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것도 없이 너무 유명한 책 아닌가. 나 역시 『시간을 파는 상점』의 1쇄를 읽었던 사람으로서, 어느새 100쇄라니! 놀랍기도 하고 당연하다 느껴지기도 한다. 무려 7년 만에 다시 이 책을 만나고, 다시 읽으며 뭉클함도 그때의 다짐들도 다시 떠올려본다. 또 그때의 내가 남긴 감상문을 읽으며, 또 조금 더 젊었던 내 생각들을 느껴보기도 하고.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7년이 지나 읽어도 너무 좋은 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만나고, 읽으며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기를 바라본다.
아래는 7년 전 내가 남긴 감상문의 전문.
누구에게나 한번쯤, 되돌리고 싶거나 다시 선택하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 후회가 세상을 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후회에는 미련만 남는 것은 아니니까.
삶은 지금의 시간을 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아쉬운 건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ㅡ본문 중에서
나는 소방공무원의 딸이다. 배 속에 아이가 있던 무렵, 정년퇴직하셨으나 나는 평생 소방공무원의 딸이었고 앞으로도 나는 소방공무원의 딸일 것이다. 우리 가족들은 아빠가 집에 있는 날에도 창밖에 사이렌 소리가 나면 화들짝 놀랐다. 잠잠해진 어두움에도 쉬이 잠을 청하지 못했다. 불이 자주 나는 동네가 아니었어도 가족에게는 그 소리는 비명 같았다. 언제인가 수해로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던 아빠는 주황색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현관에서 옷을 대충 벗고 들어오셨고 아빠 자동차는 어디론가 떠내려가 아직 못 찾았다는 말을 들었다. 당연히 사람이 먼저였기에 당연한 선택이었으나 우린 그 후 한 달이 넘도록 차가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잔상이 한 달보다 더 길었다.
그 이듬해, 나는 아빠에게서는 탄내가 난다는, 어깨에 앉은 재가 불 끄는 가장의 무게라는 내용의 시로 큰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엄만 신문에 난 내 시를 읽곤 울어버렸고 아빠는 소방서 전체에 아이스크림을 냈다고 했다. 내게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저 아이들이라면 다 괜찮은 사람.
이 책의 서두에는 소방관의 유서가 나온다. 사실 이 책이 처음 나올 당시, 난 그 유서를 읽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그 무렵 아빠는 큰 화재에서 약간의 청력과 30년을 함께 한 동료를 잃었다. 아빠는 왼쪽 귀가 약간 멍멍하게 물속에 있는 듯하다고 했고. 오랫동안을 눈물로 지내야 했다. 그 후 아빠는 바쁘고 복잡한 곳에서의 승진 대신 작은 안전센터를 택했다. 아빠는 퇴직 식도 거절했다. 원래라면 그 동료와 함께했을 퇴직 식을 혼자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아빠의 35년은 작은 종이상자, 그 위에 살짝 튀어나온 쓰던 칫솔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이 책을 읽고 있다.
서론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이제 진짜 책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간단히 배경을 이야기하자면 소방관이었던 아버지를 잃고 엄마는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온조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으나,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몇 가지의 아르바이트를 실패한 후 세상을 확실히 배운다. 돈과 세상의 속도를 배워버린 것이다. 물론 그녀의 엄마는 시간이 그렇게 각지지는 않았다는 말로 자신의 아이를 위로하지만, 온조는 이미 돈과 세상의 상관관계를 이해한다.
그렇게 이야기의 시작인, 시간을 파는 상점을 연다. 아빠의 따뜻함을 꼭 닮은.
온조는 누군가 훔친 물건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기도 하고 남의 할아버지와 밥도 먹는다.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의 미련과 간절함도 배달한다. 그리고 세상과 등지고 싶은 소년의 마음도 붙잡아주고, 친구의 풋사랑도 엄마의 안타까운 사랑도 잡아준다. 분명 시간인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함께 있고 싶은 사람과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흐르고 싫은 사람과의 시간은 더디다. 하지만 안타깝고도 당연한 것은 그럼에도 시간은 똑같이 째깍째깍 흐른다.
