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탐식가들

김정호 지음 | 따비 펴냄

조선의 탐식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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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2.2.6

페이지

336쪽

상세 정보

조선은 성리학의 이데올로기가 밥상까지 지배한 시대였다. 사대부 중심의 계급질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왕은 12첩 반상, 양반은 7첩 반상, 중인 이하는 5첩.3첩 반상을 차려 먹도록 강제한 것이다. <조선의 탐식가들>은 이덕무의 '소박한 밥상론'을 소개하며 시작하지만, 그 소박한 밥상론을 배신하고 온갖 핑계로 맛을 탐한 조선의 탐식가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개고기 요리를 바친 자들을 조정 요직에 등용할 정도로 개고기를 탐한 권세가 김안, 갓 부화한 병아리를 즐긴 정후겸, 우심적, 두부, 순채 등을 시로 찬양한 조선 초기의 문신 서거정, 조선 최초의 음식 비평서인 <도문대작>을 남긴 허균 등 가지각색의 이유로 음식을 탐한 조선의 탐식가들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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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온전히 책 한 권을 쓰고 나면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겐 언제나 그것이 글 쓰는 일의 가장 기적 같은 부분이었다." 
 
이 책을 쓴 작가의 글을 책을 다 읽고 나서 보게 되었다.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보며 독자인 나 또한 
많은 생각을 했거늘 
하물며, 작가는 더 그러했을 것이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이른 아침 식사라!
제목에서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어 더 이 소설에 끌렸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삶에서 그런 경험은 본인 내면의 깊숙한 곳에 하나 정도 가지고 있을 터..... 
 
결혼정보회사에서 기획한 프로젝트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책을 읽으면서 이 모임을 주체하는 하나의 미스터리를 상상했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내가 왜 이 책에 매달려 바쁜 3일 간의 시간을 이 책에 빠져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자조 섞인 나름의 변명을 가지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계속해서 상기하게 했다.
소설을 쓰는 작가는 글 쓰는 작업 속에 본인의 영혼을 갈아 넣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특히나 그러한 작업을 통해 나온 작품들은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안녕!"
생각해보니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이별할 때, 만났을 때 
 
이 책에서도 작가는 이 '안녕'이란 개념을 적재적소에 어울리게 사용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전자를 생각했고
책을 읽고 나서 나는 희망적인 후자를 내 마음에 안착했다. 
 
말로써 표현해서 본인의 감정을 사람들 속에 녹여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엔 더 많다. 
 
윤사강.....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에 참석한 맴버다.
부모의 이혼으로 가슴에 상처를 달고 살아가는 그의 사랑 또한 쉽지가 않다.
항공사 승무원에 부인이 있는 유부남 기장과 사랑에 빠졌고,
그가 이혼하려고 했을 때 이별을 선언했다. 
 
국어 교사였던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그에게 '이혼'이란 단어는 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였고 그는 가슴 내면 본인의 감정을 희생 시켰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을 둔 지훈은 매번 자신의 환경으로부터 도망쳐 나오려 했지만
언제나 그의 형 곁을 맴돌고 있었다. 
 
고객 학보를 위해 엄청난 프로젝트를 진행한 미도 또한 이 조찬모임의 결과를 통해 한층 성장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63페이지
이별 후 사랑하는 사람이 매년 6월 3일 생일날 보냈을 것이라고 생각한
책 선물은 본인의 탄생을 직접 동사무소에 신고했던
파리에 있는 아버지였다. 
 
옛 연인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상자 안에 버리고 조찬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이 가져갔던 물건들은
새 주인의 것이 되었을까? 
 
윤사강이 버렸던 '슬픔이여 안녕' 책들은 이지훈이 가져갔다.
이지훈이 버렸던 오래된 카메라(로머)와 필름은 윤사강이 가져갔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도쿄에서 일본의 대지진이라는 천재지변 앞에서
도킹한다. 
 
결혼정보회사의 한 VIP 고객 현정의 과거 연인을 다시 만나게 하기 위한
프로젝트는 그곳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었다. 
 
현정과 지훈은 재결합을 하지 못했지만
"고마워'라는 말로 이별할 수 있었다. 
 
슬픔이여 안녕의 '안녕'이 이별의 아픈 안녕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에 대한 희망적인 안녕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실연의 상처로 오랜 시간 불면증에 시달린 사람들에게 달콤한 잠을 선사했다.
나는 꽤 괜찮은 소설을 읽고 나면 나름대로 이 소설을 모티브로 한 영화의 장면들을 떠 올린다. 
 
