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은 사람
4명
나의 별점
책장에 담기
게시물 작성
문장 남기기
분량
보통인 책
출간일
2014.8.29
페이지
248쪽
상세 정보
강준만 교수가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으로 ‘싸가지 있는 정치’를 제시했다. 상대편을 존중하는 마음과 자세의 터전 위에 서야만 민심을 제대로 읽는 눈이 트여 집권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집권 후에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집권 후의 성공까지 거론한 이유는, ‘싸가지 문제’가 선거는 물론 평소의 정치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좋은 정책과 이념이라도, 싸가지 없게 행한다면 유권자들은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강준만 교수는 진보의 ‘이성 중독증’을 지적한다. 이성 중심의 정치관이 싸가지 문제를 사소하게 보는 데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진보의 싸가지 문제란, ‘무례함, 도덕적 우월감, 언행 불일치’ 등이다. 예컨대,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위, 담론에만 집중한 나머지 예의를 벗어난 표현, 위에서 내려다보듯 가르치려는 태도, 왜 진보를 좋아하지 않고 보수에 표를 찍냐고 호통치는 듯한 자세, 의견이 맞지 않으면 동료에게도 상처를 주고야 마는 행위, 번드르하게 말해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입장을 바꾸는 태도 등이다.
이 책을 언급한 게시물3
김성호
@goldstarsky
싸가지 없는 진보
1명이 좋아해요
김지랭
@gimjiraeng
싸가지 없는 진보
1명이 좋아해요
Hong Hong
@aygofxrfai21
싸가지 없는 진보
가장 먼저 좋아요를 눌러보세요
상세정보
강준만 교수가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으로 ‘싸가지 있는 정치’를 제시했다. 상대편을 존중하는 마음과 자세의 터전 위에 서야만 민심을 제대로 읽는 눈이 트여 집권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집권 후에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집권 후의 성공까지 거론한 이유는, ‘싸가지 문제’가 선거는 물론 평소의 정치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좋은 정책과 이념이라도, 싸가지 없게 행한다면 유권자들은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강준만 교수는 진보의 ‘이성 중독증’을 지적한다. 이성 중심의 정치관이 싸가지 문제를 사소하게 보는 데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진보의 싸가지 문제란, ‘무례함, 도덕적 우월감, 언행 불일치’ 등이다. 예컨대,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위, 담론에만 집중한 나머지 예의를 벗어난 표현, 위에서 내려다보듯 가르치려는 태도, 왜 진보를 좋아하지 않고 보수에 표를 찍냐고 호통치는 듯한 자세, 의견이 맞지 않으면 동료에게도 상처를 주고야 마는 행위, 번드르하게 말해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입장을 바꾸는 태도 등이다.
출판사 책 소개
‘싸가지 있는 정치’를 위하여
강준만 교수가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으로 ‘싸가지 있는 정치’를 제시했다. 상대편을 존중하는 마음과 자세의 터전 위에 서야만 민심을 제대로 읽는 눈이 트여 집권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집권 후에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집권 후의 성공까지 거론한 이유는, ‘싸가지 문제’가 선거는 물론 평소의 정치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좋은 정책과 이념이라도, 싸가지 없게 행한다면 유권자들은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강준만 교수는 진보의 ‘이성 중독증’을 지적한다. 이성 중심의 정치관이 싸가지 문제를 사소하게 보는 데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진보의 싸가지 문제란, ‘무례함, 도덕적 우월감, 언행 불일치’ 등이다. 예컨대,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위, 담론에만 집중한 나머지 예의를 벗어난 표현, 위에서 내려다보듯 가르치려는 태도, 왜 진보를 좋아하지 않고 보수에 표를 찍냐고 호통치는 듯한 자세, 의견이 맞지 않으면 동료에게도 상처를 주고야 마는 행위, 번드르하게 말해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입장을 바꾸는 태도 등이다. 지금부터 싸가지 문제가 어떻게 진보를 나락에 빠뜨렸는지 실감나게 관전해보자.
싸가지 없는 진보는 진보의 무덤이다
정치와 선거는 20퍼센트의 유권자가 결정하는 싸움이다. 유권자 100퍼센트 중 보수와 진보의 고정 지지층이 각 30퍼센트라고 가정해보자. 이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꿈쩍 않는 요지부동 세력이다. 나머지 40퍼센트 중 20퍼센트는 아예 정치를 비토하는, 투표를 하지 않는 세력이다. 결국 남은 20퍼센트의 유권자가 당락을 결정짓는다. 이들은 정치인들의 의사 표출 방식, 즉 ‘태도’에 큰 관심을 갖는다. 여기서 싸가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진보의 언어는 모욕과 쌍욕인가?
진보 진영에선 독설과 욕설을 앞세운 카타르시스 효과를 노린 담론만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 흐름에서 벗어나면 대뜸 날아오는 질문이 “박근혜 정부를 좋아하시나 보네요” 따위의 것이다. 진보의 언어는 모욕과 쌍욕인가? 이기고 싶다면서도 사실상 패배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바꾸고 싶다면서도 바꾸지 않게 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 이들이 진보 진영의 주류로 행세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왜 진보는 감정에 무능한가?
감정에 무능하다 함은 진보에 감정 표현 능력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감정의 포로가 되어 유권자들의 감정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둔감해 무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보수는 대중에게 감정으로 접근한다. 싸가지 있게 굴려고 애를 쓴다. 여자를 꾀는 바람둥이처럼 계산하고 기획한다. 이에 비해 진보는 “네가 어떻게 날 안 좋아할 수 있어?”라고 호통치는 형식이다.
조중동 프레임과 조중동 숭배
이 지구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도는 것도 아닌데, 진보 진영에선 모든 걸 보수언론 중심으로 이해하려 든다. 심지어 “무슨 일이건 조중동의 반대로 가면 맞다”라고까지 말하는 이들마저 있는데, 이 정도면 ‘조중동 숭배’라 부를 만하다. “보수언론은 늘 그르다”는 전제야말로 진보의 필패를 부르는 첩경이다. 보수언론이 그렇게 어리석을까? 그런 생각은 보수언론의 힘은 과대평가하면서 보수언론의 지능은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진보 언론을 키우는 데에 노력하자
안티 조중동 운동을 하는 분들의 생각은 존중하지만, 이젠 ‘안티’보다는 진보 언론을 키우려고 애쓰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진보는 걸핏하면 진보 언론에 대해 불매운동이라는 협박 카드를 꺼내들고 그걸 관철시키는 못된 버릇을 갖고 있다. 진보 언론의 어떤 기사나 논평이 마음에 안 들면 반론을 쓰면 될 일조차도 사과문을 싣게 한다. 정말 ‘싸가지 없는 진보’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행태다.
왜 ‘심판’이 진보를 골병들게 만드는가?
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들이 잘 할 생각은 않고 늘 보수에 대한 비판과 심판으로 자기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데에 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론 절대 안 된다. ‘심판’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진보를 골병들게 만든다. 정권 심판론에만 의지하다 보면 독자적인 의제 설정이나 정책 생산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심판을 외치는 와중에서 싸가지의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판’은 반대편만을 향할 뿐 자신들에겐 적용되지 않는 마법의 주문이다.
진보의 집권을 위하여
“적을 업신여기면 반드시 패한다(輕敵必敗之理)”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다. 이 말 이상 진보에게 좋은 말이 없다. ‘싸가지 없는 진보’는 상대편을 업신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보수를 숭배하거나 존경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 마음과 자세의 터전 위에 서야만 민심을 제대로 읽는 눈이 트여 집권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집권 후에도 성공할 수 있다.
현재 25만명이 게시글을
작성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