누구에게나 한번쯤, 되돌리고 싶거나 다시 선택하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 후회가 세상을 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후회에는 미련만 남는 것은 아니니까. 후회 속에는 분명 교훈도 남는다. 시간이 똑같이 째깍째깍 흐르기에, 다음 시간에는 절대 실수하지 말자고, 이 흐르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고 다짐할 수 있는 교훈.
모두 알겠지만, 시간이 쉬지 않고 흐르기에 귀한 것이다. 내 마음대로 멈추거나 잘라둘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시간이 금이라는 말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책에서처럼, 시간은 지금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것. 스스로가 그 시간을 놓지 않는다면 또 다른 어딘가로 안내할 테다.
황진이의 마음처럼 동지의 긴 밤을 잘라두고 님 계신 어느 밤에 붙여두진 못하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1분은 1초도 되고 1시간도 되는 것. 그게 우리가 아는 시간이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햄릿광대 난장』이라는 책으로 햄릿을 바탕으로 한 배리어프리 공연의 희곡이다. 사실 희곡이라는 장르 자체를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에, 이 책도 읽히기도 전에 선입견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햄릿을 읽은 사람이라면 색다른 시선으로, 햄릿을 읽지않은 사람이라도 인물간의 감정선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책이 만들어진 의도 자체가 발달장애인들과 가족들을 위한 공연이고, 이 책도 연극을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공연의 감동을 나누어가졌으면 좋겠다는 의도이니, 그 선함 자체로 이 책을 만나보는 것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삽화도 발달 장애의 창작자의 작품이다.) 우리가 이런 작품들에 관심을 가진다면, 이 책을 시작으로, 작가의 바람대로 모든 장애유형을 위한 극본이 탄생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햄릿광대 난장』은 햄릿에 등장하는 광대를 재해석한 내용이다. 햄릿의 대사가 군데 군데 등장하기도 하고, 황진이의 시를 활용한 대사 등도 있어 읽는 내내 “아는 문장”찾기를 하는 묘한 재미가 있었다. 또 햄릿과 광대의 원 캐릭터와, 이 작품에서의 캐릭터를 비교하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일이기도 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방향으로의 전개와 새로운 형태의 복수를 읽으며 아주 작은 전환으로 이렇게 다른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것이 상상력과 창작물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우리 역시 조금만 눈을 돌리면, 더 다양한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도 했고.
스토리 자체도 무척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캐릭터들의 설정이나 극을 위한 분위기 등도 내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 앞 부분에 연극, 극본 등에 대해 무척이나 쉽고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어 우리 아이도 『햄릿광대 난장』을 나눠 읽으며 태어나 처음 접해보는 극본에 큰 흥미를 느껴했다. 사실 희곡이 글로 읽을 때, 다른 문학에 비해 몰입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왔는데 『햄릿광대 난장』를 읽으며 그런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햄릿광대 난장』은 쉽게 씌여진, 또 다르게 씌여진 햄릿이다. 아니, 우리 이야기다. 원래 사람의 감정이란 복합적으로 뒤섞여 자라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햄릿광대 난장』을 읽는 내내 복잡미묘한 사람의 감정들을 되짚어보고,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오래전 드라마로 보았던 황진이를 책으로 보니 그녀가 더욱 더 가엽고 더 멋지게 느껴진다. 누구의 무엇이 되기를 거부하며 치열하게 자신을 성찰했던 인물이다. 시대가 그리고 신분이, 여자라는 존재가 자신을 속박함에도 더 고집스럽게 자유를 갈망했던 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누구나 황진이를 알지만 아무도 황진이를 모른다는 말에 공감한다. 황진이의 고백으로 전개되며 시대를 반영하는 고급진(?)단어를 많이 적으셔서 읽는데에 방해가 되는 것을 제한다면 훌륭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