이 책에는 윤사강의 직업을 배경으로 '공항'이라는 공간이 자주 등장한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만드는
그곳에 가면 무언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게하는
그런 설레임!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과정에서 사강은 손 바닥의 생명선을 칼로 그었다.
그가 좋아했던 연인 정수의 손등에는 자신의 새끼 손가락 길이 만큼의 상처가 있었다. 
 
이야기의 조합은 어딘지 모를 운명이라는 암시를 가지게 하지만
그것 또한 모두의 마음 속에 있는 자신들의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엄마가 죽는 날에도 아버지는 본인의 직업인 택시 기사로 손님을 태우고 택시를 몰아야했던 미도의 삶은 또 어떠한가? 
 
성공하지 않으면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에겐 아무런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하는 곳이 냉정한 세상이다.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름대로 상상한다.
그들은 그 모임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과거를 지우려 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오래 동안 외면해 오던 자신과의 화해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을 것이다.
삶은 성장의 연속이니깐..... 
 
글을 쓰면서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독자 또한 그러하다.
같이 웃고 같이 울면서 한 권의 책을 통해 사유의 숲을 지나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사강이 오랜 기간 가슴에 담았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감정이
화해로 이끌어지는 부분은 반전과 함께 뭉클한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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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 #소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백영옥 지음
김영사 펴냄

읽었어요
26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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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조선은 성리학의 이데올로기가 밥상까지 지배한 시대였다. 사대부 중심의 계급질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왕은 12첩 반상, 양반은 7첩 반상, 중인 이하는 5첩.3첩 반상을 차려 먹도록 강제한 것이다. <조선의 탐식가들>은 이덕무의 '소박한 밥상론'을 소개하며 시작하지만, 그 소박한 밥상론을 배신하고 온갖 핑계로 맛을 탐한 조선의 탐식가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개고기 요리를 바친 자들을 조정 요직에 등용할 정도로 개고기를 탐한 권세가 김안, 갓 부화한 병아리를 즐긴 정후겸, 우심적, 두부, 순채 등을 시로 찬양한 조선 초기의 문신 서거정, 조선 최초의 음식 비평서인 <도문대작>을 남긴 허균 등 가지각색의 이유로 음식을 탐한 조선의 탐식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출판사 책 소개

조선은 성리학의 이데올로기가 밥상까지 지배한 시대였다. 사대부 중심의 계급질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왕은 12첩 반상, 공경대부는 9첩 반상, 양반은 7첩 반상, 중인 이하는 5첩·3첩 반상을 차려 먹도록 강제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비집고 맛을 탐한 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조선의 탐식가들》은 이덕무의 ‘소박한 밥상론’을 소개하며 시작하지만, 그 소박한 밥상론을 배신하고 온갖 핑계로 맛을 탐한 조선의 탐식가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탐식가도 가지가지, 이유도 가지가지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탐식가는 여럿이지만, 탐식의 이유는 모두 다르다. 먼저 권력과 부의 맛을 밥상에서 느끼려 한 권세가들이 있다. 반정의 주역이자 중종의 사돈으로 권세를 누린 김안로는 개고기 탐식가로, 맛있는 개고기 요리를 바친 자들을 조정 요직에 등용해 구설에 올랐다. 또 다른 반정의 주역 박원종과 누이 문정왕후를 등에 업고 전횡을 휘두른 윤원형은 중국 진나라 무제 때의 재상 하증何曾을 흉내 낸 식전방장食前方丈(사방 열자 가량의 상에 차린 진수성찬)을 차려 먹었고, 때로는 왕의 요리사인 선부와 숙수를 불러 잔치를 벌이기까지 했다. 조선 후기에도 인조 반정으로 공신에 오른 김자점, 양모 화완옹주와 함께 정조의 정적이었던 정후겸은 ‘갓 부화한 병아리’를 즐긴 탐식가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들의 탐식은 권력을 잃고 나서는 정적으로부터 패륜으로 공격당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후대에 탐식가로 인정받으려면 진귀하고 맛난 음식을 찾아 먹는 일 외에도 그것을 기록하여 남기는 일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인물로 우심적, 두부, 순채 등에 대해 수많은 시를 써서 남긴 조선 초기의 문신 서거정과 조선 최초의 음식 비평서인 《도문대작》을 남긴 허균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처지는 극과 극이었다. 시성詩聖으로 불릴 정도로 문명을 떨치며 조정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으며, 곳곳에 집과 별장까지 지을 정도로 부까지 누린 서거정은 부족한 것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와 명예는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킬 때 눈을 감은 대가였고, 아무리 요직을 두루 역임해도 정승이 되지 못한 콤플렉스는 채울 수가 없었다. 이런 그가, 군자의 음식이라는 우심적이나 오미(다섯 가지 미덕)를 갖춘 음식이라는 두부, 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진나라 사람 장한을 기리는 순채 등을 시로 찬양했다는 것이 역설적이다.
한편 허균이 《도문대작》을 쓴 이유는 향유할 수 없는 산해진미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조카와 조카사위를 과거에서 부정합격시켜려다 탄핵을 당하고 귀양살이를 하게 된 허균이, 예전에 먹었던 산해진미의 맛을 하나하나 반추하며 쓴 것이 바로 《도문대작》이었다. 스스로를 “평생 먹을 것만 탐한 사람”이라 일컬은 허균은, 아버지의 정을 받지 못한데다 형과 누이를 일찍 여의고, 전쟁(임진왜란) 통에 처자까지 세상을 떠난 헛헛한 마음을 음식으로 달래려 했고, 벼슬은 그저 생활고를 해결할 방편일 뿐이었다. 그는 이조 판서를 상대로 수차례 관직 로비를 벌였는데, 그 내용은 진미가 풍부하게 나는 남원이나 가림(공주)의 수령으로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귀양을 가면서도 새우와 게가 좋은 함열로 보내 달라고 로비를 벌였는데, 정작 그곳에는 먹을 만한 것이 없어 《도문대작》이 탄생한 것이다.

