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 윌리엄즈의 부드러운 연필화 그림이 포근하게 이야기를 감싸 안는다. <샬롯의 거미줄>은 1952년 발간 이래, 미국에서 꾸준히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아이들이 선택하는 좋은 책으로 선정되어 읽히고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경쾌하면서도 진지함을 잃지 않는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가끔 아이들의 책이나 그림책에서도 엄청난 무언가를 발견할 때가 있다. 특히 고전으로 불리는 책에는 더더욱.
.
이 책은 50년이상 동안 사랑받고 있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
사람과 동물 사이의 우정과 동물들 사이의 우정.
생과 사.
그리고 부모님의 아이에 대한 사랑과 다른 관점.
아이의 성장기.
동물의 성장기.
어른이 되는 과정도.
.
진실된 우정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마냥 주는 것이 좋은 우정은 아니다. 하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많은 것을 해줄 때에만 우정이 가능할테지.
.
펀의 아버지 입장이 상당히 좋았다. 엄마 입장에서 동물들과 하루종일 보내며 동물들의 대화를 듣는다는 딸이 걱정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걸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생각하며 두둔해주는 아버지가 좋았다.
.
샬롯이 끝까지 자신의 친구 윌버를 위해 도움을 주고자 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책임은 다한다. 그리고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다.
.
윌버는 자신이 받은 사랑과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고, 끝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정성을 샬롯에게 다한다.
.
가장 좋았던 것은 샬롯이 써준 ‘대단한’ ‘눈부신’ ‘겸허한’ 돼지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그에 맞춰서 살아야 하는 것처럼.
.
템플턴이란 쥐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를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그저 그가 사는 방식이며, 어쨌든 재주 많아, 다른 동물들을 도와주니까. 원래 성격이 어떻든 그것 또한 그가 베풀 수 있는 이로움이니 그로써 만족해야 할 듯 하다.
.
아이들의 책에서 또 인생을 배웠다.
타임지 칼럼 중 <왜 모든 동화는 약간 슬퍼야 하는가>를 읽은 것을 계기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잠시 칼럼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자면
-------
나도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아이들이 가득한 강당에서 “이 가운데 [샬롯의 거미줄]을 알고 좋아하는 친구가 있나요” 하고 물어본 적 있나요? 내 경험으로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손을 들어요. 그다음에 “읽고 울었던 친구가 있나요” 하고 물어보면, 번쩍 들었던 손들이 대부분 여전히 번쩍 들려 있어요.
내가 어릴 때 제일 친했던 친구는 [샬롯의 거미줄]을 읽고 또 읽었죠. 마지막 쪽까지 읽자마자 책을 뒤집어 처음부터 다시 읽었어요. 몇 년 전 나는 그 친구에게 그때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았죠.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던 이유가 뭐야?” 나는 물었어요. “다시 읽으면 결말이 다르게 나올 수 있을 거라고, 더 좋은 결말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샬롯이 죽지 않을 거라고?”
“아냐.” 친구는 대답했어요. “그런 게 아니었어. 내가 읽고 또 읽었던 건 결말이 다르게 나오기를 바라서가 아니었고, 결말이 다르게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도 아니었어. 결말이 다르게 나오지 않으리란 걸 똑똑히 알기 때문이었어. 나는 결국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떻게든 괜찮아진다는 것도 알았어.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다시 읽어보면, 모든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어. 그리고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지. 그게 바로 그 책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였어. 그게 바로 내가 들어야 했던 이야기였어. 내가 어떻게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과 나를 비롯하여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신성한 일을 해보려고 애쓰는 모든 작가가 답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에요. 우리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되 그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낼까요?
-------
샬롯과 윌버의 우정을 그린 동화지만 이 책은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한다.
거미 샬롯이 윌버를 위해 쓴 '대단한,근사한, 눈부신,겸허한'이란 단어는 우리 인간관계에서도 참 유용한 칭찬언어 인 듯 하다.
누군가의 기운을 팍팍 살려 줄 수 있는 그런 멋진 단어인 것이다. 그 말에 어울리는 멋진 돼지가 되기 위해 노력한 윌버처럼 칭찬은 누군가를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시키는 마법의 언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