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줄거리 및 핵심요약 |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이 진실일까? (알베르 카뮈)
1. 내가 이방인을 읽은 이유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시절, '이방인'이라는 제목이 마치 제 모습처럼 느껴져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전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첫 문장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구절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2. 이방인의 주인공: 가식 없는 영혼, 뫼르소
이 책은 자신의 감정에 너무나도 충실한 나머지, 사회적 가식을 일절 부리지 않는 주인공 뫼르소의 이야기입니다. 카뮈는 특유의 건조한 문체로 인물의 성격을 극대화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처음엔 '주인공이 사이코패스인가...?'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웠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의 태도가 너무 극단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만큼, 뫼르소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도덕적 기준을 거부합니다.
3. 이 책의 추천 독자
세상이 정한 도덕적 기준에 문득 회의감이 드는 분
인간관계 속에서 내가 마치 '이방인'처럼 느껴져 외로웠던 분
고전 문학을 통해 생각의 틀을 깨보고 싶은 분
더 자세한 책 내용 및 제 인사이트는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rkarbf071/224166729230
현재 스스로에 대한 감상, 내가 하는 생각들, 그리고 내 인생에 대한 자조적 감상을 듣던 친구가 나 같다며 추천해준 책.
원래도 읽으려 했으나, '너가 하는 얘기나 생각들을 들으니 넌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주인공이 하는 말들이 너와 똑같다.'라는 말을 듣고 당장 구매를 갈겨버린 책이었다.
인생을 알코올과 온갖 도파민, 사람들에 둘러쌓여 있으나 내게 안겨지는 건 한시적인 관계들에 대한 회의감, 인생에 대한 불만과 괴로움, 고독, 버려진단 두려움 등을 한 데 뭉쳐 '대3병'이라 칭하던 시기. 나는 이방인을 만나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있구나 싶어 위로를 받게 된다.
장황하게 말하고 나서 하기엔 부끄러운 고백이나, 아이러니한 건, 막상 이 책 내용이 머릿속에 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불분명한 기억 속 드문드문 기억나는 건 어떤 장례식... 그리고 문득 조금씩 엿보이던 카뮈의 가치관... 세계관... 그리고 아주 크게 묻어나던 인생과 인간에 대한 회의감... 상실... 고독... 그 어떠한 것들.
글을 쓰다보니 기억나는 것은, 마지막까지 주인공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직과 미련함, 신념과 고집 그 어디 사이에서 제 자리를 지키던 주인공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그마저도 공감이 갔던 기억도 새삼 다시 떠오른다. 누군가는 전혀 공감 못할 사고방식인 걸 알지만, 나였어도 그 상황에서 그랬을 것 같아서. 그럼에도 누군가 '왜'라고 묻는다면, 대답할만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서 얼버무릴 것을 알기에. 그렇다. 나도 '왜'인지를 몰라서, 주인공도 그 이유를 못 찾아서, 혹은 카뮈가 의도적으로 알려주지 않아버려서. 아마 그래서 책의 내용이 더 불분명한 기억으로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이나마 삶의 의미를, 활력을 되찾은 지금은,
낙관적 허무주의와, 매 순간에서 가치를 찾으며 사소한 것에도 감사해하는, 속히 말하는 '소확행' 그 두 경계의 사이를 넘나들며,
나도 나를 모르는 채로, 하루는 에너지가 너무 넘쳐 터져나오려 하는 에너지를 주체 못해서 곤욕을 치루고, 하루는 바닥한 에너지를 긁어모으려 애쓰며 고요한 나날을 보내고.
그런 혼동스러운 나날들을 보내는 지금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난 여전히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에 공감하고, 속이 뻥 뚫린 것처럼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무엇보다 나와 정말 똑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으며 책을 덮게 될까?
내용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음에도,
어떤 결말이 기다릴지 몰라
다시 건들지 못한 채로
책장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나의 이방인.
구토의 주인공은 싯다르타의 전반부와 굉장히 유사하다.
삶의 진정한 의미, 본질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그것을 망각하며 산다.
따라서 그들은 속세를 거부한다.