탐식의 반대편
책 속에는 탐식가의 정반대편에 선 사람들도 소개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은 천주교도로 몰려 길고 긴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에 직접 채소를 가꾸고 밥을 상추로 싸 크기를 부풀려 먹으며 포만감을 느끼려 했다. 중농학파로 선비도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 다산이니, 평소에도 소박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그런 다산이지만, 귀양살이의 궁핍에서 몸을 보한 비결이 있었으니 바로 개고기와 차이다. 다산이 개고기로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했음은 흑산도로 유배 간 형 약전에게 보낸 편지로 알 수 있다. 다산은 형에게 덫을 놓아 산개 잡는 법에서 개를 요리하는 법까지 자세히 알려 주며 보신을 당부하는데, 이 개 요리법은 박제가가 가르쳐 준 것이라 한다. 호를 다산으로 할 만큼 차를 즐긴 정약용이지만, 그에게 차는 기호품이 아니라 약이었다. 하복부가 뻣뻣하게 굳는 듯 통증이 심한 현벽증을 다스리기 위해 직접 차나무를 키우고 떡차 만드는 법을 개발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근검을 실천한 다산이지만, 먼길 찾아와 준 친구에게 우심적이 아니라 부추밖에 대접하지 못하는 처지를 비관하며 “알겠노라 소염통 구워 먹는 게 / 부추밭 가꿈보다 낫다는 것을.”이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다산에게 영향을 미친 이는 실학자 이익으로, 그는 조선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음식 사치와 주책없이 많이 먹는 것에서 찾았다. 이익은 선비의 조악한 밥상을 상징하는 명아줏국을 예찬했고, 콩에 대한 사랑을 끊임없이 표현했다. 콩은 쌀에 비해 저렴하기에 백성을 살리는 곡물로 본 것이다. 이런 이익이 관심을 둔 것은 두부가 아니라 비지였다. 콩의 진액만 응고시킨 두부는 너무 사치스러운 음식이었고, 두부를 만들고 난 찌꺼기가 백성을 살리는 데 훨씬 나은 음식인 까닭이다.
미식과 탐식 행위를 소인배나 호사가의 추악한 취미라고 무시한 성리학적 음식철학을 가장 적극적으로 구현한 인물은 양반 사대부가 아니라 중인 지식인 이덕무였다. 그는 “부귀한 집 자제로서 거친 밥을 달게 먹는 사람은 복 받을 사람이요, 시정 사람으로 기장·보리·피·콩으로 지은 밥을 먹기 싫어하는 사람은 길한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선비의 식사는 인격 도야에 필요한 힘을 얻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조선의 미식 트랜드
조선의 탐식가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미식 트랜드 또한 엿볼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육식 열풍이다. 불교 국가 고려에서 육식을 억눌려 왔던 지배층은 특히 소고기에 대한 유별난 애정을 드러냈다. 소고기 탐식에 알리바이를 제공한 것이 성리학의 본고장 중국의 고사였는데, 왕희지와 얽힌 우심적(소염통구이)이나 송 태조와 보의 우정을 상징하는 설야멱이 조선 사대부가 주로 즐긴 소고기 요리였다. 그러나 농업 국가 조선에서 소는 사람 대신 밭을 갈았던 귀중한 노동력이었으므로, 조선 정부는 소고기 금령을 내려 소고기 탐식 열풍을 잠재우려 했지만 소 밀도살만 성행했고, 소 전염병까지 퍼지자 소고기 밀매를 위한 살인사건까지 일어나는 지경이 되었다.
