 손수건을 몸에 지님으로써 몇몇 사람이 어떻게 해방을 받았는지 말했다. 사실은 세 사람이 그 손수건을 10일간 몸에 지닌 후 오후 3시에 해방을 받았던 것이다. 왜 그 일이 그런 식으로 일어났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일어났던 것이다. *이것이 설령 사실이라 해도 책에 쓰지 않는 것이 더 좋았었겠다. 손수건을 신령하게 여기는 것은 우상 숭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마치 광야에서의 놋뱀처럼*
해방의 참된 치료책은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정신 이상자를 다룰 때 때로는 길고 혹독한 믿음의 시련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역사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Q. 왜 귀신들이 인간의 몸속에 들어가 거하고 싶어 하는가?
A. 표현의 범위를 가능한 한 가장 넓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물리적인 것들을 통해서 활동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이유로 해서 그들은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Q. 알코올 중독은 귀신인가?
A. 내 생각에는 알코올 중독이 귀신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목사님께서 안수하실 때, 뭔가 전기 같은 것이 내 온몸에 임했어요. 따뜻한 것이 내 몸 전체를 감쌌어요. 그것은 놀라운 영적 체험이었어요. 둘째는, 그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묶여 있었던 그 알코올 귀신이 나를 떠났어요. 나는 술 항 방울도 잎에 댄 적이 없습니다.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도 한 적이 없어요! *마귀가 역사하여 알코올 중독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술을 끊었다고 해서 모두 다 알코올 귀신이 떠나간 결과로 단정 짖는 것이 올바른 판단인지 의문이다.*
Q. 신자들로 하여금 교회 일을 방해하게 하는 귀신의 활동을 어떻게 중단시키는가?
A. 만일 누가 어느 누가 교회 사역을 괴롭히거나 위협하거나 훼방을 놓거나 그만두게 한다면, 그것은 마귀임을 알아야 한다. 영분별의 은사를 가질 필요는 없다. 마귀를 볼 필요도 없다. 그것은 초자연적으로 알 필요가 없다. 그건 바로 마귀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집 은밀하게 그런 활동을 중단시킬 수 있다. 밖에 나가서 그것을 떠벌일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을 다룰 필요가 없다. 그냥 이렇게 말하면 된다.
"아무개(그 사람의 이름을 대라)를 통해서 교회의 사역을 훼방하고 위협하며 괴롭히고 그만두게 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너 더러운 귀신아,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중단할지어다."
Q. 귀신을 다룸에 있어 성공하려면 가장 중요한 자격 요건은 무엇인가?
A. 기도와 금식함으로,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말씀을 묵상함으로, 그리고 바른 삶을 삶으로써 자신을 준비한다. 1)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 바른 삶을 살지 아니하면, 아무런 확신도 갖지 못할 것이고, 마귀가 당신을 비웃을 것이다. 2)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 당신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당신의 권리와 특권을 알지 못한다면 담대할 수가 없다.
Q. 하나님께서 마귀에 대해 뭔가를 해주시도록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가?
A. 그렇지 않다. 성경은 "너희는 …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라고 말한다. 그 문장의 양해된 주어는 당신이다.
"나는 저 TV 설교자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편지를 써야겠어. 그에게 믿음이 있더구먼. 아마 그가 기도하면, 마귀가 나를 내버려 둘 거야."
진지하게 말하지만, 아니다. 우리는 마귀를 다스리는 권세를 취해야 한다. 우리에게 그를 다스리는 권세가 있다는 게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다. 누구 딴 사람에게 뭔가를 해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 *반복되는 내용인데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9:26-29, 이 말씀에서는 기도해야 한다고 했고, 기도는 당연히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내가 마귀에게 대적하며 물리치는 기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 둘 다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마귀가 어떤 일을 하며, 그가 어떻게 그들을 병들게 하고, 성공 못하게 하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마귀에게 그들을 다스릴 지배권을 내어주는 셈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바를 이야기하면, 마귀는 겁을 먹고 당신을 피해 도망갈 것이다. 예수의 이름 때문에 당신에게 권세가 있는 것이다.
Q. 마귀의 궤계에 관해서 우리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영적인 은사들을 사용하시는지 예를 들어주실 수 있는가?
A. "젊은이, 당신 바로 앞에 내가 보니(당신 앞 바로 딱 한 걸음 되는 곳에) 검은 벽이 있어."(나는 성령 안에서 검은 벽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그래서 당신이 그쪽으로 발을 딛는 순간 당신은 가는 거야.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몰라요. 하지만 당신 바로 앞에 뭔가가 있어. 나는 이걸 아주 잘 알아. 만일 당신이 이 제단에 나와 당신의 마음을 예수님께 드리면, 당신은 구원을 받고 그런 어둠에 절대로 빠지지 않을 거야" 그 젊은이는 나오지 않았다... 그 젊은이가 밖에 나가 술에 취했어요. 그는 집으로 간다고 생각했지만, 엉뚱한 집으로 들어갔어요. 그는 문을 쾅쾅 치고... 그 집주인은 누가 들어왔는지 알지 못했죠. 그는 산탄총 두 발을 그 청년의 얼굴에 발사했습니다... 그 가련한 친구는 영원의 세계로 가버렸다. 그것이 하나님의 잘못이었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멈추게 하려고 노력하셨다. 하나님께서 그의 주의를 끌려고 최선을 다하셨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않았다. 그에게는 들을 힘이 있었다. 왜 하나님께서 그를 지배하지 않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역사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성령 안에서 검은 벽을 봤다는 것은 내게 이 책에 대한 거부반응을 더해 준다.*
Q. 당신이 일단 해방 받았다면, 어떻게 그 해방을 유지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A. 사람이 해방을 받은 후에는 그의 생활방식(그의 삶의 스타일)과 그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여러 번 바꾸어야 한다.
당신이 과거에 생각하던 것과 같이 계속 생각한다면, 마귀는 바로 돌아올 것이다.
해방 받은 상태 그대로 있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어야 한다. 악에서 떠나고 선을 행해야 한다.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매일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동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