본질을 망각한 채 반복되는 일상에 마취되는 삶을 혐오한다.
그런데 이러한 본질을 향한 깊은 자기침전은 교묘하게 자신을 타인보다 '우월한 존재'로 만들진 않는가?
하지만 정작 행동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우리의 일상을 작동시키는 자들은 누구인가?
로캉텡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동시에 그 일상의 덕택을 보고 있진 않는가?
무엇보다, 구토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우리 모두가 삶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때때로 허무에 잠식되기도 한다.
그것은 특별한 것도, 우월한 것도 아닌 그저 생리현상이다.
또한 우리는 이유 없이 존재한다고, 말그대로 죽지 못해 살 뿐이라고 냉소하지만 그는 끝내 삶의 이유를 만들어내며 불멸의 존재로 재탄생하길 꿈꾼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선 동의가 어렵다.
나는 누군가의 제자이며 친구고, 아들이며 행인이기도 하다.
그 무엇도 내가 아니며 동시에 모든 것이 '나'이다.
이 집대성이야말로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엔 결코 닿을 수 없고 그 구성 요소에만 충실할 수 있을 뿐이다.
시종 구토감만 느끼다 시공간을 초월하길 꿈꾸는 주인공은 내 생각엔 그저 미성숙하다.
카뮈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가 시지프 신화에서 제시했던 부조리의 극복.
그것은 본질을 알 수 없음에도 돌을 굴리고 허무함을 삼키며 언덕을 오르는 저항정신 그 자체였다.
실존에 집착하며 자신을 우상화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와 때때로 그것을 망각하더라도 결국은 순간의 충실함으로 변화무쌍한 실존을 창조해내며 부조리를 극복해낸 자.
나는 후자의 삶을 선택하고 싶다.
1. 처음부터 끝까지 뫼르소의 독백으로만 진행되는 문체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살인 시퀀스와 엔딩의 독백의 묘사가 정말 또 두세번 읽을 정도로 좋았다.
2. 삶에 무관한(국문에서 이 단어를 이방인이라고 번역했다) 뫼르소의 태도가 죽음을 지향하는 것 처럼 보였고 2부에서 그의 삶이 죽음을 지향하는 것에 그치지않고 실질적으로 죽음을 향하게 되서야 삶의 유희를 깨닫는 이야기로 보았다. 그래서 무관한 태도의 인간상과 허무주의에 대한 비판과 그런 주인공을 벌하는 소설로 읽었는데 이방인에 대한 해석과 작가 본인이 생각하는 소설의 의도는 그와 완전히 반대였고 그 사실이 흥미로웠다.
3. 나는 어쩌면 카뮈와 같은 결말을 추구하는 사람 인 것 같다. 자연과 진실성이라는 결말을 말이디. 그런데 그 결말로 가는 길이 카뮈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진실은 무관한 것과 가깝기보다는 하나하나 사사롭고 무한에 가까운 다양성들을 인식하는 것이 자연과 다양성에 가깝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다 또 다양성을 넓게 또 깊게 인정할 수록 어쩌면 무관함과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참 어렵다.
4. 사실 나는 아직 카뮈가 말하는 허무주의와는 다른… 무관함의 태도가 싸이코패스적으로 다가온다. 아직 그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그 개념을 이해하고 싶어 다른 카뮈의 작품과 실존주의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5. 작품에서 묘사하는 재판장면은 연극적인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준 것 같아 인상깊었다. 그런 연극적인 사회의 체계와 판단에 진절머리가 나다가도 한편으로 동의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동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는 내가 그 진절머리 나는 사회의 일부임을 보여주는 것 같아 불쾌함과 염세주의적인 마음이 올라온다. 하지만 카뮈는 그 부조리함에 안주하지 말고 그것을 반항과 사랑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 한다. 그래서 이방인(부조리)을 읽었으니 다음엔 페스트(반항)을 읽어봐야겠다. (부조리에 관한 에세이,소설,희곡 3부작을 쓰고 반항에 관한 3부작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 3부작을 쓰기 전에 사고사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