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낡은 책장을 덮으며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다. 삼십 년도 더 된 소설 속 초등학교 교실 풍경은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선 회사와 조직체 속 인간 군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 부조리한 질서에 순응하거나 권력의 단물에 취해 비겁하게 눈감는 이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마주하는 일상이다.
☝️ 이 씁쓸한 기시감은 단순한 문학적 감상을 넘어 숨 막히는 현실의 무게로 다가와 목을 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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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굴종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안식
🔹️ 한병태가 저항을 포기하며 흘린 눈물은 무력감의 증표다. 엄석대가 구축한 견고한 질서 속에 편승하자마자 보장되는 '소극적 특권'은 투쟁의 의지를 꺾고 안락함을 선사한다.
🔹️ 자유와 합리를 대가로 지불하고 얻은 부당한 평화는 영혼을 서서히 잠식하며, 인간을 체제에 길들여진 순종적 존재로 전락시킨다.
🔹️ 이는 성과와 안정이라는 명목 아래 부조리를 묵인하며 살아가는 현대 직장인의 비애와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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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몰락하는 왕국과 기회주의자의 민낯
🔹️ 절대 권력의 기반이 흔들리는 순간, 침묵하던 대중은 비로소 꿈틀대기 시작한다.
🔹️ 엄석대의 비행을 가장 격렬하게 고발하며 달려드는 무리는 놀랍게도 그의 총애를 갈구하던 자들이나 최측근이었던 이들이다.
🔹️ 권세의 향방에 따라 순식간에 안면을 바꾸는 기회주의적 속성은 인간 본연의 추악함을 여실히 증명한다.
🔹️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권력 지향적 태도는 시대를 막론하고 조직의 생존 원리로 작동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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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준비되지 않은 자유가 초래한 의식의 파행
🔹️ 엄석대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투표와 토의는 예기치 못한 혼란만 가중한다.
🔹️ 민주적 절차라는 형식은 갖추었으나 내면의 독립을 이루지 못한 아이들은 근거 없는 승리감에 취하거나 여전히 과거의 중압감 속을 헤맨다.
🔹️ 정의로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 또한 정의로워야 한다는 명제를 망각한 대가는 혹독하다.
🔹️ 외부의 압제에서 벗어나더라도 스스로를 통제할 도덕적 힘이 부족하다면 또 다른 형태의 야만을 마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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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리 :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영웅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 성인이 된 병태가 마주한 동창들의 현실은 더욱 참혹하다. 부정한 방법으로 부와 권력을 거머쥔 이들이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사회 구조는 깊은 절망감을 안긴다.
🔹️ 어린 시절의 교실은 결국 우리 사회의 거대한 축소판에 불과했으며,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풍성한 식탁 모퉁이에 끼어들기 위해 분투하는 '성인 한병태'로 살아간다.
🔹️ 정의보다 실리가 앞서는 세상에서 진정한 영웅의 의미를 묻는 이 소설의 울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26#5 고독한 용의자
2026.02.21~03.03
⏩️씁쓸한 반전
✅줄거리
홍콩의 낡은 아파트에서 한 중년 남성이 숯을 피우고 자살하는데, 그 방 안에 시체가 발견된다. 그런데 그 시체는 유리병 속에 여러 토막으로 나뉜 채 보존액에 담겨 있었는데 (심지어 머리만 2개가 발견되었다) 유력 용의자였던 그 방의 주인이자 자살의 대상인 셰바이천이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집 밖에 나간 적이 없는 은둔형 외톨이로 밝혀지며 수사가 답보에 빠진다. 그리고 형사들은 그의 절친이자 옆집에 살면서 ‘무명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명작가 칸즈위안을 의심하며 그를 조사한다. 그러나 조사를 하면 할수록 그가 굉장히 똑똑하다는 것과 그가 범인이 아닐 것이라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동시에 칸즈위안은 셰바이천의 외삼촌 셰자오후를 범인이라고 주장하는데, 경찰의 수사력이 이에 더해져 시신 중 한 구는 셰자오후의 양딸로 극심한 학대를 받아온 궈쯔닝으로 밝혀져 외삼촌을 체포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에 경찰은 사건의 진짜 전말을 알게 되는데, 토막난 시체는 궈쯔닝과 셰바이천으로 셰바이천은 뇌암이 발견되어 시한부 인생을 살다 죽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할 수 없었던 셰바이천은 친구 칸즈위안에서 자신을 토막내서 보관하며 자신이 은둔형 외톨이로 사는 척 해달라고 부탁했고, 궈쯔닝은 계부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자살한 것이었다. 그녀는 온라인으로 만나 깊은 관계로 발전한 더듬이에게 시체를 토막내달라는 유언을 한다. 여기서 더듬이는 진짜 은둔형 외톨이이자 칸즈위안의 어릴적 친구이자 이제까지 셰바이천인 척 하고 살았던 숯을 피워 자살한 사람이었다.
✅느낀점
잔인하고 기괴한 범죄현장과 울적한 학교폭력 현장, 렌털 애인이라는 서비스. 이런 것들 것 소설 전반의 분위기를 기괴하게 만들었다. 누가 진짜 범인일지, 칸즈위안이 사실 경찰을 속이려 작업을 거는 것이 아닐지 의심하면서 책을 보게 되었는데, 더듬이의 존재가 나타났을 때 안타깝고, 셰바이천의 존재가 뒤집어지며 반전을 주었다. 칸즈위안의 우정을 대단한 우정을 엿볼 수 있기도 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뭔가 죄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이 사회가 참 고독하고 씁쓸하고 살기 팍팍하다고 느껴지는 마무리였다.
*해사하다: 얼굴의 희고 곱다랗다 / 표정, 웃음소리 따위가 맑고 깨끗하다 / 옷차림, 자태 따위가 말끔하고 깨끗하다
*쇼트브레이크: 짧은 휴식, 휴가
*강골: 단단하고 굽히지 아니하는 기질 혹은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
*사환: (예전 회사나 금융권에서) 심부름이나 단순 업무를 맡는 직원 / 보통 벼슬살이를 의미
*뇌까리다: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마구 지껄이다
듣기만 해도 좋은 단어 퇴근!
하지만 책의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예상치 못한 결말이었지만, 그래서인지 더 기억에 남는다.
퇴근을 하지못하고 가정과 단절된 "회사원" 아버지
실업률 90%인 세상에서 희망을 잃고 자포자기한
"담요" 아들 ( 책에선 실업자들을 담요로 부른다 )
오만가지 취미를 유행으로 (심지어 입양까지) 즐기는 소수의슈퍼리치
인간의 존엄성까지 자본에게 짓밟혀버린, 멀지않은 미래상으로 보인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이 발전할수록 부는 소수에게 집중되고 소수는 더욱 견고해진다.
다수는 단지 먹고살기위해, 혹은 다수중의 소수가 되기 위해, 소수들을 위해 일한다. 나 또한 그렇다.
어쩌면 좋을까. 결국 먹고살려면 열심히 일해야지..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국의 담요들이여 우린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