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은 역사책에 꼭 나오는 인물이다. '실학' 중에 '중상학파' 또는 '북학파' 인물로 소개된다. '수레와 화폐를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는 이야기는 시험 단골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지원은 소설가로도 유명하다. 특히 양반의 위선과 조선후기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풍자소설을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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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
허생은 남산 밑에 가난한 선비로, 10년을 목표로 공부를 하다가 아내의 불평 때문에 3년을 남겨 놓고 중단한 뒤, 집을 나간다. 장안의 갑부 변씨를 찾아가 만 냥을 빌린다. 그 길로 안성으로 가 전국의 과일을 매점한 뒤, 값이 오르길 기다려 10배에 팔아 10만 냥을 손에 거머쥔다. 그 돈을 가지고 제주도로 건너간 그는 제주도의 특산물인 말총을 사들여 망건 값이 오른 후 팔아 다시 10배의 이익을 올린다. 그리고 나서 도적떼의 소굴로 들어가 그들을 설득하여 한 사람 당 백 냥씩 주고 여자와 소 한 마리를 데리고 오게 하여 이천여 명을 무인도에 정착시킨다. 3년 후, 일본 나가사키에 흉년이 들자 그들에게 곡식을 팔아 은 백만 냥을 갖고 본국에 돌아온 허생은 백만 냥이란 돈이 쓸데가 없다 생각하여 50만 냥을 바다 속에 던져 넣고 남은 50만냥 중 10만 냥을 변씨에게 주고 나머지는 빈민을 구제하는 데 쓴다.
#호질
한 밤 중에 호랑이가 부하들을 모아 놓고 저녁거리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의원의 고기를 먹으려 하나 의심이 나서 먹을 수 없고, 무당의 고기를 먹으려 하나 불결해서 먹을 수 없고, 결국 맛 좋은 선비의 고기를 먹기로 결정한다. 이에 큰 호랑이는 부하들을 남겨 놓고 골짜기를 내려오기 시작한다. 이때, 정지읍에 사는 청렴함으로 유명한 유학자 북곽선생이 이웃 마을의 동리자라고 하는 과부의 집에 가서 그 과부와 밀회를 하고 있었다. 그 과부에게는 성이 다른 아들이 다섯 명이나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엄마의 방에서 남자의 음성을 듣고 엿보니, 그 남자는 북곽선생이었다. 그들은 북곽선생이 밤중에 찾아 올 리가 없고, 여우가 엄마의 아름다움을 탐내고 북곽선생으로 변하여 엄마를 홀리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여우를 잡으려고 몽둥이를 가지고 엄마의 방에 뛰어든다. 북곽선생은 겨우 도망쳐 나온다. 그러나 북곽선생은 캄캄한 밤에 엉금엉금 기어서 밭뚝을 가다가 그만 똥구덩이에 빠지고 만다. 그는 겨우 발버둥을 쳐서 똥구덩이에서 간신히 기어 올라왔다. 거기에는 큰 호랑이가 앉아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에 북곽선생은 호랑이에게 '호왕'의 인격을 칭찬하며 한 번만 자기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빈다. 호랑이는 북곽선생을 향하여 크게 질책을 하며 양반의 위선적인 생활을 꾸짖는다.
#양반전
강원도 정선 고을에 한 양반이 살고 있다. 그는 학식이 높고 현명하고 정직하고 독서를 좋아하고 손님들을 초대하여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양반은 너무 가난해서 나라에서 빌려주는 곡식을 타먹고 살았다. 이렇게 여러 해를 보내는 동안 빚은 산더미처럼 쌓여 천 석이나 되었다. 이 고을에 순찰차 들린 관찰사가 관곡을 조사하다가 천 석이 빈 것을 발견하였다. 화가 난 관찰사는 그 이유를 알고 당장 그 양반을 투옥하라고 했다. 군수는 양반을 투옥할 수도 그 빚을 갚도록 할 수도 없이 난감했다. 양반은 어찌할 바를 몰라 울기만 하고 양반의 아내는 양반의 무능을 질타하였다. 이때 이웃에 사는 동네 평민 부자가 그러한 소문을 듣고 양반의 신분을 동경하던 중이라 이 기회에 양반을 사서 양반 노릇을 해보겠다고 작정하고 양반을 찾아가서 양반을 팔라고 한다. 양반은 기꺼이 승낙하고 평민 부자는 대신 환곡을 갚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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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도 양반이면서 양반을 신랄하게 까는(?) 독특한 사람 박지원. 이게 바로 조선판 스웨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