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세만 알지 얼마나 멋진 글을 쓰는지 궁금해서 읽어보게된 책.
하루키 작가는 원래 재즈 바를 운영하던 평범한 자영업자였다고 한다. 그 당시 열성적인 팬으로 1978년 혼자 맥주를 마시며 야구를 관전하다가 공이 배트에 정확히 맞추는 소리를 듣는 순간 "소설을 써보자"라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거창한 계획이나 야심같은 것도 없이 찰나의 확신을 즉각 실행에 옮긴 결과였다.
초반 시작 부분이 정말 좋았다. 문단이 짧은데도 거슬리는 것 없이 술술 읽혀서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편안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읽기 힘들어서 190페이지부터는 훑어보듯 읽어 내려갔다.
소설에 한 획을 그은 작가도 평범한 생각을 많이 하는구나 싶었다. 다만 그 깊이와 표현하는 방식만큼은 쉽게 따라 할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정교한 글이었다. 책에 담긴 작가의 솔직한 생각과 삶을 엿볼 수 있어 재미있었고, 나와 비슷한 부분이 나오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성공한? 사람과 조금이라도 닮은 구석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으려나..)
책을 덮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금방 나만의 페이스를 찾아 계속 나아가는 법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남과 비교하기보다 스스로를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는 행동력을 담은 내용들이 와닿았다.
둘째아이를 낳은 이후로 2년 이상 독후감에서 멀어져 있었던지라, ‘아, 읽으면 읽은 거지 뭘 또 글을 써…’라는 마음이 조금은 드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기왕 다시 쓰기 시작한 김에 짧게라도 남겨봐야겠다. 게다가 피터 스완슨이잖아요?
어제는 작가를 조금 검색해보았다. 좋아하는 작가를 업데이트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거의 대부분 범죄 스릴러, 추리 작가들이다. 작품은 즐겨 읽지만 거기서 어떤 교훈을 얻거나,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하게 될 일은 없을 것 같은 류의 작가들이다. 나름 그래도 한강 작가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존경은 하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사람들은 무라카미 하루키도 좋아하고, 알랭 드 보통도 좋아한다던데 나는 그동안 별로 그렇게 와닿지가 않았다. 구글도 뒤져보고 챗GPT도 괴롭혀봤지만 영 와닿는 작가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을 읽어봐야 와닿지. 그렇다고 한국도 아닌데 무턱대고 책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곧 죽어도 영어로 읽어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사람이다.)
책을 고르는 식견을 좀 넓혀보려 했는데 — 에라이, 그냥 원래 좋아하던 작가들 책이나 찾아 읽자 하고 크레마클럽에 들어가 보니 제법 업데이트된 책이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범죄 스릴러 소설 탑3에 무조건 들어가는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작가 피터 스완슨의 새 소설이 몇 권 보였다. 속편이었던 《살려 마땅한 사람들》도 재밌게 읽었었는데, 심지어 또 시리즈로 여겨지고 있는 《살인 재능》이라는 책이 있지 않은가! 릴리가 나온다지 않는가! 뭐 그래서 읽게 되었다는, 구구절절하고도 긴 서론이었다. 본문이 짧을 터라 서론이라도 길게 적어봤다.
역시나 너—무 재밌었다. 지루하지가 않다. 오, 역시 재밌어 하며 숨 쉴 틈도 없이 읽었다. 마사라는 도서관 사서가 자신의 남편이 연쇄살인범일지 의심하다가, 대학 시절 친구였던 릴리에게 연락을 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전 책들을 내가 읽어서인지, 아니면 책을 정말 잘 써서인지 등장인물도 전혀 헷갈리지 않아 좋았다. 내가 아마 밀레니엄 시리즈 읽다가 트라우마가 생겼나 보다. 지루할 틈 없이 금방 반전이 찾아온다. 어? 책 끝나나? 하며 살짝 수면 위로 올라와 숨 좀 돌리려는 찰나에 또 사정없이 스릴러의 물 밑으로 끌고 내려간다. 그리고 순식간에 끝난다.
뭐야, 벌써 다 읽었네. 거의 단편소설이네 하고 보니 500페이지가 넘더라. (e-book이라 종이책보다 페이지 수가 많다.) 말도 안 돼. 뭐 아무튼 너무 재밌었고, 그냥 대놓고 시리즈물로 계속 써주면 좋겠다. 피터 스완슨 당신, 내가 좋아하는 작가야.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쭉 스릴 넘치는 소설 써주세요.
그렇게 그렇게 유명한 하루키의 책을 나는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허허.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로 책 한 권을 낼 수 있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인 것 같다.
나에게 하루키는 굉장히 부지런하고 성실한 달리기하는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인데 이렇게나 쓴 책이 많았는지도 오늘 처음 알았다.
덕분에 위시 3권 적립!
김영하 작가는 에세이 보단 소설이 더 좋은것 같다. 나쁘지 않지만 하루키의 에세이랑 비교해보면 나는 하루키파. 그래도 이 분의 인생을 조금은 사적으로 볼 수 있었는데, 더 젊은 시절로 돌아 간다면 독서를 더 많이 하고 싶다는 김영하씨의 조언이 제일 좋았다. 꾸준함에 대한 내용도 좋았고.
“인간은 보통 한 해에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고, 10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