조선 사대부의 미식 트랜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담박한 식성’을 뽐낼 수 있는 두부와 순채이다. 왕실의 능묘를 보살피는 역할을 하던 절에서 왕실에 공상할 두부를 만들며 갈고 닦은 두부 제조 기술이 급기야 명 황제로부터 “조선 여인들의 두부 만드는 솜씨가 신묘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발달한 것이다. 여기에 두부가 부드러운 맛, 은은한 향, 아름다운 색과 광택, 반듯한 모양, 먹기 간편한 오미를 갖춘 음식이라는 이유로, 조선 사대부는 두부를 즐겨 먹었다. 문제는 사대부들이 당시 유행하던 연포탕(두부를 꼬챙이에 꿰어 지지고 닭고기를 섞어 끓인 국)을 먹으러 절로 달려가 승려들에게 두부 내놓으라, 탕을 끓이라, 횡포를 부린 데 있다. 승려들로서는 양반들의 행패도 참기 힘들었겠지만, 오감을 자극하는 연포탕 냄새에 식욕을 누르기가 더 곤혹스러웠으리라.
순채는 진나라 사람 장한이 고향의 순챗국과 농어회를 먹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 고사와 관련해 사대부들의 시에 즐겨 등장한 식재료이다. 그야말로 안빈낙도와 귀거래의 아이콘이었던 것이다. 순채는 꽤 비싼 식재료이기도 해서 능금 한 상자가 2냥 8전일 때 순채 한 항아리는 4냥이나 나갔다. 순채를 좋아했던 폭군 연산군 때문에 당시 조선의 물가가 들섞인 사건이 있었다. 순채는 쉬 삭아서 문드러지므로, 한양에서 먼 곳에서는 순채 공상을 중단하자고 승정원에서 건의를 했다. 그러자 연산군은 순채, 파, 마늘, 상추는 도성에서 가까운 경기도에서만 공상하도록 했는데, 여기서 제외된 지역에서는 다른 채소를 공상하되 뿌리에 흙을 덮어 시들지 않게 공상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조치에 각도 수령들은 반색했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아무리 용을 써도 시들지 않게 채소를 운반할 수 없었고, 결국 한양 인근에 이르러서는 공상 업무를 담당한 향리들이 시든 채소를 버리고 근처 시장에서 싱싱한 채소를 사서 바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미식 트랜드는 외국 음식 유행이다. 마치 오늘날 사람들의 교류로 인해 외국의 여러 음식이 유행하듯이, 당시에도 중국으로부터 열구자탕(신선로)이, 일본으로부터 승기악탕(스기야키)이 들어와 조선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열구자탕은 중국을 다녀온 사신과 역관에 의해 궁중에 알려져 궁중 음식이 되었고, 궁중에서 그 맛을 본 사대부 관료들에 의해 다시 반가로 퍼졌다. 한편, 왜관에 거주한 일본인에 의해 조선인 사이에서 유행한 스기야키는 결국 기생과 음악보다 더한 즐거움을 주는 음식이라는 뜻의 승기악탕이라는 이름까지 차지하고 말았다.

맛집 블로거의 원조는 조선 시대의 문집
2000년대 들어서 미식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맛집 열풍이 한국을 휩쓸었다. 대중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파워 블러거 중에도 맛집이나 요리를 다루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이런 파워 블러거들이 있었다. 다만 그들의 기록은 인터넷이 아닌 선비들이 기록한 여러 문헌, 혹은 야담집, 때로는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
도서출판 따비의 신간 《조선의 탐식가들》의 저자 김정호는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소박하고 담박해야 할 성리학의 밥상을 뒤엎은 조선 시대의 탐식과 미식을 파고들었다. 추천사를 쓴 안대회 교수(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의 말대로 《조선의 탐식가들》은 “숨겨져 있고 흩어지고 조각난 자료의 퍼즐을 짜 맞추어 조선 시대 음식문화의 주요한 장면을 복원하여 우리 앞에 질서 있고 성대하게 차려 놓”은 흥미진진한 맛의 식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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