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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책

토베 얀손 지음
민음사 펴냄

한겨울, 여름을 그리며 산 책

할머니와 손녀의 섬 생활이 잔잔하게 이어진다. 일하는 아빠를 대신해 손녀를 돌보는 할머니는, 소피아를 격없는 친구처럼 받아주면서도 보호자로서의 모습을 종종 내비친다. 그 옛날 할머니와 내 이야기 같기도 해서 오래 전 기억이 자극됐다.

모래사장에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 멀리 철새와 벌레들이 우는 소리. 그럼에도 고요한 바닷가. 짭짤한 바다 냄새. 소금기 머금은 여름 바람.

요즘은 이런 책이 좋네.

P.38 아니라고 봐. 아마 뭐 하나 제대로 해내면 다시는 그렇게 못 하는 그런 부류인 것 같아.

P.53 할머니는 바닷가의 특별한 장소까지 내려왔다. () 바위에 앉아서 조금씩 조금씩 미끄러져 내려가 협곡에 완전히 혼자 들어앉았다. 거기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거의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모래 언덕을 관찰했다.

P.144 책 집필을 시작하기에 딱 좋은 저녁이었다.
👍 힐링이 필요할 때 추천!
2021년 3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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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겨울부터 산뜻한 표지와 줄거리를 찾아다녔는데 마침 이사카 고타로가 눈에 띄었다. 홍보는 깨발랄한 히어로의 우당탕탕 정의 실현기처럼 소개해 놓았는데 이건 뭐 후가와 유가보다 더 질척한 진창이다.

'화성에서 살 생각이 아니라면 어쩌겠어. 마음에 안 드는 건 깨부셔서 해결하자구!'가 아니다.

무거운 소재와 배경을 상정해놓고 무정한 인간들을 곳곳에 깔아놓은데다 표지의 히어로는 유쾌하지도, 심지어 분량이나 역할에서 비중있는 주인공도 아니다. 오히려 주변인. 이제보니 소파에 앉은 히어로의 어깨가 무기력하게 굽었네.

후가와 유가에서부터 느꼈지만 이사카 고타로는 문장은 산뜻하게 쓰면서 자꾸 소진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줘서 울고 싶게 만든다. 자기는 타박타박 가벼운 걸음으로 속도를 내면서 읽는 사람의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얄밉게.

뭐 어쨌든. 내가 기대한 전개는 아니었지만 이야기 자체는 괜찮았다.

작가는 구제할 길 없는 시스템 속에서 자기 편한대로 적응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각면에서 보여주는데, 그건 단순히 선하거나 악하다고 말할 것도 없이 너무 멍청해서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 와중에 의지를 가진 인간은 배후에서 큰 그림을 그리느라 잘 보이지 않는다.

고구마 백 개 먹은 답답함에 가슴을 여러 번 치겠지만, 그런 상황을 아무것도 아니란 듯 이야기하는 이사카 고타로 때문에 승질도 나겠지만 어쨌든 이야기는 산뜻하게 끝이난다! 제발!


- 너희도 평화경찰을 돕다가 세뇌를 당한 건지 모르겠지만 지독한 일을 하면 자신도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되지.
- 어머니는 화를 냈다.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주제넘은 인간!" 하며 통곡했다.
- 모두가 본능과 욕망에 따라 멋대로 행동한 결과가 다른 차원의 누군가에게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야.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arte(아르테) 펴냄

👍 인생이 재미 없을 때 추천!
2021년 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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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추천받았을 때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본 적 없으면서 그의 에세이를 읽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었으나, 이 책을 통해 알고 싶었던 것은 유명 소설 뒤에 숨겨진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라 소설가 일인으로서의 일상과 일생과 마음가짐이었으므로 나름 깨닫는 바가 있었다.

이 책은 작가 한 사람의 개인적인 기록이므로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지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부러운 부분도 있고,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내게 아무 쓸모 없는 부분도 있지만 읽는 사람마다 자기를 깨닫게 하는 바를 한두 가지쯤은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57p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111p 그리고 어느날, 참을 수 없어서 책상 앞에 앉아 새 소설을 시작합니다.

186p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그리고 성공적이게도,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싶은 책 목록에 끼워넣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현대문학 펴냄

2018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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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은 책을 사자마자 게을러지는 요상한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이제 좀 게을러져볼까 마음 먹었기 때문에 이 책이 손에 잡힌 것인지, 이 책을 읽기 위한 준비로 내 마음이 주인공과 싱크를 맞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가볍게 읽기 쉬운 글이라 마음만 먹으면 이틀만에 끝낼 수 있는 책을 이 주 동안 질질 끌며 읽었다.

모리미 토미히코는 애니메이션 '유정천 가족'으로 처음 만났고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최근에 영화로 제작되어 영화관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영상으로 먼저 접한 작품은 굳이 책으로 찾아보지 않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영상을 보고 나자 원작이 더 궁금해졌다. 이 요란한 모험들을 어떻게 텍스트로 써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재밌게도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을 읽는 내내, 통통 튀는 사랑스러운 등장인물들은 교토의 좁은 골목을 누비듯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마치 영상을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글을 고스란히 영상으로 옮긴 것처럼, 영상을 고스란히 글로 옮긴 것처럼 문장이 아주 유쾌하다.

263p 두 사람은 묵례했다. 잔과 잔이 부딪쳐 맑은 소리가 났다. 그건 서로의 게으름뱅이가 공명하는 소리였다.
"도움이 되려 하다니 자기과신이지."

327p 내면의 게으름뱅이는 잠든 사자이다. 포효하는 대신에 하품을 한다.

245p 흠, 내가 만약 출세한다면 주휴 오일제를 억지로 도입해서 회사가 망하겠지.

작가는 줄곧 호의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아주 사랑스러운 감상을 이야기한다.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알에이치코리아(RHK) 펴냄

2018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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